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ain님의 문장 수집: " 맨들 대류 세포 위의 암석권 판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중앙 해령에서 위로 밀어올리는 힘일까, 아니면 섭입대에서 맨틀보다 더 밀도가 높은 해양 지각이 가라앉는 힘일까? 이 두 이론은 각각 "해령 밀침(ridge push)"과 "판 당김(slab pull)"으로 불린다. 어느 쪽이든 간에 결과는 같다. 중앙 해령은 해저 위로 솟아오르며, 그곳에서 대류 세포가 솟아오르는 지점의 열 흐름이 가장 크다. 지각판들은 해령에서 해구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일까? 아니면 섭입되는 "차가운" 지각,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깊이 가라앉는 지각이 식탁보를 한쪽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지각판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직관적으로 볼 때 전자일 듯 하다. 이유는 땅이 자력으로 스스로를 들어 올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즉 중앙 해령에서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는 현상이 격렬한 자발적인 활동인 양 보이기 때문이다. 단층대를 따라 난 이글거리는 균열은 대단히 격렬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사실 해령에서 일어나는 화산 폭발은 아주 온화하다. 어찌 보면 인접한 지각판들이 서로 멀어질 때 생긴 공간으로 그냥 새 지각이 스며드는 듯하다. 게다가 지각판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비교해보면, 지각판이 접하고 있는 해구의 길이와 속도가 관련이 있는 듯하다. * 즉 섭입이 일어나는 가장자리가 더 길수록 지각판의 이동도 더 빨라진다. 이것은 판 당김이 해령 밀침보다 더 중요하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즉 가라앉는 지각판들이 땅을 움직이는 엔진이 되는 것이다. "
“ 세계관
그가 주인보다 더 잘 안다는 말을 제 입으로 내뱉지 못하도록 하다. 그는 햇빛 속에서 촛불을 들고 있을 뿐이니까.
-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혼인(Marriage of Heaven and Hell)>
지구의 얼굴이 놀라운 점은 대단히 뒤죽박죽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각기 다른 암석들로 이루어진 극도로 복잡한 조각 그림 맞추기 퍼즐이다. 길버트와 설리번의 "방랑하는 가수"에 나오듯이, 그것은 "누더기"이다. 역사는 35억 년 넘게 그것을 기워왔다. 지구의 얼굴은 바다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할 때마다 갈라졌다가 합쳐지면서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져왔다. 대륙들이 얕은 바다에 잠겼다가 물이 빠져 드러날 때면, 그 사이에 만들어진 사암이나 석회암, 셰일이나 자갈은 그대로 남았다. 페인티드 사막은 오래 전에 물든 곳이다. 어느 곳에서든 침식은 한때 지각 깊은 곳에 놓여 있던 구워진 암석들을 파낸다. 가지각색의 세계는 지질학적 광대옷을 입고 있다. 기반암을 기후를 매개로 하여 경관의 형태, 식생,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의 종류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철과 유리가 널리 쓰이기 전에 도시를 짓는 데에 사용된 돌과 벽돌의 종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모두 지질학적 경관에서 자라났으며, 아마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것과 연관을 맺고 있을 것이다. 인류는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러시아인들은 탁 트인 스텝 지대의 소나무를 사랑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끝없이 이어진 내륙을 사랑하며, 양치기들은 양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언덕들을 사랑하고, 슈롭셔의 젊은이들은 푸른 언덕을 사랑한다. 우리 대다수는 이런 내밀한 방식으로 세상을, 암석들과 기타 모든 것을 인식한다. 우리의 누더기는 우리의 고향이다. 하지만 자기 양들이 기어오르는 언덕의 지층에 관심을 기울이는 양치기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땅속에 있는 암석들이 자신들의 삶을 궁극적으로 통제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다른 암석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삶들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가족의 비극에 더 애통해하듯이, 국지적인 경관에 더 애정 어린 반응을 보인다. 비록 우리는 인정하기를 주저하지만, 사회의 더 폭넓은 현안들에는 그런 식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지질은 가장 내밀한 방식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 pp.501~502,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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