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 멋대로 읽어라 2026년 4월

D-29
<니암카가 오신다> 중에서 하청순은 단장의 책상에서 다음과 같은 메모를 발견했다. main charcter, 메인 캐릭터=>niam retcarahc, 니암 렛카락, niamca 나암카. 영화나 연극에서 주인공을 가치키는 메인 캐릭터를 자신만이 알 수 있도록 철자를 거꾸로 표시한 것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김살로메 지음
"왜 저 자리에 들면 다들 이상해질까?" (......) "반쯤 미쳐야 군림할 수 있어." 하청순이 말했다. "무슨 뜻이야?" "불안할수록 눈앞에서 확인하려는 욕망은 강하지." "불안을 잠재우려 참석자 수에 그렇게 집착한다는 거야?" "그럴수도. 군중 없는 권력은 무의미하니까." "......?" "봐봐. 당장 우리부터 개돼지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잖아." "너무 그러지 마. 우린 정당한 노동 대가를 받고 애쓰고 있는 것 뿐야. 저글링 횟수로 전 직원을 평가하지 않는 게 어디야?" 나는 저글링 실력을 직원 평가 지수로 활용한다는 모 회사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건 수동적 식물성을 요구하진 않잖아."
뜻밖의 카프카 263~ 4, 김살로메 지음
대둥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지나친 열정이 습관처럼 니암카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불안의 맛을 즐긴다. 그 말이지?" 하청순을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군중들의 함성에 그 소리는 묻혔다. "여기 모인 여러분이야말로 이 도시의 파수꾼이요, 견인차 역할을 하는 분들입니다. 모든 이가 만족할 수 있는 물의 도시 재건 사업을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판에 박힌 인사말을 믿기라도 하듯 박수와 함성이 다시 터졌다. 모두 니암카의 크고 작은 우산을 받고 사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니암카는 오지 않을 수는 있어도 오늘처럼 온다면 확실하게 오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지 않아도 항상 있는 자였고, 오지 않아도 늘 오는 자였다. 기다리지 않을수록 자주 왔고, 가라고 떠밀어도 옆에 있는 존재였다.
뜻밖의 카프카 266~ 7, 김살로메 지음
<무거운 사과>
사랑 받은 적이 없어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독사에 물리는 것과 같다는 선인들의 말은 옳았다. 물리는 그 순간까지는 물린 줄도 모른다. 문근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은 독사가 지나간 뒤에나 찾아온다. 사랑의 감정은 상식과는 무관하다. 멀리 있을수록 가깝게 보이고, 망가져 있을수록 멀쩡하게 보인다. 사소하면 할수록 더욱더 크게 보이는 것. 그게 사랑이니까. 예견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사앙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마음이 아주 정상적이라고 착각하는 심리적 증후, 그것이 사랑이란 열병이다.
뜻밖의 카프카 283, 김살로메 지음
반한다는 말보다 주관적인 감정이 있을까. 그것은 실제적 진실이나 도덕적 판단과는 무관하다. 눈에 비치는 대상의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이상화하는 것, 그런 현상을 자각할 때 우리는 반한다, 고 표현한다. 상대가 원래 어떤 것이고, 어떤 재질적 특성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반하는 이유로 고려될 사항이 아니다. 반한다는 건 조건 없는 느낌 자체이니까. 그만큼 감정은 철저히 제멋대로이고, 사랑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뜻밖의 카프카 287, 김살로메 지음
좋은 일아란 무엇인가? 기쁨과 만족을 주는 보편타당한 경험을 말한다. 그럼 좋은 사람이란 기준은? 나에게 잘해줘서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사람이다. 내게 선재는 언제나 그런 기준을 통과한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한데 넘치도록 기준을 통과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만족이 아니라 느낌 그 자체니까. 그걸 아는 이상, 선재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이니었다. 객관적 시선으로 보면 C에 비해 선재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설명할 순 없지만, 자신에게 겸허한 만큼 남들에게 겸허한 결을 보여 주는 사람, 그것이 선재의 장점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284, 김살로메 지음
모두가 결핍 때문이다. 결핍 없이 충족한 영혼은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터였다. 다 가췄는데 사랑 따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자기 만족에 겹거나 희망으로 충만한 사람은 좀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관장할 곳이 많은 그들은 굳이 사랑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결핍한 자는 뭔가를 절실하게 원하는 자다. 원하는 자는 구차하게 되어 있다. 주고자 하는 격렬함은 받고자 하는 안달과 같은 밀이었다.
뜻밖의 카프카 292, 김살로메 지음
연애중이죠? 내 아까 꽁초 버린 죗값으로 팁 하나 주리다. 젊은 아가씨, 무거운 사과 같은 건 갖고 다니지 마시오. 무거운 사과 같은 거 들고오는 여자보단 가벼운 입만 들고 오는 여자가 연애할 때는 더 예뻐 보이거든." 더 깊이 사랑하는 자, 패배자가 된다는 것을 저 재떨이와 머그컵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가 성심을 다한 문장으로 저 말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깨우쳐 주었다. 저 명제의 일부는 수긍하고 대부분은 반발했다. 반발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어떻게 변해, 라거나 사랑은 주는 거지 받는 게 아니잖아, 라며 도덕군자 같은 헛소리를 했다. 수긍하는 자들의 기준은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사랑에 상처받아 본 사람은 수긍했고, 아직 사랑할 환상이 남은 자들은 반발했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은 사랑 성찰론 가운데 가장 와닿는 말을 한 이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이었다. 중편 <토니오 크뢰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사라진 뒤에야 무지개가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어쩌자고 사랑은 패배자의 길로 먼저 유혹하는 것인지. 사랑하면 무거운 사과부터 챙긴다. 그것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달콤하고 때깔 고운 것에 눈이 쏠려 본능처럼 챙기게 되는 것이다. 상대는 무거운 사과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몹쓸 사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엉뚱한 사람이 먹을 수밖에 없다.
뜻밖의 카프카 303~ 4, 김살로메 지음
황인숙 시인의 산문집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를 오늘(5.3) 다 읽었다. 오래 전 아는 지인에게 선물로 받고 이제야 읽었다. 수채화 같은 표지만큼이나 글도 잔잔하고 힘을 빼고 쓴 느낌이다. 해방촌에서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작가 본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다. 웬지 모르게 노녀의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키득키득 웃게도 한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이런 글도 좋구나 싶다. 작가의 마지막 글에 김연아를 떠올리게 한다며 매건 애벗의 장편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를 소개한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단다. '아픔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아픔은 없어야 해.' 이게 대해 황인숙 시인은, 대개 인생은 아픈 것이다. 그럴수록 나의 시는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아픔은 없어야 해. 부디 그러기를이라며 끝을 맺는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김연아를 떠올린다니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황인숙 시인은 해방촌의 옥탑방에서 자신의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낮과 저녁 시간에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그 외의 시간에는 틈틈이 시를 쓰고 또 간간이 산문을 쓴다. 그리고 그간 써온 산문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틴에이지 걸 누아르의 선두주자 메건 애벗의 대표작으로, 국내에 메건 애벗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배리상, 에드거상을 수상하고 앤서니상에 노미네이트된 실력파 작가인 메건 애벗은 십 대 소녀의 야망과 성장을 누아르 필름처럼 어둡고 미스터리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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