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의 타포니를 보니 전광영 작가의 작품이 떠오르네요. 한지를 감싼 여러 개의 유닛을 붙여서 작품을 만드는데.. 작품 표면에 부분적으로 움푹 들어가게 표현한 작품들이 있어요.. 마이산이 역암(작은 유닛들)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비슷한 느낌이 나네요.
http://www.chunkwangyoung.com/html/main.php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2부
D-29

ifrain

ifrain
ifrain님의 대화: 가령 이런 것들이죠. 첫번째 사진은 나무 뿌리가 암반을 뚫고 쪼개면서 풍화시킨 흔적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암반이 풍화되고 위에 남은 암석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누가 저것만 따로 올려놓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걸 보니.. 인절미가 생각납니다.ㅎㅎ
세번째 사진은 암반이 이리저리 풍화된 흔적이겠죠. 색상이 얼룩덜룩합니다. 찾아보니 화강암은 망가니즈(Mn) 성분이 산소와 만나서 산화되면 착색이 된다고 합니다. 또 화강암 속의 알갱이인 흑운모(Biotite)가 수분과 반응해서 산화되면 주변에 철(Fe)와 망가니즈 성분이 배출되기도 하고요.
인왕산에서 발견한 화강암의 풍화 과정을 보여주는 암석들 입니다.
절리가 발생한 다음 쪼개어진 암석들의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되는 것을 볼 수 있네요.
그리고 화강암의 색 변화도 볼 수 있습니다.
인왕산 암석들에게 누가 글을 써놓은 흔적이 많았어요.




ifrain
향팔님의 대화: 제인 구달의 어머니도 존경스럽네요. 지렁이를 침대에 두면 죽으니 흙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차근히 설명해준 것이나, 딸의 꼬꼬마 보물 상자를 정성 들여 보관해준 것도 그렇고요. 그런 어머니의 존재가 제인 구달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 제인 구달이 열심히 자연 공책과 악어 클럽 잡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준 것.
그리고 지렁이의 입장을 어린 제인 구달에게 이야기해준 것..

ifrain
ifrain님의 대화: 위키백과에 "안산의 동북측 사면은 중생대 쥐라기 대보 화강암 서울 화강암" 이라고 나오네요. 제가 찍은 곳은 동북측 사면인 것 같으니..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것이군요..
안산은 인왕산 줄기로부터 연속되어 나온 산으로, 서울이 고려의 옛 남경이던 시절에도 인왕산이 아닌 안산을 서쪽 경계로 두고 있었던 것은 안산이 인왕산의 일부에 가까운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산의 동북측 사면은 중생대 쥐라기 대보 화강암 서울 화강암, 서남측 사면은 선캄브리아기 편마암으로 구성되며 봉우리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잔구 형태를 띄고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2%B0_(%EC%84%9C%EC%9A%B8)
이 사진이 인왕산에서 바라본 안산의 동북측 사면입니다.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것이네요.


polus
향팔님의 대화: 와, 데이빗 어텐보로, 칼 세이건, 제인 구달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라니, 신박하네요! 내용도 넘 좋습니다. 데이비드 어텐보로는 <쥬라기 공원>에서 해먼드 역을 맡았던 배우 리처드 아텐보로와 형제 사이인 걸로 알고 있어요. 말 나온 김에 <쥬라기 공원>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하나 올려봅니다.
https://youtu.be/E8WaFvwtphY?si=VN57vRPn6C0_ASU-
@향팔 리차드 아텐보로는 배우라기보다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네요.^^ 간디 등을 감독했죠 ㅎㅎ 데이비드 아텐보로는 영국의 존경받는 방송인이자 자연학자죠. 영국인들의 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매우 깊은 것 같더군요. 영국에서 새로 만든 쇄빙선에 데이비드 아텐보로라는 이름을 붙였으니까요. 생존 인물의 이름을 배에 붙인다는 건 대단한 영광이죠. 사실 사연이 좀 있는데, 새로운 쇄빙선을 완성하고 이름을 국민 공모를 했는데 1등을 한 이름이 보티 맥보티페이스였다고 합니다. 영국인들에겐 좀 장난스러운 이름이어서 보수적인 업계(?) 사람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국민들의 반발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 데이비드 아텐보로로 이름을 정하기로 했답니다.^^ 대신 데이비드 아텐보로 호의 작은 구명정에 보티 맥보티 페이스란 이름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국민 공모로 1등한 이름을 버릴 순 없었던 것이죠 ㅎㅎ 영국인에게 직접 들은 에피소드입니다.^^

ifrain
ifrain님의 대화: 화강암이 매끈한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다시 살펴보니 정말 거칠거칠 우둘투둘 하더군요.
사진에 표시한 부분이 석영인 것 같아요. 햇빛에 약간 투명한 느낌이 났어요. 부분적으로 반짝이기도 하고요. 콕콕 박혀 있는 소금 알갱이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인왕산의 바위도 흑운모 화강암이라고 해요. 석영와 장석은 밝은 색이고.. 이 친구들 때문에 바위는 하얗게 보이지만 그 사이에 흑운모가 박혀 있다고.. 이 흑운모에 철Fe 과 망가니즈Mn가 많이 들어 있어 습기에 약하다고 하네요. 철분은 바위를 붉게 만들고 망가니즈는 검은색 얼룩을 만들고요.
국사당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암반입니다. 역시 절리가 생겼고 풍화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이 암반의 표면에서 저런 광물 알갱이들이 도돌도돌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죠.


polus
ifrain님의 대화: 이 사진이 인왕산에서 바라본 안산의 동북측 사면입니다.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것이네요.
@ifrain 정선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인왕산.^^

향팔
polus님의 대화: @향팔 리차드 아텐보로는 배우라기보다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네요.^^ 간디 등을 감독했죠 ㅎㅎ 데이비드 아텐보로는 영국의 존경받는 방송인이자 자연학자죠. 영국인들의 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매우 깊은 것 같더군요. 영국에서 새로 만든 쇄빙선에 데이비드 아텐보로라는 이름을 붙였으니까요. 생존 인물의 이름을 배에 붙인다는 건 대단한 영광이죠. 사실 사연이 좀 있는데, 새로운 쇄빙선을 완성하고 이름을 국민 공모를 했는데 1등을 한 이름이 보티 맥보티페이스였다고 합니다. 영국인들에겐 좀 장난스러운 이름이어서 보수적인 업계(?) 사람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국민들의 반발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 데이비드 아텐보로로 이름을 정하기로 했답니다.^^ 대신 데이비드 아텐보로 호의 작은 구명정에 보티 맥보티 페이스란 이름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국민 공모로 1등한 이름을 버릴 순 없었던 것이죠 ㅎㅎ 영국인에게 직접 들은 에피소드입니다.^^
와,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이름이 쇄빙선에 붙여졌다니 몰랐던 사실이에요. 형제가 모두 엄청 유명하다는 것만 알았지 리차드 아텐보로가 배우보다는 감독으로 더 알려졌다는 것도 몰랐네요. 저에겐 꼬꼬마 때 쥬라기공원에서 봤던 인상좋고 기품 있어 보이는 해먼드 할배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답니다.
보티 맥보티 페이스라는 이름은 작은 구명정에 붙여줬다고 하니 왠지 귀엽게 느껴지네요 ㅎㅎ 이런 깨알 정보 재미있어요. 감사합니다!

ifrain
밥심님의 대화: 아니, 가사에 틱타알릭이 나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전 가사를 면밀히 읽지 않아서 그런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요, 대단하십니다.
어류에서 사지동물로 진화하는 중요한 증거물이라는 이 화석에 대해 전 전혀 들은 기억이 없어서 검색을 해봤더니 2004년에야 화석이 발견되었고 2006년에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군요. 2006년 당시 신문 기사를 링크합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0604061811341
지금까지 책에서 언급한 중요 화석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1) 어류에서 사지동물로 진화 증거: 틱타알릭(책 182쪽), 화석이 발견된 곳이 캐나다 엘즈미어섬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곳 같아 생각해보니 배리 로페즈가 쓴 <호라이즌>에 나온 곳이네요. 그믐 벽돌책 모임에서 읽은 책이죠. 이렇게도 연결되는 군요. ㅎㅎ
2) 공룡에서 조류로 진화 증거: 시조새(책 197쪽), 이 화석은 1800년대에 발견된 덕에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ㅎㅎ
이번엔 중요 지질학적 포인트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1) 시카포인트(스코틀랜드, 책 57쪽): 지질학자들에게 성지, 지구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음을 알 수 있음.
2) 미스테이큰 포인트(캐나다 뉴펀들랜드섬, 책 143쪽) : 에디아카라기 동물들 화석이 발굴되어 고생물학자를 행복하게 만든 곳.
3) 버제스 셰일(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필드, 책 158쪽): 캄브리아기의 동물들 화석 무더기로 발굴
4) 라이니(스코틀랜드, 책 172쪽): 오르도비스기의 바다에서 육지로 옮겨가는 식물 화석이 가득 담긴 라이니 처트가 발굴된 곳으로 버제스 셰일의 고식물학판에 해당
스코틀랜드와 캐나다로 현장 답사를 가야할 판이네요. ㅎㅎ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라는 드라마를 <지구의 짧은 역사> 독서모임 하기 전에 보았는데요.
드라마를 일본, 캐나다, 이태리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촬영했어요. 드라마 촬영 후에 김선호와 고윤정 배우를 인터뷰를 한 영상이 있었는데.. 둘 다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동시에 '캐나다!' 라고 말했죠. 드라마에서 캐나다 장면을 보면 배경이 매우 광활하고 아름다운 걸 느낄 수 있어요. 자세한 걸 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레이크 루이스 근처로 간 것 같았어요. 호수가 나오는 장면도 있거든요. 레이크 루이스 근처에 다른 호수들도 있죠.

ifrain
ifrain님의 문장 수집: "식물의 생존을 돕는 종류도 있었고(<그림6-3>) 죽은 식물을 먹는 종류도 있었다. 그리고 난균류oomycete도 있었다. 균류처럼 생긴 이 미생물은 19세기 아일랜드의 감자역병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
“ 아일랜드인 100만 명을
대기근의 지옥으로 몰아넣은 감자 역병
앞서 말했듯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감자의 독성분인 솔라닌 중독으로 고생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감자 보급이 훨씬 늦어졌다. 영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감자를 식량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접어들어서였다. 다만 잉글랜드 북부의 아일랜드만은 예외였다. 이곳에서는 황량한 토지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가 귀중한 작물로 대접받으며 널리 퍼져 나갔다. 아일랜드에 감자가 보급된 시기는 17세기 무렵이었는데, 시기 면에서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일랜드 인구는 감자 덕분에 19세기 초 300만 명에서 800만 명까지 늘어났다.
행복한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1840년대에 들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아일랜드 전역에 감자 역병이 창궐해 지독한 흉작이 이어졌다. 그 무렵 아일랜드에는 감자가 주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감자가 없으면 꼼짝없이 굶는 수밖에 없었다. 대기근이 닥쳤고 100만 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감자 역병 원인 조사 결과 감자의 증식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감자는 영양 번식계 작물로 씨감자를 심어 키우는데 그 과정에 증식이 일어난다. 아일랜드에서는 전국적으로 수확량이 많은 단일 품종을 선택해 감자를 재배했다. 한데 이처럼 품종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 품종이 특정 질병에 취약할 경우 전국의 감자가 모두 그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급기야 감자 역병으로 인해 아일랜드 전역의 감자가 그야말로 씨가 마르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때 이미 농약이 존재했으나 그것은 와인용 포도를 위해 개발한 제품이라 신종 작물인 감자에 생긴 역병에는 효과가 없었다.
감자의 원산지인 남미 대륙의 안데스 지역에서는 감자가 병에 걸려 전멸하지 않도록 여러 품종을 섞어서 심었다. 품종이 다양하면 어떤 병원균이 덮쳐도 그중 살아남는 강인한 품종이 있게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아일랜드에서는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감자를 전해주는 과정에 품종을 깐깐하게 선별했다. 그리고 결국 한정된 품종만 재배하여 전국의 감자가 역병에 걸리는 참사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원래 아일랜드는 기근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더구나 감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일랜드인에게 감자 흉작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아일랜드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는 동안 영국은 팔짱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냉담하고도 무심하게 대응했다.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를 같은 나라라기보다는 속국으로 간주했다. 영국의 그런 태도를 목격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 정부와 시민들에 강한 불신감을 품었고 이는 훗날 아일랜드 독립으로 이어졌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50~5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모든 것은 ‘후추’에서 비롯되었다. 아니, 같은 무게의 순금과 맞먹는 가격에 거래될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녔던 검은색 향신료 후추를 손에 넣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싶었던 개인과 국가의 들끓는 욕망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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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 아일랜드인 100만 명을
대기근의 지옥으로 몰아넣은 감자 역병
앞서 말했듯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감자의 독성분인 솔라닌 중독으로 고생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감자 보급이 훨씬 늦어졌다. 영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감자를 식량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접어들어서였다. 다만 잉글랜드 북부의 아일랜드만은 예외였다. 이곳에서는 황량한 토지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가 귀중한 작물로 대접받으며 널리 퍼져 나갔다. 아일랜드에 감자가 보급된 시기는 17세기 무렵이었는데, 시기 면에서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일랜드 인구는 감자 덕분에 19세기 초 300만 명에서 800만 명까지 늘어났다.
행복한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1840년대에 들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아일랜드 전역에 감자 역병이 창궐해 지독한 흉작이 이어졌다. 그 무렵 아일랜드에는 감자가 주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감자가 없으면 꼼짝없이 굶는 수밖에 없었다. 대기근이 닥쳤고 100만 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감자 역병 원인 조사 결과 감자의 증식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감자는 영양 번식계 작물로 씨감자를 심어 키우는데 그 과정에 증식이 일어난다. 아일랜드에서는 전국적으로 수확량이 많은 단일 품종을 선택해 감자를 재배했다. 한데 이처럼 품종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 품종이 특정 질병에 취약할 경우 전국의 감자가 모두 그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급기야 감자 역병으로 인해 아일랜드 전역의 감자가 그야말로 씨가 마르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때 이미 농약이 존재했으나 그것은 와인용 포도를 위해 개발한 제품이라 신종 작물인 감자에 생긴 역병에는 효과가 없었다.
감자의 원산지인 남미 대륙의 안데스 지역에서는 감자가 병에 걸려 전멸하지 않도록 여러 품종을 섞어서 심었다. 품종이 다양하면 어떤 병원균이 덮쳐도 그중 살아남는 강인한 품종이 있게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아일랜드에서는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감자를 전해주는 과정에 품종을 깐깐하게 선별했다. 그리고 결국 한정된 품종만 재배하여 전국의 감자가 역병에 걸리는 참사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원래 아일랜드는 기근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더구나 감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일랜드인에게 감자 흉작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아일랜드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는 동안 영국은 팔짱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냉담하고도 무심하게 대응했다.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를 같은 나라라기보다는 속국으로 간주했다. 영국의 그런 태도를 목격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 정부와 시민들에 강한 불신감을 품었고 이는 훗날 아일랜드 독립으로 이어졌다. "
“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고 세계 역사를 바꾼 감자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식량이 바닥나고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신천지로 여겨졌던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 그 수가 400만 명에 달했다.
19세기 중·후반 미국은 서부개척을 끝내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공업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수많은 아일랜드인은 대규모 노동자 집단으로 변신해 미국 공업화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결국 대규모 노동력 유입으로 국력을 키운 미국은 초강대국 영국을 앞지르며 세계 최고의 공업 국가로 발돋움했다.
대기근으로 인한 미국으로의 이주민 중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J.F. 케네디의 할아버지 패트릭 케네디가 있다. 마흔세 살의 젊은 나이에 제35대 미국 대통령이 된 J.F. 케네디는 달 탐사 계획을 추진한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케네디 가문은 J.F. 케네디 대통령 외에도 저명한 정치가와 기업가를 여럿 배출한 대표적인 미국 명문가 중 하나다. 그 밖에 레이건과 클린턴, 오바마 등 여러 대통령도 아일랜드계이고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와 맥도날드의 창업자인 맥도날드 형제 역시 아일랜드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J.F. 케네디의 할아버지 패트릭 케네디와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대기근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제35대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를 비롯한 여러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달 탐사 게획도 추진되지 않았을 것이며 전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인류 최초의 달 착륙도 없었을지 모른다. 감자라는 식물이 미국 역사와 더 나아가 세계 역사를 그리고 우주과학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셈이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53~55,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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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다리가 4개라서 사지류tetrapod라고 하는 육상 척추동물은 캄브리아기 대폭발 때 바다에서 처음 다양해진 어류의 후손임이 명백하다. 사실 비교생물학과 분자 서열 분석 결과는 사지류가 육기어류lobe-finned fishes( 지느러미에 살집이 있는 동물)라는 집단의 가까운 친척임을 보여준다. ”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179,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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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에서 척추동물은 입으로 물어뜯어서 먹이를 먹고 공기를 호흡함으로써 산소를 얻는다. 그 결과 머리뼈는 물어뜯고 공기를 호흡하기 좋게 더 튼튼하고 더 딱딱한 구조로 변형되었다. 그 과정에서 입천장도 소리내기 알맞게 변했고, 그에 따라 장기적으로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181,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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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게아 형성은 약 3억 년 전에 완성되었지만, 맨틀 대류가 계속 일어나면서 대륙들도 계속 움직였기에, 판게아는 약 1억 7,500만 년 전에 다시 쪼개지게 된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184,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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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
ifrain님의 대화: 물리적인 힘이 작용할 뿐만 아니라 화학작 풍화도 함께 일어나서 그런 것 같아요.
“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일 흙도 물리적 과정과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화학적 풍화뿐 아니라, 뿌리와 균류, 묻힌 식물 잔해와 지렁이도 흙의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한다. 사실 흙 형성에 기여하는 주된 물리적 과정 - 화학적 풍화 - 도 지표면 속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유기산을 분비하는 뿌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육상 생태계가 발달할 때, 기름진 토양도 함께 발달했다. ”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p.184~185,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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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일 흙도 물리적 과정과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화학적 풍화뿐 아니라, 뿌리와 균류, 묻힌 식물 잔해와 지렁이도 흙의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한다. 사실 흙 형성에 기여하는 주된 물리적 과정 - 화학적 풍화 - 도 지표면 속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유기산을 분비하는 뿌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육상 생태계가 발달할 때, 기름진 토양도 함께 발달했다. "
얼마 전 살펴본 소나무 뿌리가 화강암의 풍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지구의 짧은 역사>에도 나와 있네요. ^^

ifrain
“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식물, 후추
후추가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 후추는 마트에서 고작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향신료다. 그런 터라 과거에 후추가 금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얘기하면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깟 후추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 귀한 대접을 받았겠느냐는 거다.
유럽 대륙의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는 주로 볏과 식물(Gramineous Plant)이 자라는 초원이 펼쳐지는데, 볏과 식물 줄기와 잎은 인간이 식량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이 딜레마적인 문제에 맞닥뜨려 어떻게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들이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대상은 '초식동물'이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돼지·양 등의 초식동물들은 풀을 먹고 자란다. 인간은 자신이 먹을 수 없는 볏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베어 초식동물에게 먹여 기르고 다 자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았다. 이런 배경에서 야생의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고 축산업이 시작되었다. 유럽인에게 가축을 키워 얻은 고기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 참고로 가축은 영어로 livestock인데, 이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재고'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이 오면 가축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풀에 젖산균을 넣어 발효과정을 거친 사일리지(Silage : 말리지 않고 저장해 수분 함량이 많은 목초류 - 옮긴이)와 보존성이 뛰어난 곡물을 먹이로 사용한다. 하지만 풀을 베어 보관해둘 수 없었던 당시에는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닥치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나머지 가축을 도살해 고기를 만들었다. 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저장성이 떨어지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고기로 버텨내야 했다. 그들은 고기의 부패를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향신료도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였다.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문제는 당시 후추가 워낙 고가의 사치품이어서 대다수 사람은 손에 넣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후추는 왜 그렇게 비쌌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희소성'과 '막대한 유통 비용' 탓이 컸다.
후추는 남인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로 중동의 아랍지역과 유럽에서는 재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상인들은 육로로 멀리 돌아 인도에서 후추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 먼 길을 돌아오다 보니 과정에 운송비가 폭등했다. 설상가상으로 운송 과정에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많아 무사히 유럽에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터라 가격이 더욱 치솟았다. 최종적으로 유럽에 도착한 후추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79~81,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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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식물, 후추
후추가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 후추는 마트에서 고작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향신료다. 그런 터라 과거에 후추가 금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얘기하면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깟 후추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 귀한 대접을 받았겠느냐는 거다.
유럽 대륙의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는 주로 볏과 식물(Gramineous Plant)이 자라는 초원이 펼쳐지는데, 볏과 식물 줄기와 잎은 인간이 식량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이 딜레마적인 문제에 맞닥뜨려 어떻게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들이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대상은 '초식동물'이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돼지·양 등의 초식동물들은 풀을 먹고 자란다. 인간은 자신이 먹을 수 없는 볏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베어 초식동물에게 먹여 기르고 다 자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았다. 이런 배경에서 야생의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고 축산업이 시작되었다. 유럽인에게 가축을 키워 얻은 고기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 참고로 가축은 영어로 livestock인데, 이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재고'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이 오면 가축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풀에 젖산균을 넣어 발효과정을 거친 사일리지(Silage : 말리지 않고 저장해 수분 함량이 많은 목초류 - 옮긴이)와 보존성이 뛰어난 곡물을 먹이로 사용한다. 하지만 풀을 베어 보관해둘 수 없었던 당시에는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닥치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나머지 가축을 도살해 고기를 만들었다. 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저장성이 떨어지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고기로 버텨내야 했다. 그들은 고기의 부패를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향신료도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였다.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문제는 당시 후추가 워낙 고가의 사치품이어서 대다수 사람은 손에 넣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후추는 왜 그렇게 비쌌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희소성'과 '막대한 유통 비용' 탓이 컸다.
후추는 남인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로 중동의 아랍지역과 유럽에서는 재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상인들은 육로로 멀리 돌아 인도에서 후추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 먼 길을 돌아오다 보니 과정에 운송비가 폭등했다. 설상가상으로 운송 과정에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많아 무사히 유럽에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터라 가격이 더욱 치솟았다. 최종적으로 유럽에 도착한 후추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
“ 향신료를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
이슬람권에서는 온갖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이슬람 지역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난 기사와 병사들이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 뒤 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자신의 모국에 전한 것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해 후추 등 향신료를 열렬히 갈망하기 시작했다.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를 육로가 아닌 해로로 유럽에 들여올 수 있다면……?' 당대의 유럽 상인들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유럽에서 향신료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기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바닷길로 후추를 들여와 대박을 터뜨릴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유럽인의 후추 사랑은 여전히 이루어지기 힘든 짝사랑에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중세 유럽 선원들에게 바다란 주로 '지중해'를 의미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지중해 끄트머리에 있는 나라다. 그런 터라 이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활발히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흥미롭게도 두 나라가 지닌 이런 지정학적 약점과 한계가 장점으로 작용했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억지로 끼려고 애쓰는 대신 지중해 바깥의 넓은 바다로 진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먼 바다로의 무역'이 잘 풀리지 않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선단을 꾸려 내보내도 선장과 선원들은 겨우 아프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반복되는 항해에서 두 나라는 연거푸 손실만 입고 손에 쥘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는 '죽음의 곶'으로 알려진 보자도르(Bojador) 곶이 있다. '죽음의 곶'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그곳은 험난하고도 위험천만한 지형이었다. 이곳을 경험해본 선장과 선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어떤 사람도 어떤 배도 이 곶을 넘어설 수 없을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 곶은 당대의 유럽인들에게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었으며 실제로 그때까지 그곳을 넘어갔다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곶', '세상의 끝'으로 불리며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던 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을 넘어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항해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포르투갈의 엔히크가 그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81~8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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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
ifrain님의 문장 수집: " 향신료를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
이슬람권에서는 온갖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이슬람 지역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난 기사와 병사들이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 뒤 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자신의 모국에 전한 것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해 후추 등 향신료를 열렬히 갈망하기 시작했다.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를 육로가 아닌 해로로 유럽에 들여올 수 있다면……?' 당대의 유럽 상인들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유럽에서 향신료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기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바닷길로 후추를 들여와 대박을 터뜨릴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유럽인의 후추 사랑은 여전히 이루어지기 힘든 짝사랑에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중세 유럽 선원들에게 바다란 주로 '지중해'를 의미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지중해 끄트머리에 있는 나라다. 그런 터라 이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활발히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흥미롭게도 두 나라가 지닌 이런 지정학적 약점과 한계가 장점으로 작용했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억지로 끼려고 애쓰는 대신 지중해 바깥의 넓은 바다로 진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먼 바다로의 무역'이 잘 풀리지 않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선단을 꾸려 내보내도 선장과 선원들은 겨우 아프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반복되는 항해에서 두 나라는 연거푸 손실만 입고 손에 쥘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는 '죽음의 곶'으로 알려진 보자도르(Bojador) 곶이 있다. '죽음의 곶'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그곳은 험난하고도 위험천만한 지형이었다. 이곳을 경험해본 선장과 선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어떤 사람도 어떤 배도 이 곶을 넘어설 수 없을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 곶은 당대의 유럽인들에게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었으며 실제로 그때까지 그곳을 넘어갔다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곶', '세상의 끝'으로 불리며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던 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을 넘어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항해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포르투갈의 엔히크가 그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
“ 보자도르곶 너머에서는 상아와 사금 등 값비싼 교역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후추와 비슷한 맛을 내는 멜레구에타 고추(Melegueta Pepper: 'Aframomum Melegueta'라는 학명의 기니후추나무)가 있었다.
멜레구에타 고추는 생강과에 속하는 식물로 후추과에 속하는 후추와는 다른 종류지만 향신료로서 활용 가치는 충분했다. 그런 영향인지 훗날 사람들은 포르투갈인들이 멜레구에타 고추를 거래하던 장소를 '후추 해안(Pepper Coast)'이라고 불렀다.
엔히크 왕자는 새로운 향신료와 함께 건장한 체구의 흑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돌아왔다. 이렇게 대교역 시대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인류의 최대 암흑 역사 중 하나인 노예무역의 막이 올랐다.
마침내 포르투갈 국왕의 명을 받은 바르톨로메루 디아스(Bartolomeu Dias)의 선단이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에 도달했고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뱃길을 완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 무렵, 포르투갈로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인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1492년의 일이었다. 포르투갈의 동방항로 개척에 맞서 서방항로를 개척하는 콜럼버스를 대대적으로 지원한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콜럼버스가 당시 도착한 곳이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메리카 원주민은 뜻하지 않게 세계사에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는 불운을 겪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던 무렵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인디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결국 그 땅의 최초 발견자는 콜럼버스가 아니라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으며, 콜럼버스는 탐험자이자 침략자의 첨병에 지나지 않았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83~85,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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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
polus님의 대화: @ifrain 정선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인왕산.^^
조선시대에 비해서는 현재 인왕산이 풍화작용이 더 진행되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한결같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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