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팔님의 대화: “14세기에 그리스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콘스탄티노폴리스나 오늘날 그리스가 위치한 지역, 혹은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어 원어민 정착촌이 전부였다. 다른 곳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천문학, 문학이 접근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p.62)
아랍의 학자들은 이때보다 훨씬 전에 그리스어 원전을 완벽하게 번역해서 연구하고 있었고, 유럽의 인문학자들은 아랍 학자들의 번역본을 다시 번역해서 겨우 지식을 얻었다고 들었는데요. 아랍 쪽 얘기는 이 책에는 별로 나오지 않겠죠? 유럽 중심의 이야기니…
“ 그러나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 문헌은 길고 ‘어두웠던’ 중세 시대에 필사되었다. 인쇄술이 생긴 이후 더욱 명백해진 사실이지만 책을 살려두는 데는 수많은 사본을 만드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이런 방식의 필사는 6세기에서 8세기 사이 아일랜드와 영국의 외딴 수도회 공동체에서 특히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8세기 이후로는 아랍 세계가 수학, 의학, 철학에 관한 그리스어 문헌을 비롯한 방대한 문헌을 번역하고 보존했다. 바그다드에서는 아바스 칼리파국과 개인 후원자들이 수많은 번역가를 도서관에 모아놓았다. 9세기에 이들을 감독하던 사람이 바로 매력적인 알킨디였다. 지진에서 윤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집필한 알킨디는 어떤 관점에서든 휴머니스트라고 할 만하다. 특히 여러 전통 간에 다리를 놓고자 했던 “오직 연결!”을 주장했던 부류의 인문학자다. 알킨디는 철학과 신학, 그리스의 사상과 이슬람의 사상을 화해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시도였다. 그의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든 그의 업적이 경쟁자들의 시기심을 부추겼든 알킨디는 자기 도서관에서 쫓겨나 폭행까지 당했다. 알킨디가 쓴 글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91-92쪽,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문장모음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