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2부

D-29
최초의 비에 대한 최상의 단서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잭 힐스Jack Hills 지역에 있다. 이곳의 험준한 오렌지색 사암지대 깊은 곳에서 지질학자들은 지르콘zircon이라는 미세한 광물 알갱이들을 발굴해냈다. 지르콘은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지구 물질이다. 대자연의 가장 신뢰할 만한 시계인 방사성 원소 우라늄은 이 작은 지르콘이 42억 년 전의 광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르콘의 화학적 성질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약 42억 년 전 원시 비가 지각에 내려 웅덩이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최초의 습지들은 필시 후기운석대충돌기Late Heavy Meteorite Bombardment라 불리는 태고대의 최후 시기에 끓어오르다 증발하기를 되풀이했을 것이다. 이 마지막 충돌로 달에 분화구가 생기기도 했다. 운석 폭풍이 잦아들었을 때 비로소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이 무렵 갓난아기에 불과했던 지구는 증기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엄청난 양의 휘발성 물질이 대기 중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구름은 뉴펀들랜드 지방의 바다 안개보다 두텁고 그레이트플레인스(Great Plains, 북아메리카 로키 산맥 동쪽의 광대한 평원-옮긴이)의 토네이도 기둥보다 시커먼 모습으로 힘겹게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구름이 많았다 해도 새까맣게 탄 지구의 표면은 여전히 고온 상태였으므로 땅으로 내려오던 비는 중간에서 증발을 반복했을 것이다. 결국 저승을 연상시키는 검은 구름은 터무니없이 무거워졌다. 대기 중의 물 입자와 간간이 반응하던 전기 입자인 번개만이 이 고독한 풍광을 밝혀주었으리라. 수증기는 그야말로 긴 시간 동안 대기 위층에 쌓여 있다가, 마침내 비가 땅까지 내려올 수 있을 만큼 표면이 식자 드디어 재난 수준의 폭우로 수천여 년 동안 쏟아져 내렸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지구화학 교수 도널드 로Donald Lowe가 나의 부탁에 응해 그려준 지구 최초의 비에 대한 그림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로는 초창기 지구 표면과 오늘날의 심해 퇴적층을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다. 그는 가뭄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에서 자라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지만 학문을 연구한 세월의 절반을 미국 최대 다우多雨 지역 중 하나인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Baton Rouge의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에서 보냈다. 따라서 그가 최초의 비를 루이지애나 남부의 집중호우처럼 그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이곳의 폭우는 운전자들이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강철 북을 두드려대듯 차 지붕을 때리는 비가 멎기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심하다.
비 (RAIN) - 자연.문화.역사로 보는 비의 연대기 pp.20~22, 신시아 바넷 지음, 오수원 옮김
신시아 바넷의 <비>, 이 책은 나중에라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어제부터 줄곧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하늘이네요. https://youtu.be/a8XRdY-JQnA?si=V6jIT5UC_uVgtneO When it rains - Brad Mehldau
제가 있는 곳은 어제 저녁 무렵부터.. 밤에도 비가 왔어요. 오늘도 공기에 수분이 많네요. ^^ 사진은 오늘(2026. 4. 28. 저녁 6:12) 저녁 무렵 하늘입니다. 구름이 많고 약간 흐려요. 저는 이렇게 공기 중에 수분이 많은 날을 좋아하지요. ㅎㅎ
비 오는 날이면 이 노래가 빠질 수 없죠.. https://www.youtube.com/watch?v=afxLaQiLu-o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오늘은 오랜만에 네 생각을 하는 날이야 일부러 난 너와 내가 담겨 있는 노랠 찾아 오늘은 슬프거나 우울해도 괜찮은 맘이야 어차피 이 밤이 다 지나가면은 별 수도 없이 난 또 한 동안은 널 잊고 살 테니까 내 가슴 속에만 품고 살아갈 테니까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 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파서 떨어지는 빗물과 시계 초침 소리가 방 안 가득 채우면 그 때로 난 돌아가 차라리 난 이 비가 그치지 않았음 해 매일 기억 속에 살 수 있게 나 널 아프게 했던 못난 놈이니까 널 다시 품에 안을 자격도 없으니까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 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을 너무 빨리 쓴 것 같아 거기까지 인 것 같아 이 비가 그칠 땐 각자 있던 곳에서 다시 살아가야만 해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 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마크 로스코와 나 2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pp.19~21, 한강 지음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438권. 인간 삶의 고독과 비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진실과 본질적인 정서들을 특유의 단단하고 시정 어린 문체로 새겨온 한강의 첫 시집.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려 이번 시집을 묶었다.
예전에 마크 로스코의 도록을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시 '마크 로스코와 나2' 와 어울리는 작품을 찾아보았어요. 작품 정보는 찾지 못하겠네요.
인간 마음의 깊이와 바다의 깊이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깊을까요..? 과거와 역사와 기억과 망각이 뒤범벅되어 있는 가운데 잊혀지지 않고 연결되는 그 무엇이 있다면 아직도 작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 꿈틀거리는 움직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반고흐의 그림이 천막처럼 드리워진 작품은 <꿈꾸는 바다>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거북이도 많이 등장하는데요.. 거북이가 화구나 이젤을 싣고 날아갑니다.
물론 현대의 학자들은 다윈보다 확실히 더 나은 처지다. 1세기에 걸쳐 선캄브리아대 후기의 암석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한 끝에 몇몇 예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흔히 얘기하는 에디아카라 동물군이다. 해파리 계통에 속하는데, 몸이 사방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부정형이다. 그중에는 지름이 약 1미터나 되는 것들도 있다. 원래 발견된 장소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에디아카라 언덕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와 비슷한 화석들이 여섯 대륙에서 모두 발견되었는데, 캄브리아기가 시작되기 2500만 년 전인 벤드기Vendian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화석들이 발견되었다고 캄브리아기의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미국 예일 대학의 독일인 고생물학자 돌프 자일라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점잖은 채식주의 벤도비온트Vendobiont(벤드기의 생물 개체라는 뜻으로 붙여준 애정 어린 별명이다)인 이 부정형 동물들은 좌우대칭형 구조에 갑옷같은 껍데기가 달린 캄브리아기 동물들의 조상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다세포 생물의 초기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캄브리아기가 시작하기 전에 멸종되었거나 아니면 사나운 캄브리아기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히거나 했을 것이다.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자일라허의 견해에 반박해 적어도 벤도비온트 중 일부는 캄브리아기에도 살아남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동물들이 현대 분류군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산소 - 세상을 만든 분자 pp.87~88, 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그러나 벤드기에 서식한 동물은 벤도비온트뿐이 아니었다. 작은 벌레들이(길이가 몇 센티미터 정도였을 것이다) 바다 밑바닥에서 진흙 속을 파고 들어가 살았다. 놀랍게도, 이 벌레들의 자취가 아프리카 나미비아와 다른 곳의 사암에 보존되어 있다. 저층 퇴적물에 동물의 움직임이 이렇게 흔적으로 남은 것은 기나긴 선캄브리아대에서 처음이었다. 그 후로 현세까지 비슷한 흔적이 계속해서 생겼다. 이 벌레들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으며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산소 - 세상을 만든 분자 p.88, 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벌레만큼 미천한 이미지의 생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벌레는 아주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다. 우선 진흙을 뚫고 굴을 파려면 근육이 필요하고, 근육이 수축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골격’이 있어서 근육끼리 마주 볼 수 있어야 한다. 벌레의 경우 액체로 가득 찬 체강이 그 역할을 한다. 근육 수축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산소는 확산을 통해서는 조직 안에서 1밀리미터 이상 나어갈 수 없기 때문에, 벌레와 비슷한 원시 동물은 순환기관과 함께 산소가 들어 있는 체액을 펌프질하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원시 심장 같은 것이다. 벌레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이동하려면 각 체절이 조화를 이루어 순서대로 수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단순한 신경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몸에 들어간 진흙 같은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려면 입, 소화관, 항문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화석 흔적들 중에는 확실히 배설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알갱이도 있다. 벌레들 중에는 육식성도 있었을 텐데, 사냥을 하려면 현생 후손들처럼 눈이나 빛에 민감한 안점眼點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원시 벌레들은 이동할 수 있는 큰 동물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수준의 특성을 이미 진화를 통해 획득했음이 분명하다. 또 벌레의 몸은 좌우대칭형이었으며(양쪽이 똑같다는 뜻) 체절, 즉 마디가 있었다. 이 두 가지는 캄브리아기 후기 동물들의 주된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동물 조상은 벌레와 비슷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윈의 시각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빈정대며 말하는 바로 그대로다.
산소 - 세상을 만든 분자 pp.88-89, 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우리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동물 조상은 벌레와 비슷했다.’ 벌레가 혐오스럽거나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네요.
벤도비온트Vendobiont - 다세포 생물의 초기 실패작
방사성 낙진이란 핵폭탄이 폭발한 후에 미처 다 타지 않은 방사능 물질이 하늘에서 내려앉는 것을 말하는데, 한 번 생기면 오랫동안 위험한 물질이다. 핵폭탄이 폭발하면 엄청난 불기둥과 회오리바람이 하늘 높은 곳까지 솟구치고, 대기가 불안해져 종종 비가 내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에는 공기가 방사능 재로 가득 차서 시커먼 비가 되었다. 바로 악명 높은 ‘검은 비’다. 히로시마에서는 이 검은 비가 도심은 물론이고 주위의 시골에까지 쏟아져 물과 풀밭이 한꺼번에 오염되었다.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죽고, 풀밭에서는 소들이 죽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살아남은 수만 명은 애초의 폭발로는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역시 폭탄의 위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잇몸에서 피가 났다. 희생자들은 극심한 피로감과 견딜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다. 속이 메스껍고 자주 토하게 되고 식욕이 감퇴되면서 설사까지 해서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목구멍과 입속에 염증이 생겼다. 입과 코, 항문에서는 피가 나왔다. 증상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몇 달 안에 죽었다. 2년 사이에 백내장으로 눈이 먼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 년 후, 심지어 몇십 년 후에 암으로 죽었다. 백혈병은 방사선 피폭 때문에 가장 흔하게 걸리는 질환이다. 피폭 희생자등에게 멍같이 생긴 ‘푸른 반점’이 나타나면 백혈병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푸른 반점이 생기는 이유는 급격하게 증식한 백혈구가 한 덩어리로 모이기 때문이다. 핵폭탄이 터지고서 30년이나 지난 후에도 히로시마의 백혈병 환자 수는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열다섯 배 이상 많았다. 폐암이나 유방암, 갑상선암처럼 잠복기가 긴 다른 암도 15년쯤 후에 모두 발병하기 시작했다.
산소 - 세상을 만든 분자 pp.157~158, 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앞서 여러 번 발췌한 <비Rain>에 검은 비, 붉은 비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여기서도 ‘검은 비’가 등장합니다.
예전에 <맨발의 겐>을 읽으면서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작품 자체도 워낙 좋은 작품이지만요.
[세트] 맨발의 겐 1~10 - 전10권 - 완결<맨발의 겐>은 반전, 반핵, 평화를 기조로 하면서 군국주의 일본을 고발하고 천황제를 반대하고, 그리고 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비판한다. 이것은 무거운 정치적 주장이다. 당연한 주장이기는 하나 자칫 감동적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맨발의 겐'은 어린 소년 겐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통하여 이러한 주제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뛰어남이다 - 신영복(성공회 대학교 교수)
오늘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매일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즐겨 읽고 있으며, 의심 없이 그 내용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관념은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물러났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인류는 해방되어 자유의지로 고통을 겪든지 번영하든지 하게 되었다. 죄악이라는 개념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죄를 지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신탁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운명이 정해진 사람이었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에게 죄악은 선택이고, 우리는 자기가 한 선택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비극에서 그 차이는 명확하다. 그리스인들의 비극에 대한 인식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는 다르다. 햄릿은 극 내내 선택에 직면한다. 특히 궁극적인 질문은 “죽느냐, 사느냐?” 였다. 끔찍한 마지막 장면은 일련의 우발적인 사건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햄릿의 비극은 모든 것이 사실은 전부 피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는 데에 있다. 작품을 풍자적으로 고쳐서 평화 중개인이 나타나 양편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해법을 찾도록 중재하는 내용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경우에는 중재자가 있어도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중재자 역할로 이오카스테가 있었지만, 그녀는 분명 실패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비극적인 종족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데에 있고, 햄릿의 비극은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그리스도의 선택으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그리스 비극의 필연성이다. 고대 문명 이후 처음으로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돌아오고 있다. 그리스 희곡의 필연성은 현대 유전학의 필연성으로 바뀌었다. 때로는 불안할 지경이다. 심장병이나 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인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분야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들조차 이 유전자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전자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또한 유전자를 엿보려는, 즉 우리가 받은 신탁을 훔쳐 보려는 보험회사들의 강요에 저항한다. 하지만 그런 저항은 유전학을 신뢰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사생활 침해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일어난다. 대체로 다발성 경화증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꼭 그 병이 생길 거라고 믿는 듯하다. 그리스인들이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듯이, 우리는 유전적 성질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병의 진행을 바꾸지 못했다는 무력감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된다. 테이레시아스는 2500년 전에 이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아, 지혜가 아무런 쓸모도 없을 때, 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산소 - 세상을 만든 분자 pp.384~385, 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유전자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개념에 짜증을 내는 학자들이 많다. 비행기가 추락의 ‘원인’이 아니듯, 유전자는 질병의 ‘원인’이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는 비행기처럼 고장날 수는 있다. 역사적으로 의학은 이것이 불행이며 인간의 운명 중 일부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인간의 몸은 굉장히 복잡하다. 그래서 고장날 여지는 않다. 유전자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유전자 하나가 일을 ‘잘못’하면 그 결과는 엄청나다. 전형적인 예가 바로 암이다. 우연히 돌연변이가 조금만 일어나도 인간은 끔찍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돌연변이가 세포 15조 개 중에 딱 한 개에만 일어나도 그렇게 된다. 불운이나 환경의 독소, 유전적인 취약성 등의 불충분한 설명 말고는 ‘이유’가 없다.
산소 - 세상을 만든 분자 pp.385~386, 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빈 서판>을 읽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설명입니다. 논지를 빈틈없이 이어가는 저자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발의 열기로 가득찬 책이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얼음 아래서 활활 타는 한 덩어리 불길 같은 느낌이랄까요. 간혹 이 책을 ‘인간의 행동은 유전과 환경 양쪽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봅니다. 글쎄요? 이 책, 그렇게 얌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유전이 진짜 중요하다니까! 제발 아닌 척하지 말자!’가 더 제대로 된 요약입니다. 몇몇 대목에서 스티븐 핑커는 거의 울분에 찬 것처럼 보일 정도예요. 그 ‘아닌 척’들의 목록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폭력과 범죄는 모두 잘못된 교육과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믿음,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특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로지 사회적으로 형성된다는 주장,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 어떤가요? 꽤나 위험한 책 아닌가요. 핑커는 이런 ‘아닌 척’들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폭로하고, 우리가 선천성이라는 개념을 왜 두려워하는지 분석하는 한편, 그런 선천성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와 그 방법에 대해 논합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p.164 , 장강명 지음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저자 장강명은 여러 해에 걸쳐 읽은 벽돌책 100권을 소개하면서 크고 튼실한 서가를 독자들 머릿속에 설치하는 일을 돕고자 한다. 우선 벽돌책의 기준을 700쪽으로 잡고, 이 책들을 일곱 유형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한 권 한 권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글들은 소설가로서의 필력이 발휘된 에세이 100편이라 할 수 있다.
닉 레인의 <산소>에서 유전적 성질을 그리스 비극에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과 장강명 작가님의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에 소개된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의 내용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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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이님의 나 혼자 본 외국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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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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