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저도 학창시절에 미술학원에서 같은 그림만 쉼 없이 그리던 때가 떠오릅니다. 근데 저는 그렇게 단순한 반복을 은근히 좋아하더라고요. 전에도 캘리그라피를 배웠던 적 있는데, 첫 시간에는 먹이랑 붓을 사용해서 선 긋기만 4시간? 했거든요. 그 시간이 어찌나 포근하던지... 근데 @borumis 님은 드로잉수업 안 받으셔도 될 것 같은걸요. 이미 금손!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3.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D-29

연해

도롱
와 알록달록 예쁜 독서노트네요~ 그림도 잘 그리시는 군요!

borumis
감사합니다. 좀 암울한 시기에 암울한 책을 많이 읽어서 (페스트도 그렇고;;) 뭔가 좀 밝고 알록달록한 색칠공부를 많이 했네요^^;;

ifrain
독서노트도 이렇게 다꾸처럼 꾸미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거군요. 그림도 잘 그리시지만 필기체로 쓴 글씨가 넘 예뻐요.. ^^ 심장을 쥐고 있는 여자분.. 무섭네요 ㅎㅎㅋ;;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읽기표대로 오늘 4월 7일 화요일과 내일 8일 수요일은 1장 '산 자의 땅'을 읽습니다. 이번 1장의 주인공은 (스치듯이 이름은 한 번 들어보셨을)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입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1300년대에 인문주의 부활의 불씨를 쏘아 올린 지식인으로 유럽 지성사에 기록된 사람들이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많은 감상 나눠요.

YG
“ 19세기 소설가 알렉산드르 만초니는 1630년 밀라노에서 흑사병이 발생했던 당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공동체의 불행 속에서, 정상적인 질서가 장기적으로 무너지는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항상 성장을, 인간의 선함이 고조되는 양상을 목격한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악한 모습 역시 같이 증가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렇다. 겁에 질린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용감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아가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도 있다. ”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장, 72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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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원본 그림들로 감상하시는 게 낫겠군요. YG님 취향?일 듯한 첫 그림은 아버지 탄크레디가 죽인 천한 신분의 연인의 피뚝뚝 심장을 쥐고 있는 기스몬다.. 신분보다 더 고귀한 긍지와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 앞에서 저 심장과 독을 컵에 담아 마셔 스스로 자결합니다. 걸크러쉬~ 야한 이야기나 잔인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재미있었어요. 이걸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읽고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고 싶어졌는데.. 너무 바빠져서 결국 못 읽었네요.



YG
@loveCM @punky 님, 댓글을 읽고서 저도 생각을 정리해 봤어요.
1. 『Humanly Possible』을 제가 번역했다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들” 정도로 옮겼을 것 같습니다. ‘인간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의 뉘앙스가 깔려 있죠. ‘Humanly’에는 ‘인간적으로’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책의 맥락상 ‘인문주의’가 깊이 연루돼 있으니 ‘인문주의적 가치로 해야 할 것들’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고요.
2. loveCM 님께서 언급하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punky 님께서 짚어주신 현실의 비참함에 저 역시 깊이 공감합니다. 아시다시피 피케티는 인간의 개별적 ‘의지’보다는 압도적인 ‘시스템의 관성’을 통해서 불평등의 심화를 진단했죠. 개인이나 공동체가 아무리 분투해도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속도를 제어하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죠.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700년 전의 ‘휴머니즘’을 소환하는 일이 자칫 지적 자위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보다는 ‘구조’로 문제의식의 전환이 일어났고, 그 흐름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우리가 12월에 읽었던,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미셸 푸코였습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 푸코가 ‘안티 휴머니즘’의 기수로서 다소 비판적인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자는 푸코를 포함한 일련의 현대 철학자들이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지난 토론 때 푸코의 이론이 가진 실천적 한계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죠?)
3.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피케티가 거대한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글로벌 자본세’ 같은 기획이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동력이 되어야 할까요? 결국에는 공동체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고, 그 정치적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공감’과 ‘윤리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4. 저 역시 오랫동안 ‘안티 휴머니즘’의 분석 틀을 공부해 왔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삼 제가 여전히 ‘휴머니스트’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제시한 휴머니즘의 조건들은 저도 일상에서 지향하는 가치들과 일치하더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연대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로서 저 정도의 휴머니즘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만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하고 나서, 그간 나온 해외 서평을 쭉 살펴봤어요. 이 책이 ‘휘그주의적 낙관론’에 매몰된 순진한 시각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눈에 띄더군요.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아직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느냐는 냉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냉소야말로 현실의 작은 변화조차 가로막는 가장 무력한 태도일 뿐입니다.
6.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맹 롤랑이 말하고 그람시가 인용해 유명해진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입니다.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루쉰의 「고향」 끝자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이 고민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borumis
안그래도 저는 원서로 읽고 있어서 이 번역서의 제목을 보고 좀 갸우뚱했는데요. 저는 Humanly possible이라는 말에서 오히려 안락사처럼 '가능한 한 인간적으로' 고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노력이 연상되었는데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possibility에 대한 느낌도 떠올렸지만 안락사 등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냉혹한 현실의 이면도 느껴졌던 건 저만 그럴까요? 제 생각에 humanism이란 단지 막연하게 낙관적인 것보다는 그런 냉혹한 현실마저 감안하고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은 데카메론을 읽은 당시 팬데믹이 가장 안 좋았던 때고 제 자신도 개인적으로 그것때문에 너무나도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때보다 더 끔찍한 흑사병과 더 부정부패와 착취도 심했던 중세사회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인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곤 했죠.
저보다 더 힘든 현장에서 일했던 남편도 보면 피철철의 공포 슬래셔도 좋아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깔깔 웃을 수 있는 예능 개그물도 참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할 때 만날 실없는 쇼츠를 보내곤 합니다;;; 단테도 보면 개인적 복수심의 문학적 뒤끝 끝판왕같지만 또한 천국편을 보면 같은 작가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문학적으로 승화도 가능한 걸 보면 신기합니다. 보카치오도 참 복잡한 인물이었구요.. 전 인간의 그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복잡함에서 희한하게도 어떤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쩌면 그런 완벽하게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진화?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YG
@borumis 하지만 저자가 낙관적인 건 사실입니다. :) 저는 또 이런 시각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하하하!

소향
제목에 대해 쓰신 것 보니 저도 의미를 좀더 생각하면서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연해
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작년, YG님의 북토크에서 들었던 '부지런한 희망'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어요. 정치적 의지와 휴머니즘적인 공감, 윤리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에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YG
@연해 "부지런한 희망." 저도 까먹고 있었는데 다시 상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엔 꼭 기억했다가 여기저기서 써먹어야겠어요. 하하하!

연해
하하하, 제 마음에 콕 들어왔던 말이라 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저작권은 YG님께 있는데 저야말로 감사하지요. 전에 제 동료가 "연해님은 음식보다 문장을 주로 섭취하시나 보네요!"라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좋은 문장과 단어를 만나면 마음이 꽉 차오르는 게 떠올리는 것만으로 든든해집니다.

향팔
오, ‘부지런한 희망’은 그맘때쯤 읽었던 <일인분의 안락함>에서도 얘기가 나왔 었지요? 다시금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의요정
오! 저는 이거 카톡 프사 문구로 한동안 저장해 뒀었어요. 제가 항상 바라는 마음과 통했었거든요. @YG

YG
@꽃의요정 카톡 프사 문구! 감동입니다. :)

연해
오오, 카톡 프사 문구라니! 너무 좋은데요. 항상 바라는 마음과 통했다는 말씀도요.
저는 재작년이었나? 장강명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다가 '부지런한 희망'은 아니고 '차분한 희망'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독서 생태계에 대해 다소 씁쓸한 전망을 말씀하 시다가, 쉽게 좌절하지 않고, 쉽게 기대하지 않고, 차분한 희망을 이어간다고 하셨거든요. 그중 작가님이 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쓰는 것이라고. 이제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생명력이 긴 책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또 어찌나 든든하던지요(지금도 그 마음은 유효하시겠...?). 부지런한 희망과 차분한 희망. 희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향
나중에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자님.

오구오구
아.. 너무 좋네요. @YG 님의 이런 통찰과 다른 참여자분들의 사색이 어울러지면서 제 생각도 정리 되네요. 저도 책을 읽으며 5의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 문장이 루쉰의 <고향>에 나오는 대목이군요. 루쉰의 고향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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