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과학적 상상력에서 기인한 판타지의 영역에서 벗어나 지구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을 분자적 증거를 들어 뒷받침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비록 새로운 진술이 산소가 유독하다는 사실에 어긋나고 때로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해도,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설득력이 있다.
증거를 고찰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 묻기 전에, 우선 새로 등장할 그림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앞서 요약했던 이야기는 대부분 뒤집혔다.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생물은 원시 수프에서 합체한 것이 아니다. 대양의 중앙해령 깊은 곳에는 유황 성분이 풍부하고 검으며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구멍이 있다. 흔히 연기 열수공black smoker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생명이 시작된 장소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고 할 때 이 조상 생물이 다른 종류로 나뉘기 직전의 단계를 가리켜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조상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LUCA)이라고 한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같겠지만, 이 공통조상은 호흡하는 데에 극소량의 산소를 사용했다. 후손들이 광합성을 시작하기도 전에(그러니까 적어도 산소를 생성하기 전에) 말이다. 최초의 세포들은 발효를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간 게 아니라 질산염이나 아질산염, 황산염, 아황산염, 산소 같은 여러 무기질 원소와 화합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했다고 추정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조상은 공기 중에 자유 산소가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산소의 유독성에 대한 저항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아마 시아노박테리아 같은 후손들도 그 비슷하게 자기들이 내놓은 노폐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을 것이고, 따라서 산소 대학살에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p.41~42,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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