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 멋대로 읽어라 2026년 4월

D-29
"걔들 탑.탑이래." 미희가 큰 비밀이라도 알아낸 것처럼 말했다. "걔들이라니?" "해도 선배 커플 말이야." "그게 뭐 어쨌는데?" 로사는 호들갑을 떠는 미희가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너 되게 담담한 척한다. 속으론 당황스럽지?" 미희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로사는 이 상황이 마치 '카프카!'라고 외치던 한 시절의 데자뷰 현상과 같다고 생각했다. '카프카!'는 그 시절 즐기던 그들만의 개그 코드였다. 모임에서 대화 도중 모순된 상황을 맞거나 이해할 수 없는 지점과 맞닥뜨렸을 때 누군가 카프카!하고 외쳤다. 카프카의 <성城>을 윤독하고 난 이후에 생긴 유희였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인간 운명의 부조리, 존재 증명의 불안, 실존적 체험의 극한까지를 의도하고 내뱉던 감탄사 놀이는 아니었다. 성 밖 아웃사이더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무위와 좌절로 점철된 주인공 K의 운명이 다들 재것인 양 짓까불던, 객기 서린 날의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성주처럼 굳건한 관료성과 온갖 부패한 사회적 시스템 앞에서 무기력한 실존을 자각한 청춘들이, 나름의 명랑한 허세로 가면 놀이를 즐기던 시절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105~ 7 , 김살로메 지음
하기야 쉽게 합일할 수 있는 게 관계라면 카프카의 성 같은 작품은 나오지도 않았겠지. 카프카는 결국 자신의 K를 성으로 들여보내지 못한 채 소설을 미완으로 남겼다. 어쩌면 의도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성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는 게 삶이란 걸 카프카는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일까.
뜻밖의 카프카 111, 김살로메 지음
'검은 숲'과 '하얀 언덕' 어쩌고 하는 말은 카프카의 메모에서 발려왔다. 프라하의 카프카 박물관에 들렸을 때였다. 문학 기행 가이드가 카프카의 자필 전시물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미발표작 메모예요. 긁게 써진 저 문구 있죠? 검은 숲의 빗자루와 하얀 언덕 위의 피리, 라는 부분이에요. 체코 사람인 카프카는 평생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로만 글을 썼다고 했다. 그렇다고 독일인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체코인으로도 유대인으로도 살지 않았다. 다만 카프카로 살았을뿐이었다. ......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오롯한 단독자로 살다가 간 카프카. 확실한 것은 카프카와 아버지는 평생 갈등했다는 전이다. 당신 뜻에 반기를 들었던 카프카를 아버지는 헛소리하는 몽상가로 치부했다. 이런 아버지에게 카프카는 열등감을 느꼈다. 그 피해의식의 산물이 <성>에 어느 정도 투사된 것이라고 했다. 카프카는 지옥 같았던 아버지와의 불화 순간을 '검은 숲의 빗자루'로, 평범하고 온화한 부자지간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를 '하얀 언덕 위의 피리'로 명명했다. 그 사이클은 카프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워낙 난해한 부분이라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따라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설명을 가이드는 잊지 않았다.
뜻밖의 카프카 113~ 5, 김살로메 지음
온전히 제 것이 되어주지 않는 해도를 앓느라 쓰고 또 썼다. 전형적인 외사랑 일기였다. 완전한 파국을 맞을 때, 로사의 일기 분량은 모두 여섯 권이었다. 로사는 그 일기장 더미를 집과 붙어 있던 공터에서 눈물로 태웠다. 그 뒤 일기장을 다시 사서 새로운 맘으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미희가 로사의 방에 기거하던 즈음이었다. 그 이후로도 태워버린 분량보다 더 많은 권 수의 대학 노트를 메운 뒤에야 해도를 잊을 수 있었다.
뜻밖의 카프카 121, 김살로메 지음
한 사람을 잊는 방식에 이런 방식도 있었구나.
<물어본다> 중에서 "엄마는 엠니지아야." "뭔 말이요?" 동생의 작은 말 함마디에도 귀가 커지는 그녀가 바투 물었다. "건망증대마왕녀인 엄마 같은 증세를 엠네지아라고 하면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영어의 엠니지아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기억상실을 뜻하는 거였다. ...... 건망증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메모를 하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강박이요, 좋게 말하면 습관이다. 하지만 수첩에 적어둔 메모까지 까먹을 정도이니 그게 좋은지 나뿐지 나로선 판단이 서지 않는다.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그녀는 아무 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메모한다. 정작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끈질기게 기억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쉽게 까먹는 게 건망증의 최대 속성이긴 하다. 아무래도 건망증은 심리적인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뜻밖의 카프카 139~140, 김살로메 지음
내 말이. 잊어먹지 않겠다고 열라 메모하면 뭐하나 그것조차 잊어버리면 말짱 꽝인 걸. 그래도 메모를 해야하는 건가? ㅠ
인생이라는 게 어디 계획대로 되가나 하던가. 하루하루 그냥 살아 내면 그게 한 삶의 궤적이 되는 거다. 그녀 흔적이 성공적이라 할 수 없듯이 지금 내 흔적이 실패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나. 그러니 그녀여, 부디 내 충만한 하루의 우울에다 당신 고단한 옷자락일랑 적시지 말기를.
뜻밖의 카프카 145, 김살로메 지음
이 작품은 딸이 엄마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엄마라 하지 않고 '그녀'라고 쓴 것만으로도 한마디로 앙팡지다. 게다기 이제 고등학생밖에 안 된 여자애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쁘게 말하면 발랑 까진 거고, 좋게 말하면 조숙하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ㅋ
그녀의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납금이니, 수학여행이니, 교과서 대금이니 따위의 공식적인 비용 외에 사교비나 용돈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그녀의 부모 탓에 그녀는 많이 위축되었다. 더러 사교의 장에서 유머와 미소가 돈 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염치없음의 민망함을 위트란 재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뜻밖의 카프카 149, 김살로메 지음
어쩌다 텔레비전을 같이 볼 일 있으면 우리 세 식구는 그녀와 될 수 있으면 멀리 앉으려고 한다. 저건 저래서 어쩌구, 그건 그래서 어쩌구. 드라마를 제 방식대로 쪼개고 자르고 찢기 때문에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는 편두통을 앓을 지경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봐. 즐기라고. 아무리아빠와 내가 핀잔을 줘도 소용없다.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일지만, 그녀의 판단은 때로 너무나 주관적이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에 대한 그 어떤 호불호를 갖지 않은 채오로지 웃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는 나머지 셋은 속으로만 '입닥쳐!'를 외칠 수밖에 없다. 될 수 있으면 그녀와 멀리 앉는다. 그래도 시청에 방해된다면, 하나 둘 슬그머니 일어나 작은 텔레비전이 있는 안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불안한 그녀 내면 때문에 삶이 지겨워지는 중이다. 불안하니 작은 것에도 자꾸만 시비를 걸게 되는 것이다. 그 나이쯤이면 자연스레 들어차는 막연한 불안감을 그녀는 직면하고 있다.
뜻밖의 카프카 154~ 5, 김살로메 지음
중년 여성에 대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근데 나 역시 유재석은 별로다. 그는 웬지 알려진 것에 비하면 좀 과대평가된 느낌이 있는데 언젠가 친구 모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별로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런 것으로 봐 유재석에 대한 신뢰가 생각 보다 강한 것 같이 그후 그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는데 여기서 딱 걸렸다. ㅋㅋ
그녀는 고스란히 자신을 잃고 있는 중이다. 그 허기는 성과나 완성이라는 가시적인 현실을 마주하지 못한 자의 자괴감처럼 읽혔다. 열정은 있으되 너무 안으로만 머문 그녀는 이렇다 할 생산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모하기라도 했으면 망하거나 승한 것 중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 이도 저도 아닌 그녀 삶에 스스로 불안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 내면을 읽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는다. 섣불리 위로하지도 않는다. 대신 반으로 잘린, 씨를 걷어내 속이 빈 참외를 한 입 크게 한 입 크게 물어본다.
뜻밖의 카프카 156, 김살로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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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바람에 흩어지고 온기에 사라지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클수록 내 안의 안개는 희 소금처럼 커다란 기둥을 만들었다. 악몽인 듯 환영인 듯 그 안개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를 옥쬈다. 내가 목도한 풍경을 부정할수록안개는 위무도 달램도 없이 커다랗고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를 몰아세웠다. 너는 봤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귓가를 때리는 그 목소리는 내 뱃속 기둥까지 욱신하게 파고 들었다.
뜻밖의 카프카 199, 김살로메 지음
<따뜻한 컵 프로젝트> 중에서 사랑의 속성은 사나브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금세 빠져드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고, 설득할 수 없어야 사랑이었다. 논리와 합리에서 멀어질수록 사랑의 감정은 진실할 것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225, 김살로메 지음
누구든 두 세계를 살아. 눈앞의 햇살에서 뒷문의 그림자까지를 다 자기 안에 품고 있다고. 왜 괴롭고 힘든지 알아? 그건 악마와 천사가 동의어라는 걸 자주 깨닫기 때문이야. 그런 순간으로 자주 내몰린다는 게 유쾌할 리 없낞아. 그런 통찰에 이르렀더라도 겁먹진 마. 진정한 승리자기 되려면 그런 생각자체를 빨리 놓아버리면 되거든. ...... 심연 없는 낙천과 명랑한 직설이 조화로운 오디는 일시적이고 물리적인 상황에 휘둘려 긍정이나 냉정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지닌 천성적인 건강함으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택을 할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믿기는 쉽고 밉기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뜻밖의 카프카 232~ 3, 김살로메 지음
<니암카가 오신다> 중에서 하청순은 단장의 책상에서 다음과 같은 메모를 발견했다. main charcter, 메인 캐릭터=>niam retcarahc, 니암 렛카락, niamca 나암카. 영화나 연극에서 주인공을 가치키는 메인 캐릭터를 자신만이 알 수 있도록 철자를 거꾸로 표시한 것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김살로메 지음
"왜 저 자리에 들면 다들 이상해질까?" (......) "반쯤 미쳐야 군림할 수 있어." 하청순이 말했다. "무슨 뜻이야?" "불안할수록 눈앞에서 확인하려는 욕망은 강하지." "불안을 잠재우려 참석자 수에 그렇게 집착한다는 거야?" "그럴수도. 군중 없는 권력은 무의미하니까." "......?" "봐봐. 당장 우리부터 개돼지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잖아." "너무 그러지 마. 우린 정당한 노동 대가를 받고 애쓰고 있는 것 뿐야. 저글링 횟수로 전 직원을 평가하지 않는 게 어디야?" 나는 저글링 실력을 직원 평가 지수로 활용한다는 모 회사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건 수동적 식물성을 요구하진 않잖아."
뜻밖의 카프카 263~ 4, 김살로메 지음
대둥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지나친 열정이 습관처럼 니암카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불안의 맛을 즐긴다. 그 말이지?" 하청순을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군중들의 함성에 그 소리는 묻혔다. "여기 모인 여러분이야말로 이 도시의 파수꾼이요, 견인차 역할을 하는 분들입니다. 모든 이가 만족할 수 있는 물의 도시 재건 사업을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판에 박힌 인사말을 믿기라도 하듯 박수와 함성이 다시 터졌다. 모두 니암카의 크고 작은 우산을 받고 사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니암카는 오지 않을 수는 있어도 오늘처럼 온다면 확실하게 오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지 않아도 항상 있는 자였고, 오지 않아도 늘 오는 자였다. 기다리지 않을수록 자주 왔고, 가라고 떠밀어도 옆에 있는 존재였다.
뜻밖의 카프카 266~ 7, 김살로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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