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사본을 찾아다니거나 난파선을 인양하는 사람, 탐험가, 교사, 필경사, 인쇄업자, 궁정 대신, 수집가, 작가 등.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인문학에 재능을 보인 여성도 손에 꼽을 만큼은 있었다. p.74
같은 시기 유럽 북서부에서는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가 영토 내의 수도사들에게 도서관에서 '우리 조상의 부주의로 거의 잊힐 뻔한' 지식을 되찾으라고 지시했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 썼던 이후 인문학자들의 입에서 나왔을 법한 말이다. p.78
1423년 교황청 서기관으로 로마에서 일하고 있던 브라촐리니는 니콜리에게 안락한 사택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안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함께 지내며 이야기를 나눕시다. 고대인들의 삶을 낱낱이 파헤칩시다.' 자두색을 좋아하는 니콜리가 벌이는 잔치에 브라촐리니의 걸걸한 입담이 더해져 집 안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p.87
바로 1453년 튀르키예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었다.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필사본을 챙길 시간은 있었다. 철학, 수학, 공학 등에 대한 그리스어 문헌으로 가득한 필사본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적, 지적, 기술적 영역을 확장하고 마누티우스와 지인들을 더욱 풍족하게 했다.
마누티우스와 편집자들은 문헌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기존의 필경사들이 저지른 실수를 잡아내고 다양한 판본을 비교하면서 중요한 고전 문헌에 대한 표준 판본에 합의했다. p.110 ”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혐오와 고립의 시대, 우리를 연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세라 베이크웰 지음, 이다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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