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ain님의 문장 수집: " 미도리, 수선화와 니체
4장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미도리'다. 기즈키가 자살하고, 돌격대는 사라지고, 연락이 두절된 나오코. 주인공 와타나베가 아는 관계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 게다가 시대는 어떤 전망이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때 미도리라는 여학생이 등장한다.
미도리는 녹색(綠, みどり)이라는 뜻이다. "나, 이름이 미도리야. 그렇지만 녹색하고는 하나도 안 어울려. 이상하지?" 라고 하지만, 미도리는 녹색과 어울리는 인물이다. 미도리는 다른 등장인물처럼 어두운 결핍을 경험하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미도리는 다른 한쪽의 반쪽이 되기를 바라는 듯하지만, 실은 자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유형이다. 그래서 학교를 싫어하면서도 "난 무지각, 무결석으로 개근상까지 받았어. 그렇게나 학교가 싫었는데도, 왜 그랬는지 알아?"라고 하는데, 그 까닭은 미도리가 홀로 이 세상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루키의 디테일을 볼 수 있는 상징이 나온다. 그것은 수선화다.
"나 수선화를 정말 좋아해. 옛날 고등학교 축제 때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를 부른 적이 있어. 알아, 「일곱 송이 수선화」?" (『노르웨이의 숲』, 4장 121면)
수선화의 꽃말은 자존심, 자긍심이다. 수선화를 영어로 나르키소(Narcissus)라고 한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이 단어에서 나왔다. 미도리는 왜 수선화를 좋아한다고 했을까. 자기 자신의 결핍을 숨기는 방어 기제로 수선화를 사랑할 수도 있다. 미도리의 결핍은 어디에 있을까. 2년 전 미도리의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엄마가 죽었을 때, 아빠가 언니랑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난 지금도 억장이 무너져. 네 엄마를 잃는 것보다 너희 둘을 잃는 게 훨씬 나았을 거야.' 우린 너무 어이가 없어 아무 소리도 못 했어. 그렇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물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반려자를 잃는 괴로움, 슬픔, 아픔은 알아. 애처로운 일이지. 하지만 자기 딸한테 너희들이 대신 죽는 데 나았다니, 그건 아니잖아?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노르웨이의 숲』, 4장 128면)"
“ 미도리가 대단한 것은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다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도리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얽매여 있지도 않았다. 미도리는 상처에서 벗어나 홀로 살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한다. 미도리는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오코나 와타나베와 확실히 다른 인물이다. 하루키가 이 인물의 이름을 고바야시 미도리(小林綠), 즉 '작은 숲의 푸르름'이라고 정한 까닭은 그녀의 끊임없는 낙관성 때문일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미도리는 니체의 역동적 허무주의 혹은 적극적 허무주의를 떠오르게 한다.
하루키는 중학교 3학년 때 비틀스와 함께 서구 문학을 읽었다. 부모가 구독하던 가와데쇼보의 '세계문학전집'과 중앙공론사의 '세계의 문학'을 한 권 한 권 읽으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중학생 때 마르크스, 노자, 니체 등을 읽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1949~1992』 p.336, 김응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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