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2부

D-29
ifrain님의 대화: 물리적인 힘이 작용할 뿐만 아니라 화학작 풍화도 함께 일어나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일 흙도 물리적 과정과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화학적 풍화뿐 아니라, 뿌리와 균류, 묻힌 식물 잔해와 지렁이도 흙의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한다. 사실 흙 형성에 기여하는 주된 물리적 과정 - 화학적 풍화 - 도 지표면 속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유기산을 분비하는 뿌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육상 생태계가 발달할 때, 기름진 토양도 함께 발달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p.184~185,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ifrain님의 문장 수집: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일 흙도 물리적 과정과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화학적 풍화뿐 아니라, 뿌리와 균류, 묻힌 식물 잔해와 지렁이도 흙의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한다. 사실 흙 형성에 기여하는 주된 물리적 과정 - 화학적 풍화 - 도 지표면 속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유기산을 분비하는 뿌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육상 생태계가 발달할 때, 기름진 토양도 함께 발달했다. "
얼마 전 살펴본 소나무 뿌리가 화강암의 풍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지구의 짧은 역사>에도 나와 있네요. ^^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식물, 후추 후추가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 후추는 마트에서 고작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향신료다. 그런 터라 과거에 후추가 금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얘기하면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깟 후추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 귀한 대접을 받았겠느냐는 거다. 유럽 대륙의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는 주로 볏과 식물(Gramineous Plant)이 자라는 초원이 펼쳐지는데, 볏과 식물 줄기와 잎은 인간이 식량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이 딜레마적인 문제에 맞닥뜨려 어떻게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들이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대상은 '초식동물'이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돼지·양 등의 초식동물들은 풀을 먹고 자란다. 인간은 자신이 먹을 수 없는 볏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베어 초식동물에게 먹여 기르고 다 자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았다. 이런 배경에서 야생의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고 축산업이 시작되었다. 유럽인에게 가축을 키워 얻은 고기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 참고로 가축은 영어로 livestock인데, 이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재고'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이 오면 가축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풀에 젖산균을 넣어 발효과정을 거친 사일리지(Silage : 말리지 않고 저장해 수분 함량이 많은 목초류 - 옮긴이)와 보존성이 뛰어난 곡물을 먹이로 사용한다. 하지만 풀을 베어 보관해둘 수 없었던 당시에는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닥치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나머지 가축을 도살해 고기를 만들었다. 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저장성이 떨어지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고기로 버텨내야 했다. 그들은 고기의 부패를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향신료도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였다.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문제는 당시 후추가 워낙 고가의 사치품이어서 대다수 사람은 손에 넣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후추는 왜 그렇게 비쌌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희소성'과 '막대한 유통 비용' 탓이 컸다. 후추는 남인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로 중동의 아랍지역과 유럽에서는 재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상인들은 육로로 멀리 돌아 인도에서 후추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 먼 길을 돌아오다 보니 과정에 운송비가 폭등했다. 설상가상으로 운송 과정에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많아 무사히 유럽에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터라 가격이 더욱 치솟았다. 최종적으로 유럽에 도착한 후추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79~81,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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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식물, 후추 후추가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 후추는 마트에서 고작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향신료다. 그런 터라 과거에 후추가 금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얘기하면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깟 후추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 귀한 대접을 받았겠느냐는 거다. 유럽 대륙의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는 주로 볏과 식물(Gramineous Plant)이 자라는 초원이 펼쳐지는데, 볏과 식물 줄기와 잎은 인간이 식량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이 딜레마적인 문제에 맞닥뜨려 어떻게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들이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대상은 '초식동물'이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돼지·양 등의 초식동물들은 풀을 먹고 자란다. 인간은 자신이 먹을 수 없는 볏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베어 초식동물에게 먹여 기르고 다 자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았다. 이런 배경에서 야생의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고 축산업이 시작되었다. 유럽인에게 가축을 키워 얻은 고기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 참고로 가축은 영어로 livestock인데, 이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재고'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이 오면 가축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풀에 젖산균을 넣어 발효과정을 거친 사일리지(Silage : 말리지 않고 저장해 수분 함량이 많은 목초류 - 옮긴이)와 보존성이 뛰어난 곡물을 먹이로 사용한다. 하지만 풀을 베어 보관해둘 수 없었던 당시에는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닥치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나머지 가축을 도살해 고기를 만들었다. 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저장성이 떨어지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고기로 버텨내야 했다. 그들은 고기의 부패를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향신료도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였다.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문제는 당시 후추가 워낙 고가의 사치품이어서 대다수 사람은 손에 넣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다. 후추는 왜 그렇게 비쌌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희소성'과 '막대한 유통 비용' 탓이 컸다. 후추는 남인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로 중동의 아랍지역과 유럽에서는 재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상인들은 육로로 멀리 돌아 인도에서 후추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그 먼 길을 돌아오다 보니 과정에 운송비가 폭등했다. 설상가상으로 운송 과정에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많아 무사히 유럽에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터라 가격이 더욱 치솟았다. 최종적으로 유럽에 도착한 후추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
향신료를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 이슬람권에서는 온갖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이슬람 지역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난 기사와 병사들이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 뒤 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자신의 모국에 전한 것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해 후추 등 향신료를 열렬히 갈망하기 시작했다.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를 육로가 아닌 해로로 유럽에 들여올 수 있다면……?' 당대의 유럽 상인들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유럽에서 향신료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기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바닷길로 후추를 들여와 대박을 터뜨릴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유럽인의 후추 사랑은 여전히 이루어지기 힘든 짝사랑에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중세 유럽 선원들에게 바다란 주로 '지중해'를 의미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지중해 끄트머리에 있는 나라다. 그런 터라 이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활발히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흥미롭게도 두 나라가 지닌 이런 지정학적 약점과 한계가 장점으로 작용했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억지로 끼려고 애쓰는 대신 지중해 바깥의 넓은 바다로 진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먼 바다로의 무역'이 잘 풀리지 않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선단을 꾸려 내보내도 선장과 선원들은 겨우 아프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반복되는 항해에서 두 나라는 연거푸 손실만 입고 손에 쥘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는 '죽음의 곶'으로 알려진 보자도르(Bojador) 곶이 있다. '죽음의 곶'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그곳은 험난하고도 위험천만한 지형이었다. 이곳을 경험해본 선장과 선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어떤 사람도 어떤 배도 이 곶을 넘어설 수 없을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 곶은 당대의 유럽인들에게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었으며 실제로 그때까지 그곳을 넘어갔다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곶', '세상의 끝'으로 불리며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던 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을 넘어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항해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포르투갈의 엔히크가 그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81~8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ifrain님의 문장 수집: " 향신료를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 이슬람권에서는 온갖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이슬람 지역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난 기사와 병사들이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 뒤 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자신의 모국에 전한 것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해 후추 등 향신료를 열렬히 갈망하기 시작했다.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를 육로가 아닌 해로로 유럽에 들여올 수 있다면……?' 당대의 유럽 상인들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유럽에서 향신료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기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바닷길로 후추를 들여와 대박을 터뜨릴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유럽인의 후추 사랑은 여전히 이루어지기 힘든 짝사랑에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중세 유럽 선원들에게 바다란 주로 '지중해'를 의미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지중해 끄트머리에 있는 나라다. 그런 터라 이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활발히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흥미롭게도 두 나라가 지닌 이런 지정학적 약점과 한계가 장점으로 작용했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두 나라는 지중해 무역에 억지로 끼려고 애쓰는 대신 지중해 바깥의 넓은 바다로 진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먼 바다로의 무역'이 잘 풀리지 않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선단을 꾸려 내보내도 선장과 선원들은 겨우 아프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반복되는 항해에서 두 나라는 연거푸 손실만 입고 손에 쥘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는 '죽음의 곶'으로 알려진 보자도르(Bojador) 곶이 있다. '죽음의 곶'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그곳은 험난하고도 위험천만한 지형이었다. 이곳을 경험해본 선장과 선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어떤 사람도 어떤 배도 이 곶을 넘어설 수 없을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 곶은 당대의 유럽인들에게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었으며 실제로 그때까지 그곳을 넘어갔다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곶', '세상의 끝'으로 불리며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던 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을 넘어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항해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포르투갈의 엔히크가 그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
보자도르곶 너머에서는 상아와 사금 등 값비싼 교역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후추와 비슷한 맛을 내는 멜레구에타 고추(Melegueta Pepper: 'Aframomum Melegueta'라는 학명의 기니후추나무)가 있었다. 멜레구에타 고추는 생강과에 속하는 식물로 후추과에 속하는 후추와는 다른 종류지만 향신료로서 활용 가치는 충분했다. 그런 영향인지 훗날 사람들은 포르투갈인들이 멜레구에타 고추를 거래하던 장소를 '후추 해안(Pepper Coast)'이라고 불렀다. 엔히크 왕자는 새로운 향신료와 함께 건장한 체구의 흑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돌아왔다. 이렇게 대교역 시대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인류의 최대 암흑 역사 중 하나인 노예무역의 막이 올랐다. 마침내 포르투갈 국왕의 명을 받은 바르톨로메루 디아스(Bartolomeu Dias)의 선단이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에 도달했고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뱃길을 완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 무렵, 포르투갈로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인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1492년의 일이었다. 포르투갈의 동방항로 개척에 맞서 서방항로를 개척하는 콜럼버스를 대대적으로 지원한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콜럼버스가 당시 도착한 곳이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메리카 원주민은 뜻하지 않게 세계사에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는 불운을 겪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던 무렵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인디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결국 그 땅의 최초 발견자는 콜럼버스가 아니라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으며, 콜럼버스는 탐험자이자 침략자의 첨병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pp.83~85,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polus님의 대화: @ifrain 정선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인왕산.^^
조선시대에 비해서는 현재 인왕산이 풍화작용이 더 진행되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한결같다는 것일까요?
과학과 문학이 융합하다 카슨이 생계를 위해 시작한 전일제 정부 소속 과학자 일은 과학적 사고력과 글쓰기 측면에서의 문학적 감수성, 두 능력을 동시에 요구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선 일상적인 실험과 문헌 검토 등을 한꺼번에 해야 했다. 단지 경제적 문제로 시작한 직업이 결국 카슨의 창의성을 키웠던 셈이다.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쌓아 온 이력과 대학, 대학원 시절 관심을 기울인 부분까지 고려하면 평생을 통해 융합적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슨이 보여 준 감수성과 상상력의 융합 능력은 저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레이첼 카슨 평전』을 쓴 린다 리어(Linda Lear)는 카슨의 책 중에서도 특히 『침묵의 봄』과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문학적 명성을 떨쳤다고 했다. 그는 "『침묵의 봄』은 '창조적인 글쓰기'에 숱한 영감을 불어넣었다"라고 말했다. 카슨은 바다에서 최초로 탄생하는 세포, 즉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구의 탄생, 암석의 발견, 달의 탄생, 원시 바다의 출현, 대륙 및 해양의 지각변화를 통합적으로 설명했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제1부 어머니 바다의 '어둠에 싸인 시작'은 각종 과학적 데이터가 제시된 후 다음과 같이 문학적 감수성으로 끝을 맺는다. 잠깐 동안 지구에 머물면서 육지를 정복하고 약탈한 것처럼 바다를 제어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도시와 시골의 인공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종종 자기가 살고 있는 행성의 진정한 본질과 그 긴 역사(인류가 존재한 것은 그 속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에 대한 안목을 잊어버린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은 긴 대양 항해에 나서 날마다 파도가 넘실대는 수평선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밤에는 머리 위의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지구의 자전을 인식하고, 물과 바다만 존재하는 이 세계에 홀로 서서 우주에서 자기가 사는 행성의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육지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물의 세계이며, 대륙은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수면 위로 잠시 솟아 있는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42쪽. 이상과 같이 카슨의 창의적 영재성은 융합의 차원에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카슨은 원래 작가를 꿈꾸며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전공을 바꿔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융합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 줬다. 카슨은 바다의 역사, 지리, 생물학, 생태, 환경 등에 대해 문학성을 가미한 서정적인 필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특징은 그녀가 집필한 여러 작품 속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pp.8~9, 김재호 지음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20세기 후반 환경운동에 절대적 영향을 준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에 대한 짧지만 알찬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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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과학과 문학이 융합하다 카슨이 생계를 위해 시작한 전일제 정부 소속 과학자 일은 과학적 사고력과 글쓰기 측면에서의 문학적 감수성, 두 능력을 동시에 요구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선 일상적인 실험과 문헌 검토 등을 한꺼번에 해야 했다. 단지 경제적 문제로 시작한 직업이 결국 카슨의 창의성을 키웠던 셈이다.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쌓아 온 이력과 대학, 대학원 시절 관심을 기울인 부분까지 고려하면 평생을 통해 융합적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슨이 보여 준 감수성과 상상력의 융합 능력은 저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레이첼 카슨 평전』을 쓴 린다 리어(Linda Lear)는 카슨의 책 중에서도 특히 『침묵의 봄』과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문학적 명성을 떨쳤다고 했다. 그는 "『침묵의 봄』은 '창조적인 글쓰기'에 숱한 영감을 불어넣었다"라고 말했다. 카슨은 바다에서 최초로 탄생하는 세포, 즉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구의 탄생, 암석의 발견, 달의 탄생, 원시 바다의 출현, 대륙 및 해양의 지각변화를 통합적으로 설명했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제1부 어머니 바다의 '어둠에 싸인 시작'은 각종 과학적 데이터가 제시된 후 다음과 같이 문학적 감수성으로 끝을 맺는다. 잠깐 동안 지구에 머물면서 육지를 정복하고 약탈한 것처럼 바다를 제어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도시와 시골의 인공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종종 자기가 살고 있는 행성의 진정한 본질과 그 긴 역사(인류가 존재한 것은 그 속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에 대한 안목을 잊어버린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은 긴 대양 항해에 나서 날마다 파도가 넘실대는 수평선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밤에는 머리 위의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지구의 자전을 인식하고, 물과 바다만 존재하는 이 세계에 홀로 서서 우주에서 자기가 사는 행성의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육지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물의 세계이며, 대륙은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수면 위로 잠시 솟아 있는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42쪽. 이상과 같이 카슨의 창의적 영재성은 융합의 차원에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카슨은 원래 작가를 꿈꾸며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전공을 바꿔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융합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 줬다. 카슨은 바다의 역사, 지리, 생물학, 생태, 환경 등에 대해 문학성을 가미한 서정적인 필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특징은 그녀가 집필한 여러 작품 속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
문학 작품을 인용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실제로 카슨은 어렸을 때부터 방대한 문학 작품을 탐독했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선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큰 소용돌이에 빨려들어서(A Descent into a Maelstorm)』(1841)를 소개한다. 이 작품에 나타난 조수 관련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맞는 사실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작품 속 노인은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서 섬들 사이로 지나가는 그 아래의 좁은 수로를 친구들에게 보여 준다. 그곳의 물은 거품과 찌꺼기가 들끓어 출렁이고 갑자기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좁은 수소를 빠르게 지난다. 포가 이야기한 모스켄의 큰 소용돌이는 실제로 노르웨이 서해안 앞바다에 있는 로포텐 제도의 두 섬 사이에 있다고 카슨은 밝혔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마지막 장에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내용이 등장한다. 해양 전문서인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문학 작품인 『오디세이아』로 바다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모든 것은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강처럼 결국에는 바다, 즉 대양의 강인 오케아노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로 끝난다. 오케아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 추천의 글을 쓴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녀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새가 일년을 날아도 다 갈 수 없는 바다, 그것은 너무나도 광활하고 두렵도다"라는 호메로스의 말로 장식을 합니다. 자연과학적인 내용의 건조함이 그녀의 섬세한 감성으로 문학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자연과학 책이지만 자연과학 책 같지 않은 읽는 재미를 솔솔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를 둘러싼 바다』, 10쪽.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pp.10~11, 김재호 지음
ifrain님의 문장 수집: " 문학 작품을 인용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실제로 카슨은 어렸을 때부터 방대한 문학 작품을 탐독했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선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큰 소용돌이에 빨려들어서(A Descent into a Maelstorm)』(1841)를 소개한다. 이 작품에 나타난 조수 관련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맞는 사실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작품 속 노인은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서 섬들 사이로 지나가는 그 아래의 좁은 수로를 친구들에게 보여 준다. 그곳의 물은 거품과 찌꺼기가 들끓어 출렁이고 갑자기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좁은 수소를 빠르게 지난다. 포가 이야기한 모스켄의 큰 소용돌이는 실제로 노르웨이 서해안 앞바다에 있는 로포텐 제도의 두 섬 사이에 있다고 카슨은 밝혔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마지막 장에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내용이 등장한다. 해양 전문서인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문학 작품인 『오디세이아』로 바다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모든 것은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강처럼 결국에는 바다, 즉 대양의 강인 오케아노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로 끝난다. 오케아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 추천의 글을 쓴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녀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새가 일년을 날아도 다 갈 수 없는 바다, 그것은 너무나도 광활하고 두렵도다"라는 호메로스의 말로 장식을 합니다. 자연과학적인 내용의 건조함이 그녀의 섬세한 감성으로 문학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자연과학 책이지만 자연과학 책 같지 않은 읽는 재미를 솔솔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를 둘러싼 바다』, 10쪽."
아울러 박물관 기고가인 앤 즈윙거(Ann H. Zwinger)는 『우리를 둘러싼 바다』1961년 개정판 소개 글에서 카슨의 이 작품에 대해 "학문적으로 쓴 책이면서도 자연계에 대한 찬가이자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서술된 책은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면서 "지금도 그러한 책은 거의 없다"라고 칭찬했다. 책의 장점은 문장의 매력과 기법, 박학한 지식과 풍부한 사실의 조직, 개인적인 전제라고 즈윙거는 밝혔다. 특히 『침묵의 봄』에선 그리스 신화가 인용되고 시적 수사학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문학적 감수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는 어른들에게 읽어 주는 동화처럼 쓰였다. 마치 추리소설의 서막을 알리듯, 새의 노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마을을 묘사했다. 마지막 장 '가지 않은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이다. 카슨은 이 장을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두 갈래 길과는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로 시작한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카슨 조카의 아들인 로저 크리스트와 함께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느낀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로저와 함께한 시간, 가장 친한 친구 도로시 프리맨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인문학적 감수성이 듬뿍 배어 한 권의 동화처럼 읽힌다. 카슨은 "달빛 아래 물은 잔잔한 은빛으로 타올랐고, 해안의 바위는 수많은 다이아몬드 바로 그것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차라리 형형색색의 돌비늘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카슨은 자칫 딱딱하기 쉬운 과학적 내용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융합해 풀어냈다. 그럼 과연 융합이란 무엇일까? 작가가 되고자 했던 카슨이 생물학을 전공해 이루어 낸 성과는 어떤 차원에서 펼쳐진 것일까?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은 단순히 종합하는 차원이 아니라 함께 도약하는 차원으로 승화한다. 즉, 카슨이 보여 준 융합이란 통섭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대중적 용어가 된 통섭(consilience)의 어원은 라틴어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돼 함께(con) 뛰어넘는(salire)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엔 진화심리학, 천문생물학, 바이오물리학, 해양생물학, 지구물리학, 인지심리학, 금융수학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융합의 전형을 보여 준 학자들은 많다. 애초에 학문의 체계가 세워질 때는 분명 종합의 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래 생물학자였는데 윤리학, 정치학, 예술철학 등을 정립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철학적 훈련을 통해 불확정성의 원리를 연구했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들 알다시피 예술가이자 의사, 발명가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근본원리를 내세운 데카르트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20세기 분석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과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한 그는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러셀은 카슨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핵무장 반대 운동을 펼쳤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을 통해 특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에 대한 역사적인 논문을 썼다. 아인슈타인은 칸트, 흄, 밀, 스피노자 등을 탐독했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pp.11~13, 김재호 지음
ifrain님의 문장 수집: " 아울러 박물관 기고가인 앤 즈윙거(Ann H. Zwinger)는 『우리를 둘러싼 바다』1961년 개정판 소개 글에서 카슨의 이 작품에 대해 "학문적으로 쓴 책이면서도 자연계에 대한 찬가이자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서술된 책은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면서 "지금도 그러한 책은 거의 없다"라고 칭찬했다. 책의 장점은 문장의 매력과 기법, 박학한 지식과 풍부한 사실의 조직, 개인적인 전제라고 즈윙거는 밝혔다. 특히 『침묵의 봄』에선 그리스 신화가 인용되고 시적 수사학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문학적 감수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는 어른들에게 읽어 주는 동화처럼 쓰였다. 마치 추리소설의 서막을 알리듯, 새의 노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마을을 묘사했다. 마지막 장 '가지 않은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이다. 카슨은 이 장을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두 갈래 길과는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로 시작한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카슨 조카의 아들인 로저 크리스트와 함께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느낀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로저와 함께한 시간, 가장 친한 친구 도로시 프리맨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인문학적 감수성이 듬뿍 배어 한 권의 동화처럼 읽힌다. 카슨은 "달빛 아래 물은 잔잔한 은빛으로 타올랐고, 해안의 바위는 수많은 다이아몬드 바로 그것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차라리 형형색색의 돌비늘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카슨은 자칫 딱딱하기 쉬운 과학적 내용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융합해 풀어냈다. 그럼 과연 융합이란 무엇일까? 작가가 되고자 했던 카슨이 생물학을 전공해 이루어 낸 성과는 어떤 차원에서 펼쳐진 것일까?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은 단순히 종합하는 차원이 아니라 함께 도약하는 차원으로 승화한다. 즉, 카슨이 보여 준 융합이란 통섭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대중적 용어가 된 통섭(consilience)의 어원은 라틴어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돼 함께(con) 뛰어넘는(salire)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엔 진화심리학, 천문생물학, 바이오물리학, 해양생물학, 지구물리학, 인지심리학, 금융수학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융합의 전형을 보여 준 학자들은 많다. 애초에 학문의 체계가 세워질 때는 분명 종합의 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래 생물학자였는데 윤리학, 정치학, 예술철학 등을 정립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철학적 훈련을 통해 불확정성의 원리를 연구했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들 알다시피 예술가이자 의사, 발명가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근본원리를 내세운 데카르트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20세기 분석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과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한 그는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러셀은 카슨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핵무장 반대 운동을 펼쳤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을 통해 특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에 대한 역사적인 논문을 썼다. 아인슈타인은 칸트, 흄, 밀, 스피노자 등을 탐독했다. "
환경 시사문제 전문 연구가인 알렉스 맥길리브레이는 『침묵의 봄』에 대해 과학과 문학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해 탄생한 일종의 하이브리드(장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침묵의 봄』은 창의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침묵의 봄』은 생태학이란 말을 일상적인 용어로, 살충제란 말을 나쁜 단어로 자리잡게 만든 녹색 선언"이라며 "흰머리독수리가 멸종 직전 단계에서 되살아난 것은 생태학에 미친 이 책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카슨은 창의적 산물에 사회적 가치관을 더하고 실천함으로써 지금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향의 산 읽기』의 저자 존 앨더는 "과학적 정밀성과 서정적 문학성을 융합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레이첼 카슨은 생태학의 원리와 그 윤리적, 미적, 영적 함축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라고 했다. 정밀성과 감수성의 양 날개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셈이다. 잡종은 과학적 창의성을 낳는다. 독일의 생리학자 카를 페닝거(Karl Pfenninger)는 서로 다른 형태로 수용된 각각의 데이터가 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국문학자와 천문학자는 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카슨은 바다를 포함한 드넓은 자연을 바라볼 때 단순히 탐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무늬(인문학)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반면 과학의 영역과 문학적 감수성의 혼융이 카슨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겐 흠집 내기용 꼬투리였다. 과학이라는 논리가 문학이라는 감성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식이다. 이는 『침묵의 봄』에 대한 논란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객관적 엄밀성에 충실한 『침묵의 봄』은 그런 언쟁에 끼일 필요조차 없다는 걸 수많은 논쟁의 결과가 증명했다. 홍성욱 교수는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학생 혹은 젊은 시절에 다른 학풍을 접함으로써 나타난다. 둘째, 한 전공 분야에서 다른 전공 분야로 옮김으로써 가능하다. 셋째, 지역의 이주 혹은 지역의 중첩을 통해 드러난다. 넷째, 서로 다른 분야 간 전공자의 공동연구로 발현된다. 다섯째는 학제 간 연구다. 카슨의 경우엔 전공을 바꿨다는 점,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했던 경험으로 문학적 감수성을 길렀다는 점이 특수하다. 카슨이 보여 준 창의적 성과물들은 인문학적 측면과 과학 기술의 여러 분야가 단순히 복합하거나 결합하는 차원이 아닌 융합을 거쳐 통섭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카슨의 성과를 굳이 명명해 보자면 '생태문예환경학(『침묵의 봄』)' 혹은 '생태문예해양학(『우리를 둘러싼 바다』)' 정도가 될 것이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pp.13~15, 김재호 지음
ifrain님의 문장 수집: " 아울러 박물관 기고가인 앤 즈윙거(Ann H. Zwinger)는 『우리를 둘러싼 바다』1961년 개정판 소개 글에서 카슨의 이 작품에 대해 "학문적으로 쓴 책이면서도 자연계에 대한 찬가이자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서술된 책은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면서 "지금도 그러한 책은 거의 없다"라고 칭찬했다. 책의 장점은 문장의 매력과 기법, 박학한 지식과 풍부한 사실의 조직, 개인적인 전제라고 즈윙거는 밝혔다. 특히 『침묵의 봄』에선 그리스 신화가 인용되고 시적 수사학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문학적 감수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는 어른들에게 읽어 주는 동화처럼 쓰였다. 마치 추리소설의 서막을 알리듯, 새의 노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마을을 묘사했다. 마지막 장 '가지 않은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이다. 카슨은 이 장을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두 갈래 길과는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로 시작한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카슨 조카의 아들인 로저 크리스트와 함께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느낀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로저와 함께한 시간, 가장 친한 친구 도로시 프리맨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인문학적 감수성이 듬뿍 배어 한 권의 동화처럼 읽힌다. 카슨은 "달빛 아래 물은 잔잔한 은빛으로 타올랐고, 해안의 바위는 수많은 다이아몬드 바로 그것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차라리 형형색색의 돌비늘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카슨은 자칫 딱딱하기 쉬운 과학적 내용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융합해 풀어냈다. 그럼 과연 융합이란 무엇일까? 작가가 되고자 했던 카슨이 생물학을 전공해 이루어 낸 성과는 어떤 차원에서 펼쳐진 것일까?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은 단순히 종합하는 차원이 아니라 함께 도약하는 차원으로 승화한다. 즉, 카슨이 보여 준 융합이란 통섭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대중적 용어가 된 통섭(consilience)의 어원은 라틴어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돼 함께(con) 뛰어넘는(salire)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엔 진화심리학, 천문생물학, 바이오물리학, 해양생물학, 지구물리학, 인지심리학, 금융수학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융합의 전형을 보여 준 학자들은 많다. 애초에 학문의 체계가 세워질 때는 분명 종합의 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래 생물학자였는데 윤리학, 정치학, 예술철학 등을 정립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철학적 훈련을 통해 불확정성의 원리를 연구했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들 알다시피 예술가이자 의사, 발명가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근본원리를 내세운 데카르트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20세기 분석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과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한 그는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러셀은 카슨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핵무장 반대 운동을 펼쳤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을 통해 특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에 대한 역사적인 논문을 썼다. 아인슈타인은 칸트, 흄, 밀, 스피노자 등을 탐독했다. "
"이제는 대중적 용어가 된 통섭(consilience)의 어원은 라틴어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돼 함께(con) 뛰어넘는(salire)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엔 진화심리학, 천문생물학, 바이오물리학, 해양생물학, 지구물리학, 인지심리학, 금융수학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ifrain님의 문장 수집: " 환경 시사문제 전문 연구가인 알렉스 맥길리브레이는 『침묵의 봄』에 대해 과학과 문학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해 탄생한 일종의 하이브리드(장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침묵의 봄』은 창의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침묵의 봄』은 생태학이란 말을 일상적인 용어로, 살충제란 말을 나쁜 단어로 자리잡게 만든 녹색 선언"이라며 "흰머리독수리가 멸종 직전 단계에서 되살아난 것은 생태학에 미친 이 책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카슨은 창의적 산물에 사회적 가치관을 더하고 실천함으로써 지금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향의 산 읽기』의 저자 존 앨더는 "과학적 정밀성과 서정적 문학성을 융합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레이첼 카슨은 생태학의 원리와 그 윤리적, 미적, 영적 함축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라고 했다. 정밀성과 감수성의 양 날개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셈이다. 잡종은 과학적 창의성을 낳는다. 독일의 생리학자 카를 페닝거(Karl Pfenninger)는 서로 다른 형태로 수용된 각각의 데이터가 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국문학자와 천문학자는 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카슨은 바다를 포함한 드넓은 자연을 바라볼 때 단순히 탐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무늬(인문학)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반면 과학의 영역과 문학적 감수성의 혼융이 카슨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겐 흠집 내기용 꼬투리였다. 과학이라는 논리가 문학이라는 감성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식이다. 이는 『침묵의 봄』에 대한 논란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객관적 엄밀성에 충실한 『침묵의 봄』은 그런 언쟁에 끼일 필요조차 없다는 걸 수많은 논쟁의 결과가 증명했다. 홍성욱 교수는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학생 혹은 젊은 시절에 다른 학풍을 접함으로써 나타난다. 둘째, 한 전공 분야에서 다른 전공 분야로 옮김으로써 가능하다. 셋째, 지역의 이주 혹은 지역의 중첩을 통해 드러난다. 넷째, 서로 다른 분야 간 전공자의 공동연구로 발현된다. 다섯째는 학제 간 연구다. 카슨의 경우엔 전공을 바꿨다는 점,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했던 경험으로 문학적 감수성을 길렀다는 점이 특수하다. 카슨이 보여 준 창의적 성과물들은 인문학적 측면과 과학 기술의 여러 분야가 단순히 복합하거나 결합하는 차원이 아닌 융합을 거쳐 통섭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카슨의 성과를 굳이 명명해 보자면 '생태문예환경학(『침묵의 봄』)' 혹은 '생태문예해양학(『우리를 둘러싼 바다』)' 정도가 될 것이다. "
"서로 다른 형태로 수용된 각각의 데이터가 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ifrain님의 대화: "이제는 대중적 용어가 된 통섭(consilience)의 어원은 라틴어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돼 함께(con) 뛰어넘는(salire)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엔 진화심리학, 천문생물학, 바이오물리학, 해양생물학, 지구물리학, 인지심리학, 금융수학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기압이 기체 분자의 운동 결과임을 알고 감명받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원소의 화학적 성질이 가장 바깥 전자껍질에 있는 전자에 달려 있음을 배우고 놀랐어요. 이상기체 방정식과 운동에너지 공식이, 물리학과 화학이 연결되는 순간, 신기하기도 했고, 숨어 있던 깊은 질서의 존재를 깨닫는 듯해 잠시 숙연해지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문화사 분야에서 역작들을 써낸 논픽션 작가 피터 왓슨은 그런 발견들이 19세기 중반부터 과학사에서 빈번히 일어났으며,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역설합니다. 물리학이 화학과 거의 합쳐졌고, 화학과 생물학이 만나 분자생물학을 낳았습니다. 이제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이 한데 어우러지고 고고학, 유전학, 언어학이 협력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 분야의 연구가 다른 분야 연구의 도움을 받고, 여러 학문의 연구 대상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큰 그림이 드러나는 지적 사건들에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까요. 왓슨은 에드워드 윌슨이 사용한 '통섭consilience' 대신 '집합, 수렴'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용어를 택했습니다. .... 그래서, 종국에는 모든 학문이 하나로 합쳐질까요? 철학, 예술, 윤리를 과학이 설명하는 날이 올까요? 물리학과 수학이 통합된다면, 우주가 곧 수학이라는 의미일까요? 우리가 아는 모든 현상과 이론 뒤에는, 언뜻 무한해 보이는 다양성을 낳은 심오한 질서가 숨어 있고, 우리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일까요? 그 원리가 '궁극의 진리'일까요? 아니면 이게 다 최근 과학의 성과에 놀란 학자들이 벌이는 호들갑일까요?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 있는 지적인 독자라면 분명히 빠져들 책입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pp.345~346, 장강명 지음
ifrain님의 대화: 조선시대에 비해서는 현재 인왕산이 풍화작용이 더 진행되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한결같다는 것일까요?
@ifrain 전혀 변하지 않고 완전 똑같아야 한결 같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오랫만에 만난 사람에게 한결 같다고 할 때 완전 똑같아야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풍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기에 사실상 큰 차이도 없구요. 제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은 무엇보다 정선의 인왕재색도가 주는 느낌을 현재의 인왕산에서도 느낄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polus님의 대화: @ifrain 전혀 변하지 않고 완전 똑같아야 한결 같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오랫만에 만난 사람에게 한결 같다고 할 때 완전 똑같아야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풍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기에 사실상 큰 차이도 없구요. 제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은 무엇보다 정선의 인왕재색도가 주는 느낌을 현재의 인왕산에서도 느낄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풍화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말씀했는데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시기가 275년 전 이에요.. 그 정도 시간이면 풍화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궁금한 건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기차바위의 절리가 정선의 인왕제색도보다 더 진행된 것은 아닌지 였는데요. 정선은 기차바위의 동쪽 측면을 그렸고 제가 찍은 사진은 서쪽 측면이라서 비교하기에 적절하지는 않기는 합니다. 그래도 정선은 기차바위를 꽤 둥그스름한 한 덩어리로 그렸거든요. 확실히 인왕제색도가 주는 인왕산의 느낌과 현재의 인왕산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향팔님의 대화: 악산을 말씀하시니 서울사람으로서 친숙한 관악산 생각이 나네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관악산 아래 있어요.) 관악산은 정상까지 잘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그러나 역시 지리산 같은 성지는 저처럼 운동과는 담쌓고 살던 인간이 함부로 넘볼 곳이 아니었나 봅니다.
참, 어제 아침에 <다큐 3일> 재방송을 봤는데, 얼마 전 SNS에 관악산 세 번 오르고 소원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관악산 오르기 붐이 생겼다네요. 거기 가면 깍아지른 절벽에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그곳 불상에 절하고 바로 옆 절벽에 무슨 자국이 있는데 거기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나 봐요. 뭐 소원을 비는 건 좋은데 거길 오르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취직이나 이직 또는 수능 같은 시험이 잘 통과되기를 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로 20대에서 40대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근데 거기 취재 당한 어느 여자 분이 굉장히 웃겼어요. 그 산에서 모르는 사람인데 대화를 하다보니 마침 자신과 같은 소원을 빌었다는 걸 알았대요. 그러면서 순간 속으로 '엇, 소원이 이 사람만 이루어지고 나는 안 이루어지면 어쩌지?' 했다는 거예요. 소원도 커트 라인이 있지 않나해서. 모를 땐 다들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다 그것이 우연히 자신과 같은 거면 그런 마음 들 수 있잖아요. 씁쓸할 수도 있지만 솔직함이 느껴져서 오히려 저는 웃겨서 한참 웃었습니다. ㅎㅎ 어떤 사람들은 회사가 망해서 하루아침에 실직을 당했는데 처지가 같아서 그런지 오히려 밝게 웃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지만 좋아 보이기도 하더군요. 아직 젊으니까. 그거 보는데 관악산 밑 학교를 나오셨다던 향팔님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생각있으면 올라 보시길요. ㅋㅋ 뭐 죽을 힘 있으면 살라고, 관악산 세 번 오를 힘 있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그죠? ㅎㅎ
stella15님의 대화: 참, 어제 아침에 <다큐 3일> 재방송을 봤는데, 얼마 전 SNS에 관악산 세 번 오르고 소원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관악산 오르기 붐이 생겼다네요. 거기 가면 깍아지른 절벽에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그곳 불상에 절하고 바로 옆 절벽에 무슨 자국이 있는데 거기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나 봐요. 뭐 소원을 비는 건 좋은데 거길 오르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취직이나 이직 또는 수능 같은 시험이 잘 통과되기를 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로 20대에서 40대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근데 거기 취재 당한 어느 여자 분이 굉장히 웃겼어요. 그 산에서 모르는 사람인데 대화를 하다보니 마침 자신과 같은 소원을 빌었다는 걸 알았대요. 그러면서 순간 속으로 '엇, 소원이 이 사람만 이루어지고 나는 안 이루어지면 어쩌지?' 했다는 거예요. 소원도 커트 라인이 있지 않나해서. 모를 땐 다들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다 그것이 우연히 자신과 같은 거면 그런 마음 들 수 있잖아요. 씁쓸할 수도 있지만 솔직함이 느껴져서 오히려 저는 웃겨서 한참 웃었습니다. ㅎㅎ 어떤 사람들은 회사가 망해서 하루아침에 실직을 당했는데 처지가 같아서 그런지 오히려 밝게 웃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지만 좋아 보이기도 하더군요. 아직 젊으니까. 그거 보는데 관악산 밑 학교를 나오셨다던 향팔님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생각있으면 올라 보시길요. ㅋㅋ 뭐 죽을 힘 있으면 살라고, 관악산 세 번 오를 힘 있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그죠? ㅎㅎ
관악산이 생각보다 힘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리가 후들거리는 무서운 지점이 있어요. 갑자기 젊은이들이 관악산으로 몰린다는 기사를 저도 봤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런 미신을 믿는다니 안타깝다가도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애틋함이 생기더라고요.
ifrain님의 대화: 풍화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말씀했는데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시기가 275년 전 이에요.. 그 정도 시간이면 풍화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궁금한 건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기차바위의 절리가 정선의 인왕제색도보다 더 진행된 것은 아닌지 였는데요. 정선은 기차바위의 동쪽 측면을 그렸고 제가 찍은 사진은 서쪽 측면이라서 비교하기에 적절하지는 않기는 합니다. 그래도 정선은 기차바위를 꽤 둥그스름한 한 덩어리로 그렸거든요. 확실히 인왕제색도가 주는 인왕산의 느낌과 현재의 인왕산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선 하니까 생각납니다. 2024년 겨울에 철원 삼부연폭포에 다녀왔습니다. 전 진경산수화가 사진처럼 풍경을 똑같이 그린 그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실이 사진이라면 진실이 진경산수화와 매치되는 개념이었습니다. 정선이 그린 삼부연폭포는 실제 폭포와 유사하면서도 화가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다릅니다. 사진은 정선의 그림과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인왕제색도 역시 미묘하게 실제 인왕산과 다르더라고요.
밥심님의 대화: 관악산이 생각보다 힘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리가 후들거리는 무서운 지점이 있어요. 갑자기 젊은이들이 관악산으로 몰린다는 기사를 저도 봤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런 미신을 믿는다니 안타깝다가도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애틋함이 생기더라고요.
에이, 안타까울 정도까지야. 그런 것을 통해 뭔가 심신을 단련하는 의미가 더 크겠죠. 뭐라도 해 보겠다는 자세가 전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비관하거나 점이나 사주 본다고 하고, 영끌한다는 주식 투자 보다야 낫지 않나 싶습니다. 더구나 <다큐 3일>은 공영방송에서 하는 건데요. 하하
ifrain님의 대화: 풍화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말씀했는데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시기가 275년 전 이에요.. 그 정도 시간이면 풍화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궁금한 건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기차바위의 절리가 정선의 인왕제색도보다 더 진행된 것은 아닌지 였는데요. 정선은 기차바위의 동쪽 측면을 그렸고 제가 찍은 사진은 서쪽 측면이라서 비교하기에 적절하지는 않기는 합니다. 그래도 정선은 기차바위를 꽤 둥그스름한 한 덩어리로 그렸거든요. 확실히 인왕제색도가 주는 인왕산의 느낌과 현재의 인왕산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기차바위를 쓴다는 것이 치마바위로 잘못 썼네요. 위 댓글 내용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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