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CM @punky 님, 댓글을 읽고서 저도 생각을 정리해 봤어요.
1. 『Humanly Possible』을 제가 번역했다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들” 정도로 옮겼을 것 같습니다. ‘인간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의 뉘앙스가 깔려 있죠. ‘Humanly’에는 ‘인간적으로’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책의 맥락상 ‘인문주의’가 깊이 연루돼 있으니 ‘인문주의적 가치로 해야 할 것들’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고요.
2. loveCM 님께서 언급하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punky 님께서 짚어주신 현실의 비참함에 저 역시 깊이 공감합니다. 아시다시피 피케티는 인간의 개별적 ‘의지’보다는 압도적인 ‘시스템의 관성’을 통해서 불평등의 심화를 진단했죠. 개인이나 공동체가 아무리 분투해도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속도를 제어하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죠.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700년 전의 ‘휴머니즘’을 소환하는 일이 자칫 지적 자위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보다는 ‘구조’로 문제의식의 전환이 일어났고, 그 흐름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우리가 12월에 읽었던,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미셸 푸코였습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 푸코가 ‘안티 휴머니즘’의 기수로서 다소 비판적인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푸코를 포함한 일련의 현대 철학자들이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지난 토론 때 푸코의 이론이 가진 실천적 한계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죠?)
3.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피케티가 거대한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글로벌 자본세’ 같은 기획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동력이 되어야 할까요? 결국에는 공동체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고, 그 정치적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공감’과 ‘윤리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4. 저 역시 오랫동안 ‘안티 휴머니즘’의 분석 틀을 공부해 왔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삼 제가 여전히 ‘휴머니스트’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제시한 휴머니즘의 조건들은 저도 일상에서 지향하는 가치들과 일치하더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연대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로서 저 정도의 휴머니즘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만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하고 나서, 그간 나온 해외 서평을 쭉 살펴봤어요. 이 책이 ‘휘그주의적 낙관론’에 매몰된 순진한 시각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눈에 띄더군요.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아직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느냐는 냉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냉소야말로 현실의 작은 변화조차 가로막는 가장 무력한 태도일 뿐입니다.
6.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맹 롤랑이 말하고 그람시가 인용해 유명해진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입니다.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루쉰의 「고향」 끝자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이 고민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D-29

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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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알마님의 대화: 오랜만입니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말이 인간으로서 우리가 인간의 방식으로 현실을 경험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이마를 탁 쳤습니다. 휴머니즘에 대한 제 안의 이미지는 첨부한 그림과 비슷했거든요. 너무 색안경을 끼고 있었나... 마음을 열고 책을 읽어볼까 합니다. 서문을 읽고 보니 저는 꽤나 휴머니스트에 가깝더라구요 ㅋ
@알마 님, 오랜만입니다. 환영합니다! 알마 님께서 흥미를 가지실 법한 접근 법을 놓고서 제가 어제(2026년 4월 6일) 칼럼을 하나 썼어요. 한번 살펴보세요.
*
세상 흔드는 ‘非인간 행위자’들: 총, 아파트 그리고 석유
괜히 혼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이 있다. 극단적인 사회 갈등의 양상만 놓고 보면, 한국도 미국 못지않다. 보수와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계층, 성별, 지역, 세대 갈등까지 더해져 사실상 정신적 내전 상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를 향한 적개심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에서 이러한 적개심이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를 딱 하나만 찾자면 ‘총’이다. 강력한 총기 규제 덕분에 극단적 갈등이 끔찍한 폭력으로 전환하는 일이 드물다. 가까운 현대사를 살펴보면, 그 증거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총을 구하기 쉬웠던 1940년대 중후반 해방 공간에서는 총기 테러가 많았다. 김구(1949년)도 여운형(1947년)도 송진우(1945년)도 큰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떠야 했다.
*
총처럼 세상에 들어와서 인간과 얽히며 핵심 역할을 맡는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의 주도적 역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애초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같은 지식인이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실험실에서 각종 측정 장비와 시약 같은 비인간 행위자가 과학 지식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면서 주목받은 이 접근법은, 최근 들어 인간사 전반에 영향을 주는 온갖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비인간 행위자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병원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2020년부터 수년간 한국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에 준 충격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을 일으킨 병원체는 단적인 사례다. 당시 유럽 인구의 최대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추정치가 있을 정도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 가운데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만 꼽자면 한국의 ‘아파트’와 세계의 ‘화석연료’가 있다. 산업화 시대 팽창하는 서울의 주거난을 해결하려는 손쉬운 수단으로 선택된 아파트는 어느새 라이프스타일은 물론이고 자산 구조와 정체성, 심지어 정치까지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행위자가 되었다.
자기 명의의 번듯한 브랜드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는 한국 사회의 자산 구조는 결혼과 출산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높였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이다. 아파트가 한국의 인구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둘러싼 사정은 어떤가. 당장 미국과 이란의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전쟁터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삶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사람’보다도 호르무즈 해협에 막힌 ‘석유’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상황은, 이 비인간 행위자의 압도적 위상을 보여준다.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상황은 더욱더 복잡하다. 만약 이란을 포함한 서남아시아 나라들에 석유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강대국의 개입도 훨씬 덜했을 테고, 그 반발로 득세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입지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전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미사일이 오가는 상시적 전쟁 상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즉, 석유가 그 지역의 정치를 설계한 셈이다.
*
화석연료가 대기 중에 풀어 놓은 또 다른 비인간 행위자 ‘온실 기체’도 문제다. 19세기 중반부터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나오기 시작한 이산화탄소는 20세기 내내 지구를 데우더니, 이번 세기부터 그 양상이 심상치 않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가 오르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세계 기후 전문가들이 산업화 이전(19세기 중반 이전)과 비교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자고 합의했지만, 현재 과학계는 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30년대에 1.5도 이상 상승할 게 거의 확실하다. 그 이후에 지구 기후와 그것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생태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 가지 확실한 전망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 폭염과 한파, 가뭄과 폭우가 심화하는 더 극단적인 기후 패턴이 나타나는 일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그렇게 살기가 각박해지면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또 전쟁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의 많은 전쟁이 사실은 석유가 기획했고, 21세기의 재앙은 이산화탄소가 준비하고 있다. 비인간 행위자는 악의가 없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하다.
☞ 비인간 행위자: 인간은 아니나 사회에 개입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 동식물, 바이러스, 사물, 물질이 여기에 해당하며, 인간의 의도를 변형하고 세상을 재구성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68972

punky
1장과 2장을 새벽에 다 읽고 점심시간 짬을 내 써봅니다. 단테를 읽으면서 베르길리우스에 대한 글도 읽었었는데 역시 페트라르카도 베르길리우스를 숭배하는군요. 기품있고 탁월한 인류예찬에서 흑사병이 도래하니 인간의 잘 통제된 삶과 인간조건을 향상시키는 과학과 의술은 무용지물이었고 재능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고전시대의 그 이상도 흑사병은 그 모든걸 총체적으로 붕괴시켰습니다. 마치 코비드 시대를 경험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되더이다.

stella15
YG님의 대화: @알마 님, 오랜만입니다. 환영합니다! 알마 님께서 흥미를 가지실 법한 접근 법을 놓고서 제가 어제(2026년 4월 6일) 칼럼을 하나 썼어요. 한번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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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흔드는 ‘非인간 행위자’들: 총, 아파트 그리고 석유
괜히 혼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이 있다. 극단적인 사회 갈등의 양상만 놓고 보면, 한국도 미국 못지않다. 보수와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계층, 성별, 지역, 세대 갈등까지 더해져 사실상 정신적 내전 상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를 향한 적개심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에서 이러한 적개심이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를 딱 하나만 찾자면 ‘총’이다. 강력한 총기 규제 덕분에 극단적 갈등이 끔찍한 폭력으로 전환하는 일이 드물다. 가까운 현대사를 살펴보면, 그 증거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총을 구하기 쉬웠던 1940년대 중후반 해방 공간에서는 총기 테러가 많았다. 김구(1949년)도 여운형(1947년)도 송진우(1945년)도 큰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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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처럼 세상에 들어와서 인간과 얽히며 핵심 역할을 맡는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의 주도적 역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애초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같은 지식인이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실험실에서 각종 측정 장비와 시약 같은 비인간 행위자가 과학 지식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면서 주목받은 이 접근법은, 최근 들어 인간사 전반에 영향을 주는 온갖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비인간 행위자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병원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2020년부터 수년간 한국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에 준 충격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을 일으킨 병원체는 단적인 사례다. 당시 유럽 인구의 최대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추정치가 있을 정도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 가운데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만 꼽자면 한국의 ‘아파트’와 세계의 ‘화석연료’가 있다. 산업화 시대 팽창하는 서울의 주거난을 해결하려는 손쉬운 수단으로 선택된 아파트는 어느새 라이프스타일은 물론이고 자산 구조와 정체성, 심지어 정치까지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행위자가 되었다.
자기 명의의 번듯한 브랜드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는 한국 사회의 자산 구조는 결혼과 출산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높였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이다. 아파트가 한국의 인구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둘러싼 사정은 어떤가. 당장 미국과 이란의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전쟁터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삶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사람’보다도 호르무즈 해협에 막힌 ‘석유’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상황은, 이 비인간 행위자의 압도적 위상을 보여준다.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상황은 더욱더 복잡하다. 만약 이란을 포함한 서남아시아 나라들에 석유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강대국의 개입도 훨씬 덜했을 테고, 그 반발로 득세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입지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전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미사일이 오가는 상시적 전쟁 상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즉, 석유가 그 지역의 정치를 설계한 셈이다.
*
화석연료가 대기 중에 풀어 놓은 또 다른 비인간 행위자 ‘온실 기체’도 문제다. 19세기 중반부터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나오기 시작한 이산화탄소는 20세기 내내 지구를 데우더니, 이번 세기부터 그 양상이 심상치 않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가 오르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세계 기후 전문가들이 산업화 이전(19세기 중반 이전)과 비교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자고 합의했지만, 현재 과학계는 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30년대에 1.5도 이상 상승할 게 거의 확실하다. 그 이후에 지구 기후와 그것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생태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 가지 확실한 전망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 폭염과 한파, 가뭄과 폭우가 심화하는 더 극단적인 기후 패턴이 나타나는 일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그렇게 살기가 각박해지면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또 전쟁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의 많은 전쟁이 사실은 석유가 기획했고, 21세기의 재앙은 이산화탄소가 준비하고 있다. 비인간 행위자는 악의가 없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하다.
☞ 비인간 행위자: 인간은 아니나 사회에 개입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 동식물, 바이러스, 사물, 물질이 여기에 해당하며, 인간의 의도를 변형하고 세상을 재구성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68972
부모가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주면 꼭 집안 싸움단다잖아요. 오일 가지고 싸우는 게 꼭 그짝이란 생각이 드네요. 전 아침 뉴스 꼭 보는데 사실 트럼프 보는 게 괴롭지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축복의 기도는 아니겠죠? ㅎㅎ 사실 오일 전쟁은 제가 아는 것만해도 70년대부터인데 그때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모르겠더라구요. 70년대는 너무 어렸고, 90년대는 너무 젊어 철이 없었고, 이 나이쯤되니까 걱정되더라구요. 지난 주일 벚꽃 인파 보면서 나라 걱정하는 사람은 중노년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암튼 잘 읽었습니다. 역시 명문이십니다. 👍

borumis
YG님의 대화: @loveCM @punky 님, 댓글을 읽고서 저도 생각을 정리해 봤어요.
1. 『Humanly Possible』을 제가 번역했다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들” 정도로 옮겼을 것 같습니다. ‘인간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의 뉘앙스가 깔려 있죠. ‘Humanly’에는 ‘인간적으로’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책의 맥락상 ‘인문주의’가 깊이 연루돼 있으니 ‘인문주의적 가치로 해야 할 것들’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고요.
2. loveCM 님께서 언급하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punky 님께서 짚어주신 현실의 비참함에 저 역시 깊이 공감합니다. 아시다시피 피케티는 인간의 개별적 ‘의지’보다는 압도적인 ‘시스템의 관성’을 통해서 불평등의 심화를 진단했죠. 개인이나 공동체가 아무리 분투해도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속도를 제어하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죠.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700년 전의 ‘휴머니즘’을 소환하는 일이 자칫 지적 자위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보다는 ‘구조’로 문제의식의 전환이 일어났고, 그 흐름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우리가 12월에 읽었던,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미셸 푸코였습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 푸코가 ‘안티 휴머니즘’의 기수로서 다소 비판적인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푸코를 포함한 일련의 현대 철학자들이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지난 토론 때 푸코의 이론이 가진 실천적 한계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죠?)
3.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피케티가 거대한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글로벌 자본세’ 같은 기획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동력이 되어야 할까요? 결국에는 공동체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고, 그 정치적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공감’과 ‘윤리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4. 저 역시 오랫동안 ‘안티 휴머니즘’의 분석 틀을 공부해 왔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삼 제가 여전히 ‘휴머니스트’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제시한 휴머니즘의 조건들은 저도 일상에서 지향하는 가치들과 일치하더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연대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로서 저 정도의 휴머니즘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만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하고 나서, 그간 나온 해외 서평을 쭉 살펴봤어요. 이 책이 ‘휘그주의적 낙관론’에 매몰된 순진한 시각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눈에 띄더군요.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아직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느냐는 냉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냉소야말로 현실의 작은 변화조차 가로막는 가장 무력한 태도일 뿐입니다.
6.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맹 롤랑이 말하고 그람시가 인용해 유명해진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입니다.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루쉰의 「고향」 끝자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이 고민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안그래도 저는 원서로 읽고 있어서 이 번역서의 제목을 보고 좀 갸우뚱했는데요. 저는 Humanly possible이라는 말에서 오히려 안락사처럼 '가능한 한 인간적으로' 고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노력이 연상되었는데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possibility에 대한 느낌도 떠올렸지만 안락사 등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냉혹한 현실의 이면도 느껴졌던 건 저만 그럴까요? 제 생각에 humanism이란 단지 막연하게 낙관적인 것보다는 그런 냉혹한 현실마저 감안하고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은 데카메론을 읽은 당시 팬데믹이 가장 안 좋았던 때고 제 자신도 개인적으로 그것때문에 너무나도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때보다 더 끔찍한 흑사병과 더 부정부패와 착취도 심했던 중세사회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인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곤 했죠.
저보다 더 힘든 현장에서 일했던 남편도 보면 피철철의 공포 슬래셔도 좋아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깔깔 웃을 수 있는 예능 개그물도 참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할 때 만날 실없는 쇼츠를 보내곤 합니다;;; 단테도 보면 개인적 복수심의 문학적 뒤끝 끝판왕같지만 또한 천국편을 보면 같은 작가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문학적으로 승화도 가능한 걸 보면 신기합니다. 보카치오도 참 복잡한 인물이었구요.. 전 인간의 그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복잡함에서 희한하게도 어떤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쩌면 그런 완벽하게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진화?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YG
borumis님의 대화: 안그래도 저는 원서로 읽고 있어서 이 번역서의 제목을 보고 좀 갸우뚱했는데요. 저는 Humanly possible이라는 말에서 오히려 안락사처럼 '가능한 한 인간적으로' 고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노력이 연상되었는데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possibility에 대한 느낌도 떠올렸지만 안락사 등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냉혹한 현실의 이면도 느껴졌던 건 저만 그럴까요? 제 생각에 humanism이란 단지 막연하게 낙관적인 것보다는 그런 냉혹한 현실마저 감안하고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은 데카메론을 읽은 당시 팬데믹이 가장 안 좋았던 때고 제 자신도 개인적으로 그것때문에 너무나도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때보다 더 끔찍한 흑사병과 더 부정부패와 착취도 심했던 중세사회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인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곤 했죠.
저보다 더 힘든 현장에서 일했던 남편도 보면 피철철의 공포 슬래셔도 좋아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깔깔 웃을 수 있는 예능 개그물도 참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할 때 만날 실없는 쇼츠를 보내곤 합니다;;; 단테도 보면 개인적 복수심의 문학적 뒤끝 끝판왕같지만 또한 천국편을 보면 같은 작가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문학적으로 승화도 가능한 걸 보면 신기합니다. 보카치오도 참 복잡한 인물이었구요.. 전 인간의 그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복잡함에서 희한하게도 어떤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쩌면 그런 완벽하게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진화?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borumis 하지만 저자가 낙관적인 건 사실입니다. :) 저는 또 이런 시각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하하하!

YG
제가 사실 작년(2025년)부터 개인사 때문에 인류애가 바닥을 치고 있었던 터라서, 요즘엔 인류애 돋우는 책을 읽으면 괜히 더 끌리더라고요. :) 저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아주 늦게 읽고 영화도 2주 전에 봤어요.
책은 아주 즐겁게 읽었고(아래 서평 하나 쓴 것도 올릴게요!), 영화는 책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그래도 책의 스토리를 최대한 감성, 감성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큰 동거인은 질색이라서, 중학교 2학년 작은 동거인이랑 둘이서 봤어요. 작은 동거인은 아직 책은 안 읽은 상태였는데.
어느 시점부터 이 친구가 계속 우는 거예요. 한 30분 울었나? (어찌나 귀엽던지.)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나오면서 하는 말. "아빠, 지금까지 내가 봤던 영화는 다 쓰레기야." 지금은 틈틈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세요. 이 책과 함께 읽기에 좋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데뷔작 《마션》과 후속작 《아르테미스》가 연달아 대성공을 거두며 뉴욕 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명실상부 최고의 SF 작가, 앤디 위어의 신작.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정작 스스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헤일메리호에 오른 ‘좋은 사람’인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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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제가 사실 작년(2025년)부터 개인사 때문에 인류애가 바닥을 치고 있었던 터라서, 요즘엔 인류애 돋우는 책을 읽으면 괜히 더 끌리더라고요. :) 저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아주 늦게 읽고 영화도 2주 전에 봤어요.
책은 아주 즐겁게 읽었고(아래 서평 하나 쓴 것도 올릴게요!), 영화는 책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그래도 책의 스토리를 최대한 감성, 감성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큰 동거인은 질색이라서, 중학교 2학년 작은 동거인이랑 둘이서 봤어요. 작은 동거인은 아직 책은 안 읽은 상태였는데.
어느 시점부터 이 친구가 계속 우는 거예요. 한 30분 울었나? (어찌나 귀엽던지.)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나오면서 하는 말. "아빠, 지금까지 내가 봤던 영화는 다 쓰레기야." 지금은 틈틈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세요. 이 책과 함께 읽기에 좋습니다.
21세기 내내 과학계가 경고해 온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는커녕 되레 전쟁으로 치고받는 우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인류의 미래가 있을지 묻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애를 돋우는, 그래서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SF가 있다. 바로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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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 돋우는 이 소설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딱 한 명만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우주선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로 깨어난다. 자기 옆에는 동료였음이 분명한 중국인 남성과 러시아인 여성이 죽어 있다. 곧이어, 저쪽에 보이는 밝게 빛나는 별(항성)이 태양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혼자서 외계 항성계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더욱더 절망적이다. 어느 순간부터 태양의 출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상태대로라면 태양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구 생태계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게 된다. 출력이 고작 10% 떨어지는 30년 안에 지구 인류 80억 명 가운데 절반이 굶주림과 대재앙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태양 출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은 별에서 별로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흡입하는 우주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다. 그레이스는 바로 이 아스트로파지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였다. 우주생물학자(실제로 존재하는 연구 분야)였던 그는 이단적 가설을 주장하다 학계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중학교 과학 교사로 살아가던 그는 역설적으로 그 ‘이단적 안목’ 덕분에 급하게 차출된다.
그럼, 지구가 결딴나기 직전인데 그레이스가 외계 항성에 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계가 태양계 인근의 항성계를 샅샅이 관찰했더니, 대다수 별이 태양처럼 출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것. 그런데 유독 한 별만 원래 출력대로 빛났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 12년 걸리는(12광년) 고래자리 ‘타우 세티(Tau Ceti)’ 별(실제로 존재하는 별).
이제 그레이스의 임무가 무엇인지 눈치챘을 테다. 그는 타우 별이 아스트로파지의 에너지 흡입에 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자 지구에서 동료 둘과 함께 파견된 과학자였다. 우주여행으로 동료 둘이 사망했으니, 이제 인류와 지구 전체의 운명이 그의 활약에 달려 있다. 그레이스는 과연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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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저자 앤디 위어는 영화로도 유명한 『마션』으로 데뷔했다. 『마션』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한 남성의 생존 투쟁을 그린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1719)의 설정을 가져와 화성에 홀로 남겨진 과학자의 생존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인기를 모았다. 화성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과학자 이야기라니!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과 비슷한가 싶으면서도 다르다. 인류 전체 가운데 딱 한 명 주인공만이 우주 오지에 떨어진 상황은 똑같지만, 나머지는 정반대다. 『마션』은 지구의 나사(NASA)가 화성에 고립된 동료를 무사히 귀환시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일이 이야기의 한 축이다.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는 혼자 힘으로 인류 전체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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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대목에서 저자는 기막힌 상상력을 발휘한다. 아스트로파지가 망가뜨린 별은 태양만이 아니다. ‘우주 저편에서 인류와 똑같은 위기에 직면한 나름의 문명을 꾸린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만약, 그들도 타우 별의 특별한 상황을 인지하고 탐사대를 꾸려서 온다면?’ 그럼, 그레이스는 혼자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귀엽고 명민한 외계인 ‘로키’가 등장하는 이유다.
처음에 그레이스의 원맨쇼였던 소설은 외계인 로키가 등장하고부터 둘이 좌충우돌하며 지구와 로키의 고향 ‘에리드’를 구하는 마음을 흔드는 버디 무비가 된다. 소설 속에서 에리드는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40 에리다니 A’ 별에 딸린 첫 번째 행성이다. 물론, 그 행성에 로키처럼 고도의 지성을 가진 금속 외계인이 산다는 가정은 허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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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파지와 로키와 같은 외계 생명체의 등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보통 사람에게 생소한 과학 분야인 우주생물학의 중요한 주제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주한다. 우주생물학은 지구 바깥 광활한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으리라는 전제하에 그것이 어떻게 탄생해서 진화했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는 연구 분야다.
어떤 독자는 연구 대상(외계 생명체)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주생물학의 존재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로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소설 속 로키처럼 음파로 세상을 보고 화음으로 대화한다면 어떻게 대응할까? 우주 생물학은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음파로 보고 소통하는 고래 연구에 관심을 가진다.
우주생물학이 파고드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생명의 기원이다. 생명의 씨앗은 지구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에서 운석을 타고 들어와 지구에 뿌려진 것일까? 답이 없을 것 같은 이 질문을 놓고서도 이 소설은 한 가지 가설을 편든다. 그레이스와 외계인 로키의 우정이 뜬금없어 보이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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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이 소설과 우주생물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도 있다. 지구 바깥 우주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면, 하필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이 시점에 함께하는 동시대 인류의 존재는 무슨 의미일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이란을 때리고 나서 쿠바 차례라고 호언장담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가 이렇게 끌려다니는 일이 용납될 수 있을까?
만약, 인류의 운명이 결딴날 수 있는 심각한 위기가 당장 닥친다면 우리는 소설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그것을 극복하는 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지지부진한 기후 위기 대응이 이미 내놓았다. 이 소설이 따뜻한 인류애를 고양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유다.
미식축구를 즐기지 않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제목의 ‘헤일메리(Hail Mary)’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용어다. 미식축구 경기 종료 직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무리수 패스.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일도 불가능에 가까운 헤일메리의 성공이다. 다행히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외계 항성에 내동댕이쳐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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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얘기=알다시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지난 3월 18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소설에 이어서 영화까지 본 처지라서 살짝 아는 척을 하자면, 영화는 소설의 과학적 디테일은 최소화하는 대신에 이야기의 중요한 뼈대는 그대로 가져오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SF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영화만으로도 인류애를 넘어 우주애까지 충분히 고양된다.
앤디 위어는 『마션』의 대성공 이후 두 번째 소설로 『아르테미스』(2017)도 펴냈다. 제목대로 달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서점에서 『마션』,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묶여서 3부작으로 판매하기도 하는 이 소설은 셋 가운데 제일 처진다. 굳이, 세 작품의 순위를 매기자면 『프로젝트 헤일메리』 〉 『마션』 ≫ 『아르테미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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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53/0000055016
aida
YG님의 대화: 제가 사실 작년(2025년)부터 개인사 때문에 인류애가 바닥을 치고 있었던 터라서, 요즘엔 인류애 돋우는 책을 읽으면 괜히 더 끌리더라고요. :) 저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아주 늦게 읽고 영화도 2주 전에 봤어요.
책은 아주 즐겁게 읽었고(아래 서평 하나 쓴 것도 올릴게요!), 영화는 책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그래도 책의 스토리를 최대한 감성, 감성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큰 동거인은 질색이라서, 중학교 2학년 작은 동거인이랑 둘이서 봤어요. 작은 동거인은 아직 책은 안 읽은 상태였는데.
어느 시점부터 이 친구가 계속 우는 거예요. 한 30분 울었나? (어찌나 귀엽던지.)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나오면서 하는 말. "아빠, 지금까지 내가 봤던 영화는 다 쓰레기야." 지금은 틈틈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세요. 이 책과 함께 읽기에 좋습니다.
인류애! 우주생물애! 라고 해야 할까나요... 저 작년말에 책읽고 .. 개봉 기다렸다고 보고.. 또. 최근 '우주먼지'님의 해설을 보고.. 다시 책 - 영화를 읽고 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답니다. 헤일 메리가 라틴어 아베 마리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해 보는 도전이라는 것도.. 추가로 알게 되었구요..
인류애 뿐 아니라 정말 인간의 방식이 얼마나 많은 갈래의 하나인지를 깨주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서평까지 쓰셨군요!! 작은 동거인에게는 우리의 E.T 이미지가 로키가 되겠군요!
밥심
YG님의 대화: 제가 사실 작년(2025년)부터 개인사 때문에 인류애가 바닥을 치고 있었던 터라서, 요즘엔 인류애 돋우는 책을 읽으면 괜히 더 끌리더라고요. :) 저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아주 늦게 읽고 영화도 2주 전에 봤어요.
책은 아주 즐겁게 읽었고(아래 서평 하나 쓴 것도 올릴게요!), 영화는 책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그래도 책의 스토리를 최대 한 감성, 감성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큰 동거인은 질색이라서, 중학교 2학년 작은 동거인이랑 둘이서 봤어요. 작은 동거인은 아직 책은 안 읽은 상태였는데.
어느 시점부터 이 친구가 계속 우는 거예요. 한 30분 울었나? (어찌나 귀엽던지.)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나오면서 하는 말. "아빠, 지금까지 내가 봤던 영화는 다 쓰레기야." 지금은 틈틈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세요. 이 책과 함께 읽기에 좋습니다.
그 영화 어땠냐고 저에게 묻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짧게 말하자면 힐링 sf에요.” 하고 대답합니다. ㅎㅎ

소향
YG님의 대화: @알마 님, 오랜만입니다. 환영합니다! 알마 님께서 흥미를 가지실 법한 접근 법을 놓고서 제가 어제(2026년 4월 6일) 칼럼을 하나 썼어요. 한번 살펴보세요.
*
세상 흔드는 ‘非인간 행위자’들: 총, 아파트 그리고 석유
괜히 혼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이 있다. 극단적인 사회 갈등의 양상만 놓고 보면, 한국도 미국 못지않다. 보수와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계층, 성별, 지역, 세대 갈등까지 더해져 사실상 정신적 내전 상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를 향한 적개심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에서 이러한 적개심이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를 딱 하나만 찾자면 ‘총’이다. 강력한 총기 규제 덕분에 극단적 갈등이 끔찍한 폭력으로 전환하는 일이 드물다. 가까운 현대사를 살펴보면, 그 증거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총을 구하기 쉬웠던 1940년대 중후반 해방 공간에서는 총기 테러가 많았다. 김구(1949년)도 여운형(1947년)도 송진우(1945년)도 큰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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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처럼 세상에 들어와서 인간과 얽히며 핵심 역할을 맡는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의 주도적 역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애초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같은 지식인이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실험실에서 각종 측정 장비와 시약 같은 비인간 행위자가 과학 지식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면서 주목받은 이 접근법은, 최근 들어 인간사 전반에 영향을 주는 온갖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비인간 행위자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병원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2020년부터 수년간 한국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에 준 충격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을 일으킨 병원체는 단적인 사례다. 당시 유럽 인구의 최대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추정치가 있을 정도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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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비인간 행위자 가운데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만 꼽자면 한국의 ‘아파트’와 세계의 ‘화석연료’가 있다. 산업화 시대 팽창하는 서울의 주거난을 해결하려는 손쉬운 수단으로 선택된 아파트는 어느새 라이프스타일은 물론이고 자산 구조와 정체성, 심지어 정치까지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행위자가 되었다.
자기 명의의 번듯한 브랜드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는 한국 사회의 자산 구조는 결혼과 출산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높였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이다. 아파트가 한국의 인구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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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둘러싼 사정은 어떤가. 당장 미국과 이란의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전쟁터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삶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사람’보다도 호르무즈 해협에 막힌 ‘석유’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상황은, 이 비인간 행위자의 압도적 위상을 보여준다.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상황은 더욱더 복잡하다. 만약 이란을 포함한 서남아시아 나라들에 석유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강대국의 개입도 훨씬 덜했을 테고, 그 반발로 득세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입지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전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미사일이 오가는 상시적 전쟁 상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즉, 석유가 그 지역의 정치를 설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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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가 대기 중에 풀어 놓은 또 다른 비인간 행위자 ‘온실 기체’도 문제다. 19세기 중반부터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나오기 시작한 이산화탄소는 20세기 내내 지구를 데우더니, 이번 세기부터 그 양상이 심상치 않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가 오르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세계 기후 전문가들이 산업화 이전(19세기 중반 이전)과 비교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자고 합의했지만, 현재 과학계는 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30년대에 1.5도 이상 상승할 게 거의 확실하다. 그 이후에 지구 기후와 그것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생태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 가지 확실한 전망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 폭염과 한파, 가뭄과 폭우가 심화하는 더 극단적인 기후 패턴이 나타나는 일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그렇게 살기가 각박해지면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또 전쟁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의 많은 전쟁이 사실은 석유가 기획했고, 21세기의 재앙은 이산화탄소가 준비하고 있다. 비인간 행위자는 악의가 없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하다.
☞ 비인간 행위자: 인간은 아니나 사회에 개입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 동식물, 바이러스, 사물, 물질이 여기에 해당하며, 인간의 의도를 변형하고 세상을 재구성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68972
기자님 칼럼 읽을 때마다 매번 감탄하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소향
borumis님의 대화: 안그래도 저는 원서로 읽고 있어서 이 번역서의 제목을 보고 좀 갸우뚱했는데요. 저는 Humanly possible이라는 말에서 오히려 안락사처럼 '가능한 한 인간적으로' 고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노력이 연상되었는데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possibility에 대한 느낌도 떠올렸지만 안락사 등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냉혹한 현실의 이면도 느껴졌던 건 저만 그럴까요? 제 생각에 humanism이란 단지 막연하게 낙관적인 것보다는 그런 냉혹한 현실마저 감안하고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은 데카메론을 읽은 당시 팬데믹이 가장 안 좋았던 때고 제 자신도 개인적으로 그것때문에 너무나도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때보다 더 끔찍한 흑사병과 더 부정부패와 착취도 심했던 중세사회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인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곤 했죠.
저보다 더 힘든 현장에서 일했던 남편도 보면 피철철의 공포 슬래셔도 좋아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깔깔 웃을 수 있는 예능 개그물도 참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할 때 만날 실없는 쇼츠를 보내곤 합니다;;; 단테도 보면 개인적 복수심의 문학적 뒤끝 끝판왕같지만 또한 천국편을 보면 같은 작가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문학적으로 승화도 가능한 걸 보면 신기합니다. 보카치오도 참 복잡한 인물이었구요.. 전 인간의 그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복잡함에서 희한하게도 어떤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쩌면 그런 완벽하게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진화?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제목에 대해 쓰신 것 보니 저도 의미를 좀더 생각하면서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소향
밥심님의 대화: 그 영화 어땠냐고 저에게 묻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짧게 말하자면 힐링 sf에요.” 하고 대답합니다. ㅎㅎ
저도 아이맥스 일부러 찾아가 상상력과 영상에 놀라며 재밌게 보긴 했는데요. 보면서 책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영화는 생략되거나 표현하지 못한 게 많겠단 생각을 했어요. 인터스텔라, 컨택트, 콘택트, 그래비티를 기대하고 가서 그런 듯해요. 책을 보고 싶은데 두꺼워서 엄두가.. ㅎㅎ 관람객 평 중에 '인터스텔라와 E.T 를 고슬고슬링하게 비벼 낸 스페이스 SF(Save Friend)물'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재치있다 싶고 공감했어요.

YG
소향님의 대화: 저도 아이맥스 일부러 찾아가 상상력과 영상에 놀라며 재밌게 보긴 했는데요. 보면서 책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영화는 생략되거나 표현하지 못한 게 많겠단 생각을 했어요. 인터스텔라, 컨택트, 콘택트, 그래비티를 기대하고 가서 그런 듯해요. 책을 보고 싶은데 두꺼워서 엄두가.. ㅎㅎ 관람객 평 중에 '인터스텔라와 E.T 를 고슬고슬링하게 비벼 낸 스페이스 SF(Save Friend)물'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재치있다 싶고 공감했어요.
@소향 소설이 훨씬 재밌어요. 영화에는 없는 매력이 있거든요. 소향 작가님 같은 T 스타일이라면(맞죠?) 영화보다 소설을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보실 듯. :)

향팔
소향님의 대화: 저도 아이맥스 일부러 찾아가 상상력과 영상에 놀라며 재밌게 보긴 했는데요. 보면서 책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영화는 생략되거나 표현하지 못한 게 많겠단 생각을 했어요. 인터스텔라, 컨택트, 콘택트, 그래비티를 기대하고 가서 그런 듯해요. 책을 보고 싶은데 두꺼워서 엄두가.. ㅎㅎ 관람객 평 중에 '인터스텔라와 E.T 를 고슬고슬링하게 비벼 낸 스페이스 SF(Save Friend)물'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재치있다 싶고 공감했어요.
“고슬고슬링하게 비벼 낸” ㅋㅋㅋㅋ 아 이런 드립은 어떻게들 치는 건지
밥심
소향님의 대화: 저도 아이맥스 일부러 찾아가 상상력과 영상에 놀라며 재밌게 보 긴 했는데요. 보면서 책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영화는 생략되거나 표현하지 못한 게 많겠단 생각을 했어요. 인터스텔라, 컨택트, 콘택트, 그래비티를 기대하고 가서 그런 듯해요. 책을 보고 싶은데 두꺼워서 엄두가.. ㅎㅎ 관람객 평 중에 '인터스텔라와 E.T 를 고슬고슬링하게 비벼 낸 스페이스 SF(Save Friend)물'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재치있다 싶고 공감했어요.
영화 컨택트(arrival)와 영화 콘택트(contact)를 정확히 구분하시는 분이군요. ㅎㅎ 참, 책 두꺼운데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연해
향팔님의 대화: 한강 작가님도 식집사로서는 초보라고 하시니 왠지 내적 친밀감이 상승하네요. 저도 연해님과 비슷해서 식물을 키우는 일에는 마이너스의 손이라, 저한테 오는 족족 저세상으로… (그렇게 키우기 수월하다는 행복나무와 개운죽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다육이까지도… 미안해 얘들아) 그후론 더이상 식물을 집에 두지 않게 되었답니다. 은동이가 자꾸 뜯어서 그렇게 된 거라는 되도않는 핑계를 대면서요. 제 어머니는 식물을 너무 잘 가꾸셔서, 수년 전 청라에서 김밥집을 하실 때도 이게 김밥집인지 꽃집인지 햇갈릴 정도였죠. 엄마는 심지어 식물이랑 같이 ‘목마름’에 관한 대화도 나누시던데 저는 대체 누굴 닮았을까요.
"오는 족족 저세상으로..."라는 말씀에 육성으로 웃음이 터졌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는 다육이도, 키웠던 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오랜 기간 키우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답니다. 잘 키워보려고 이름도 '다행이'(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로 지어줬는데, 역시나 제 마이너스의 손이 늘 말썽입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는) 있어요. 그마저도 식집사인 동료의 심폐소생술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지만요.
저도 부모님 두 분이 식물을 잘 키우세요. 아빠는 퇴직하시고 집을 식물원처럼 가꾸고 계시고(다육이를 분양해 주신 것도 아빠였고요), 엄마는 식물을 키우는 것보다는 식물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조경관리사 자격증까지 따셨다지요. 향팔님의 어머님은 '목마름'에 대한 대화까지 나누시다니... 너무 낭만적이십니다. 우리(마음대로 우리로 묶었습니다, 헤헤)는 대체 누굴 닮았을까요, 쩝...

향팔
부엌의토토님의 대화: 현자들의 혜안에 고개를 절로 숙이게 됩니다.
논어에선가 '덕불고 필유린' 이인편에 나오는 이 말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는데. 이런 게 연결인 것 같고. 서문만 읽었는데도 뭉클하네요.
서문에서 토라 내용도 동서양이 통하는 게. 역지사지를 떠올렸어요. 그러니까 인간답게 만드는 그런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건가 봅니다. 여기 모임에서는 회원님들 글만 읽어도 저한테 부족한 탐구심을 마구마구 자극해요^^ 참말로 고맙습니다~
그러네요. @부엌의토토 님 글을 읽고 서문의 공자와 토라, 마하바라타, 성서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대목을 다시 넘겨봤답니다. 아버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다는 “덕불고 필유린”이 와닿아 신영복 선생님의 책도 오랜만에 펼쳐봤어요. 역 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셨던 걸로 기억해요.
정말로, “이런 게 연결인 것 같고, 인간답게 만드는 그런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신 토토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향팔
향팔님의 대화: 그러네요. @부엌의토토 님 글을 읽고 서문의 공자와 토라, 마하바라타, 성서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대목을 다시 넘겨봤답니다. 아버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다는 “덕불고 필유린”이 와닿아 신영복 선생님의 책도 오랜만에 펼쳐봤어요. 역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셨던 걸로 기억해요.
정말로, “이런 게 연결인 것 같고, 인간답게 만드는 그런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신 토토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인성人性이란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하여 구성됩니다. 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成) 것이지요. 『논어』에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仁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물질의 낭비와 인간의 소외, 그리고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신영복 선생의 고전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를 '관계론'의 관점으로 새롭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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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님의 대화: "오는 족족 저세상으로..."라는 말씀에 육성으로 웃음이 터졌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는 다육이도, 키웠던 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오랜 기간 키우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답니다. 잘 키워보려고 이름도 '다행이'(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로 지어줬는데, 역시나 제 마이너스의 손이 늘 말썽입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는) 있어요. 그마저도 식집사인 동료의 심폐소생술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지만요.
저도 부모님 두 분이 식물을 잘 키우세요. 아빠는 퇴직하시고 집을 식물원처럼 가꾸고 계시고(다육이를 분양해 주신 것도 아빠였고요), 엄마는 식물을 키우는 것보다는 식물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조경관리사 자격증까지 따셨다지요. 향팔님의 어머님은 '목마름'에 대한 대화까지 나누시다니... 너무 낭만적이십니다. 우리(마음대로 우리로 묶었습니다, 헤헤)는 대체 누굴 닮았을까요, 쩝...
“다행이” 하하하 그 이름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네요. 다행아, 꿋꿋이 잘 살아야 돼! 다행히 든든한 동료분도 계시니 잘 살 겁니다. 제 친구가 집 베란다에서 정성껏 보살펴서 꽃이 피었다며 튤립 화분 사진을 보내줬는데 어찌나 예쁘던지요. 우리같은 마이나쓰 파괴왕들은 그저 감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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