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2부

D-29
도마뱀 이야기 지난 회에는 지지난 회에 이어 개미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에는 도마뱀 이야기. 우리 집은 비교적(아니, 꽤) 시골에 있어서 사방에 도마뱀이 우글거린다. 도마뱀이란 외견상으로는 그다지 인간의 사랑을 못받는 동물이지만 사실 사람에게 이렇다 할 해를 끼치지도 않고 벌레도 잡아먹어주는데다 가만히 보면 좀 수줍어하는 구석도 있어서, 결코 성격이 나쁜 동물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두 마리는 하여튼 도마뱀 골려먹기를 세 끼 밥보다 좋아해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으면 도마뱀을 마구 흔들어대며 장난을 친다. 도마뱀 쪽은 그게 좋을 리가 없으니 곧바로 꼬리를 끊고 달아난다. 자연계란 참으로 미스터리한 것이다. 고양이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도마뱀의 몸뚱이를 좇지 않고 잘린 꼬리 쪽에 집착한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는 잘려나와 파들파들 움직이는 꼬리에 대한 매력을 절대로 거역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도마뱀은 계속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도 도마뱀이 위대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과학잡지를 읽어보니 도마뱀도 도마뱀 나름대로 고통스럽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꼬리를 잃은 도마뱀은 동료들 사이에서 꽤나 학대를 받는 모양이다. 꼬리가 없는 도마뱀은 꼬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며, 자기 영역의 절반 정도를 빼앗기고 암컷에게도 천대를 받는 등, 꼬리가 다시 제 모습대로 자랄 때까지 암울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도마뱀은 정말 가엾은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꼬리가 없으면 동료들로부터 학대받을 걸 알면서도 꼬리를 끊고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야만 하는 애처로운 천성은, 도마뱀이나 인간이라는 장르를 넘어 처연하다. 이제부터는 도마뱀 꼬리를 잡아당기는 짓궂은 장난은 그만두고 좀더 따스한 눈길로 지켜보리라.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pp.137~13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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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속편 벌레 이야기(1) 달밤의 행진 꽤 오래전 이 칼럼에서 벌레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썼다. 들은 바에 의하면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벌레를 몹시 싫어해서 삽화를 그리느라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짓궂은 짓을 한 셈이다. 그러나 미안하게 생각하는 한편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벌레 이야기를 한층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연유로 또 벌레 이야기. 내 마누라는 옛날에 괄태충 행렬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여고생일 때 얘기다. 달 밝은 밤에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근처에 있는 언덕길을 걷고 있자니, 멀찌감치 앞쪽에 은색 띠 같은 게 보였다. 그것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단다. 오른편의 돌담에 빠끔 뚫려 있는 토관 구멍에서 줄지어 기어나와, 길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돌담을 올라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띠의 폭은 대충 1미터 정도. 대체 뭘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게 글쎄 쥐만한 크기의 거대한 괄태충 행렬이었던 것이다. 좌우지간 몇천 몇만 마리는 되어서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행진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된 듯 자동차에 깔려 물컹하게 짓이겨진 자국이 노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게 달빛에 반사되어 미끈미끈하게 빛난다. 소름 끼치는 광경이다. "그 돌담 너머에 있던 낡은 저택을 부수고 맨션을 짓고 있었으니까. 거기 살던 괄태충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거겠지"하고 그녀는 말했는데, 그렇게 엄청난 수의 거대한 괄태충이 과연 한 곳에 모여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옮겨 가 살았을까? 괄태충의 민족대이동이라니. 마치 <십계>에 나오는 모세의 출애굽 같은 이야기다. 필기 그 괄태충 무리 중에는 월등하게 거대한 보스 괄태충이 있고 그것이 앞장서서 모두를 신천지로 인도해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자니 속이 메슥거려 잠을 못 이룰 것만 같다. "
@향팔 괄태충이 뭔가 했더니 민달팽이였군요. 근데 빛을 내며 지나갔다니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전 소설은 별론데 요런 에세이는 좋아합니다. 단편도 아기자기한게 유머도 있고 좋은데 왜 장편으로 넘어가면 영 흥이 아라는지 모르겠어요.
ifrain님의 문장 수집: "속편 벌레 이야기(2) 송충이 항아리의 비극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무엇인가. 역시 '송충이 항아리'겠죠. 하긴 이 '송충이 항아리'를 실행하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드니까 그다지 현실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끔찍함에 관한 한은 그 어떤 형벌에도 뒤지지 않는다. 먼저 깊이 2.5미터에서 3미터, 직경 2미터 정도의 튼튼한 항아리를 준비한다. 꽤 단단해야 하며 또한 어느 정도 무게가 안 나가면 쓸모가 없으니까 주의한다. 안쪽 벽은 가능한 한 미끈미끈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항아리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망루를 세워 거기서 항아리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이것으로 1단계는 완료. 그다음에 노예를 삼천 명 정도 모은다. 그리고 "한 사람당 송충이 열 마리씩 잡아올 것. 그러지 못하면 곤장 백 대!"라고 명령한다. 노예들은 곤장을 백 대나 맞고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죽어라고 송충이를 모아온다. 그렇게 하면 한 삼만 마리의 송충이를 채취할 수 있다. 그러고는 삼만 마리의 송충이를 항아리에 쏟아붓는다. 송충이 삼만 마리를 한곳에 모으면 어지간히 장관이다. 마치 검은 콜타르가 항아리 안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광경 같다.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린다. 송충이가 쌓인 깊이는 대충 2미터 정도. 이것으로 준비는 모두 완료. 남은 건 죄수를 그 안으로 떨어뜨리는 일뿐이다. 그러고는 다같이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며 즐기는 것이다. 항아리 안으로 떨어진 죄수는 벽을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미끈미끈해서 곧장 미끄러져버리고, 깡충깡충 뛰어올라 숨을 쉬려고 해도 발밑에 깔려 짓이겨진 송충이가 질척거려 뜻대로 안 되고, 그러는 사이 입안으로 검은 송충이가 꾸물꾸물 한가득 기어들어가 결국은 질식사하고 만다. 무섭죠. 이런 형벌? 따끔따끔한 송충이가 입안 가득 들어오다니 생각만 해도 정말 구역질이 난다. 이렇게 죽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침대 위에서 평온하게 죽고 싶다. "
3대 혐오벌레중 하나가 송충인데. 바퀴벌레, 일명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인가? 왜 지네같이 생긴 벌레있잖아요. 꺄악~!!
stella15님의 대화: @향팔 괄태충이 뭔가 했더니 민달팽이였군요. 근데 빛을 내며 지나갔다니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전 소설은 별론데 요런 에세이는 좋아합니다. 단편도 아기자기한게 유머도 있고 좋은데 왜 장편으로 넘어가면 영 흥이 아라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놀랍게도 하루키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답니다. 이번에 @ifrain 님께서 올려주신 하루키 에세이를 접해보니 글이 참 좋네요.
ifrain님의 문장 수집: "도마뱀 이야기 지난 회에는 지지난 회에 이어 개미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에는 도마뱀 이야기. 우리 집은 비교적(아니, 꽤) 시골에 있어서 사방에 도마뱀이 우글거린다. 도마뱀이란 외견상으로는 그다지 인간의 사랑을 못받는 동물이지만 사실 사람에게 이렇다 할 해를 끼치지도 않고 벌레도 잡아먹어주는데다 가만히 보면 좀 수줍어하는 구석도 있어서, 결코 성격이 나쁜 동물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두 마리는 하여튼 도마뱀 골려먹기를 세 끼 밥보다 좋아해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으면 도마뱀을 마구 흔들어대며 장난을 친다. 도마뱀 쪽은 그게 좋을 리가 없으니 곧바로 꼬리를 끊고 달아난다. 자연계란 참으로 미스터리한 것이다. 고양이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도마뱀의 몸뚱이를 좇지 않고 잘린 꼬리 쪽에 집착한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는 잘려나와 파들파들 움직이는 꼬리에 대한 매력을 절대로 거역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도마뱀은 계속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도 도마뱀이 위대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과학잡지를 읽어보니 도마뱀도 도마뱀 나름대로 고통스럽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꼬리를 잃은 도마뱀은 동료들 사이에서 꽤나 학대를 받는 모양이다. 꼬리가 없는 도마뱀은 꼬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며, 자기 영역의 절반 정도를 빼앗기고 암컷에게도 천대를 받는 등, 꼬리가 다시 제 모습대로 자랄 때까지 암울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도마뱀은 정말 가엾은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꼬리가 없으면 동료들로부터 학대받을 걸 알면서도 꼬리를 끊고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야만 하는 애처로운 천성은, 도마뱀이나 인간이라는 장르를 넘어 처연하다. 이제부터는 도마뱀 꼬리를 잡아당기는 짓궂은 장난은 그만두고 좀더 따스한 눈길로 지켜보리라. "
오, 요런 글 넘 재미있고 좋아요. 은근 빨려들어가듯 읽게 되네요. (고양이가 출연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ㅎㅎ)
향팔님의 대화: 저는 놀랍게도 하루키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답니다. 이번에 @ifrain 님께서 올려주신 하루키 에세이를 접해보니 글이 참 좋네요.
헉, 의왼데요? 향팔님은 좋아하실지도! 하루키의 에세이 읽으면 정말 남성성 다 빠지고 여성성 충만한 남성 작기를 보는 것 같아 재밌어요. ㅎㅎ 근데 이 할배 새 책이 잘 안 나오고 있네요.
stella15님의 대화: @향팔 괄태충이 뭔가 했더니 민달팽이였군요. 근데 빛을 내며 지나갔다니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전 소설은 별론데 요런 에세이는 좋아합니다. 단편도 아기자기한게 유머도 있고 좋은데 왜 장편으로 넘어가면 영 흥이 아라는지 모르겠어요.
민달팽이의 몸이 점액질로 덮여 있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반짝일 것 같아요. 달빛을 받아서 반짝였던 것 같습니다.
ifrain님의 대화: 2026. 4. 14 사진 '민들레 홀씨'는 생물학적으로 틀린 표현이라고 해요. 포자spore를 우리말로 홀씨라고 하기 때문이죠. 홀씨는 암수가 결합하지 않고 새로운 개체가 되는 무성 번식을 합니다. 고사리 잎의 뒷면에서 볼 수 있는 포자낭 안에는 수많은 홀씨가 들어 있어요. 버섯의 갓 아래의 주름에도 홀씨가 수조 개나 들어있다고 해요. 민들레는 암수가 수정하는 속씨식물입니다. 그래서 꽃을 피우는 것이고요. 하얀색 솜털이 씨앗 끝에 붙어 있어요. 씨앗마다 솜털(갓털)이 달려 있어서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저 솜털이 둥그런 구체를 이룬 모양을 보며 '사탕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ㅎㅎ 반투명하고 왕방울만한 사탕이요.
아름다운 꽃잎이나 향긋한 향기도 모두 곤충을 끌어모으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꽃의 색이나 모양에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꽃은 어쩌다가 그냥 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예컨대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많이 핀다. 노란색 꽃을 알아서 찾아오는 곤충은 꽃등에같이 자그마한 등에 종류다. 물론 인간에게는 노란색으로 보인다 해도 곤충에게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는 곤충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다. 흔히 곤충에게는 자외선이 보인다고 한다. 노란색 꽃에는 자외선이 적은데, 그것이 바로 꽃등에가 좋아하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꽃등에는 기온이 낮은 초봄에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하는 곤충이다. 그래서 초봄에 피는 꽃은 꽃등에를 불러 모으기 위해 노란빛을 띤다. 사실 꽃등에가 좋아해서 꽃이 노란색으로 피었는지, 아니면 노란색 꽃이 많아져 꽃등에가 노란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알 수 없는 문제다. 어쨌든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피고 노란색 꽃에 꽃등에가 모여든다는 식물과 곤충의 약속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꽃등에를 짝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꿀벌 같은 꿀벌상과 친구들은 종류가 같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그런데 꽃등에는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은 곤충이라 꽃의 종류를 식별하지 못해서 종류가 다른 다양한 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는 식물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같은 노란색 꽃이라도 민들레 꽃가루가 유채꽃으로 옮겨간들 씨앗은 생기지 않는다. 민들레 꽃가루는 민들레꽃으로 옮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꽃등에가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들은 어떻게 해야 꽃가루를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지만 들에 피는 잡초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초봄에 노란색 꽃들은 한데 모여 꽃을 피운다. 꽃이 한데 모여 있으면 꽃등에는 가까이에 피어 있는 꽃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종류가 같은 꽃으로 꽃가루를 옮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작은 꽃등에는 나는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꽃이 한데 모여 피어 있으면 그 근처 꽃들 사이에서만 날아다닌다. 이렇게 초봄에 들꽃은 같은 장소에 뭉쳐서 핀다. 봄이 되면 꽃이 한가득 피어 꽃밭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략가, 잡초 - ‘타고난 약함’을 ‘전략적 강함’으로 승화시킨 잡초의 생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소영 옮김, 김진옥 감수
향팔님의 문장 수집: "아름다운 꽃잎이나 향긋한 향기도 모두 곤충을 끌어모으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꽃의 색이나 모양에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꽃은 어쩌다가 그냥 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예컨대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많이 핀다. 노란색 꽃을 알아서 찾아오는 곤충은 꽃등에같이 자그마한 등에 종류다. 물론 인간에게는 노란색으로 보인다 해도 곤충에게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는 곤충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다. 흔히 곤충에게는 자외선이 보인다고 한다. 노란색 꽃에는 자외선이 적은데, 그것이 바로 꽃등에가 좋아하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꽃등에는 기온이 낮은 초봄에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하는 곤충이다. 그래서 초봄에 피는 꽃은 꽃등에를 불러 모으기 위해 노란빛을 띤다. 사실 꽃등에가 좋아해서 꽃이 노란색으로 피었는지, 아니면 노란색 꽃이 많아져 꽃등에가 노란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알 수 없는 문제다. 어쨌든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피고 노란색 꽃에 꽃등에가 모여든다는 식물과 곤충의 약속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꽃등에를 짝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꿀벌 같은 꿀벌상과 친구들은 종류가 같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그런데 꽃등에는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은 곤충이라 꽃의 종류를 식별하지 못해서 종류가 다른 다양한 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는 식물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같은 노란색 꽃이라도 민들레 꽃가루가 유채꽃으로 옮겨간들 씨앗은 생기지 않는다. 민들레 꽃가루는 민들레꽃으로 옮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꽃등에가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들은 어떻게 해야 꽃가루를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지만 들에 피는 잡초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초봄에 노란색 꽃들은 한데 모여 꽃을 피운다. 꽃이 한데 모여 있으면 꽃등에는 가까이에 피어 있는 꽃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종류가 같은 꽃으로 꽃가루를 옮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작은 꽃등에는 나는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꽃이 한데 모여 피어 있으면 그 근처 꽃들 사이에서만 날아다닌다. 이렇게 초봄에 들꽃은 같은 장소에 뭉쳐서 핀다. 봄이 되면 꽃이 한가득 피어 꽃밭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에서 노란색 꽃은 한데 모여서 핀다고 소개했다. 민들레도 꽃이 노란색이라 역시 한데 모여 핀다. 그러면 모여서 피지 않고 한 송이씩 피는 민들레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서 피는 민들레와 한 송이씩 피는 민들레는 종류가 다르다. 초봄에 모여서 피는 민들레는 예부터 일본에 있던 일본민들레다. 그와 달리 서양민들레는 모여서 피지 않고 한 송이씩 피는 경우가 많다. 서양민들레는 꽃가루가 달라붙지 않아도 씨앗을 만들 수 있는 '아포믹시스(무수정생식)'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없거나 꽃가루를 옮길 곤충이 없어도 씨앗을 만들 수 있다. 길거리에 서양민들레가 많이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서양민들레는 봄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 수 있다.
전략가, 잡초 - ‘타고난 약함’을 ‘전략적 강함’으로 승화시킨 잡초의 생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소영 옮김, 김진옥 감수
2026.4.2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보고 온 전시 내용입니다. 소멸의 시학 : 삭는 미술에 대하여 뛰어난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라고 부른다. 이때 불후不朽는 '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훌륭한 작품이란 곧 변하지 않을 혹은 변해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면, 굳이 변하고 사라질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언젠가 썩어 갈 운명을 시인하는 작품, 차라리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은 작품, 자신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한다. 이는 오늘날 폭발적으로 분출한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첨단의 자본주의와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반발에 따라 작품에서도 변화하고 있는 양상을 살펴보고, 그로부터 당면한 위기를 헤쳐 갈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다. '삭다'라는 우리말에는 '썩은 것처럼 되다', '생기를 잃다'와 더불어 '소화되다',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작품의 변화를 해석하는 데 유효한 통로를 제공한다. 썩는다는 표현에 담긴 부정적 함의를 넘어 에너지의 하강과 상승을 모두 포괄하고, 발효와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와 협력하여 이루는 질적 고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창조하는 인간의 증거로서의 '작품'이 삭아 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품'이 허물어진 곳에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불고 보이지 않는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다시 '작품'이라고 불어도 될까? 그때 그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 불후의 명작들의 수장고로서 미술관은 위대한 작품들의 가치를 변함없이 지키는 데 헌신해 왔다. 삭는 미술은 묻는다. 인간을 넘어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삭히기로 마음먹은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수상한 계절이 이어지는 오늘, 더 잘 보존하기보다 더 잘 분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임을 인정할 수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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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아름다운 꽃잎이나 향긋한 향기도 모두 곤충을 끌어모으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꽃의 색이나 모양에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꽃은 어쩌다가 그냥 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예컨대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많이 핀다. 노란색 꽃을 알아서 찾아오는 곤충은 꽃등에같이 자그마한 등에 종류다. 물론 인간에게는 노란색으로 보인다 해도 곤충에게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는 곤충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다. 흔히 곤충에게는 자외선이 보인다고 한다. 노란색 꽃에는 자외선이 적은데, 그것이 바로 꽃등에가 좋아하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꽃등에는 기온이 낮은 초봄에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하는 곤충이다. 그래서 초봄에 피는 꽃은 꽃등에를 불러 모으기 위해 노란빛을 띤다. 사실 꽃등에가 좋아해서 꽃이 노란색으로 피었는지, 아니면 노란색 꽃이 많아져 꽃등에가 노란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알 수 없는 문제다. 어쨌든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피고 노란색 꽃에 꽃등에가 모여든다는 식물과 곤충의 약속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꽃등에를 짝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꿀벌 같은 꿀벌상과 친구들은 종류가 같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그런데 꽃등에는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은 곤충이라 꽃의 종류를 식별하지 못해서 종류가 다른 다양한 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는 식물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같은 노란색 꽃이라도 민들레 꽃가루가 유채꽃으로 옮겨간들 씨앗은 생기지 않는다. 민들레 꽃가루는 민들레꽃으로 옮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꽃등에가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들은 어떻게 해야 꽃가루를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지만 들에 피는 잡초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초봄에 노란색 꽃들은 한데 모여 꽃을 피운다. 꽃이 한데 모여 있으면 꽃등에는 가까이에 피어 있는 꽃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종류가 같은 꽃으로 꽃가루를 옮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작은 꽃등에는 나는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꽃이 한데 모여 피어 있으면 그 근처 꽃들 사이에서만 날아다닌다. 이렇게 초봄에 들꽃은 같은 장소에 뭉쳐서 핀다. 봄이 되면 꽃이 한가득 피어 꽃밭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란색 꽃은 자외선이 적군요.
향팔님의 문장 수집: "앞에서 노란색 꽃은 한데 모여서 핀다고 소개했다. 민들레도 꽃이 노란색이라 역시 한데 모여 핀다. 그러면 모여서 피지 않고 한 송이씩 피는 민들레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서 피는 민들레와 한 송이씩 피는 민들레는 종류가 다르다. 초봄에 모여서 피는 민들레는 예부터 일본에 있던 일본민들레다. 그와 달리 서양민들레는 모여서 피지 않고 한 송이씩 피는 경우가 많다. 서양민들레는 꽃가루가 달라붙지 않아도 씨앗을 만들 수 있는 '아포믹시스(무수정생식)'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없거나 꽃가루를 옮길 곤충이 없어도 씨앗을 만들 수 있다. 길거리에 서양민들레가 많이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서양민들레는 봄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서양민들레가 늘어나면서 점점 세력을 넓히는 데 비해 일본민들레는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꽃도 거침없이 피우고 씨앗도 쑥쑥 만들어내는 서양민들레가 일본민들레보다 유리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일본민들레는 봄에만 꽃을 피우며 씨앗을 만들고 나면 뿌리만 남고 잎은 시들어 버린다. 개구리나 뱀이 흙속에서 겨울을 나는 것을 겨울잠이라고 하는 것처럼 일본민들레는 여름 동안 뿌리만 남기고 흙속에서 지내는 여름잠을 자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여름이 되면 수많은 식물이 무성히 자라난다. 그러면 비교적 자그마한 민들레에는 빛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민들레는 다른 식물들과 싸움을 피해 땅속에서 잠자코 기다린다. 즉 일본민들레는 다른 식물이 무성히 피는 자연환경에 전략적으로 대응한다. 반면 서양민들레는 봄은 물론이고 여름에도 꽃을 피우므로 다른 식물과 싸워서 지게 되고 결국 다른 식물이 있는 곳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 대신 서양민들레는 다른 식물이 나지 않는 도시의 길가 등에서 꽃을 피워 분포를 넓힌다. 서양민들레가 널리 퍼지고 일본민들레가 줄어든다는 말은 일본민들레가 자랄 수 있는 자연환경이 줄어들고 도시 환경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서양민들레와 일본민들레 중 어느 쪽이 강하다는 결론은 내릴 수 없다. 서양민들레나 일본민들레나 모두 살아남을 만한 곳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전략가, 잡초 - ‘타고난 약함’을 ‘전략적 강함’으로 승화시킨 잡초의 생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소영 옮김, 김진옥 감수
ifrain님의 대화: 2026.4.2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보고 온 전시 내용입니다. 소멸의 시학 : 삭는 미술에 대하여 뛰어난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라고 부른다. 이때 불후不朽는 '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훌륭한 작품이란 곧 변하지 않을 혹은 변해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면, 굳이 변하고 사라질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언젠가 썩어 갈 운명을 시인하는 작품, 차라리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은 작품, 자신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한다. 이는 오늘날 폭발적으로 분출한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첨단의 자본주의와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반발에 따라 작품에서도 변화하고 있는 양상을 살펴보고, 그로부터 당면한 위기를 헤쳐 갈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다. '삭다'라는 우리말에는 '썩은 것처럼 되다', '생기를 잃다'와 더불어 '소화되다',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작품의 변화를 해석하는 데 유효한 통로를 제공한다. 썩는다는 표현에 담긴 부정적 함의를 넘어 에너지의 하강과 상승을 모두 포괄하고, 발효와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와 협력하여 이루는 질적 고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창조하는 인간의 증거로서의 '작품'이 삭아 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품'이 허물어진 곳에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불고 보이지 않는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다시 '작품'이라고 불어도 될까? 그때 그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 불후의 명작들의 수장고로서 미술관은 위대한 작품들의 가치를 변함없이 지키는 데 헌신해 왔다. 삭는 미술은 묻는다. 인간을 넘어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삭히기로 마음먹은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수상한 계절이 이어지는 오늘, 더 잘 보존하기보다 더 잘 분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임을 인정할 수 있겠냐고.
Sak-da: The Poetics of Decomposition An outstanding work of art is often referred to as a "timeless masterpiece." Here, the term timeless(不朽) carries a literal sense of "not decaying." If a great work of art is something that does not change, or must not change. then why do artists deliberately create works that inevitably change and disappear? Sak-da: The Poetics of Decomposition introduces works that acknowledge a fate of eventual decay, works that intentionally leave nothing behind, and works that perform their own decocmposition, brought together under the practice of "Sak-da." This approach arises from a desire to examine the changing nature of artworks and contemporary critiques of anthropocentrism and the backlash against advanced capitalism and technocracy, and from a faint hope that wisdom for navigating the current crisis might emerge from such change. The native Korean verb "Sak-da" encompasses meanings such as"to become rotten," "to lose vitality," as well as "to be digested" and "to ferment and develop flavor." This multiplicity of meanings offers a productive way to interpret the transformations of contemporary works. Beyond the negative connotations of decay, "Sak-da" evokes both the descent and ascent of energy, as well as qualitative enhancement achieved in collaboration with nonhuman beings. What occurs when an "artwork" decays as evidence of human creation? If plants grow, wind blows, and invisible life stirs in the place when the piece falls apart, can it still be called an "artwork"? And if so, whose work is it? Museums, as repositories of timeless masterpieces, have long devoted themselves to preserving the value of great works unchanged. The practice of Sak-da asks whether museums are prepared to embrace works that choose to decay in order to co-live with diverse beings beyond humans. In these uncertain times, can we acknowledge that the moment may call not for better conservation, but for better ways to decompose?
ifrain님의 대화: Sak-da: The Poetics of Decomposition An outstanding work of art is often referred to as a "timeless masterpiece." Here, the term timeless(不朽) carries a literal sense of "not decaying." If a great work of art is something that does not change, or must not change. then why do artists deliberately create works that inevitably change and disappear? Sak-da: The Poetics of Decomposition introduces works that acknowledge a fate of eventual decay, works that intentionally leave nothing behind, and works that perform their own decocmposition, brought together under the practice of "Sak-da." This approach arises from a desire to examine the changing nature of artworks and contemporary critiques of anthropocentrism and the backlash against advanced capitalism and technocracy, and from a faint hope that wisdom for navigating the current crisis might emerge from such change. The native Korean verb "Sak-da" encompasses meanings such as"to become rotten," "to lose vitality," as well as "to be digested" and "to ferment and develop flavor." This multiplicity of meanings offers a productive way to interpret the transformations of contemporary works. Beyond the negative connotations of decay, "Sak-da" evokes both the descent and ascent of energy, as well as qualitative enhancement achieved in collaboration with nonhuman beings. What occurs when an "artwork" decays as evidence of human creation? If plants grow, wind blows, and invisible life stirs in the place when the piece falls apart, can it still be called an "artwork"? And if so, whose work is it? Museums, as repositories of timeless masterpieces, have long devoted themselves to preserving the value of great works unchanged. The practice of Sak-da asks whether museums are prepared to embrace works that choose to decay in order to co-live with diverse beings beyond humans. In these uncertain times, can we acknowledge that the moment may call not for better conservation, but for better ways to decompose?
인상 깊었던 작품을 올립니다. 이은재 Lee Eunjae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사 - 서문 2023, 나무 패널에 달걀 노른자, 240x130cm Preface of "Now, Polish the Corners of Geundae" 2023, egg yolk on modeling paste coated wood panel, 240x130cm 이은재는 다른 몸의 경험을 포착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물론 그림이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그림은 물질로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미지가 대상을 온전히 재현하기는 불가능하고, 물감과 지지체(바탕재)는 언젠가 퇴색한다. 작가는 이해의 시도로서의 그림과 그 필연적인 실패를 모두 포용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리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구하려 한다. 작가에게 계란 노른자로 만든 물감을 이용하는 템페라는 흥미로운 기법이다. 쉽게 갈라지고 바래는 유약한 물질이 재현의 실패를 예견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은 작가의 꿈에서 출발했다. 꿈 속에서 유독 실패하던 작가는 아버지와 마주쳐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작가는 이 말을 "그림을 그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고고학자였던 아버지가 유물에 쌓인 흙을 조심스레 털어 내듯, 한 겹 한 겹 물감을 쌓아 올려 그림을 그려 나간다. 이미지가 완전할 수 없다는 의심과, 그러니 사라져도 좋을 것이라는 안도, 그래도 한동안은 그것이 잔존했으면 하는 바람이 뒤섞인다. 그림은 애석하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서서히 바래 간다. 함께 선보이는 소품들은 작가가 관람한 공연이나 목격한 삶의 장면들을 그린 그림이다. 이제 10년의 세월을 거쳐 갈라지고 바랜 그림 속에서 그때 그 순간의 감각이 현현한다.
ifrain님의 대화: 인상 깊었던 작품을 올립니다. 이은재 Lee Eunjae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사 - 서문 2023, 나무 패널에 달걀 노른자, 240x130cm Preface of "Now, Polish the Corners of Geundae" 2023, egg yolk on modeling paste coated wood panel, 240x130cm 이은재는 다른 몸의 경험을 포착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물론 그림이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그림은 물질로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미지가 대상을 온전히 재현하기는 불가능하고, 물감과 지지체(바탕재)는 언젠가 퇴색한다. 작가는 이해의 시도로서의 그림과 그 필연적인 실패를 모두 포용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리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구하려 한다. 작가에게 계란 노른자로 만든 물감을 이용하는 템페라는 흥미로운 기법이다. 쉽게 갈라지고 바래는 유약한 물질이 재현의 실패를 예견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은 작가의 꿈에서 출발했다. 꿈 속에서 유독 실패하던 작가는 아버지와 마주쳐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작가는 이 말을 "그림을 그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고고학자였던 아버지가 유물에 쌓인 흙을 조심스레 털어 내듯, 한 겹 한 겹 물감을 쌓아 올려 그림을 그려 나간다. 이미지가 완전할 수 없다는 의심과, 그러니 사라져도 좋을 것이라는 안도, 그래도 한동안은 그것이 잔존했으면 하는 바람이 뒤섞인다. 그림은 애석하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서서히 바래 간다. 함께 선보이는 소품들은 작가가 관람한 공연이나 목격한 삶의 장면들을 그린 그림이다. 이제 10년의 세월을 거쳐 갈라지고 바랜 그림 속에서 그때 그 순간의 감각이 현현한다.
Lee Eunjae paints to grasp the experience of another body. Painting, of course, is not a perfect method. It is a technique for producing images through material means. Images can never fully represent their subjects, and paint and supports inevitably fade over time. The artist embraces both painting as an attempt at understanding and its inevitable failure, while continuing to ask what it means to persist in painting nonetheless. For the artist, tempera made with egg yolk is a particularly compelling medium. Its fragility, prone to cracking and fading, seems to anticipate the failure of representation itself. Preface of "Now, Polish the Corners of Geundae" originates in a dream. In the dream, the artist, repeatedly failing, encounters their father, who says, "Now, polish the corners of Geundae." Lee interprets this phrase as an injunction to paint. As Lee's father, an archaeologist, once carefully brushed soil from artifacts, the artist builds the painting layer by layer, gently applying pigment. Doubt about the impossibility of a complete image, relief that it may therefore be allowed to disappear, and a wish that it might nonetheless endure for a while are interwoven. The painting, regrettably or perhaps fortunately, fades slowly over time. The smaller works shown alongside depict performances the artist has witnessed and scenes from everyday life. Now cracked and faded after a decade, these paintings allow the sensations of those moments to surface once again.
ifrain님의 문장 수집: " 우주에 전화 좀 걸게요 I WOULD LIKE TO PLACE A CALL TO UNIVERSE 외부 우주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고요, 끝 간 데 없이 광막하고 별빛이 가득 담긴 무성 영화, 소리 없는 디스코 등을 연상하다. 우주가 진공 상태vacuum(어떤 물질도 없는 상태로, '텅 비었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쿠우스vacuus에서 온 단어)임을 생각하면 꽤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사실 우주에는 소음 지옥과 끊임없는 우주적 대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1964년 천문학자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은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는 안테라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이 당시 그들의 직접이었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잡음이 무척 거슬렸다. 알고 보니 우연히 우주 복사의 가느다란 소리에 주파수를 맞췄던 것이다. 그것은 빅뱅의 결과 남은 배경 전자기파, 곧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소리였다. 천체는 전파와 함께 빛의 파동도 방출한다. 그러니 우리는 천체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그 빛을 볼 수도 있다. 전파 천문학자들은 민감한 안테나와 수신기를 가지고 그런 전자기적 진동을 잡아내 음파로 바꾼다. 그러면 태양에서 플레어 현상이 일어날 때 순간적으로 전파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소리, 목성의 표면의 폭풍이 내는 괴이한 소리, 펄사가 메트로놈처럼 꾸준히 킁킁거리는 소리, 토성의 얼음 고리에서 나는 소리 등 무無의 소리가 빚어내는 초현실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
이 글을 읽으니.. 우주로 날아간 지구의 음악이 떠올랐어요. 보이저 호에 실려 날아갔다는 ‘혹등고래의 노래’ https://youtu.be/yZBMKyag1Gw?si=pfH4g-xBUFgmEUgJ 북극성으로 날아갔다는 ‘Across the Universe’ https://youtu.be/eqUzU552X8A?si=VJyeI9Or2f2B26CV
ifrain님의 대화: 노란색 꽃은 자외선이 적군요.
오전 산책 길에 보았던 수선화입니다. 옆에 튤립도 보이구요..
ifrain님의 대화: 오전 산책 길에 보았던 수선화입니다. 옆에 튤립도 보이구요..
와, 예쁘네요. 이제 5월이면 본격저인 꽃의 계절이네요. 근데 사시는 동네가 어디길래 저런 꽃이 피었을까요?
ifrain님의 대화: 민달팽이의 몸이 점액질로 덮여 있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반짝일 것 같아요. 달빛을 받아서 반짝였던 것 같습니다.
그니까요. 나름 되게 예뻤을 거 같은데 하루키는 별로였나 봅니다. 인증샷이라도 좀 보여줄 일이지. ㅋ
ifrain님의 대화: 오전 산책 길에 보았던 수선화입니다. 옆에 튤립도 보이구요..
튤립을 보니 16~17세기에 유럽을 광풍처럼 휩쓸었던 네덜란드 정물화가 생각났어요. 바니타스Vanitas를 주제로 정물화에 곤충이나 죽은 도마뱀, 해골 등을 함께 배치해서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어요. 아래 작품의 작가는 암브로시우스 보스샤르트(Ambrosius Bosschaert the Elder, 1573~1621) 라고 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이미지를 확대해서 세밀한 부분까지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ambrosius-bosschaert-the-elder-a-still-life-of-flowers-in-a-wan-li-v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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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 47. 달밤에 낭독, 입센 1탄 <인형의 집>[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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