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D-29
오구오구님의 대화: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는데 이해가 되었어요. 편집할때 #으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 ㅋ 생각도 했구요 그래도 너무 좋네요
ㅎㅎ 동감입니다.
연해님의 대화: 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작년, YG님의 북토크에서 들었던 '부지런한 희망'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어요. 정치적 의지와 휴머니즘적인 공감, 윤리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에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오, ‘부지런한 희망’은 그맘때쯤 읽었던 <일인분의 안락함>에서도 얘기가 나왔었지요? 다시금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티 휴머니스트 70%, 휴머니스트 30% 내안에 두가지 사상이 혼재하며 항상 나이브하고 긍정만물설을 흘리고 다니는 철딱서니없는 휴머니즘에 반기를 들지만 본능적 반항심은 내 주변의 긍정과 활기참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라 내안의 기쁨이와 긍정의 힘을 모아모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를 좋아해서 휴머니즘과 안티휴머니즘이 곳곳에 잠복한 시대상을 관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서문에서 작가가 말하길 "안티 휴머니즘은 우리가 허세를 부리거나 안주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우리안의 나약하고 흉악한 면에 대해 사실주의적 시각을 제공하며 어수룩하게 있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와 동료인간이 언제든 어리석은 짓이나 악한 짓을 할 수 있음을 대비하게 만든다. 휴머니즘이 끊임없이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도록 만든다. 한편 휴머니즘은 지상이든 천상이든 이상향에 대한 춘몽에 빠져 실제상황에 놓인 과제를 등한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극단주의자들의 중독성있는 약속에 저항할수 있게 돕고, 우리 자신의 결함에 지나치게 집착해 좌절에 빠지는 것을 막는다. 모든 문제를 하느님이나 인간 생리, 혹은 역사적 불가피성에 돌리며 패배주의에 젖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책임질 의무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일깨우고 지상의 난관과 공동의 안녕에 관심을 돌려 이런 양면적 마음을 유지하기 바란다"는 당부에 내가 이 책을 읽는 지표가 될 수 있어서 다시 서문를 되새겨봅니다. 요즘 후원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곳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내게 쏟으며 후원금을 끊으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 수긍이 가기에 돕는다는 말을 하고 누구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자존심도 좀 있었습니다. 특히 타인들의 결함에 지나치게 집착해 좌절에 빠지지 않기!!! 신중한 휴머니스트로 거듭 너어가는 지침서로 쓰겠습니다.
YG님의 대화: @loveCM @punky 님, 댓글을 읽고서 저도 생각을 정리해 봤어요. 1. 『Humanly Possible』을 제가 번역했다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들” 정도로 옮겼을 것 같습니다. ‘인간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의 뉘앙스가 깔려 있죠. ‘Humanly’에는 ‘인간적으로’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책의 맥락상 ‘인문주의’가 깊이 연루돼 있으니 ‘인문주의적 가치로 해야 할 것들’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고요. 2. loveCM 님께서 언급하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punky 님께서 짚어주신 현실의 비참함에 저 역시 깊이 공감합니다. 아시다시피 피케티는 인간의 개별적 ‘의지’보다는 압도적인 ‘시스템의 관성’을 통해서 불평등의 심화를 진단했죠. 개인이나 공동체가 아무리 분투해도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속도를 제어하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죠.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700년 전의 ‘휴머니즘’을 소환하는 일이 자칫 지적 자위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보다는 ‘구조’로 문제의식의 전환이 일어났고, 그 흐름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우리가 12월에 읽었던,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미셸 푸코였습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 푸코가 ‘안티 휴머니즘’의 기수로서 다소 비판적인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푸코를 포함한 일련의 현대 철학자들이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지난 토론 때 푸코의 이론이 가진 실천적 한계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죠?) 3.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피케티가 거대한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글로벌 자본세’ 같은 기획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동력이 되어야 할까요? 결국에는 공동체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고, 그 정치적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공감’과 ‘윤리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4. 저 역시 오랫동안 ‘안티 휴머니즘’의 분석 틀을 공부해 왔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삼 제가 여전히 ‘휴머니스트’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제시한 휴머니즘의 조건들은 저도 일상에서 지향하는 가치들과 일치하더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연대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로서 저 정도의 휴머니즘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만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하고 나서, 그간 나온 해외 서평을 쭉 살펴봤어요. 이 책이 ‘휘그주의적 낙관론’에 매몰된 순진한 시각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눈에 띄더군요.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아직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느냐는 냉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냉소야말로 현실의 작은 변화조차 가로막는 가장 무력한 태도일 뿐입니다. 6.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맹 롤랑이 말하고 그람시가 인용해 유명해진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입니다.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루쉰의 「고향」 끝자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이 고민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나중에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자님.
borumis님의 대화: 저는 독서노트에 필사를 많이 하긴 하는데 조금만 발췌해서 쓰는데도 자꾸 철자가 틀리거나 개발새발;;; 게다가 손은 왜그리 아픈지... 예전 필사하던 수도사들 정말 이곳저곳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장미의 이름에서도 필사하는 수도사들의 이야기들 읽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구요. 전 실은 독서실이나 관리형 학원에서 절대 남들과 같이 공부하지 못하고 혼자서 집에서만 공부하는 이유가 낭독(?)하면서 공부를 해야 잘 외워지더라구요.. 반면 남편은 필사파.. 옛날에 깜지라고 종이가 까매질 정도로 열심히 필사하면서 공부하더라구요;;
저는 책 사 놓고 (읽지는 않고) 바라보기가 취미라 장미의 이름도 당연히 있긴 있는데요. 다들 초반 고비만 넘으면 된다던데.. 어렸을 때 영화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수도사들 필사 장면만 책에서 찾아보고 싶네요. ㅎㅎ
다양한 문학 경험과 문화경험, 비판적 분석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타인의 관점에 민감해질 수 있도록,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의 미묘한 전개를 더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고 전반적으로 더 현명하고 신중하게 삶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p13,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목이 안 좋아 어려운 두껍책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는데요ㅜㅜ 좋아하는 작가분의 책이라 함께 읽기 시도합니다. 이 책을 통해 저의 부정적인 세계관이나 세상을 향한 비관적인 관점이 변화되길 기대해봅니다!
그는 우리가 서로를 갈라놓는 장벽이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타인의 관점 역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5p,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인간으로 사는 일은 끓임없는 수수께끼이자 도전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7p,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향팔님의 대화: @소향 @연해 예전에 아래 책을 보고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삭막한 여의도 빌딩숲 한복판에 그렇게 울창하게 우거진 정글숲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직접 찍은 사진 첨부) 게다가 그곳엔 온갖 예쁜 나비들이 춤을 추는데, 제 생전에 그렇게 많은 나비 떼를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그 샛강 생태공원에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대단하고 고마우신 정영선 선생님이네요.
저는 정영선 선생님 영상에 너무 감동 받아서 수업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여기저기 많이 보냈어요. 향팔님 찍으신 사진 보니 정말 정글 맞네요. 매번 지나가기만 하고 들어가보진 못했는데 꼭 가보고 싶어졌어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의 운명은 온갖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폭풍우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내 희망과 바람대로 내가 떠난 뒤에도 네가 오래도록 살아남는다면 너에게는 더 나은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이 망각의 잠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둠이 흩어진 뒤 우리의 후손은 다시 과거와 같은 순수한 광휘 속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외국 박물관에 가면 온갖 화려한 칠과 금박 장식, 정성스러운 필체로 쓰여져 감탄하게 되는 필사본을 많이 보게 되는데, 1장을 읽으며 그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든 구해서 필사하려고 했던 옛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1963년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썼다는 <버밍엄 교도소에서 보내는 편지>가 인용된 부분을 읽을 땐 쓰라리면서도 감탄했습니다. 먼 나라의 과거가 아니라 내 일인 듯 아프더군요. 힘 있는 글이었어요. 전문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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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이 말은 사실 웃길 목적으로 넣었다. 이 말을 하는 등장인물은 참견이 심하기로 유명한 이웃이다.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관객은 심오한 철학적 명제들을 조롱하는 듯한 예상 밖의 답변에 한바탕 웃었을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진지하게 인용된 문구가 실은 야단스러운 희극에 나오는 대사였다고 생각하면 나도 웃음이 난다. 그러나 이 말은 분명 휴머니즘의 근본적인 신념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들이고 상대의 경험에서 자신의 일부를 본다. 우리와 매우 달라 보이는 상대라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대륙의 정반대 남쪽 끝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전해져 내려온다. 은구니족의 반투어 우분투ubuntu에 담긴 정신으로 다른 남부 아프리카 언어에서도 같은 의미의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정신은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개인을 연결하는 상호 인간관계망을 가리킨다.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199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 종식을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끌면서 자신의 접근 방식이 기독교적 원칙뿐만 아니라 우분투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종분리정책 아래의 억압적인 관계가 억압하는 사람과 억압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안겼으며, 민족 내부와 민족 간에 있어야 할 자연스러운 인간 결속을 파괴했다고 했다. 나아가 원수를 갚는 데 집중하기보다 인간적 결속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우분투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한 생명 다발의 일부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야 비로소 사람일 수 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4-25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키케로에게 보내는 또 다른 편지에서는 그의 선택을 감히 비판하기도 한다. “왜 그리 많은 다툼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원한에 휘말리셨습니까? (…) 선생이 그토록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다니 나는 수치스럽고 괴로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이 편지들은 팬레터가 아니라 삶의 문제들과 씨름했던 실수투성이 인간들과 나눈 의미 있는 대화였다. 그들은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잘못들을 저질렀지만, 페트라르카가 보기에 그들의 세상은 자신이 몸담은 세상보다 좀 더 지혜롭고 문명적인 곳이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54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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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키케로에게 보내는 또 다른 편지에서는 그의 선택을 감히 비판하기도 한다. “왜 그리 많은 다툼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원한에 휘말리셨습니까? (…) 선생이 그토록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다니 나는 수치스럽고 괴로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이 편지들은 팬레터가 아니라 삶의 문제들과 씨름했던 실수투성이 인간들과 나눈 의미 있는 대화였다. 그들은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잘못들을 저질렀지만, 페트라르카가 보기에 그들의 세상은 자신이 몸담은 세상보다 좀 더 지혜롭고 문명적인 곳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조금 생뚱맞지만 지난 두 달간 읽었던 <김규식과 그의 시대>가 생각났어요.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역시 사람인지라, 결점이 있었고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갔던 사람들..
소향님의 대화: 외국 박물관에 가면 온갖 화려한 칠과 금박 장식, 정성스러운 필체로 쓰여져 감탄하게 되는 필사본을 많이 보게 되는데, 1장을 읽으며 그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든 구해서 필사하려고 했던 옛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1963년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썼다는 <버밍엄 교도소에서 보내는 편지>가 인용된 부분을 읽을 땐 쓰라리면서도 감탄했습니다. 먼 나라의 과거가 아니라 내 일인 듯 아프더군요. 힘 있는 글이었어요. 전문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정말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무참히 흔들어놓는” 대목이었어요. 인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키케로식 도미문의 기교도 흥미로웠고요.
YG님의 대화: 21세기 내내 과학계가 경고해 온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는커녕 되레 전쟁으로 치고받는 우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인류의 미래가 있을지 묻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애를 돋우는, 그래서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SF가 있다. 바로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 인류애 돋우는 이 소설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딱 한 명만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우주선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로 깨어난다. 자기 옆에는 동료였음이 분명한 중국인 남성과 러시아인 여성이 죽어 있다. 곧이어, 저쪽에 보이는 밝게 빛나는 별(항성)이 태양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혼자서 외계 항성계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더욱더 절망적이다. 어느 순간부터 태양의 출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상태대로라면 태양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구 생태계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게 된다. 출력이 고작 10% 떨어지는 30년 안에 지구 인류 80억 명 가운데 절반이 굶주림과 대재앙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태양 출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은 별에서 별로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흡입하는 우주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다. 그레이스는 바로 이 아스트로파지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였다. 우주생물학자(실제로 존재하는 연구 분야)였던 그는 이단적 가설을 주장하다 학계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중학교 과학 교사로 살아가던 그는 역설적으로 그 ‘이단적 안목’ 덕분에 급하게 차출된다. 그럼, 지구가 결딴나기 직전인데 그레이스가 외계 항성에 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계가 태양계 인근의 항성계를 샅샅이 관찰했더니, 대다수 별이 태양처럼 출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것. 그런데 유독 한 별만 원래 출력대로 빛났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 12년 걸리는(12광년) 고래자리 ‘타우 세티(Tau Ceti)’ 별(실제로 존재하는 별). 이제 그레이스의 임무가 무엇인지 눈치챘을 테다. 그는 타우 별이 아스트로파지의 에너지 흡입에 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자 지구에서 동료 둘과 함께 파견된 과학자였다. 우주여행으로 동료 둘이 사망했으니, 이제 인류와 지구 전체의 운명이 그의 활약에 달려 있다. 그레이스는 과연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 이 소설의 저자 앤디 위어는 영화로도 유명한 『마션』으로 데뷔했다. 『마션』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한 남성의 생존 투쟁을 그린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1719)의 설정을 가져와 화성에 홀로 남겨진 과학자의 생존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인기를 모았다. 화성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과학자 이야기라니!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과 비슷한가 싶으면서도 다르다. 인류 전체 가운데 딱 한 명 주인공만이 우주 오지에 떨어진 상황은 똑같지만, 나머지는 정반대다. 『마션』은 지구의 나사(NASA)가 화성에 고립된 동료를 무사히 귀환시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일이 이야기의 한 축이다.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는 혼자 힘으로 인류 전체를 구해야 한다. * 바로 이 대목에서 저자는 기막힌 상상력을 발휘한다. 아스트로파지가 망가뜨린 별은 태양만이 아니다. ‘우주 저편에서 인류와 똑같은 위기에 직면한 나름의 문명을 꾸린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만약, 그들도 타우 별의 특별한 상황을 인지하고 탐사대를 꾸려서 온다면?’ 그럼, 그레이스는 혼자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귀엽고 명민한 외계인 ‘로키’가 등장하는 이유다. 처음에 그레이스의 원맨쇼였던 소설은 외계인 로키가 등장하고부터 둘이 좌충우돌하며 지구와 로키의 고향 ‘에리드’를 구하는 마음을 흔드는 버디 무비가 된다. 소설 속에서 에리드는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40 에리다니 A’ 별에 딸린 첫 번째 행성이다. 물론, 그 행성에 로키처럼 고도의 지성을 가진 금속 외계인이 산다는 가정은 허구지만. * 아스트로파지와 로키와 같은 외계 생명체의 등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보통 사람에게 생소한 과학 분야인 우주생물학의 중요한 주제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주한다. 우주생물학은 지구 바깥 광활한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으리라는 전제하에 그것이 어떻게 탄생해서 진화했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는 연구 분야다. 어떤 독자는 연구 대상(외계 생명체)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주생물학의 존재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로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소설 속 로키처럼 음파로 세상을 보고 화음으로 대화한다면 어떻게 대응할까? 우주 생물학은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음파로 보고 소통하는 고래 연구에 관심을 가진다. 우주생물학이 파고드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생명의 기원이다. 생명의 씨앗은 지구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에서 운석을 타고 들어와 지구에 뿌려진 것일까? 답이 없을 것 같은 이 질문을 놓고서도 이 소설은 한 가지 가설을 편든다. 그레이스와 외계인 로키의 우정이 뜬금없어 보이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 결정적으로, 이 소설과 우주생물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도 있다. 지구 바깥 우주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면, 하필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이 시점에 함께하는 동시대 인류의 존재는 무슨 의미일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이란을 때리고 나서 쿠바 차례라고 호언장담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가 이렇게 끌려다니는 일이 용납될 수 있을까? 만약, 인류의 운명이 결딴날 수 있는 심각한 위기가 당장 닥친다면 우리는 소설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그것을 극복하는 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지지부진한 기후 위기 대응이 이미 내놓았다. 이 소설이 따뜻한 인류애를 고양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유다. 미식축구를 즐기지 않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제목의 ‘헤일메리(Hail Mary)’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용어다. 미식축구 경기 종료 직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무리수 패스.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일도 불가능에 가까운 헤일메리의 성공이다. 다행히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외계 항성에 내동댕이쳐 있지도 않다. * ◆뒷얘기=알다시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지난 3월 18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소설에 이어서 영화까지 본 처지라서 살짝 아는 척을 하자면, 영화는 소설의 과학적 디테일은 최소화하는 대신에 이야기의 중요한 뼈대는 그대로 가져오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SF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영화만으로도 인류애를 넘어 우주애까지 충분히 고양된다. 앤디 위어는 『마션』의 대성공 이후 두 번째 소설로 『아르테미스』(2017)도 펴냈다. 제목대로 달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서점에서 『마션』,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묶여서 3부작으로 판매하기도 하는 이 소설은 셋 가운데 제일 처진다. 굳이, 세 작품의 순위를 매기자면 『프로젝트 헤일메리』 〉 『마션』 ≫ 『아르테미스』이다.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53/0000055016
작은 동거인분의 반응이 귀여워 미소 지었다가, 이어지는 글에서 이 책과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YG님 말씀처럼 다행히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외계 항성에 내동댕이쳐져 있지도 않네요. 그래서 더더욱 이번 모임에서 휴머니즘의 진가를 배워가고 싶기도 하고요:) 인류애를 다시금 끌어올리며!
향팔님의 대화: “고슬고슬링하게 비벼 낸” ㅋㅋㅋㅋ 아 이런 드립은 어떻게들 치는 건지
저도 이 대목 읽다가 빵 터졌습니다(푸하하...).
향팔님의 대화: 우와, 작가님은 역시 표현이 다르시군요. 나 좀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책, 버림받을까봐 겁을 내는 책, 고독을 운명으로 타고난 책이라니… 꼭 한 편의 시 같습니다. 그러게요. 제 알라딘보관함에 범람하는 책 목록이나, 책장에서 오랜 시간 초독을 기다리는 책들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이것들이 제 맘의 행복이자 짐인 것 같기도 하고 ㅎㅎ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구두구두구, 기다리던 책이 왔습니다! 이렇게 빨리 보내주시다니 감동이에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만듦새가 예쁜 책이네요. 내용도 기대됩니다. 그런데 악필이라니요. 거침없는 느낌의 개성있는 필체인데요. <네 멋대로 읽어라>라는 제목과도 어울리는 듯합니다. 네, 그믐과 벽돌 책 모임이 있어 늘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우와...! 이 책이 @stella15 님의 책이군요! 실명도 정말 예쁘세요. 전에 <나의 아저씨> 이야기 할 때, 살짝 언급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책 제목이 꼭 저를 보는 것 같네요(하하하). 제 멋대로 읽고, 제 멋대로 해석하는 편입니다:)
향팔님의 대화: 연해님 글만 읽어도 라일락 향기가 코끝에 와닿는 것 같네요. 꽃 중에 라일락 향이 참말 향긋하지요. 멀리 있어도 느낄 수가 있고요.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노래도 좋고요 하하
저는 라일락 향이 이렇게 강한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야외에 있는 것보다 사무실에 올려두니까 향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거 있죠? 향도 향인데, 꽃은 또 얼마나 예쁜지. 마음 같아서는 찰칵 찍어오고 싶은데, 저 아이도 초상권이 있을듯하여... (하하하) 아니, 근데 꽃 이야기도 자연스레 노래로 이어지는 향팔님은 역시!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 모임에서 음악 추천해주셨을 때도 계속 느꼈던 거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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