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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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북』은 코니 윌리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고, 제 경험으로는 윌리스의 수다스러움에 지쳐서 힘들어하셨던 분들도 재미있다고 평해주셨던 책이었어요. 저는 윌리스 팬이라서 재미있게 읽었었고요. 아이고, 그런데 이 댓글 쓰면서 오랜만에 윌리스를 검색해 보니, 이 양반이 벌써 올해 80이네요. 1945년생! 건강하시길!
19세기 소설가 알레산드로 만초니는 1630년 밀라노에서 흑사병이 발생했던 당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공동체의 불행 속에서, 정상적인 질서가 장기적으로 무너지는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항상 성장을, 인간의 선함이 고조되는 양상을 목격한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악한 모습 역시 같이 증가한다."다르게 말하면 이렇다. 겁에 질린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용감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아가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도 있다. p72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그러므로 언어를 잘 사용하는 일은 장식적인 요소를 덧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사람들을 감화하고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도덕적인 활동이다. 뛰어난 소통의 기술은 후마니타스, 즉 가장 인간적으로 사는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p78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뛰어난 소통의 기술은 오늘날도 꼭!! 필요하지 않나요??? 서로 본인들 말만 하길 좋아해서리...^^;; 예전에는 몇몇 소수의 힘있는 사람들만 마이크를 가질 힘이 있었는데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시대가 온다면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사이좋게 들으며 합의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각자의 말만하는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는게 신기합니다. 왜 일까요??^^;;
반면 15세기 휴머니스트의 세계는 수도원보다는 도시를 기반으로 했다. 휴머니스트 남성은 개인 사무실이나 군주의 가정 내에서 개인 교사나 비서로일하거나 공적 영역에서 관리 혹은 사절로 일했다. 이 모든 역할에서 중요시 된 것이 인문학이다. 고전적으로 이 학문은 다섯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법, 수사학, 시학, 역사학, 도덕철학이었다. 잘 쓰고 말하고, 역사적 사례와 도덕철학을 잘 이해하는 능력은 공적 대화를 하고 글을 쓰고 정치를 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는 데 아주 좋은 발판이 되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 있었다. 당시의 부모들은 딸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는 것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 고귀한 가문의 여성은 집 안에 조신하게 숨어 살고 공적인 영역에서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연설할 일도 세련된 편지를 쓸 일도 없었다. 라틴어를 배울 필요도 없었고 지혜로운 선택을 위한 기술을 공부할 이유도 없었는데, 애초에 선택지가 주어질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육받지 못한 여성은 인문학이라는 영역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대신 정조와 절제의 미덕이 여성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미덕을 갖는 데 교육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피렌체처럼 인문학이 번성하는 도시일수록 여성은 숨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p112
초기 인쇄술은 뛰어난 기술이 문화적 지식과 결합하여 영속적인 가치를 만들어낸 아주 좋은 사례다. 에드워드 기번이 썼듯 독일의 기술공들은 "시간과 야만의 횡포를 비웃는 예술"을 탄생시켰다. p12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휴머니스트들은 대체로 이런 역할을 꿈꿨다. 학문의 세계로 신선한 공기와 꽃을 가져오는 동시에 학문의 세계를 현실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이다. 학자들은 여전히 난파선을 인양한다든가, 어둠에 빛을 비춘다든가, 수감자를 해방시킨다든가 하는 기존에 사랑받던 비유도 사용했다. 마누티우스는 자신이 만든 투키디데스의 <역사>에 쓴 서문에서 "출판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좋은 책을 쓸쓸하고 음울한 감옥에서 해방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p130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발명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인쇄기는 회의적인 시각과 저항에 부딪혔다. 우르비노 공작은 인쇄된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독일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는 『필경사 예찬』에서 필사본이 인쇄본보다 낫다고 주장하며, 필사는 매우 유용한 정신적 활동이므로 수도사들이 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본으로 출간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22-123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본으로 출간했다.” ㅋㅋㅋ 이렇게 빵빵 터지는 문장들이 은근 많네요.
이들이 애초에 인쇄본을 싫어한 건 책을 희귀하고 값비싼 것으로 남겨둬 자신들만의 권위로 독점하려는 속셈에서 그런 것 같아요 ㅎㅎ
마누티우스는 […] 그리스어 고전도 인쇄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그리스어 전문가가 아주 많았다. 학자들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그리스어를 가르치러 온 덕택이었는데, 특히 전 세계 기독교인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 이후 더 많은 이주가 이루어졌다. 바로 1453년 튀르키예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었다.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필사본을 챙길 시간은 있었다. 철학, 수학, 공학 등에 대한 그리스어 문헌으로 가득한 필사본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적, 지적, 기술적 영역을 확장하고 마누티우스와 지인들을 더욱 풍족하게 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29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1453년 봄 10만 명이 넘는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5월에는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도시를 함락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고전시대의 로마 세계와 15세기 이탈리아를 잇는 최후의 연결고리들 가운데 하나였다. 콘스탄티노플이 고전 문화에 관한 많은 지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전달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초기에 술탄 메흐메트의 공이 컸다. 이탈리아 위정자들의 정치적 야망과 문화적 취향에 친근한 매력을 느낀 술탄은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술탄에게 매일 라에르티오스, 헤로도토스, 리비우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같은 고대 역사가들의 책과, 여러 교황들과 롬바르디아 왕들의 연대기를 읽어주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이상의 재탄생을 뜻한다면, 메흐메트는 이 이상의 추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남아 있는 그의 서가에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서적들이 꽂혀 있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그 외에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된 서적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뤄낸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을 비교했고, 스스로를 로마를 정복하고 성서로부터 나온 세 개의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통일할 능력을 가진 새로운 황제라고 믿었다. 제국적 권력을 열망하던 다른 많은 르네상스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메흐메트는 스스로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확대하기 위해 지식, 예술, 건축을 이용했다.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 지음, 윤은주 옮김
당시 인문학자들은 참 다방면으로 취직을 했군요.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럴 수 있었던 인문학자들도 소수였겠죠? 흠...
ㅎㅎ 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물밑에서 박터지는 경쟁이 있지 않았을까요. 나와라 가제트 만능팔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선생님께서도 이력서, 자소서, 포트폴리오를 세트로 옆구리에 끼고 해외 경력직 취업차 오스만 제국까지 찾아가셨다고 하던데요. 그러고보면 사람 사는 게 예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드물게 고용인이나 후원자를 찾으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노력과 창의력을 기울였고 무심한 듯한 태도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p.121)
우리 책에서는 1453년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으로 지식인들이 책을 챙겨 이탈리아로 다 옮겨갔다는 뉘앙스로 말하지만, 제리 브로턴의 책에서는 메흐메트 2세도 유럽의 르네상스 군주들처럼 책을 모으고 인문학자들을 고용하고, 동서양의 지식을 섞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네요.
이 모임 시작할 때 영화 <백발마녀전>(1993) 얘기가 잠시 나왔었지요. 저는 ‘20세기 소년’ 시절 열광했던 <동방불패>(1992)도 떠오르더군요. 아시다시피 <동방불패>의 원천은 제가 아끼는 작가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입니다. 10대 시절, ‘웃으며 오만하게 세상을 노니는’ 주인공 영호충의 삶은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다 보니,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취하는 카스틸리오네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가 영호충의 모습과 절묘하게 겹치더군요. 물론 미묘한 차이는 있습니다. 도교의 ‘무위자연’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면, ‘스프레차투라’는 궁정이라는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자신의 노력을 은폐함으로써 탁월함을 증명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니까요. 16세기 초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여유 있는 척하는 기술’과,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해방되려는 강호의 철학. 전자는 타인에게 더 인정받으려는 시도이고 후자는 그런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태도인데, 그 결과가 ‘자연스러움’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어느 쪽의 ‘자연스러움’이든 타인이 보기에는 똑같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혹시 『소오강호』의 그 호방한 기운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동방불패>에서는 임청하(임영영)의 매력에 영호충의 호방함이 가려진 면이 있습니다만. 사실, 영화 속의 영호충은 지질해 보이기까지 하죠. :)
동방불패사부의 위선에 실망한 수제자 영호충은 추동자들과 유랑길에 오르며 일원신교의 무사 임영영을 만나 회포를 풀기로 하지만 약속장소는 누군가의 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혼란에 휩싸인 그는 향문청으로부터 동방불패의 술책을 듣게 되고 도음을 요청한다. 자객의 습격에서 동방불패를 구해준 영호충은 그의 정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계략에 빠져 동방불패의 애첩을 그로 착각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동방불패의 정체를 훔쳐보게 된 임영영의 심복 남봉황은 동방불패에 쫓기게 되고 동방불패는 부하들을 이끌고 임아행이 있는 주막으로 쳐들어가는데...
소오강호 1~8 세트 - 전8권김용의 대하역사무협소설. 김용이 <소오강호>를 집필할 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과 권력 투쟁이 한창이었다. <소오강호>는 영호충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이들의 오만과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이야기다.
결국에는 좋은 신하는 담대하고 교양이 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실천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스프레차투라는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말한다. 어려운 일을 할 때도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너무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태도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장, 120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조금 생뚱맞지만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배우 고아성, 배성우, 박성웅, 김의성, 류현경, 박정민 등이 출연하는 직장스릴러(사무실 지옥물) 장르고요 ㅎㅎ 영화에서 고아성 님이 맡았던 역, 인턴 미례는 아무래도 ‘스프레차투라’가 많이 부족한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정말, 16세기 초반 인문주의자들도, 현대의 노동자들도,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여유 있는 척하는 기술’로 균형을 잡으며 줄타기를 하는 건 똑같이 어렵겠구나, 싶었답니다. # 영화 중반 화장실 씬 염하영 : 자긴 너무 열심히 해, 그게 문제야. 이미례 : 네? 염하영 : 너무 잘 할려그러지 마. 너무 잘하려는 욕심을 보이지 말라구. 그게 오히려 자기 존재감을 더 깎아먹는다? 이미례 : 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염하영 : 너무 잘 하려고 막 잘 보이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들 보면, 저사람 뭐가 저렇게 자신감 없어서 저러나. 뭐가 모자라서 저렇게 안쓰럽게 구나, 싶거든. 좀… 없어보인달까?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눈치껏 해. 너무 융통성 없이 그러지 말고. 자긴 착하긴 한데, 가만보면 과장님 같은 구석이 좀 있다니까?
오피스어느 날 한 가족의 가장이자 착실한 회사원인 김병국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사라졌다. 이에 형사 종훈은 그의 회사 동료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모두들 말을 아끼고, 특히 김과장과 사이가 좋았다는 이미례 인턴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눈치다. 게다가 종훈은 김과장이 사건 직후 회사에 들어온 CCTV 화면을 확보하지만, 그가 회사를 떠난 화면은 어디에도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한편, 김과장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료들은 불안에 떠는 가운데, 이들에게 의문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데…
<오피스>보면서 저는 사회 초년병시절 떠올랐어요. 여기서 버타지 못하면 다른데서도 못버틸거라는 자기암시와 채찍질로 죽을힘을 다해 노동했던 초년생시절이 떠올라 주인공을 안아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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