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2부

D-29
생명체의 세포 속에서는 정교한 화학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화합물이 다른 여러 종의 화합물로 변해가고 있다. 그동안 생화학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림3-1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이 그림은 세포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반응들 중 1%도 안되는 내용을 추려서 요약한 것이다. 이 순환도 속에는 각 과정을 거치면서 변해가는 분자의 변천과정이 단계별로 정리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하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는 호흡의 과정, 이른바 크렙스 사이클(Krebs cycle)이다. 분자 구조의 변천과정을 각 단계별로 분리해서 보면 그다지 격렬한 변화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생화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며,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이 사이클을 재현시킬 방법은 없다. 서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 두 종류의 물질이 있을 때, 한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하는 데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치러져야 한다. 서로 다른 두 형태 사이에는 에너지의 '언덕'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산골짜기에 바위가 하나 놓여 있는데, 이 바위를 봉우리 건너편의 다른 골짜기로 옮기려면 터널을 뚫지 않는 한 일단은 산꼭대기까지 끌고 올라가야 한다. 즉 어떤 형태로든 에너지가 투입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학반응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화학자들은 이때 투입되는 에너지를 '활성화 에너지'라고 부른다. 주어진 화학물질에 원자를 추가로 붙이려면 새로운 원자를 아주 가깝게 가져가서 원자의 배치상태가 달라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때 투입된 에너지의 양이 부족했다면, 마치 산꼭대기로 끌고 올라가던 바위가 도중에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화학반응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원자들 사이의 간격이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분자를 손으로 잡아서 강제로 틈을 벌린 후에 새로운 원자를 끼워 넣을 수 있다면, 이것은 산허리를 돌아가는 지름길로 반응을 유도한 셈이며, 따라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투여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포 속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분자로 이루어진 물질들이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작은 분자들을 붙들고 있으면서 위에서 서술한 식으로 반응이 쉽게 일어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복잡한 물질이란, 다름 아닌 효소(enzymes)이다(효소는 설탕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효모(ferment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실제로 그림3-1의 첫 반응 과정 중 일부는 설탕의 발효과정을 연구하면서 밝혀진 것이다). 효소가 있는 한, 이런 반응은 항상 일어난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보급판 pp.112~114,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박병철 옮김
물리학이 생물학을 비롯한 여타 과학 분야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실험 기술'이다. 사실 실험 물리학 분야의 발전이 없었다면 그림 3-1과 같은 생화학적 사이클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한 반응 과정을 분석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반응에 관여하는 원자들마다 일종의 '꼬리표'를 달아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탄소 원자에 '녹색 꼬리표'를 달아줄 수만 있다면, 향후 그녀석의 위치를 추적하여 반응의 전모를 훨씬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녹색 꼬리표'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동위원소(isotope)'이다.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것은 핵의 질량이 아니라 전자의 개수다. 그런데 자연에는 6개의 양성자와 6개의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이 있고, 이와 동시에 6개의 양성자와 7개의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도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탄소(C)의 핵'이라고 부른다(양성자의 개수는 전자의 개수와 일치하므로, 양성자의 수가 같은 원자들은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원소의 이름이 달라지려면 양성자의 수가 달라져야 한다: 옮긴이). 화학적 관점에서 볼 때, C¹²와 C¹³원자는 성질이 동일하지만 핵의 세부 구조와 질량이 다르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구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C¹³(또는 C¹⁴)이라는 동위원소를 첨가하여 이들의 자취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보급판 pp.115~116,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박병철 옮김
오늘 옆방에서 읽은 책 속 레이저에 관한 대목에서 ‘들뜬 상태’라는 용어를 배웠는데, 수집해주신 문장에서도 나오네요. 설명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원리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표 작성: 제미나이)
전자가 낮은 에너지층에 있을 때 '바닥 상태'라고 하고, 이 전자가 모종의 이유로 위층으로 올라가면 '들뜬 상태'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1917년 자신의 논문에서 유도 방출 현상을 처음으로 언급하며 원자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과 상호작용하는 세 가지 방식을 설명했다. 첫 번째 방식은 '흡수'다. 빛에너지를 받은 바닥 상태의 전자가 더 높은 에너지층으로 이동하며 들뜬 상태로 변하는 경우다. 두 번째 방식은 '방출 혹은 자발적 방출'이다. 위층으로 올라간 들뜬 상태의 전자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발적으로 빛에너지를 내보내며 다시 바닥 상태로 변하는 경우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물질의 색이나 투명한 정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이저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세 번째 방식인 '유도 방출'이다. […] 일반적인 방출과 달리 유도 방출에서는 '빛이 빛을 낳는' 과정이 일어난다. 외부에서 들어온 빛을 그대로 돌려주는 단순한 흡수·방출과는 다르게 유도 방출에서는 시간이 지나며 빛의 양이 증폭된다. 그 덕분에 단일 파장을 가진 강한 빛을 낼 수 있다. 이때 유도 방출을 더 효과적으로 발생시키려면 빛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고 전자를 자극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레이저를 사용하는 도구에는 앞뒤로 거울이 달려 있는데, 이 거울 사이에 유도 방출을 발생시키기 위한 물질들이 들어 있다. 빛은 두 개의 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유도 방출 방식에 따라 양이 증폭되다가 일정 세기 이상으로 강해지면 방출된다. 우리는 레이저를 쓸 때 이 빛을 활용하는 것이다.
모든 계절의 물리학 -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는 유쾌한 과학의 세계 117-119쪽, 김기덕 지음
모든 계절의 물리학 -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는 유쾌한 과학의 세계물리학을 사랑한 나머지 진짜 물리학자가 된 저자가, 평범한 일상에 숨은 경이로운 물리학의 세계를 파헤쳐 소개하는 책이다. 단지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을 둘러싼 익숙한 장면들이 ‘물리학’이라는 언어로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오호.. 레이저가 쉽진 않네요. 옆방에서 왜 빠르게 날아가면 시간이 천천히 가는가 그런 것도 물으시고 했던 것 같은데 답은 얻으셨나요? 저자 분께서 향팔 님 포함 물리를 사랑하는 독자분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대답하시느라 바쁘시겠어요. 그게 즐거움이겠지만요. ㅎㅎ
하하 네, 상대성 이론은 사실상 “왜”에 대답은 안해주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제 머리 속에선 학생 시절 러시아어를 배울 때의 기억 한 토막이 되살아났어요. 사람들이 러시아어의 괴랄함에 괴로워하며 “이러이러한 건 대체 왜 이렇죠?”라는 질문을 하면 선생님께서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왜’는 없습니다.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 그냥 받아들이세요.”라고 하셨던 대답이요 ㅎㅎ
그렇죠. 상대성 이론이 어렵죠. 빛의 속도는 어디에서나 일정하다는 전제만 인정하고 들어가면 설명은 가능한데 이해하기가 쉽진 않더라구요. 언제 이면지가 눈에 띄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시계의 시간이 왜 늦게 가는지 그림으로 설명드릴게요. 옛날에 한번 관심이 있어서 파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업무를 봐야 해서. ㅎㅎ 그리고 요즘 러시아 영화 보는데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고 자막만 열심히 보니까 이상한 기분입니다.
와! 밥심님께 이면지와 시간이 생길 때까지 숨 참고 기다립니다! 완전 좋아요(기대) (요즘 타르콥스키 영화 보시는군요? ㅎㅎ)
그때 기별 주시면 저도 말석에서나마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밥심님께 노트나 드로잉북을 하나 선물해드려야 할 거 같아요. 러시아 말을 보지만 말고 한 번 써보세요. ㅎㅎㅎ 향팔님의 러시아어 발음을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후훗
놀랍게도 러시아어 발음은 영어 발음에 비하면 정말 쉬운 편이에요 ㅎㅎ
그런가요. 의외네요. 어렵게 들리던데요 .. 향팔님께 한 수 배워야겠어요. ^^
@향팔 님, @SooHey 님 오늘은 휴가이고 오전엔 일정이 없으니 여유잡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려봤습니다.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양해하시길, 워낙 그림 솜씨가 없어서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하나를 찰떡같이 믿고 빌려옵니다. 즉, 빛의 속도(광속)는 어디서나 일정하다. 보통 30만km/초 정도의 속도라고 하죠. 그리고 속도는 이동한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누어 구하죠. 이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그림을 설명하겠습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이 있다고 칩니다. 우주선 안에는 철수가 타고 있고 우주선 밖 지구에서는 철수의 여친인 영희가 잘 가라고 배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선 안에는 거울로 만들어진 시계가 있습니다. 우주선 통로의 오른쪽 벽에 걸린 거울에서 빛이 나와서 왼쪽 벽에 걸린 거울로 빛이 도달하는 시간을 재는 시계입니다. 통로라고 해봐야 큰 우주선이라도 5미터 이내일테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빛은 오른쪽 거울에서 왼쪽 거울로 갈 겁니다. 그래서 사실은 빛이 수없이 왔다갔다 한 것을 다 챙겨서 시간을 재야하는데 그러면 설명이 너무 복잡해지므로 그냥 오른쪽 거울에서 왼쪽 거울로 빛이 가는데 걸린 시간만을 고려하기로 합니다. 그림에서 빨간색 원으로 그려진 것이 빛의 광자이고요, 빨간색 점선이 광자가 이동한 궤적입니다. 우주선에 타고 있는 철수는 시계 바로 옆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 거울에서 광자가 출발하고 시간 t1이 흐른 후에 왼쪽 거울에 도착하는 광자의 궤적이 그냥 똑바로 가는 직선으로 보일 겁니다. 광자는 통로 간의 간격 s1을 이동했을 뿐이죠. 광자의 이동속도는 곧 광속이므로 광속=s1/t1이 됩니다. 반면, 두번 째 그림에서는 우주선이 이동한 거리를 좀 과장되게 그렸는데 우주선 밖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던 영희가 보기에는 광자가 오른쪽 거울에서 왼쪽 거울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우주선 자체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경우 광자는 철수가 본 것과는 달리 s2의 궤적을 따라 사선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영희에게는 보입니다. 이 때 광자가 이동한 거리를 s2, 걸린 시간을 t2라고 하면 광속=s2/t2가 됩니다. 여기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가져오면, 광속은 어디서나 일정하다고 했으므로 광속=s1/t1=s2/t2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s2는 사선이므로 분명히 s1보다는 큰 숫자겠죠(피타고라스 정리 생각하면 분명하죠.). 분자가 큰데 숫자가 같아지려면 분모도 커져야 하므로 t2도 t1보다 커져야 합니다. 결론은 t2>t1 이죠. 즉 철수가 느끼는 시간 t1이 영희가 느끼는 시간 t2보다 짧다. 영희는 헤어짐의 슬픔보다는 철수가 자신보다 더 젊어진다는데 기분이 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걸까요. ㅎㅎ 이해가 되셨는지요? 유튜브나 블로그 같은데 찾아보면 더 자세한 그림과 설명이 있을테니 참조하셔도 좋겠습니다. 아울러,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타고 있으면 시간이 아예 안흐를까 하는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광속=s1/t1=s2/t2에서 s2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는 이야기죠. 광속으로 날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s1은 최대 5미터 밖에 안되는 짧은 거리죠. s1/t1이 큰 숫자가 되려면 t1이 거의 무한소에 가까울 정도로 작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t1은 0이 되는 거 아닐까요. ㅎㅎ그런데 이게 제가 어디서 확인한 내용은 아니라서 걸러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밥심 와 -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그림과 설명입니다. ^^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세요. ^^ 빨간색 광자가 귀엽고 예쁩니다. 저 우주선 안에 타고 있으면.. 동안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려나요? ㅎㅎ @stella15
스텔라님께서 동안 유지의 비법을 공유하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스텔라님께도 @를 넣었어요. ㅎㅎ 그림 속 우주선을 타고 싶어요.
아, 그런건가요? 제가 좀 늦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제가 지우는 게 좋겠네요. ㅎ
아이들 수준의 그림 실력을 타박하지 않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 이해가... 되었습니다... 직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네요... 근데 왜 슬퍼질까요? ㅠㅠ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최고 분야는 바로 양자역학이죠.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에 비하면 양반인 것 같아요. 이해하려고 무지 애써도 이해될까 말까 하는 것들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들 때문에 약간의 서글픔을 느끼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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