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2차] 현기증·감정들도 같이 읽어 봅시다

D-29
그럼에도 30쪽 남짓하는 분량에서 제가 얻은 건 아직 미미하더군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제대로 짐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1부를 통해 느낀 바는 역시나, 제발트 작품답게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느낌이 강했고, 기억에 집착하는 그의 면모가 두드러졌습니다. 또한, '벨'이라는 인물이 실존인물 '스탕달'의 젊은 시절의 재현인 것을 알지만, 제발트를 알아갈수록 실존인물과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 간의 상동성은 그닥 중요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벨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제발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늘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고수하는 작품 전반적인 흐름과 달리, 그의 의도는 늘 냉철하고 때로는 신랄할 정도의 풍자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뮹님의 문장 수집: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 단락이 흥미로웠는데요, 이미지는 기억을 보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대체하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제발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특히 기억의 내용이라기보다 그것이 서술되는 방식인데 거리, 지형의 배열, 그리고 특정 산의 이름까지 호출되는 정밀한 서술은 기억의 생생함을 보증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이미 어떤 외부의 인식 틀—가령 지도적 좌표나 지리적 지식—에 의해 조직된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언제나 특정한 매개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체성은 개인의 직접적 체험이라기보다, 지리적 담론과 서술 형식이 개입된 결과로서의 재구성된 것이겠지요. 특히 마지막의 “~였을 것이다”라는 추정적 표현은, 이러한 기억이 확정된 재현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며, 기억이란 결국 확실성과 추정이 교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밥심님의 대화: <사냥꾼 그라쿠스> 첫 쪽의 구절과 거의 같습니다. 참고하시라고 해당 구절 옮겨 놓습니다. "뱃사공이 밧줄을 꺼내 배를 정박하는 사이에 은 단추가 달린 짙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술이 길게 늘어진 꽃무늬 비단 천으로 덮인 들것을 옮겼다. 그것에는 분명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죽음, 테마명작관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국세라 옮김, 출판사 에디터, 165쪽)" <사냥꾼 그라쿠스> 역시 매우 짧은 이야기인데 카프카 작품 답게 뭔 이야기지 하면서도 끌립니다.
인용 감사합니다!! 저도 얼른 이번 주 내로 <사냥꾼 그라쿠스>를 읽어 봐야겠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주 분량 안내 드립니다. 2주차(4/20-26): 외국에서(p. 35-132) 시간 내어 읽으시고 자유롭게 참여 부탁 드려요.ᐟ
헉...왜 저한테는 이 게시판이 안 떴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에서야 보였어요. 당장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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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님의 대화: 헉...왜 저한테는 이 게시판이 안 떴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에서야 보였어요. 당장 읽어야겠어요!
저도 지난주 목요일에야 발견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벽님의 문장 수집: "그래서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도 이 문장 수집했어요. 달사진이나 불꽃놀이 사진도 그런 거 같아요.
저도 오늘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읽었는데, 하하하 모두들 두 번 읽으셨다니~ 지하철에서 졸다 읽다가 해서 저만 두 번 읽은 줄 알았어요. 전 뭔가를 전하려는 의도는 생각 안 하고, 내용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소설 읽을 때 그렇게 의미를 두고 읽지 않아서요. 인생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고 현재만 즐기면 살자주의라서 그런 거 같아요. 책도 읽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 항상 읽기 때문에, 이번에도 제발트 씨가 스탕달을 그리는 방식이 특이해, 역시 제발트를 연발했습니다. 처음엔 전쟁으로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성들의 이름들까지...신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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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님의 대화: 저도 오늘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읽었는데, 하하하 모두들 두 번 읽으셨다니~ 지하철에서 졸다 읽다가 해서 저만 두 번 읽은 줄 알았어요. 전 뭔가를 전하려는 의도는 생각 안 하고, 내용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소설 읽을 때 그렇게 의미를 두고 읽지 않아서요. 인생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고 현재만 즐기면 살자주의라서 그런 거 같아요. 책도 읽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 항상 읽기 때문에, 이번에도 제발트 씨가 스탕달을 그리는 방식이 특이해, 역시 제발트를 연발했습니다. 처음엔 전쟁으로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성들의 이름들까지...신선했어요.
저도 수능 언어영역 식으로 작가가 의도한 주제의식이라던지 의미에 대해 더이상 집착하지 않는 편입니다. 작가가 그려놓은 세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저도 그렇게 맘 편히 읽고 싶지만 제발트의 소설은 왠지 그렇게 읽으면 안 될것 같은 강박관념에 빠진 듯 해요. 그나저나 첫 번째 소설은 짧기나 했지 두 번째 소설은 100여 페이지나 되는데 역시나 두 번 읽어야 할 것 같아 난감합니다.
이런 한밤중에도 소각을 하느냐고 묻자 말라치오는 대답했다. 네 항상요. 끝없이 태우지요. (중략) 말라치오는 다시 한번 손을 흔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나요. 배가 꽤 멀리 나간 다음, 그는 또 한번 크게 외쳤다. 내년에는 예루살림에서! (중략) 말리치오는 무슨 의미로 예루살렘에서 만나요라는 말을 했을까.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그의 눈동자만이라도 기억해내려고 헛되이 애를 썼으며, 거리에 바로 오늘 한번 더 나가봐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욱 자리에서 꼼작할 수조차 없게 될 뿐이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62~67, 말라치오와의 여정에서,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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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님의 문장 수집: "이런 한밤중에도 소각을 하느냐고 묻자 말라치오는 대답했다. 네 항상요. 끝없이 태우지요. (중략) 말라치오는 다시 한번 손을 흔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나요. 배가 꽤 멀리 나간 다음, 그는 또 한번 크게 외쳤다. 내년에는 예루살림에서! (중략) 말리치오는 무슨 의미로 예루살렘에서 만나요라는 말을 했을까.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그의 눈동자만이라도 기억해내려고 헛되이 애를 썼으며, 거리에 바로 오늘 한번 더 나가봐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욱 자리에서 꼼작할 수조차 없게 될 뿐이었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인과관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인상과 이미자들을 흩뿌려놓고,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연상과 의식의 흐름에 서사를 내맡긴다. 소각과 예루살렘의 이미지에서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다 우리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칠 때면, 그녀는 매번 마치 무엇인가를 실수하다 들킨 사람들처럼 웃었다. (p.94) (중략) 그러다 한번 종이 한 장을 다 채운 그가 고개를 들고 잉크 건조용 모래가 든 병에 손을 뻗는 찰나,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기는 했으나 그 순간만큼은 아주 완벽하고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잠시 중단했던 내 일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p.119)
현기증.감정들 (양장)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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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님의 문장 수집: "그러다 우리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칠 때면, 그녀는 매번 마치 무엇인가를 실수하다 들킨 사람들처럼 웃었다. (p.94) (중략) 그러다 한번 종이 한 장을 다 채운 그가 고개를 들고 잉크 건조용 모래가 든 병에 손을 뻗는 찰나,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기는 했으나 그 순간만큼은 아주 완벽하고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잠시 중단했던 내 일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p.119)"
작가 자신이 화자가 되는 이 장에서, 그는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합니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는 그 어떤 마술적 순간에서만. 진실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타고 온 기차는 점점 멀어져 시간이ㅡ적어도 내 생각에는ㅡ 영원의 절반 정도 흐른 뒤에 결국 서쪽으로 달아나는 조그만 점이 되어 사라졌고, 역사만이 한낮의 눈부신 섬광 아래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앞으로 쭉 뻗은 선로는, 적어도 인간의 시선이 미치는 한에서는 약간의 구부러짐도 없이 완벽한 직선으로 곧장 지평선을 향해 있었으며, 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85,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출발 시각인 한시 이십 오분을 조금 남겨농고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소년의 얼굴은, 가슴이 철렁할 만큼 놀랍게도, 한창 자라사던 청소년기 카프카의 사진 속 모습과 대단히 흡사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87-88,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하지만 모든 예술과 아름다움의 진정한 티탄은 다름아닌 우리 인민들이며, 다른 모든 것은 단지 피그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피그미라는활자에서 오랫동안 눈을 멜 수 없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118,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이번 <외국에서>는 저의 이해력 부족인지 읽고도 내용 이해가 가지 않아 제미나이에게 물어보고 검색도 해보고 그랬던 부분입니다🤣 1980년 여행vs1987년 같은 장소로의 여행이더라구요.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로나, 리바 이렇게 4개의 지역이 나오고 다시 칠 년 뒤에 같은 장소를 여행하는 게 내용인데, 큰 틀로 보니 이번에는 시간의 대조로 이야기를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을 그렇게 강조, 반복하는게 아니다보니 자칫 흐름놓치면 내용이해가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1980년 여행에서 주인공은 공포, 두려움, 현기증 상태로 여행을 하다 결국 영국으로 도피를 합니다. 87년 같은 곳을 여행을 할 때도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 칠 년 전 기억을 짜맞추려하는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갑자기 길지나가는 소년보고 카프카를 닮았다고 했다던지, 유령을 본다던지..) 후반부에는 루트비히 범죄조직의 행적을 쭉 서술하며 불안해하는데 보는 제가 더 불안해졌던.,(...) 여행 그리고 티탄(대중)-피그미(소수자)의 대조를 통해 파시즘(전체주의)의 억압, 강요, 폭력성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폭력과 억압의 기억으로 불안, 현기증을 느끼며 위태롭게 버티기만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도 덩달아 불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실, 불안 앞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기록이었기에 그렇게 강박적으로 기록을 했던건지... 제발트가 카프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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