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 멋대로 읽어라 2026년 4월

D-29
그녀의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납금이니, 수학여행이니, 교과서 대금이니 따위의 공식적인 비용 외에 사교비나 용돈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그녀의 부모 탓에 그녀는 많이 위축되었다. 더러 사교의 장에서 유머와 미소가 돈 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염치없음의 민망함을 위트란 재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뜻밖의 카프카 149, 김살로메 지음
어쩌다 텔레비전을 같이 볼 일 있으면 우리 세 식구는 그녀와 될 수 있으면 멀리 앉으려고 한다. 저건 저래서 어쩌구, 그건 그래서 어쩌구. 드라마를 제 방식대로 쪼개고 자르고 찢기 때문에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는 편두통을 앓을 지경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봐. 즐기라고. 아무리아빠와 내가 핀잔을 줘도 소용없다.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일지만, 그녀의 판단은 때로 너무나 주관적이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에 대한 그 어떤 호불호를 갖지 않은 채오로지 웃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는 나머지 셋은 속으로만 '입닥쳐!'를 외칠 수밖에 없다. 될 수 있으면 그녀와 멀리 앉는다. 그래도 시청에 방해된다면, 하나 둘 슬그머니 일어나 작은 텔레비전이 있는 안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불안한 그녀 내면 때문에 삶이 지겨워지는 중이다. 불안하니 작은 것에도 자꾸만 시비를 걸게 되는 것이다. 그 나이쯤이면 자연스레 들어차는 막연한 불안감을 그녀는 직면하고 있다.
뜻밖의 카프카 154~ 5, 김살로메 지음
중년 여성에 대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근데 나 역시 유재석은 별로다. 그는 웬지 알려진 것에 비하면 좀 과대평가된 느낌이 있는데 언젠가 친구 모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별로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런 것으로 봐 유재석에 대한 신뢰가 생각 보다 강한 것 같이 그후 그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는데 여기서 딱 걸렸다. ㅋㅋ
그녀는 고스란히 자신을 잃고 있는 중이다. 그 허기는 성과나 완성이라는 가시적인 현실을 마주하지 못한 자의 자괴감처럼 읽혔다. 열정은 있으되 너무 안으로만 머문 그녀는 이렇다 할 생산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모하기라도 했으면 망하거나 승한 것 중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 이도 저도 아닌 그녀 삶에 스스로 불안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 내면을 읽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는다. 섣불리 위로하지도 않는다. 대신 반으로 잘린, 씨를 걷어내 속이 빈 참외를 한 입 크게 한 입 크게 물어본다.
뜻밖의 카프카 156, 김살로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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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바람에 흩어지고 온기에 사라지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클수록 내 안의 안개는 희 소금처럼 커다란 기둥을 만들었다. 악몽인 듯 환영인 듯 그 안개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를 옥쬈다. 내가 목도한 풍경을 부정할수록안개는 위무도 달램도 없이 커다랗고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를 몰아세웠다. 너는 봤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귓가를 때리는 그 목소리는 내 뱃속 기둥까지 욱신하게 파고 들었다.
뜻밖의 카프카 199, 김살로메 지음
<따뜻한 컵 프로젝트> 중에서 사랑의 속성은 사나브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금세 빠져드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고, 설득할 수 없어야 사랑이었다. 논리와 합리에서 멀어질수록 사랑의 감정은 진실할 것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225, 김살로메 지음
누구든 두 세계를 살아. 눈앞의 햇살에서 뒷문의 그림자까지를 다 자기 안에 품고 있다고. 왜 괴롭고 힘든지 알아? 그건 악마와 천사가 동의어라는 걸 자주 깨닫기 때문이야. 그런 순간으로 자주 내몰린다는 게 유쾌할 리 없낞아. 그런 통찰에 이르렀더라도 겁먹진 마. 진정한 승리자기 되려면 그런 생각자체를 빨리 놓아버리면 되거든. ...... 심연 없는 낙천과 명랑한 직설이 조화로운 오디는 일시적이고 물리적인 상황에 휘둘려 긍정이나 냉정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지닌 천성적인 건강함으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택을 할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믿기는 쉽고 밉기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뜻밖의 카프카 232~ 3, 김살로메 지음
<니암카가 오신다> 중에서 하청순은 단장의 책상에서 다음과 같은 메모를 발견했다. main charcter, 메인 캐릭터=>niam retcarahc, 니암 렛카락, niamca 나암카. 영화나 연극에서 주인공을 가치키는 메인 캐릭터를 자신만이 알 수 있도록 철자를 거꾸로 표시한 것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김살로메 지음
"왜 저 자리에 들면 다들 이상해질까?" (......) "반쯤 미쳐야 군림할 수 있어." 하청순이 말했다. "무슨 뜻이야?" "불안할수록 눈앞에서 확인하려는 욕망은 강하지." "불안을 잠재우려 참석자 수에 그렇게 집착한다는 거야?" "그럴수도. 군중 없는 권력은 무의미하니까." "......?" "봐봐. 당장 우리부터 개돼지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잖아." "너무 그러지 마. 우린 정당한 노동 대가를 받고 애쓰고 있는 것 뿐야. 저글링 횟수로 전 직원을 평가하지 않는 게 어디야?" 나는 저글링 실력을 직원 평가 지수로 활용한다는 모 회사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건 수동적 식물성을 요구하진 않잖아."
뜻밖의 카프카 263~ 4, 김살로메 지음
대둥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지나친 열정이 습관처럼 니암카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불안의 맛을 즐긴다. 그 말이지?" 하청순을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군중들의 함성에 그 소리는 묻혔다. "여기 모인 여러분이야말로 이 도시의 파수꾼이요, 견인차 역할을 하는 분들입니다. 모든 이가 만족할 수 있는 물의 도시 재건 사업을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판에 박힌 인사말을 믿기라도 하듯 박수와 함성이 다시 터졌다. 모두 니암카의 크고 작은 우산을 받고 사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니암카는 오지 않을 수는 있어도 오늘처럼 온다면 확실하게 오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지 않아도 항상 있는 자였고, 오지 않아도 늘 오는 자였다. 기다리지 않을수록 자주 왔고, 가라고 떠밀어도 옆에 있는 존재였다.
뜻밖의 카프카 266~ 7, 김살로메 지음
<무거운 사과>
사랑 받은 적이 없어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독사에 물리는 것과 같다는 선인들의 말은 옳았다. 물리는 그 순간까지는 물린 줄도 모른다. 문근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은 독사가 지나간 뒤에나 찾아온다. 사랑의 감정은 상식과는 무관하다. 멀리 있을수록 가깝게 보이고, 망가져 있을수록 멀쩡하게 보인다. 사소하면 할수록 더욱더 크게 보이는 것. 그게 사랑이니까. 예견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사앙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마음이 아주 정상적이라고 착각하는 심리적 증후, 그것이 사랑이란 열병이다.
뜻밖의 카프카 283, 김살로메 지음
반한다는 말보다 주관적인 감정이 있을까. 그것은 실제적 진실이나 도덕적 판단과는 무관하다. 눈에 비치는 대상의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이상화하는 것, 그런 현상을 자각할 때 우리는 반한다, 고 표현한다. 상대가 원래 어떤 것이고, 어떤 재질적 특성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반하는 이유로 고려될 사항이 아니다. 반한다는 건 조건 없는 느낌 자체이니까. 그만큼 감정은 철저히 제멋대로이고, 사랑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뜻밖의 카프카 287, 김살로메 지음
좋은 일아란 무엇인가? 기쁨과 만족을 주는 보편타당한 경험을 말한다. 그럼 좋은 사람이란 기준은? 나에게 잘해줘서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사람이다. 내게 선재는 언제나 그런 기준을 통과한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한데 넘치도록 기준을 통과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만족이 아니라 느낌 그 자체니까. 그걸 아는 이상, 선재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이니었다. 객관적 시선으로 보면 C에 비해 선재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설명할 순 없지만, 자신에게 겸허한 만큼 남들에게 겸허한 결을 보여 주는 사람, 그것이 선재의 장점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284, 김살로메 지음
모두가 결핍 때문이다. 결핍 없이 충족한 영혼은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터였다. 다 가췄는데 사랑 따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자기 만족에 겹거나 희망으로 충만한 사람은 좀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관장할 곳이 많은 그들은 굳이 사랑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결핍한 자는 뭔가를 절실하게 원하는 자다. 원하는 자는 구차하게 되어 있다. 주고자 하는 격렬함은 받고자 하는 안달과 같은 밀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292, 김살로메 지음
연애중이죠? 내 아까 꽁초 버린 죗값으로 팁 하나 주리다. 젊은 아가씨, 무거운 사과 같은 건 갖고 다니지 마시오. 무거운 사과 같은 거 들고오는 여자보단 가벼운 입만 들고 오는 여자가 연애할 때는 더 예뻐 보이거든." 더 깊이 사랑하는 자, 패배자가 된다는 것을 저 재떨이와 머그컵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가 성심을 다한 문장으로 저 말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깨우쳐 주었다. 저 명제의 일부는 수긍하고 대부분은 반발했다. 반발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어떻게 변해, 라거나 사랑은 주는 거지 받는 게 아니잖아, 라며 도덕군자 같은 헛소리를 했다. 수긍하는 자들의 기준은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사랑에 상처받아 본 사람은 수긍했고, 아직 사랑할 환상이 남은 자들은 반발했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은 사랑 성찰론 가운데 가장 와닿는 말을 한 이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이었다. 중편 <토니오 크뢰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사라진 뒤에야 무지개가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어쩌자고 사랑은 패배자의 길로 먼저 유혹하는 것인지. 사랑하면 무거운 사과부터 챙긴다. 그것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달콤하고 때깔 고운 것에 눈이 쏠려 본능처럼 챙기게 되는 것이다. 상대는 무거운 사과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몹쓸 사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엉뚱한 사람이 먹을 수밖에 없다.
뜻밖의 카프카 303~ 4, 김살로메 지음
황인숙 시인의 산문집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를 오늘(5.3) 다 읽었다. 오래 전 아는 지인에게 선물로 받고 이제야 읽었다. 수채화 같은 표지만큼이나 글도 잔잔하고 힘을 빼고 쓴 느낌이다. 해방촌에서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작가 본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다. 웬지 모르게 노녀의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키득키득 웃게도 한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이런 글도 좋구나 싶다. 작가의 마지막 글에 김연아를 떠올리게 한다며 매건 애벗의 장편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를 소개한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단다. '아픔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아픔은 없어야 해.' 이게 대해 황인숙 시인은, 대개 인생은 아픈 것이다. 그럴수록 나의 시는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아픔은 없어야 해. 부디 그러기를이라며 끝을 맺는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김연아를 떠올린다니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황인숙 시인은 해방촌의 옥탑방에서 자신의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낮과 저녁 시간에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그 외의 시간에는 틈틈이 시를 쓰고 또 간간이 산문을 쓴다. 그리고 그간 써온 산문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틴에이지 걸 누아르의 선두주자 메건 애벗의 대표작으로, 국내에 메건 애벗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배리상, 에드거상을 수상하고 앤서니상에 노미네이트된 실력파 작가인 메건 애벗은 십 대 소녀의 야망과 성장을 누아르 필름처럼 어둡고 미스터리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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