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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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어스는 이런 질문도 한다. 여성은 대학에 가야 할까? 여성은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요점은 세이어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가 모든 여성에게 문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집단적인 투쟁이 벌어져야 한다. 실제로 그랬다. 대학교들이 여학생을 받기 전까지 상당한 사회운동이 이루어졌고 1868년 진보적인 런던대학교가 최초로 여학생 아홉 명의 입학을 허가했다. 다른 대학교도 뒤따랐지만 여학생들이 학업의 결과로 실제로 학위를 받기까지는 더 많은 운동이 필요했다. 세이어스도 1915년에 학부 과정을 마쳤지만 학위를 받지 못했다. 옥스퍼드가 마침내 손을 들고 석사 학위까지 내준 1920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1938년 세이어스가 위의 연설을 할 때까지도 케임브리지는 고집을 피웠고 그 이후로도 10년 동안 여성에게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이어스의 주장은 여성이 다 같이 들고 일어설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투쟁의 이유가 개인적이라는 의미였다.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307-308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이런 생각은 1851년 페미니스트 해리엇 테일러가 쓴 글에 유려하게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여성이 여성만의 "바람직한 영역"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게, 혹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어떤 영역이 '바람직한 영역'인지 대신 결정해 줄 권리는 없다. 모든 인간에게 '바람직한 영역'은 그가 닿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영역이다. 완전한 선택의 자유 없이는 이 영역이 무엇인지 알 방법이 없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309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예를 들면,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의 경험을 상상해 보자. 보편적 인간성이 인정되는 사회에 산다면 나의 인간성을 가장 온전하게 즐기고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뒷받침하는 데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아주 기본적으로는 훨체어를 쓸 수 있고, 건물에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의 바탕에는 동료 인간의 경험과 내 경험이 거울에 비춘 듯 같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 또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관심 가는 일을 추구하고, 세상과 온전히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양성의 원칙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이와 동시에 온전한 인간의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한 관념을 확장함으로써 나의 경험에 반응할 것이다. 댄 굿리는 2021년 저서 『장애와 그 밖의 인간적인 문제들』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는 "자립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종류의 인간성"을 이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홀로 당당하게 선, 근육이 탄탄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사회는 상이한 삶의 영역에서 생기는 다양한 필요를 덜 고려하고 어쩌면 "자립"에 기초한 엄격한 경제 모델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반면 장애인 차별을 문제시하는 사회에서는 협력과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면서 "인간 삶의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하며 다양하고 불안정한 특성"을 좀 더 인정할 수 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313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대신 벤담은 한 가지 실험을 제안한다.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것이 (내가 아는 한) 관련된 모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까, 아니면 불행하게 할까? 이것이 바로 행복 계산법felicific calculus으로 공리주의라는 윤리론의 핵심이다. 물론 이 계산법을 적용하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다. 결정은 누가 내리고 산술적인 계산은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며 행복과 불행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도구로서는 흠이 있지만 잘만 사용한다면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이다. (314쪽) 세상에 있는 행복의 양이 줄어드는 대신 늘어난다는 게 중요하다. 공리주의는 때로는 매정하다는 취급을 받지만 이런 생각은 내가 볼 때 너그러울 뿐만 아니라 꽤 아름다운 삶의 원칙 같다. (315쪽)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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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대신 벤담은 한 가지 실험을 제안한다.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것이 (내가 아는 한) 관련된 모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까, 아니면 불행하게 할까? 이것이 바로 행복 계산법felicific calculus으로 공리주의라는 윤리론의 핵심이다. 물론 이 계산법을 적용하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다. 결정은 누가 내리고 산술적인 계산은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며 행복과 불행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도구로서는 흠이 있지만 잘만 사용한다면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이다. (314쪽) 세상에 있는 행복의 양이 줄어드는 대신 늘어난다는 게 중요하다. 공리주의는 때로는 매정하다는 취급을 받지만 이런 생각은 내가 볼 때 너그러울 뿐만 아니라 꽤 아름다운 삶의 원칙 같다. (315쪽)"
두 나라 지도자들의 미묘한 연관에 대해 들었을 때, 내게는 근대 영국의 대표적 이념인 공리주의와 독일 나치즘 사이에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참고로 니체는 공리주의 영국을 근대성(현대성) 이념의 발원지로 지목했다). 본격 연구를 해본 적이 없는 터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의심이 최근 더욱 강해지고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두 이념은 아주 다르다. 영국의 공리주의는 낭만적 영웅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판단을, 예외보다는 규칙을 중시한다. 행복조차 현실적 효용을 통해 접근했던 매우 실용적이고 계산적인 이념이다. 이런 공리주의를 히틀러를 영웅시하고 아리안종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수백만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광기적 행동과 연결짓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제를 하나씩 파고들어가면 헷갈리는 지점들이 자꾸 나타난다. 나치의 선동적 연설만 아니라 공리주의자들의 합리적 계획 속에서도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제거, 인간 개량을 위한 유용성 평가 등을 발견하거나 추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레미 벤담이 구상한 수용소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이 수용소는 쓸모와 비용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인간마저 그런 눈으로 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보여준다. 사회적 부만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들, 생계 하나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쓰레기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벤담은 교육이나 도덕적 호소는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쓰레기들'은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시민으로 개조되어야 한다.
묵묵 -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쓸모없는 사람, 고병권 지음
묵묵 -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노들장애인야학과 광화문 거리, 수용시설 그리고 미술관과 대학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시간에서 얻은 배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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