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눈으로 보도록 만들어져 있다거나 눈이 세계에 볼 것이 아주 많다는 데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물이라는 말에는 굳이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시각의 필연성을 그다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세계는 그것을 묘사하는 데 쓸 수 있는 다른 신호들로 가득하다. 가령 미묘하고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화학신호들인 냄새와 시각만큼, 아니 그보다 더 형태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촉각이 있다. 촉각은 착시효과를 낳는 그림이나 위장에 현혹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눈이 아예 발달하지 않은 세계를 말이다. 그 세계에서는 다른 감각들이 주변세계를 파악하는 일을 대신 떠맡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접촉의 세계, 더듬이의 세계, 포옹이 한번 흘깃 보는 행위를 대신하고도 남는 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금방 사라지는 분자를 가장 잘 포착하도록 조율된 기관들이 선택되는 쪽으로 진화 과정이 진행될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나방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담긴 아주 미량의 페로몬을 감지하여 이성을 찾아 몇 킬로미터에 걸친 사랑의 비행에 나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지 못하는 세계에서는 그런 자극에 대한 감수성이 선택되고 더 다듬어질 것이다. 그곳은 우리의 거친 감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민감한 세계일 것이다. ”
『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p.107,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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