[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D-29
이 말은 사실 웃길 목적으로 넣었다. 이 말을 하는 등장인물은 참견이 심하기로 유명한 이웃이다.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관객은 심오한 철학적 명제들을 조롱하는 듯한 예상 밖의 답변에 한바탕 웃었을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진지하게 인용된 문구가 실은 야단스러운 희극에 나오는 대사였다고 생각하면 나도 웃음이 난다. 그러나 이 말은 분명 휴머니즘의 근본적인 신념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들이고 상대의 경험에서 자신의 일부를 본다. 우리와 매우 달라 보이는 상대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4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아프리카 대륙의 정반대 남쪽 끝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전해져 내려온다. 은구니족의 반투어 우분투ubuntu에 담긴 정신으로 다른 남부 아프리카 언어에서도 같은 의미의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정신은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개인을 연결하는 상호 인간관계망을 가리킨다.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199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 종식을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끌면서 자신의 접근 방식이 기독교적 원칙뿐만 아니라 우분투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종분리정책 아래의 억압적인 관계가 억압하는 사람과 억압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안겼으며, 민족 내부와 민족 간에 있어야 할 자연스러운 인간 결속을 파괴했다고 했다. 나아가 원수를 갚는 데 집중하기보다 인간적 결속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우분투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한 생명 다발의 일부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야 비로소 사람일 수 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4-25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서문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한데. 여러분도 한번 답해보시면 좋겠어요. 나는 휴머니스트인가?
저는 휴머니스트 하니, 작고하신 남경필 작가님과 그 출판사가 생각합니다~ 아직도 휴머니스트에서 좋은 책을 많이 만들고 있겠죠?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함께 긴 춤을 춰왔다. 휴머니즘과 안티휴머니즘 사상은 서로 대립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소생시키고 서로에게 활력이 되었다. 종종 이 두 사상은 한 사람 안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나도 두 가지 사상을 다 갖고 있다. 전쟁과 폭정, 편견에 따른 증오, 탐욕, 환경 파괴 등이 난무할 때 내 안의 안티휴머니스트는 그야말로 형편없는 인간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가령 과학자들이 협력해서 설계하고 쏘아 올린 새로운 우주 망원경의 성능이 매우 좋아서 거의 빅뱅 직후인 135억 년 전 먼 우주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동물인가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하늘빛 색유리 창을 바라볼 때는 사라진 지 오래인 12세기와 13세기의 공예가들을 상상한다. 얼마나 뛰어난 실력이고 얼마나 귀한 정성인가! 사람들이 매일 서로를 위해 베푸는 크고 작은 친절이나 영웅적인 행위들을 목격할 때도 그렇다. 나는 온통 낙관주의자이며 휴머니스트가 된다. 이런 양면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안티휴머니즘은 우리가 허세를 부리거나 안주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 주며, 우리 안의 나약하고 흉악한 면에 대해 사실주의적 시각을 제공한다. 어수룩하게 있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와 동료 인간이 언제든 어리석은 짓이나 악한 짓을 할 수 있음을 대비하게 만든다. 휴머니즘이 끊임없이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도록 만든다. 한편 휴머니즘은 지상이든 천상이든 이상향에 대한 춘몽에 빠져 실제 세상에 놓인 과제를 등한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극단주의자들의 중독성 있는 약속에 저항할 수 있게 돕고, 우리 자신의 결함에 지나치게 집착해 좌절에 빠지는 것을 막는다. 모든 문제를 하느님이나 인간 생리, 혹은 역사적 불가피성에 돌리며 패배주의에 젖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책임질 의무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일깨우고 지상의 난관과 공동의 안녕에 관심을 돌릴 것을 촉구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34-35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옮긴이 이다희 님 이름이 익숙해서 생각해보니 유명한 이윤기 님의 따님이라는 게 기억났어요. 부녀가 대를 이어 번역을 하시나봅니다. 저희집 책장의 고양이책 전용 칸에도 이다희 님이 옮기신 책이 한 권 있는데, 아직 못 읽어봤네요.
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고양이 집사인 저자는 일평생 하는 일이라고는 일광욕뿐인 자신의 고양이를 보면서 의문에 휩싸인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와 왜 고기를 나눠 먹게 되었을까? 철저한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어쩌다 인간과 영역을 나눠 쓰게 되었을까? 인간에게 고양이 집사의 유전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맞아요 오래 전 이윤기 님 딸이 대를 이어 번역한다고 어느 에세이집에서 그 소감을 글로 쓰기도 했던 거 같은데, 전 그분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어요.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TV에서 강연하는 것도 봤는데 말이죠. 꽤 됐죠? ㅠ
@향팔 @stella15 이윤기 선생님 따님 이다희님, 오래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같이 했는데 추억돋네요. 서로 악기도 다르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때 다희님이 쉬는 시간에 아버님과 신화 얘길 몇 번 한 기억이 나네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아버님이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 줄 몰랐지만요. 세월이 흘러 이다희님이 번역한 책으로 책모임을 할 줄이야.
이다희 번역가와 동기신가 봅니다. ㅎㅎ 이윤기 님 그리스 로마 신화 연구로 유명했죠. 책도 내고. TV에도 나오고. 번역도 하고. 오래 사셨다면 좀 더 많은 일을 하셨을 텐데 참 아쉬워요. 근데 그 오케스트라에서 소향님은 어떤 악기를 하셨나요? 지금도 종종 연주하시나요? ^^
이다희님과 동기 아니고, 그냥 같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어요. ^^ 저는 전공도 그렇고 당시에 문학하고 거리가 멀어서 이윤기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랐어요. 그때 국문과 다니는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얘기해줘 듣고 놀랐어요. 저는 첼로했고 다희 님은 바이올린 했는데 아마 저 기억도 못할 거예요.ㅎㅎ 쉬는 시간에 몇 번 얘기한 게 다라서요. 저의 연주는... 조기 출산과 함께 그만둔 지 오래네요. ㅠㅠ
오, 이다희님과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신기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 방에서 소향 작가님이 첼로를 연주하신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나요. (멋짐..)
그 방에서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한다고 아니고 했다, 과거형입니다. ㅎㅎ 그때도 아마추어였지만, 하도 오래 돼 지금은.. ㅎㅎ
그 방에 계시던 다른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던 듯해요 ㅎㅎ
와! 향팔님 기억력 대단하시네요. ^^
저도 첼로나 비올라 같은 현악기를 꼭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현실은.. 기타도 일주일만에 포기했고 지금은 우쿨렐레로 곰세마리나 뚱기고 있답니다 하하
오늘 합정 교보문고에서 한 권 비치되어 있는 것을 구입했습니다. ^^ 꺼내면서 기념으로 한 컷 찍었어요. 책장에서 손을 내미는 것 같네요..
저도 간밤에 책을 처음 펼치면서 표지를 한참 바라봤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면서요. @ifrain 님 말씀대로 손을 내미는 것 같아서 서문의 ‘오직 연결!’의 정신을 나타내는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프의 줄 같기도 한 금빛 실도 있고 ㅎㅎ 르네상스풍 그림의 색감처럼 보드랍고 따숩기도 하네요. “이들은 다채롭지만 뜻깊은 실로 엮여 있다. 이 책에서 바로 그 여러 가닥의 실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포스터가 남긴 또 하나의 휴머니즘 명언을 길잡이로 삼고자 한다. "오직 연결!"” (p.15)
실로 엮인 이들을 이야기하는 이 대목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빛과 실> 생각도 났어요. @연해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아름다운 금실이지.”
오... 저도 이 문장 좋아해요. 읽을 때마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요(이 문장에도 '사랑'이 들어가네요).
향팔님께서 말씀하시고 나서 보니 금빛 실이 더 빛나고 예뻐요. 아주 가느다랗지만.. 표지를 만져보니 금빛 라인 부분이 살짝 패여 있네요. 연약한 듯 아프게 새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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