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ain님의 문장 수집: " 환경 시사문제 전문 연구가인 알렉스 맥길리브레이는 『침묵의 봄』에 대해 과학과 문학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해 탄생한 일종의 하이브리드(장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침묵의 봄』은 창의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침묵의 봄』은 생태학이란 말을 일상적인 용어로, 살충제란 말을 나쁜 단어로 자리잡게 만든 녹색 선언"이라며 "흰머리독수리가 멸종 직전 단계에서 되살아난 것은 생태학에 미친 이 책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카슨은 창의적 산물에 사회적 가치관을 더하고 실천함으로써 지금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향의 산 읽기』의 저자 존 앨더는 "과학적 정밀성과 서정적 문학성을 융합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레이첼 카슨은 생태학의 원리와 그 윤리적, 미적, 영적 함축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라고 했다. 정밀성과 감수성의 양 날개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셈이다.
잡종은 과학적 창의성을 낳는다. 독일의 생리학자 카를 페닝거(Karl Pfenninger)는 서로 다른 형태로 수용된 각각의 데이터가 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국문학자와 천문학자는 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카슨은 바다를 포함한 드넓은 자연을 바라볼 때 단순히 탐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무늬(인문학)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반면 과학의 영역과 문학적 감수성의 혼융이 카슨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겐 흠집 내기용 꼬투리였다. 과학이라는 논리가 문학이라는 감성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식이다. 이는 『침묵의 봄』에 대한 논란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객관적 엄밀성에 충실한 『침묵의 봄』은 그런 언쟁에 끼일 필요조차 없다는 걸 수많은 논쟁의 결과가 증명했다.
홍성욱 교수는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학생 혹은 젊은 시절에 다른 학풍을 접함으로써 나타난다. 둘째, 한 전공 분야에서 다른 전공 분야로 옮김으로써 가능하다. 셋째, 지역의 이주 혹은 지역의 중첩을 통해 드러난다. 넷째, 서로 다른 분야 간 전공자의 공동연구로 발현된다. 다섯째는 학제 간 연구다. 카슨의 경우엔 전공을 바꿨다는 점,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했던 경험으로 문학적 감수성을 길렀다는 점이 특수하다.
카슨이 보여 준 창의적 성과물들은 인문학적 측면과 과학 기술의 여러 분야가 단순히 복합하거나 결합하는 차원이 아닌 융합을 거쳐 통섭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카슨의 성과를 굳이 명명해 보자면 '생태문예환경학(『침묵의 봄』)' 혹은 '생태문예해양학(『우리를 둘러싼 바다』)' 정도가 될 것이다. "
"서로 다른 형태로 수용된 각각의 데이터가 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