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D-29
향팔님의 문장 수집: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발명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인쇄기는 회의적인 시각과 저항에 부딪혔다. 우르비노 공작은 인쇄된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독일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는 『필경사 예찬』에서 필사본이 인쇄본보다 낫다고 주장하며, 필사는 매우 유용한 정신적 활동이므로 수도사들이 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본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본으로 출간했다.” ㅋㅋㅋ 이렇게 빵빵 터지는 문장들이 은근 많네요.
향팔님의 문장 수집: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발명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인쇄기는 회의적인 시각과 저항에 부딪혔다. 우르비노 공작은 인쇄된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독일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는 『필경사 예찬』에서 필사본이 인쇄본보다 낫다고 주장하며, 필사는 매우 유용한 정신적 활동이므로 수도사들이 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본으로 출간했다."
이들이 애초에 인쇄본을 싫어한 건 책을 희귀하고 값비싼 것으로 남겨둬 자신들만의 권위로 독점하려는 속셈에서 그런 것 같아요 ㅎㅎ
borumis님의 대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예전에 읽으면서 주인공들 이름 외우기 힘들어서 Franz Winterhalter의 그림을 따라그렸던 독서노트.. 이제 그 당시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들도 가물가물하네요. 기억나는 건 내가 그 당시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
독서노트도 이렇게 다꾸처럼 꾸미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거군요. 그림도 잘 그리시지만 필기체로 쓴 글씨가 넘 예뻐요.. ^^ 심장을 쥐고 있는 여자분.. 무섭네요 ㅎㅎㅋ;;
마누티우스는 […] 그리스어 고전도 인쇄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그리스어 전문가가 아주 많았다. 학자들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그리스어를 가르치러 온 덕택이었는데, 특히 전 세계 기독교인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 이후 더 많은 이주가 이루어졌다. 바로 1453년 튀르키예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었다.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필사본을 챙길 시간은 있었다. 철학, 수학, 공학 등에 대한 그리스어 문헌으로 가득한 필사본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적, 지적, 기술적 영역을 확장하고 마누티우스와 지인들을 더욱 풍족하게 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29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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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마누티우스는 […] 그리스어 고전도 인쇄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그리스어 전문가가 아주 많았다. 학자들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그리스어를 가르치러 온 덕택이었는데, 특히 전 세계 기독교인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 이후 더 많은 이주가 이루어졌다. 바로 1453년 튀르키예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었다.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필사본을 챙길 시간은 있었다. 철학, 수학, 공학 등에 대한 그리스어 문헌으로 가득한 필사본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적, 지적, 기술적 영역을 확장하고 마누티우스와 지인들을 더욱 풍족하게 했다."
1453년 봄 10만 명이 넘는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5월에는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도시를 함락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고전시대의 로마 세계와 15세기 이탈리아를 잇는 최후의 연결고리들 가운데 하나였다. 콘스탄티노플이 고전 문화에 관한 많은 지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전달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초기에 술탄 메흐메트의 공이 컸다. 이탈리아 위정자들의 정치적 야망과 문화적 취향에 친근한 매력을 느낀 술탄은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술탄에게 매일 라에르티오스, 헤로도토스, 리비우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같은 고대 역사가들의 책과, 여러 교황들과 롬바르디아 왕들의 연대기를 읽어주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이상의 재탄생을 뜻한다면, 메흐메트는 이 이상의 추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남아 있는 그의 서가에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서적들이 꽂혀 있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그 외에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된 서적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뤄낸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을 비교했고, 스스로를 로마를 정복하고 성서로부터 나온 세 개의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통일할 능력을 가진 새로운 황제라고 믿었다. 제국적 권력을 열망하던 다른 많은 르네상스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메흐메트는 스스로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확대하기 위해 지식, 예술, 건축을 이용했다.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 지음, 윤은주 옮김
향팔님의 대화: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요거 어떠세요. YG님의 책에서도 소개된 SF작품이더라고요. 14세기 흑사병이 유행하는 중세 영국으로의 시간 여행.
오!! 감사합니다 @향팔 님과 @borumis 님과 @YG 님이 추천하는 책이라니!! 저장해두고 봐야겠네요^^
향팔님의 문장 수집: "1453년 봄 10만 명이 넘는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5월에는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도시를 함락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고전시대의 로마 세계와 15세기 이탈리아를 잇는 최후의 연결고리들 가운데 하나였다. 콘스탄티노플이 고전 문화에 관한 많은 지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전달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초기에 술탄 메흐메트의 공이 컸다. 이탈리아 위정자들의 정치적 야망과 문화적 취향에 친근한 매력을 느낀 술탄은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술탄에게 매일 라에르티오스, 헤로도토스, 리비우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같은 고대 역사가들의 책과, 여러 교황들과 롬바르디아 왕들의 연대기를 읽어주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이상의 재탄생을 뜻한다면, 메흐메트는 이 이상의 추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남아 있는 그의 서가에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서적들이 꽂혀 있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그 외에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된 서적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뤄낸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을 비교했고, 스스로를 로마를 정복하고 성서로부터 나온 세 개의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통일할 능력을 가진 새로운 황제라고 믿었다. 제국적 권력을 열망하던 다른 많은 르네상스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메흐메트는 스스로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확대하기 위해 지식, 예술, 건축을 이용했다. "
당시 인문학자들은 참 다방면으로 취직을 했군요.
borumis님의 대화: 쓸데없이 화려하지만 인쇄술의 정수를 뽐내는 Poliphilo's Hypnerotomachia.. 근데 정작 내용은 참 허무하네요^^;;;
“책 역사학자 E. P. 골트슈미트는 이 책이 "현학자의 광적인 황홀경"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여느 위대한 책과 마찬가지로 광인이 썼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인문학적인 황홀경과 광기다. 이 책은 언어와 시각적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p.125-126) “여느 위대한 책과 마찬가지로 광인이 썼다.” ㅋㅋ 요거 은근 명언인 듯 싶습니다.
알마님의 대화: 111쪽에 12세기 작곡가, 철학자, 의사, 신비론자로 빙엔의 힐데가르트가 한 줄로 소개되네요. 전에 허브 공부할 때 알게 되었는데 이 분 진짜 대단한 수녀시더라구요. 당시에 이 인물이 너무 신기해서 유튜브로 음악 찾아본 기억도 나서 검색해 보니 영상 속 악보의 글씨체가 브라촐리니의 휴머니스트 서체네요? 세상에... 정말 알아야 보이는 군요. 힐데가르트가 했던 약초 처방 중에 유명한 게 펜넬차를 마시는 거였대요. 펜넬은 소화를 돕는 허브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인도 가 보면 식당 카운터에 우리로 치면 사탕접시 놓는 곳에 펜넬 씨앗 접시가 놓여 있더라구요. 펜넬 씨앗은 달콤하면서도 살짝 화한 맛이 나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esO-mdkUFJA
예전에 도서관에서 클래식 음악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 있는데, 첫 시간에 선생님께서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소개해주시며 클래식 음악사에서 엄청 중요한 분이라고 강조하셨던 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작곡가이면서 철학자, 의사, 신비론자, 언어 발명까지? 그야말로 르네상스적 전천후 천재셨군요. 링크 감사해요. 독특하고 신비로운 음악 잘 들었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르네요. 악보의 서체가 정말 104쪽에 나와있는 서체랑 똑같아요. (신기합니다.)
향팔님의 문장 수집: "1453년 봄 10만 명이 넘는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5월에는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도시를 함락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고전시대의 로마 세계와 15세기 이탈리아를 잇는 최후의 연결고리들 가운데 하나였다. 콘스탄티노플이 고전 문화에 관한 많은 지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전달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초기에 술탄 메흐메트의 공이 컸다. 이탈리아 위정자들의 정치적 야망과 문화적 취향에 친근한 매력을 느낀 술탄은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술탄에게 매일 라에르티오스, 헤로도토스, 리비우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같은 고대 역사가들의 책과, 여러 교황들과 롬바르디아 왕들의 연대기를 읽어주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이상의 재탄생을 뜻한다면, 메흐메트는 이 이상의 추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남아 있는 그의 서가에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서적들이 꽂혀 있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그 외에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된 서적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뤄낸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을 비교했고, 스스로를 로마를 정복하고 성서로부터 나온 세 개의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통일할 능력을 가진 새로운 황제라고 믿었다. 제국적 권력을 열망하던 다른 많은 르네상스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메흐메트는 스스로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확대하기 위해 지식, 예술, 건축을 이용했다. "
우리 책에서는 1453년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으로 지식인들이 책을 챙겨 이탈리아로 다 옮겨갔다는 뉘앙스로 말하지만, 제리 브로턴의 책에서는 메흐메트 2세도 유럽의 르네상스 군주들처럼 책을 모으고 인문학자들을 고용하고, 동서양의 지식을 섞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네요.
도롱님의 대화: 책 초반부에 겔프와 기벨린이 언급되었는데요, 찾아보니 겔프는 교황 지지, 기벨린은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내부갈등이 있었고 교황권이 흔들리는 시기였다고 해요. 이런 혼란 속에 페트라르카와 같이 고전에서 인간에 초점을 둔 지혜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시작이 된 것이라고 해요. :)
정말, 당시 이탈리아 지역의 역사는 장난없게 복잡한 것 같더라고요. (YG님이 추천해주셨던 작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 옹께서도 어느 책에서 그러시더라고요. 이탈리아는 내력이 너무 복잡한 탓에 그 역사를 서술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라고, 그래서 본인은 책을 쓰면서 이탈리아 통일을 주세페 마치니만큼이나 손꼽아 기다렸다고 ㅎㅎ) 그런데 그런 혼란이 오히려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꽃피우는 토양이 되었다니, 세상 일이라는 건 참 오묘합니다.
이 모임 시작할 때 영화 <백발마녀전>(1993) 얘기가 잠시 나왔었지요. 저는 ‘20세기 소년’ 시절 열광했던 <동방불패>(1992)도 떠오르더군요. 아시다시피 <동방불패>의 원천은 제가 아끼는 작가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입니다. 10대 시절, ‘웃으며 오만하게 세상을 노니는’ 주인공 영호충의 삶은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다 보니,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취하는 카스틸리오네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가 영호충의 모습과 절묘하게 겹치더군요. 물론 미묘한 차이는 있습니다. 도교의 ‘무위자연’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면, ‘스프레차투라’는 궁정이라는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자신의 노력을 은폐함으로써 탁월함을 증명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니까요. 16세기 초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여유 있는 척하는 기술’과,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해방되려는 강호의 철학. 전자는 타인에게 더 인정받으려는 시도이고 후자는 그런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태도인데, 그 결과가 ‘자연스러움’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어느 쪽의 ‘자연스러움’이든 타인이 보기에는 똑같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혹시 『소오강호』의 그 호방한 기운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동방불패>에서는 임청하(임영영)의 매력에 영호충의 호방함이 가려진 면이 있습니다만. 사실, 영화 속의 영호충은 지질해 보이기까지 하죠. :)
동방불패사부의 위선에 실망한 수제자 영호충은 추동자들과 유랑길에 오르며 일원신교의 무사 임영영을 만나 회포를 풀기로 하지만 약속장소는 누군가의 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혼란에 휩싸인 그는 향문청으로부터 동방불패의 술책을 듣게 되고 도음을 요청한다. 자객의 습격에서 동방불패를 구해준 영호충은 그의 정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계략에 빠져 동방불패의 애첩을 그로 착각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동방불패의 정체를 훔쳐보게 된 임영영의 심복 남봉황은 동방불패에 쫓기게 되고 동방불패는 부하들을 이끌고 임아행이 있는 주막으로 쳐들어가는데...
소오강호 1~8 세트 - 전8권김용의 대하역사무협소설. 김용이 <소오강호>를 집필할 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과 권력 투쟁이 한창이었다. <소오강호>는 영호충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이들의 오만과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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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님의 대화: 이 모임 시작할 때 영화 <백발마녀전>(1993) 얘기가 잠시 나왔었지요. 저는 ‘20세기 소년’ 시절 열광했던 <동방불패>(1992)도 떠오르더군요. 아시다시피 <동방불패>의 원천은 제가 아끼는 작가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입니다. 10대 시절, ‘웃으며 오만하게 세상을 노니는’ 주인공 영호충의 삶은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다 보니,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취하는 카스틸리오네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가 영호충의 모습과 절묘하게 겹치더군요. 물론 미묘한 차이는 있습니다. 도교의 ‘무위자연’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면, ‘스프레차투라’는 궁정이라는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자신의 노력을 은폐함으로써 탁월함을 증명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니까요. 16세기 초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여유 있는 척하는 기술’과,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해방되려는 강호의 철학. 전자는 타인에게 더 인정받으려는 시도이고 후자는 그런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태도인데, 그 결과가 ‘자연스러움’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어느 쪽의 ‘자연스러움’이든 타인이 보기에는 똑같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혹시 『소오강호』의 그 호방한 기운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동방불패>에서는 임청하(임영영)의 매력에 영호충의 호방함이 가려진 면이 있습니다만. 사실, 영화 속의 영호충은 지질해 보이기까지 하죠. :)
결국에는 좋은 신하는 담대하고 교양이 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실천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스프레차투라는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말한다. 어려운 일을 할 때도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너무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태도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장, 120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향팔님의 대화: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요거 어떠세요. YG님의 책에서도 소개된 SF작품이더라고요. 14세기 흑사병이 유행하는 중세 영국으로의 시간 여행.
『둠즈데이북』은 코니 윌리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고, 제 경험으로는 윌리스의 수다스러움에 지쳐서 힘들어하셨던 분들도 재미있다고 평해주셨던 책이었어요. 저는 윌리스 팬이라서 재미있게 읽었었고요. 아이고, 그런데 이 댓글 쓰면서 오랜만에 윌리스를 검색해 보니, 이 양반이 벌써 올해 80이네요. 1945년생! 건강하시길!
인문학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도덕철학과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소통 능력은 세상 속에서 실천할 때 가장 밝은 빛을 발휘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장, 118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YG님의 문장 수집: "결국에는 좋은 신하는 담대하고 교양이 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실천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스프레차투라는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말한다. 어려운 일을 할 때도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너무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태도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조금 생뚱맞지만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배우 고아성, 배성우, 박성웅, 김의성, 류현경, 박정민 등이 출연하는 직장스릴러(사무실 지옥물) 장르고요 ㅎㅎ 영화에서 고아성 님이 맡았던 역, 인턴 미례는 아무래도 ‘스프레차투라’가 많이 부족한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정말, 16세기 초반 인문주의자들도, 현대의 노동자들도,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여유 있는 척하는 기술’로 균형을 잡으며 줄타기를 하는 건 똑같이 어렵겠구나, 싶었답니다. # 영화 중반 화장실 씬 염하영 : 자긴 너무 열심히 해, 그게 문제야. 이미례 : 네? 염하영 : 너무 잘 할려그러지 마. 너무 잘하려는 욕심을 보이지 말라구. 그게 오히려 자기 존재감을 더 깎아먹는다? 이미례 : 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염하영 : 너무 잘 하려고 막 잘 보이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들 보면, 저사람 뭐가 저렇게 자신감 없어서 저러나. 뭐가 모자라서 저렇게 안쓰럽게 구나, 싶거든. 좀… 없어보인달까?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눈치껏 해. 너무 융통성 없이 그러지 말고. 자긴 착하긴 한데, 가만보면 과장님 같은 구석이 좀 있다니까?
오피스어느 날 한 가족의 가장이자 착실한 회사원인 김병국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사라졌다. 이에 형사 종훈은 그의 회사 동료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모두들 말을 아끼고, 특히 김과장과 사이가 좋았다는 이미례 인턴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눈치다. 게다가 종훈은 김과장이 사건 직후 회사에 들어온 CCTV 화면을 확보하지만, 그가 회사를 떠난 화면은 어디에도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한편, 김과장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료들은 불안에 떠는 가운데, 이들에게 의문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데…
스프레차투라는 문학 활동에서도 이상적인 태도였다. 카스틸리오네는 본인의 저서도 이런 식으로 집필했다고 주장한다. 가벼운 샐러드를 만들듯 설렁설렁 써냈기에 힘을 들여 정식으로 편집, 출판할 생각도 없었는데, 친구였던 시인 비토리아 콜론나가 다른 친구들에게 몰래 퍼뜨렸고 워낙 널리 읽히는 바람에 그럴 바에야 출판하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달랐다. 카스틸리오네는 1528년 『궁정론』을 출간하기 전까지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공을 들여 여러 번 수정했다. 출간 후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20-121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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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스프레차투라는 문학 활동에서도 이상적인 태도였다. 카스틸리오네는 본인의 저서도 이런 식으로 집필했다고 주장한다. 가벼운 샐러드를 만들듯 설렁설렁 써냈기에 힘을 들여 정식으로 편집, 출판할 생각도 없었는데, 친구였던 시인 비토리아 콜론나가 다른 친구들에게 몰래 퍼뜨렸고 워낙 널리 읽히는 바람에 그럴 바에야 출판하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달랐다. 카스틸리오네는 1528년 『궁정론』을 출간하기 전까지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공을 들여 여러 번 수정했다. 출간 후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여러 학자, 작가, 가정교사들의 업적 뒤에는 이런 은밀한 노력이 있었다. 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지만, 제자로 삼은 귀족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처럼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신 인문학자의 길을 걷는 고통스러운 의식을 치른 사람도 많았다. 드물게 고용인이나 후원자를 찾으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노력과 창의력을 기울였고 무심한 듯한 태도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21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이번 주말에는 병행 독서(병렬 독서)도 하시면서, 편안하게 쉬시는 시간을 보내세요. 주 중에 바빠서 밀린 독서를 하시는 분들은 감상 나눠주시고요. 저는 다음 주에 소개할 일이 있어서 이번 주는 신간 소설 세 권과 함께 보낼 것 같아요. 두 권은 마무리로 가고 있고, 한 권은 이제 시작할 참이라서 두근두근입니다. :)
시간관리국〈뉴욕타임스〉 〈선데이타임스〉 〈LA타임스〉 베스트셀러, BBC?커커스 등 32개 매체 선정 가장 기대되는 책, 〈굿모닝 아메리카 북클럽〉 〈아마존〉 이달의 책, 〈옵저버〉 선정 올해 최고의 데뷔작, 휴고상 최종 후보.
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2025년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의 《카프네》가 출간되었다. 일본 전역의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으로 압도적 지지를 보낸 이 작품은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활의 힘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모방소녀학벌 지상주의와 능력주의 신화가 결합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텍스티의 시사 소설 시리즈 ‘사이드미러’는 우리가 목격했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사회적 문제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고자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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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대화: @소향 @연해 예전에 아래 책을 보고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삭막한 여의도 빌딩숲 한복판에 그렇게 울창하게 우거진 정글숲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직접 찍은 사진 첨부) 게다가 그곳엔 온갖 예쁜 나비들이 춤을 추는데, 제 생전에 그렇게 많은 나비 떼를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그 샛강 생태공원에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대단하고 고마우신 정영선 선생님이네요.
와...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자체도 놀랍지만 향팔님이 직접 찍으신 사진이 더 놀랍습니다! 푸릇푸릇 보고만 있어도 싱그러워지네요. 다만 저는 정작 이곳을 가본 적이 아직 없답니다. 날이 좀 더 따스해지면 산책삼아 다녀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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