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2차] 현기증·감정들도 같이 읽어 봅시다

D-29
오벽님의 대화: 이 부분은 뒤에서도 나오겠지만 <사냥꾼 그라쿠스>를 연상하게 하네요
<사냥꾼 그라쿠스> 첫 쪽의 구절과 거의 같습니다. 참고하시라고 해당 구절 옮겨 놓습니다. "뱃사공이 밧줄을 꺼내 배를 정박하는 사이에 은 단추가 달린 짙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술이 길게 늘어진 꽃무늬 비단 천으로 덮인 들것을 옮겼다. 그것에는 분명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죽음, 테마명작관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국세라 옮김, 출판사 에디터, 165쪽)" <사냥꾼 그라쿠스> 역시 매우 짧은 이야기인데 카프카 작품 답게 뭔 이야기지 하면서도 끌립니다.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읽었습니다. 짧은 분량인데 뭘 말하려는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네요. '기억이란 믿기 힘든 것이다' 하는 생각을 주장하는 것도 같고, 벨, 즉 스탕달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이 이후 그의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는 것도 같고요. 과연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말한 것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짧아서 두 번 읽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뭘 말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카프카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을 삽입해서 이후 뭔가 관계를 엮어 이야기를 전개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서 더 긴장하게 만듭니다. 남은 세 작품을 다 읽어봐야 저자의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지난 번 읽었던 <이민자들> 보다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1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전장의 풍경과 실제로 그 전투가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눈으로 목격한 전장 풍경의 차이가 너무나 컸으므로, 예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모종의 현기증, 어떤 광적인 감정이 그를 엄습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20-21,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그때 마담 게라르디는, 사랑은 다른 종류의 많은 문명의 혜택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성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더 간절하게 갈망할 수밖에 없는 키마이라라고 주장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26,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죽은 나뭇가지를 기적의 예술품으로 만드는 그 오랜 결정화 과정은, 우리 영혼의 암염광산에서 성장해가는 사랑의 알레고리처럼 느껴졌다고 벨을 묘사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28,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일방적이게도, 신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어떤 것도 그 행복과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자, 그는 그만 소름끼치는 충격에 휩싸여버렸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30,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다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사실과 기억은 전혀 다르다.' 라는 문구에서 <이민자들>에서 실제 진실(사실)과 문학적 기억(허구)의 대조를 통해 만든 작품이었다면 이번 <현기증, 감정들>도 그 궤를 비슷하게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존인물이었던 스탕달을 차용한 것도 그렇고, 삽입된 그림, 사진들도 실제 진실이 아닌 기억이니까요. 그런데 저한텐 확실히 이 사실과 다른 기억들을 통해 제발트가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이민자들>보단 어렵게 느껴지긴 했습니다ㅎㅎ;; 벨이 사랑했던 여자들을 조합한 마담 게라르디가 신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자, 바로 그녀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부분에서 벨이 추구했던 '사랑의 결정화 과정'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구요... 한 예술가를 차용하여 그의 삶과 사랑을 재구성하여 문학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제발트가 말하고자 한 사랑과 욕망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고민 또한 들었습니다.
1부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짧은 분량이었음에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쉽게 다가오지 않아, 두 번 읽은 게 저만 그런 게 아니군요 !! 다른 책의 경우,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넘어가는 편인데, 제발트는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쓰기 위해 젊은 시절 충분히 연습 과정을 겪고서 40대에 이르러 소설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과 그가 늘 원고 수정 과정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문장을 뜯어 고쳤다는 일화를 들었기에 수수께기를 푸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의문을 품고 책장을 뒤적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30쪽 남짓하는 분량에서 제가 얻은 건 아직 미미하더군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제대로 짐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1부를 통해 느낀 바는 역시나, 제발트 작품답게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느낌이 강했고, 기억에 집착하는 그의 면모가 두드러졌습니다. 또한, '벨'이라는 인물이 실존인물 '스탕달'의 젊은 시절의 재현인 것을 알지만, 제발트를 알아갈수록 실존인물과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 간의 상동성은 그닥 중요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벨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제발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늘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고수하는 작품 전반적인 흐름과 달리, 그의 의도는 늘 냉철하고 때로는 신랄할 정도의 풍자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뮹님의 문장 수집: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 단락이 흥미로웠는데요, 이미지는 기억을 보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대체하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제발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특히 기억의 내용이라기보다 그것이 서술되는 방식인데 거리, 지형의 배열, 그리고 특정 산의 이름까지 호출되는 정밀한 서술은 기억의 생생함을 보증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이미 어떤 외부의 인식 틀—가령 지도적 좌표나 지리적 지식—에 의해 조직된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언제나 특정한 매개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체성은 개인의 직접적 체험이라기보다, 지리적 담론과 서술 형식이 개입된 결과로서의 재구성된 것이겠지요. 특히 마지막의 “~였을 것이다”라는 추정적 표현은, 이러한 기억이 확정된 재현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며, 기억이란 결국 확실성과 추정이 교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밥심님의 대화: <사냥꾼 그라쿠스> 첫 쪽의 구절과 거의 같습니다. 참고하시라고 해당 구절 옮겨 놓습니다. "뱃사공이 밧줄을 꺼내 배를 정박하는 사이에 은 단추가 달린 짙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술이 길게 늘어진 꽃무늬 비단 천으로 덮인 들것을 옮겼다. 그것에는 분명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죽음, 테마명작관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국세라 옮김, 출판사 에디터, 165쪽)" <사냥꾼 그라쿠스> 역시 매우 짧은 이야기인데 카프카 작품 답게 뭔 이야기지 하면서도 끌립니다.
인용 감사합니다!! 저도 얼른 이번 주 내로 <사냥꾼 그라쿠스>를 읽어 봐야겠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주 분량 안내 드립니다. 2주차(4/20-26): 외국에서(p. 35-132) 시간 내어 읽으시고 자유롭게 참여 부탁 드려요.ᐟ
헉...왜 저한테는 이 게시판이 안 떴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에서야 보였어요. 당장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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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님의 대화: 헉...왜 저한테는 이 게시판이 안 떴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에서야 보였어요. 당장 읽어야겠어요!
저도 지난주 목요일에야 발견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벽님의 문장 수집: "그래서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도 이 문장 수집했어요. 달사진이나 불꽃놀이 사진도 그런 거 같아요.
저도 오늘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읽었는데, 하하하 모두들 두 번 읽으셨다니~ 지하철에서 졸다 읽다가 해서 저만 두 번 읽은 줄 알았어요. 전 뭔가를 전하려는 의도는 생각 안 하고, 내용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소설 읽을 때 그렇게 의미를 두고 읽지 않아서요. 인생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고 현재만 즐기면 살자주의라서 그런 거 같아요. 책도 읽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 항상 읽기 때문에, 이번에도 제발트 씨가 스탕달을 그리는 방식이 특이해, 역시 제발트를 연발했습니다. 처음엔 전쟁으로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성들의 이름들까지...신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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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님의 대화: 저도 오늘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읽었는데, 하하하 모두들 두 번 읽으셨다니~ 지하철에서 졸다 읽다가 해서 저만 두 번 읽은 줄 알았어요. 전 뭔가를 전하려는 의도는 생각 안 하고, 내용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소설 읽을 때 그렇게 의미를 두고 읽지 않아서요. 인생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고 현재만 즐기면 살자주의라서 그런 거 같아요. 책도 읽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 항상 읽기 때문에, 이번에도 제발트 씨가 스탕달을 그리는 방식이 특이해, 역시 제발트를 연발했습니다. 처음엔 전쟁으로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성들의 이름들까지...신선했어요.
저도 수능 언어영역 식으로 작가가 의도한 주제의식이라던지 의미에 대해 더이상 집착하지 않는 편입니다. 작가가 그려놓은 세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저도 그렇게 맘 편히 읽고 싶지만 제발트의 소설은 왠지 그렇게 읽으면 안 될것 같은 강박관념에 빠진 듯 해요. 그나저나 첫 번째 소설은 짧기나 했지 두 번째 소설은 100여 페이지나 되는데 역시나 두 번 읽어야 할 것 같아 난감합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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