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3. <셔터를 올리며> 읽고 나눠요

D-29
4-1. <라면과 최루탄>을 읽으며 지난 장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장에서도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소망분식 저자의 어머니와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엄마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외계인 같은 존재. 비밀을 간직한 엄마가 소망분식 떡볶이 판 앞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지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그 뒤로 이어진 최루탄 냄새 자욱한 이야기만큼이나 뭉클하네요. 물론 87년을 역사의 한 페이지 남짓이 아닌 스스로의 삶 전체로 살아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현재를 별 희생 없이 누리고 살며 숙연해 지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80년 5월뿐만이 아니라, 그때부터 이어진 하루하루를 광주에 빚 지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80년을 겪었던 사람들은 87년에도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사회를 향해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4-2. <라면과 최루탄>의 문장들 (95쪽)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소망하며 우리는 큰다. 그런데 때로, 아니 종종, 소망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113쪽) 그러는 담임선생님도 금남로로 향하는 스쿨버스에 올랐다. (114쪽)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4-3-A. <라면과 최루탄> 그리고 싫어하는 음식 ‘제육볶음’을 싫어합니다. 엄밀히는 양념이 범벅된 고기볶음을 전반적으로 다 꺼려요. 아마도 학교 다닐 때 급식의 기억 때문일 것 같은데, 그 양념 범벅된 고기를 뚫고 올라오던 뭔가 불쾌한 고기 비린내를 경험하고 나서는 급식이든, 식당에서 사 먹는 것이든 그 양념 범벅된 고기에 덜컥 거부감이 생기더라고요. 학교 급식에서 경험했던 정체모를 ‘국’들도 물음표가 떠오르는 음식들이긴 한데, 그때 먹었던 ‘양파국’, ‘파국’ 이런 것들은 학교를 벗어나고 난 뒤로는 접할 일이 없어 그냥 전설의 음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4-3-B. <라면과 최루탄> 그리고 그때 그 시 이성복, <그 여름의 끝> ... 우연히 만난 이 시가 참 좋았습니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4-1 군사정권 시절 대학교 주변에서 자영업 했던 분들은 참 힘들었을거예요. 일상의 삶뿐 아니라 생각도 제약을 많이 받았던 시절이었죠. 내 속을 드러내기 힘들었던 감시사회였는데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엄마의 삶을 대하는 자세는 본받아야겠습니다. 4-2 p. 91 질질 짜면 뭐 한다 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앞만 보고 가야제. P.94 가격이란 용어에는 현실에서 갖는 의미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는 분명 엄마의 자존심 가격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엄마는 결코 자존심을 낮추지 않았다. P. 95 소망하며 우리는 큰다. P.101 대통령의 친척이 수천억원을 빼돌렸고, 전두환이 올림픽을 핑계로 독재 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럴 때마다 이층 누나는 누구는 수천억을 빼돌리는 사이 자신은 10원짜리 한 닢 때문에 시말서를 써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며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켰고 나머지 두 사람도 소주잔을 부딪쳤다. P.108 사람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심성이 좋은 분이었다. 따뜻한 교육자였다. 그러면서 시대가 만들어낸 기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시간의 진흙탕을 거쳐 왔다. 4-3 저는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짜장? 짬뽕?"하면 짬뽕입니다. 누군가 '여기 짜장면 진짜 맛있다'라고 해서 권하면 딱 한 번 맛만보고 더는 먹지 않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였지만 짜장면을 처음 먹은날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은 '내가 조금만 철이 들었더라도 맛있게 먹는 척이라도 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을텐데.'라는 죄송함이 큽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재정적 어려움이 컸고 따로 살아 한달에 두번정도 아버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외식은 꿈도 못 꾸었는데 제 생일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짜장면을 사주시겠다고 중국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짜장면이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입 입에 넣었다가 뱉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맛없다고 안 먹은 것이죠. 난처해서 어쩔줄 몰라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조금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줬더라면...
4-1. 책을 읽으며 저의 콧끝에도 최류탄 냄새가 느껴지는 듯…. 대학교 내의 부속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이유로 유난히 최류탄을 많이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수업중에도 대학생들은 대모를 하고, 캠퍼스 안에는 최류탄이 터지고, 고등학생인 우리는 울며 수업 받고…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에 정치에 관심도, 생각도 없었는데, 작가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4-2. p109 “이런 사람의 시는 배우지 않아도 돼.” 친구들이 의아해했고 누군가 손을 들어 물었다. “시험에 나오면 어떡합니까?” “나는 일단 교내 시험에는 이 사람의 시를 출제하지 않을 테고, 연합고사에 나올 것에 대해서는 각자 준비해라. 미안하다.” 이런 선생님 밑에서 배우고 싶네요. 국어 선생님 정말 멋지십니다!!! 4-3. A. 콩자반이요. 싫어합니다. 도시락에 소세지나 계란 후라이 한번 싸가보지 못했을만큼 가난했습니다. 그 때 나의 도시락 반찬으로는 언제나 멸치볶음과 콩자반이었습니다. 지금도 멸치볶음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콩자반을 사실 거의 먹질 않습니다. ㅎㅎ B. 사춘기 때도 지금도 이상을 좋아합니다. 물론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상의 시가 참 멋지다고 생각하며 좋아했습니다. 시구절을 나눠 달라면…. 힘들어요~
4-1. 작가가 보낸 시절을 보낸 동시대 사람이라, 옛생각이 새록새록 합니다. 특히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폭력을 행사하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4-2.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심성이 좋은 분이었다. 따뜻한 교육자였다. 그러면서 시대가 만들어낸 기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시간의 진흙탕을 거쳐왔다. ☞ 아무리 나쁘지 않더라도, 폭력 만으로도 이미 나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3. 저는 싫어하는 음식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닭발 입니다. 닭발은 왠지 ... ;; 안땡기네요 ㅎ 이유 없이요.
4-1. 여러분은 이 장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 봉달호 작가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삶의 무게를 가볍지 않지만 담백하게 풀어내는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자영업 현장에서 관찰한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서 두 부모님의 서로 다른 성향을 읽어내는 부분이 재미있었고, 중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모순적인 면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이해하는 문장도 아주 인상적이네요. 저라면 아무리 기괴한 시대였어도 폭력적인 교사를 따뜻한 교육자로 보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작가님의 그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모순적인 세계를 모순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한다는 게 바로 이런 글쓰기구나 싶어요. 4-2. 이 장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 89 내가 놀랐던 건 엄마의 변신이었다. 엄마는 강했다. 1년 정도 짧게 '사모님' 생활을 경험한 엄마는 아빠가 심신이 망가진 상태로 드러눕자 이미 지나간 일에 애틋해 봐야 뭐 하겠느냐는 표정으로 곧장 강철처럼 달궈졌다. 앞치마를 둘러매고 분식집 아줌마로 변했다. → 93 엄마는 원래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소망분식 라면에 엄마가 유독 정성을 기울인 이유는 그런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윤이 적더라도 최소한 나쁜 평가는 듣고 싶지 않다는 자격지심이었으리라. 손님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라면 하나에도 최선을 다했다. → 106 세월 지나 사용하게 된 표현이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폭력 교사'로 통하는 교사였다. 학생을 때리지 않는 교사가 거의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거친 선생님이었다. → 108 사람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심성이 좋은 분이었다. 따뜻한 교육자였다. 그러면서 시대가 만들어낸 기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시간의 진흙탕을 거쳐왔다. 4-3-A. 출판사에서 ‘싫어하는 음식을 주제로 앤솔러지’(p.87) 작업 제안에 지은이는 싫어하는 음식 대신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음식’(p.115)으로 떡볶이를 떠올리며 편집자에게 답장 메세지를 보냅니다. 여러분들도 특정한 기억 혹은 경험 때문에 기피하게 된 음식이 있나요? 어떤 기억 때문에 그 음식과 멀어졌나요? 그믐북클럽 3기 멤버들만의 싫어하는 음식 앤솔러지를 만들어 봅시다. → 부산 토박이인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돼지국밥'입니다. 돼지 냄새가 싫다거나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린 것은 아닙니다. 돼지국밥은 언제나 충분한 맛과 영양을 제공하고 훌륭한 술안주가 되어주는 즐겨 먹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싫은 음식으로 꼽는 이유는 돼지국밥이 부산에서 다른 국밥의 가능성을 말살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국밥은 순댓국입니다. 돼지국밥 전문점이라면 어디나 있는, 돼지국밥 국물에 순대 몇 점 들어간 순대국밥이 아니라 얇게 썬 머릿고기와 각종 내장과 순대가 들어가고 들깨가루를 첨가해 구수하게 먹는 그 순댓국 말입니다. 7년 전 순천역 앞에서 난생 처음 순댓국을 먹은 후로 저에게 국밥은 곧 전라도식 순댓국의 다른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는 순댓국 전문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순댓국이란 음식을 두고 부산 사람들과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죄다 돼지국밥만 찾기 때문입니다. 여기를 봐도 돼지국밥, 저기를 봐도 돼지국밥입니다. 물론 돼지국밥에는 아무 죄가 없고 제 입맛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사는 곳이 돼지국밥의 고장, 아니 돼지국밥만 존재하는 고장이라는 사실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저처럼 순댓국 좋아하는 부산 사람, 어디 없나요?
4-1 사춘기가 시작된 작가님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준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자랑스럽습니다. 그해 6월, 새 역사를 만드는 날 저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나 자료나 미디어를 통해 본 그날의 흔적은 너무 가슴이 아프고 화가나고 슬픕니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문장 속에서 그 날의 아픔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어요. 4-2 (P94) 거기에는 분명 엄마의 자존심 가격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엄마는 결코 자존심을 낮추지 않았다 (P108) 사람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심성이 좋은 분이었다. 따뜻한 교육자였다. 그러면서 시대거 만들어낸 기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시간의 진흙탕을 거쳐왔다. (P114)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4-3 A. 저는 홍합을 싫어해요.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날 김이 모락모락나는 홍합을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날 밤, 저희 오빠가 홍합을 먹고 체했는데 정도가 너무 심해 응급실에 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후로 저희 집에서는 홍합을 더이상 먹지 않았어요. 홍합 먹고 체한 기억 때문에 오빠만 먹지 않는 음식이었는데 가족 모두가 먹지않게 됐어요.
4-1 최루탄 냄새와 데모의 현장에 있다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을 거예요. 그 당시 두려워 피하는 것이 아닌 당당히 참여하는 것이 용기이며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네요. 당시의 광주 현실을 덤덤히 그리고 있지만 큰 시련의 시기였을 거예요. 하지만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하나되어 나서는 모습은 가슴이 퍽차게 하네요. 아픈 역사이지만 정의를 위해 저항하는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그 역사가 과거의 역사가 아닌 지금의 역사가 되고 미래의 역사로 지속되길 바라요. 4-2 1층에 사는 삼 남매 아빠는 택시 운전기사였는데, 하루는 그 집 둘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빠도 데모하러 나갔다 오셨다!" 그래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114쪽 4-3 A 저는 '감'을 싫어해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가을이 되면 할머니는 대봉이라 불리는 감을 보내주셨어요. 얼마나 많이 보내주셨는지 한겨울 내내 먹을 간식거리로 감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 중 엄청 떫은 것을 먹고 고생을 했어요. 혓바닥에서 느껴졌던 떫은 맛에 놀라 연신 혓바닥을 닦아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이후부터 먹는 것을 거부했던 것 같아요. 감하면 단감도 안 먹지만 그래도 곶감은 먹는 답니다. ㅎㅎ B 사춘기 시절에는 시나 문학보다는 교과서나 문제집만 보며 지내왔는지 교과서 시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그래도 4장을 읽고 시를 떠올려 보니 '마르틴 니묄러'의 시 <처은 그들이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저항하는 6월의 광주시민가 달리 요즘 현실에 무관심하고 안일한 모습을 반성하게 되네요. ‘처음 그들이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4-2 109쪽 <바른길>이라는 제목의 잡지였다. (...) "우리는 피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라는 문장이 표지 오른쪽 상단에 적혀 있었다. 108쪽 사람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심성이 좋은 분이었다. 따뜻한 교육자였다. 그러면서 시대가 만들어낸 기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시간의 진흙탕을 거쳐왔다. : 시간의 진흙탕이라는 표현이 참 와닿았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옳다고 믿지만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들이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게 됩니다. 94쪽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전천후 만능이었고 강철이었다. 평소 엄마는 좀 무뚝뚝한데 장사꾼으로서 엄마는 또 달랐다. 쾌활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 이 문장에서 나도 혹시 가족들에게 그러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사회에서는 나는 철저히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된다. 친절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한 피로도를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풀지않도록 항상 조심해야겠다. 91쪽 그게 엄마의 장기였다.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질질 짜면 뭐 한다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앞만 보고 가야제" 나중에 삼남매가 모여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엄마가 했던 말이다. 89쪽 내가 놀랐던 건 엄마의 변신이었다. 엄마는 강했다. 1년 정도 짧게 '사모님' 생활을 경험한 엄마는 아빠가 심신이 망가진 상태로 드러눕자 이미 지나간 일에 애틋해 봐야 뭐 하겠냐는 표정으로 곧장 강철처럼 달궈졌다. 앞치마를 둘러매고 분식점 아줌마로 변했다 : 정말 공감이 가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참 힘들었을텐데 잘 이겨내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4-1 전 왠지 엄마의 이야기가 참 와 닿더라구요. 질질 짜기 보다 그냥 앞만 보고 가는~ 어차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민없이 바로 일어나 다음 행동을 하는게 최선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한 엄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이 사업적 소질과 마인드도 훌륭한 어머니한테서 물려 받은 게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에서 학생 때부터 시간의 진흙탕 속에서도 소신있게 잘 해오신 삶의 모습들이 예상됩니다. 두려울 수 있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돌진하는 모습도 어머니와 닮은 것 같습니다.
4-1 - 분식이라는 사업 아이템의 특수성이 환기되는 챕터였습니다. 저비용의 식재료에 강한 향신료의 메뉴라 숙련된 조리 스킬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맛을 낼 수 있는 낮은 진입 장벽. 4-2 - 95/소망하며 우리는 큰다. 그런데, 아니 종종, 소망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4-3 - A/성장기 내내 편식을 하고 살았어서 god의 짜장면같은 기피 음식이 없네요. 물론 지금은 대충 아무거나 다 먹게 되었지만 음식에 대한 디폴트값이 거부였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기피 음식이 딱히 없는 거 같습니다. 체지방율에 신경쓰는 삶을 살다보니 액상 과당과 정제 탄수화물을 기피하고 있긴 한데 이건 인간적이지도 않고 그냥 좀 그렇네요.
4-1. 저의 부천대학교 근처에서 거주하던 저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도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대학근처라 그런지 당시에는 몰랐지만 벽에는 그라피티처럼 DEMO라는 빨간색 페인트칠도 많이 있었고 어느날은 어른들이 밖에 나가지 말라고도 하시고 시끌시끌하던 나날들이 떠오르네요 무엇보다 어머니와 같이 시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길 집앞 도로가 뽀얀 최루탄으로 뒤덮히고 막연한 기억입니다. 지금생각해보면 당시 철부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던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걱정도 되고 그렇게 편안하게 어린시절과 지금것 살아온 나날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대학생들이 싸워서 얻어진 환경이라고 생각이 드니 고맙기도 하고, 또 대학생들도 사실 애들인데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라는 생각도 스치고 복잡하네요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가 훗날 지금 어린애들이 저처럼 추억할 과거가 될테고 그들이 무탈히 성장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현재인의 책임이 있진 않나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4-2. 이 장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엄마는 언제나 푸짐한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화답했고 가게에는 항상 농담과 웃음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p.95 4-3. 기피하는 음식은 엉뚱하게도 도라지무침입니다. 이것도 어린시절 강렬한 기억때문인데요 배고픈 어느날 하얀 도라지무침이 감자볶음인줄알고 한웅큼 집어먹고선 감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입안이 얼얼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도라지무침이라고 크게 싫어할 이유는 없을텐데 말이죠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기대와 다를때의 결과였죠. 정말 마음먹기나름이라고 제가 기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연결되서 따라온다는게 너무 흥미로운것 같습니다.
ㅋㅋ 저도 도라지무침 싫어했던 기억이 갑자기 소환되네요 어른들이 신기했어요 이 맛없는 것을 왜 먹으라고 하는지 이해할수 없었어요, 그런데 나이 먹으니 없어서 못먹는 도라지무침이 되었네요 특히 저는 오이랑 양파랑 같이 무치면 넘 맛나더라구요
4-1 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 국민교육헌장 암기하기, 애국가 4절까지 틀리지 않고 쓰기 정말 그런 시절을 지나왔네요 저는 '갱지'란 단어에 훅 끌렸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알까요? 갱지? 이문열의 <변경>인가 기억이 가뭇가뭇한데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등장인물이 종이가 없어 학교 운동장에 그림 그리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부분이 생각났어요... 우리나라의 빠른 성장을 한세대에 체감하다니...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머님의 장사수완은 그냥 나오는게 아닌듯 합니다. 역시 천재의 감으로 장사도 어떻게 하면 잘되는지 아셨던 게지요...멋짐 뿜뿜 입니다. 위의 언니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집에서 했다가 얼마나 혼났던지... 정말 그 시절 그랬습니다. 4-2 p95 가게에는 항상 웃음과 농담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엇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p111 "너무 치우치치는 마" 4-3 저는 정호승님의 '슬픔이 기쁨에게'가 떠올랐어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랑 같이 암송했던 기억이...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장 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린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4-1 최루탄 시대…. 책으로만 본 역사의 한 장 면이 작가님의 사춘기 시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글로 배운 처참했던 역사의 사건이 작가님과는 너무 가까운 현실과 맞닿아 있어…. 4-2 p. 114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4-3 << 쑥국>> 국민학교 때 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00시에서 제일 큰 학교였기 때문인지 다른 곳에 비해 일찍 급식을 했습니다. 그 시절 급식은 급식실이 아니라 음식이 담긴 카트가 각 교실로 와서 교실에서 배식을 했던 시스템이였습니다. 그래서 각자 배식을 받아 책상에서 밥을 먹고 담임 선생님께 잔반 검사를 받았지요. 그 때 담임선생님은 유달리 잔반에 민감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봄 이였겠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쑥국이 나온 날 우리반 아이들은 대부분이 난리가 났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쑥국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잔반은 남기지 않아야하는데 쑥국은 정말 먹게 힘든 음식이였죠. 저는 다행히(?) 꾀가 바삭해서 우유급식 때 받은 우유를 얼른 먹고 그 빈 곽에 쑥국을 다 옮겨 담았습니다.(그 때 제 키가 커서 뒷좌석에 앉았기 때문에 가능했죠?! 모든 운이 따라 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사통과로 식판을 반납했는데…. 평소에고 입이 짧아 늘 선생님의 잔소리를 받던 아이는 쑥국 때문에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불행이도 그아이는 제일 첫줄이라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 그 아이는 선생님 명령에 억지로 쑥국을 먹다 식판에 먹던 음식을 개어냈습니다. 그 모습이 어린 기억에도 너무 안타 까웠지만 그 시절 선생님은 무서운 존재라 아무도 그 아이 곁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면 아동학대인 일들이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많았을 까요?!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저도 쑥국이 싫은데 그 아이는 아마 쑥 자만 나오면 진저리를 칠 것 같습니다.
4-1. 4장에는 학창시절 선생님과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읽다가 예전 체벌하던 중학교 선생님 생각나서 혼났습니다. 촌지 받는 거 좋아하시고, 조금 잘 사는 아이들 좋아하고 못 사는 아이들 무시하던 아주 못된 선생님이었죠. 선생님은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고 공부도 중위권에서 맴돈 저라는 사람은 매질할 때는 제외하고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작가님의 시대보다는 조금 늦게 태어난 사람으로 최루탄의 냄새는 저에게는 희미했지만 청춘의 아픔에는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4-2. 어느 날 목욕탕에 갔더니 사타구니에 검은 터럭이 풀처럼 돋은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몸에도 새 역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웠다. 그러나 올 것은 와야 했고, 거부하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세상은 물레처럼, 미싱처럼 돌았다. (p99) 4-3. A. '싫어하는 음식'이었던 곰탕에 대한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꼬꼬마시절 엄마는 곰탕을 한 솥 끓여놓고 집을 며칠 비우신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해 뜨기 전에 나갔다 한밤중에나 퇴근하셨지요. 곰탕에 소금과 후추를 넣어 간을 하고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소금을 곰탕냄비에 넣는 도중에 그만 소금통 뚜껑이 떨어져 그 안의 모든 소금이 곰탕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같아서야 배달음식을 시켜먹던지 했었을텐데 집에 곰탕 외에는 다른 먹을 음식이 거의 없었고, 곰탕을 다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바닷물보다도 더 짠 곰탕을 3일 내내 다 먹었습니다. 짠 맛 때문에 속이 안 좋아 구토도 했고, 곰탕의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났었습니다. 지금은 곰탕을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돼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는데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이 아찔합니다. B. 그 시절에 저는 만화책만 탐독했습니다. 시는 안중에도 없던 시절...
4-1. 가정방문과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처럼 세들어살던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시를 줄줄 외우던 중학생 시절이라니 정말 낭만적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낭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들었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많은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생생한 글이 좋았습니다. 4-2. 범죄, 전쟁, 종교, 사랑이 범벅된 혼돈의 1980년대 중반이었다. (중략) 두려웠다. 그러나 올 것은 와야 했고, 거부하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세상은 물레처럼, 미싱처럼 돌았다. p99 4-3.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적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중에서 이 구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절,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시였어요!
4-1. 강인한 어머니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랄 수 있었던 작가님은 행운아십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스스로는 얼마나 고독한 싸움을 매일매일 치뤄냈을지 생각해보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누워있는 남편, 세 아이들 생각에 막막했겠지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4-2. "질질 짜면 뭐 한다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앞만 보고 가야제." // 평소엄마는 좀 무뚝뚝한데, 장사꾼으로서 엄마는 또 달랐다. 쾌활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는 세상을 포기한 아빠가 누워 있어 한숨짓다가도, 방문을 열고 가게에 나서면 표정이 확 달라졌다. 4-3. '삶은메추리알'을 싫어합니다. 역전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모가 있었는데, 서울에서 주말이면 기차 타고 내려오는 아빠를 기다리며 그 집에서 몇 시간씩 놀곤 했습니다.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삶은메추리알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어느 날 그걸 먹다가 급체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아빠가 왔는데도 놀지도 못하고,, 이후로 삶은 달걀같은 것은 목이 메어 잘 먹지 못하겠어요.
벌써 사장이네요. 그런데 그믐의 다른 모임에서도 모임지기분이 말씀하셨듯, 한 권의 책으로 29일은 좀 긴듯한 느낌이 없지 않네요. 빅 히스토리에 그 기간이면 괜찮겠지만, 에세이는 좀; 한창 재미지게 읽을 때 답변을 하면 더 생생한 반응?이 나올터인데 그간 다른 책들을 더 읽게 되니;; 그래도 대단히 오래 전은 아니지만, 되돌아보며 다른 분들의 반응을 보는 점에서는 유의미한 듯도 하네요~ 저도 윗분 말씀처럼 "질질 짜면 뭐 한다냐."로 하겠습니다. 인생의 굴곡을 지나신 분들 많으시네요. Imf니 subprime mortgage니 변동금리니;; 공통으로 겪는 일들이 코호트 경험처럼 있어 그런가 봅니다. 물론 그럼에도 평탄대로를 지나는 사람들도 있고^^ 세번째는 영끌한 일부 중 잘못된 선택을 한 ㅜㅜ 극히 더 일부의 이야기겠지만; 안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바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선지국입니다. "피 채로 먹지 말라"셔서 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에 남는 시는,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한용운님의 <나룻배와 행인>을 좋아했습니다. 님의 침묵까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둘을 엮어보면? 푸른 산빛을 깨치고 난 작은 길을 따라서 아아 님은 갔습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이셔서 당신은 나를 즈려밟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리 가시는구먼요~ 꺼이꺼이. Feat. 진달래꽃도 살짝 섞었습니다. 저도 한 십키로 쯤 빠졌다가, 저녁에 무한리필 밥집 가서 파이팅 좀 했더니 다행히! 😭 다시 반등했습니다. 이눔의 변동금리는 이젠 진짜 결별해야 할 시기가 왔지 싶은데, 아니 곧 오지~ 와야지! 말입니다 ㅠㅠ
댓글 중에 @siouxsie 님의 '김밥 상한가'라는 말이 재미있네요. 저의 마음속 김밥 상한가는 4,500원입니다(야채김밥 기준). 최근에는 8천 원이 넘는 김밥도 보았어요..! 4-1.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가정방문 부분을 읽을 때, 작가님께 감정 이입이 되어 곤란한 마음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가정방문을 경험해본 적이 없네요. 대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담임 선생님이 학기초에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서 "너희 집엔 방이 몇 개니 차는 몇 대니" 하고 물으셨던 게 생각이 나요. 이런 식의 가정조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도 가정방문을 하는 곳이 있으려나요? 4-2. "엄마는 언제나 푸짐한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화답했고 가게에는 항상 농담과 웃음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볼까 봐 분식점 앞문으로는 드나들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골목을 돌아 양옥집 대문으로 들어갔다. 상가에 붙은 방에 갈 때도 언제나 뒷문을 이용했다. 그 방에는 밤낮으로 아빠가 누워 있었다." 4-3. A 슬프거나 아픈 추억이 깃든 음식이어도 먹기는 잘 먹습니다. 음식엔 죄가 없으니까요..ㅎㅎㅎ! 기피한다기보단 조심히 먹는 음식은 하나 있어요. 바로 엿인데요. 어렸을 때 판으로 된 갱엿을 사서 망치로 부셔서 간식처럼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다른 집도 그렇게 먹었으려나요). 갱엿을 씹어 먹다가 이가 하나 깨진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엿을 잘 먹진 않지만 가끔 먹을 땐 조심히 먹게 돼요.
p95 엄마는 언제나 푸짐만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화답했고 가게에는 항상 농담과 웃음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힘겨워진 상황에서도 자녀들에게 희망을 품게 해주신 엄마 아이들의 건전한 성장에 온 힘을 다해 살아주신 것 같습니다 詩를 외우고 있엇던가를 어렵게 떠올려 보았습니다 새 -박남수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ㅡ포수은 한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새에 지나지 않는다.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다산북스/책 증정] 『공부라는 세계』를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경계를 허무는 [비욘드북클럽] 에서 읽은 픽션들
[책 증정]  Beyond Bookclub 12기 <시프트>와 함께 조예은 월드 탐험해요[책 증정] <오르톨랑의 유령>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9기 [책 증정] <그러니 귀를 기울여>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3기 [책 증정]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2기
연뮤클럽이 돌아왔어요!!
[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노란 책을 찾아라!
안노란책 리뷰 <초대받은 여자> 시몬 드 보부아르안노란책 리뷰 <time shelter>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안노란책 리뷰 <개구리> 모옌안노란책 리뷰 <이방인> 알베르 카뮈
[그믐클래식] 1월1일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4월의 그믐밤엔 서촌을 걷습니다.
[그믐밤X문학답사] 34. <광화문 삼인방>과 함께 걷는 서울 서촌길
스토리탐험단의 5번째 모험지!
스토리탐험단 다섯 번째 여정 <시나리오 워크북>스토리탐험단 네 번째 여정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스토리 탐험단의 두 번째 여정 [스토리텔링의 비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북킹톡킹 독서모임] 🖋셰익스피어 - 햄릿, 2025년 3월 메인책[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봄은 시의 세상이어라 🌿
[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나희덕과 함께 시집 <가능주의자> 읽기 송진 시집 『플로깅』 / 목엽정/ 비치리딩시리즈 3.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3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서리북 아시나요?
서울리뷰오브북스 북클럽 파일럿 1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봄호(17호) 헌법의 시간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