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님의 문장 수집: "9장. 어느 꿈의 세상
382쪽
그리고 그 과정에서 19세기의 두 가지 거대한 흐름을 하나로 합쳤다. 교육과 자유사상에 대한 급격한 관심, 그리고 과학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해 사유하려는 경향이었다. 이 두 가지를 합쳐 헉슬리는 과학적 휴머니스트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매김했다.
383쪽
다윈은 그저 매우 부지런하고 열정이 많은 사람일 뿐 무해해 보였다. 헉슬리는 다윈이 이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생물에 대한 급진적인 새 이론을 구축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386쪽
헉슬리의 가장 중요한 강연은 엘리트나 전문직으로 이루어진 관중 앞이 아니라 이러한 노동자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졌다.
387쪽
과학은 아이들에게 물리적인 세계의 기초를 알려주는 동시에 인문학적 능력도 키워준다. 바로 탐구정신이다.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능동적인 학습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389쪽
최신 과학의 논증과 방법론에 관한 관심을 지속하면서 자연이라는 큰 그림 속 인간의 자리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과학적 휴머니즘의 원칙은 우리 시대에도 광범위한 휴머니즘 세계관의 일부로 남아 있다.
인문학을 기본으로 하는 휴머니즘 윤리는 우리가 정신적이고 문화적이며 도덕적인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390쪽
타인을 도왔을 때, 그래서 타인이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때, 특히 그 타인이 가까운 사람일 때 가장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고 사적인 노트에 쓰기도 했다. (다윈)
397쪽
대롱대롱 매달린 스미스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지려는데 코앞의 바위에 박힌 삼엽충 화석이 눈에 들어온다. 수백만 년 떨어진 우리 둘이지만 죽음의 순간에는 이처럼 가까이 있구나."
9장에서는 죽을 수도 있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수행한 버지니아 울프의 아빠 레슬리 스티븐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전 그런 의연한 자세를 갖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죠.
하나 더 꼽는다면 소설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등장한 성직자인 아버지가 믿음을 좀 늦게 잃었으면 좋겠다는 딸들의 대화가 너무 맘에 와닿아 기억에 남았습니다. ㅎㅎ
그리고 다윈의 종의 기원과 밀의 자유론이 발표되던 즈음 제가 살고 있었다면 실존적 고민을 하느라 참 피곤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나이가 들었다면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찰떡같이 믿어 왔던 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괴로움 때문에, 젊은이라면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느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건 뭐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수집한 397쪽에서 삼엽충과 수백만 년 떨어졌다고 썼는데 1872년 그 당시에는 그렇게 믿었는지 몰라도(지구의 나이에 대한 추정치가 점점 늘어나고 있던 때였죠) 현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삼엽충은 약 2억 5천만년 전에 멸종한 동물입니다. 수백만 년이 아니고 수억 년인 것이죠. 요즘 옆방에서 지구 역사 책을 읽고 있어서인지 이런 대목이 눈에 확 띄네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