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님의 대화: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새삼 다시 읽고 베이크웰의 추가 설명까지 곁들여보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우월함을 설파하는 시각에는 실로 유구한 전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승자의 기록’으로 역사를 재편하는 휘그주의적(Whiggish) 낙관론의 뿌리인 셈이죠. (이 책도 그런 휘그주의적 진보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었죠?)
예를 들어, 제가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북트리거)의 1장(『쌀과 소금의 시대』 편)에서 소개했던 ‘대분기(Great Divergence)’ 논쟁에서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 강력하게 존재합니다. 왜 산업화는 서양, 특히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 이에 대해 제도주의적 시각을 가진 이들은 영국이 1688년 명예혁명 이후 확립한 자유 시장(자유주의)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전통이 있었고, 그 안정적인 제도적 자장 안에서 부르주아 기업가와 발명가의 혁신이 꽃필 수 있었다고 논증합니다.
바로 이런 시각을 견지하는 ‘신제도주의’ 학파의 거두들이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권력과 진보』로 유명한 대런 아세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그리고 사이먼 존슨이 그 주인공이죠. 특히 『권력과 진보』는 우리가 2023년 9월에 함께 읽으면서 의견을 나누기도 했었죠.
2024년 10월에 함께 읽은 『중국 필패』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과거 제도와 왕권을 강화하는 경직된 관료제 전통이 지배적인 중국에서는 서양식 과학기술 혁신이 지속되는 데 한계가 있으리라는 서구 중심적 제도 결정론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베이크웰이 묘사한 실제 아테네와 피렌체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부와 혁신을 추동하는 필수적인 ‘엔진’인가 하는 점입니다.
흔히 우리는 민주적인 제도가 갖춰져야 혁신이 일어난다고 믿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은 오히려 혁신은 ‘제어 불가능한 무질서’와 ‘불안정한 자유’의 틈바구니에서 잉태되었습니다. 아테네와 피렌체는 제도가 완벽해서 번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역동적인 충돌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진짜 역할은 엔진이 아니라 ‘제어 장치’ 혹은 ‘완충 지대’가 아닐까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혁신의 절대적 전제 조건이라기보다, 혁신이 초래하는 파괴적 결과나 비대해진 권력의 폭주를 제어하기 위해 인류가 고통스럽게 발명해 낸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베이크웰이 말한 인간의 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안정된 제도’라는 환상이 아니라, 무질서 속에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제어하고 설득하는 그 피곤한 과정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혀 이 글과 상관없지만, 정리해 주신 글을 읽으며 YG님의 작은 동거인님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빠라니~~
20대 때 한동안 키무라 타쿠야(좋아하진 않지만 왠지 멋있어 보이긴 했음)가 아빠라면 어떤 기분일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비교도 안 될 만큼 YG 님의 작은 동거인님이 부럽습니다. 멋진 아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