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슨의 눈이 엘 과포를 훑었다. 내가 앉은 데이터 기록 담당자 자리에서는 10여 개의 카메라 화면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연기와 다를 바 없는 검은 유체가 꼭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가 확대해서 보여준 열수공의 모습은 녹청색, 자홍색, 황갈색, 다갈색, 진회색, 검은색이 점점이 찍힌 인상주의 회화 같았다. 측면에는 흰색의 세균 가닥들이 늘어져 있었다. 제이슨이 가까이 접근하면서 마치 부서진 치토스 과자처럼 보이는 주황색과 노란색의 미생물 덩어리를 추진기로 휘저어놓았다. "달팽이 같은 연체동물들도 있습니다." 뒤에서는 버다로가 설명을 계속했다. "아래쪽에 수많은 바다거미들이 보일 때도 있죠." 그러자 버하인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 "여기에는 이상한 것투성이예요."
"이곳은 산화가 잘 되어 있네요." 켈리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영상 기록을 맡고 있던 학생 레이철 스콧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먼지가 가라앉으면 4K 영상을 한번 찍어보죠." 스콧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고해상도 4K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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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물은 대단히 뜨겁습니다." 버다로가 계속해서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다. "섭씨 300도 정도 되죠. 그런데 굴뚝에서 1밀리미터만 떨어져도 섭씨 2도로 떨어집니다." 그때 클로즈업한 화면 속에 이리저리 엉킨 관벌레 무리가 황화수소 욕조에 몸을 담근 모습으로 등장했다. "아, 좋네요. 딱 좋아요." 켈리가 말했다. "벌레들의 머리가 저렇게 빨갛다면, 아주 행복하다는 뜻이에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처음 발견된 후로 관벌레는 심해 열수공과 화학 합성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이들의 몸이 빨간 이유는 헤모글로빈이 풍부한 혈액 때문이다(산소뿐 아니라 황화수소도 운반할 수 있도록 적응한 결과이다). 관벌레에는 눈도, 입도, 소화관도, 항문도 없다. 어느 동물에게든 가혹한 조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태는 주변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다. 관벌레는 피부를 통해서 흡수한 세균을 영양체營養體라고 불리는 특별한 기관 안에서 살게 한다. 열수공의 유체가 관벌레의 몸을 휩쓸고 지나갈 때, 아가미 역할을 하는 깃털을 통해서 그 유체를 빨아들이면, 영양체 속의 세균이 화학 물질을 소화시켜서 에너지로 변환하고, 이것을 숙주와 공유한다. 관벌레에게 삶이란 여럿이 함께 즐기는 저녁 식사와도 같다.
나는 뒤로 기대어 앉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뜨거운 열기와 물어뜯는 벌레들로 가득한 엘 과포의 거친 세계를 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블랙 스모커를 바라보는 동안에는 마감일이나 치과 예약이나 꽉 끼는 바지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상이 끼어들 틈이 없는 그곳의 존재감에 그저 몰입하게 될 뿐이다. 인간의 사상도, 믿음도, 개입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죠." 켈리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에 있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요." ”
『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pp.164~166,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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