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ain님의 문장 수집: "속편 벌레 이야기(1)
달밤의 행진
꽤 오래전 이 칼럼에서 벌레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썼다. 들은 바에 의하면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벌레를 몹시 싫어해서 삽화를 그리느라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짓궂은 짓을 한 셈이다. 그러나 미안하게 생각하는 한편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벌레 이야기를 한층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연유로 또 벌레 이야기.
내 마누라는 옛날에 괄태충 행렬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여고생일 때 얘기다. 달 밝은 밤에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근처에 있는 언덕길을 걷고 있자니, 멀찌감치 앞쪽에 은색 띠 같은 게 보였다. 그것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단다. 오른편의 돌담에 빠끔 뚫려 있는 토관 구멍에서 줄지어 기어나와, 길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돌담을 올라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띠의 폭은 대충 1미터 정도.
대체 뭘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게 글쎄 쥐만한 크기의 거대한 괄태충 행렬이었던 것이다. 좌우지간 몇천 몇만 마리는 되어서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행진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된 듯 자동차에 깔려 물컹하게 짓이겨진 자국이 노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게 달빛에 반사되어 미끈미끈하게 빛난다. 소름 끼치는 광경이다.
"그 돌담 너머에 있던 낡은 저택을 부수고 맨션을 짓고 있었으니까. 거기 살던 괄태충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거겠지"하고 그녀는 말했는데, 그렇게 엄청난 수의 거대한 괄태충이 과연 한 곳에 모여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옮겨 가 살았을까? 괄태충의 민족대이동이라니. 마치 <십계>에 나오는 모세의 출애굽 같은 이야기다.
필기 그 괄태충 무리 중에는 월등하게 거대한 보스 괄태충이 있고 그것이 앞장서서 모두를 신천지로 인도해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자니 속이 메슥거려 잠을 못 이룰 것만 같다. "
@향팔 괄태충이 뭔가 했더니 민달팽이였군요. 근데 빛을 내며 지나갔다니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전 소설은 별론데 요런 에세이는 좋아합니다. 단편도 아기자기한게 유머도 있고 좋은데 왜 장편으로 넘어가면 영 흥이 아라는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