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2차] 현기증·감정들도 같이 읽어 봅시다

D-29
저도 오늘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을 읽었는데, 하하하 모두들 두 번 읽으셨다니~ 지하철에서 졸다 읽다가 해서 저만 두 번 읽은 줄 알았어요. 전 뭔가를 전하려는 의도는 생각 안 하고, 내용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소설 읽을 때 그렇게 의미를 두고 읽지 않아서요. 인생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고 현재만 즐기면 살자주의라서 그런 거 같아요. 책도 읽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 항상 읽기 때문에, 이번에도 제발트 씨가 스탕달을 그리는 방식이 특이해, 역시 제발트를 연발했습니다. 처음엔 전쟁으로 시작했다 사랑하는 여성들의 이름들까지...신선했어요.
저도 수능 언어영역 식으로 작가가 의도한 주제의식이라던지 의미에 대해 더이상 집착하지 않는 편입니다. 작가가 그려놓은 세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저도 그렇게 맘 편히 읽고 싶지만 제발트의 소설은 왠지 그렇게 읽으면 안 될것 같은 강박관념에 빠진 듯 해요. 그나저나 첫 번째 소설은 짧기나 했지 두 번째 소설은 100여 페이지나 되는데 역시나 두 번 읽어야 할 것 같아 난감합니다.
이런 한밤중에도 소각을 하느냐고 묻자 말라치오는 대답했다. 네 항상요. 끝없이 태우지요. (중략) 말라치오는 다시 한번 손을 흔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나요. 배가 꽤 멀리 나간 다음, 그는 또 한번 크게 외쳤다. 내년에는 예루살림에서! (중략) 말리치오는 무슨 의미로 예루살렘에서 만나요라는 말을 했을까.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그의 눈동자만이라도 기억해내려고 헛되이 애를 썼으며, 거리에 바로 오늘 한번 더 나가봐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욱 자리에서 꼼작할 수조차 없게 될 뿐이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62~67, 말라치오와의 여정에서,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작가는 직접적으로 인과관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인상과 이미자들을 흩뿌려놓고,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연상과 의식의 흐름에 서사를 내맡긴다. 소각과 예루살렘의 이미지에서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다 우리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칠 때면, 그녀는 매번 마치 무엇인가를 실수하다 들킨 사람들처럼 웃었다. (p.94) (중략) 그러다 한번 종이 한 장을 다 채운 그가 고개를 들고 잉크 건조용 모래가 든 병에 손을 뻗는 찰나,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기는 했으나 그 순간만큼은 아주 완벽하고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잠시 중단했던 내 일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p.119)
현기증.감정들 (양장)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작가 자신이 화자가 되는 이 장에서, 그는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합니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는 그 어떤 마술적 순간에서만. 진실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타고 온 기차는 점점 멀어져 시간이ㅡ적어도 내 생각에는ㅡ 영원의 절반 정도 흐른 뒤에 결국 서쪽으로 달아나는 조그만 점이 되어 사라졌고, 역사만이 한낮의 눈부신 섬광 아래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앞으로 쭉 뻗은 선로는, 적어도 인간의 시선이 미치는 한에서는 약간의 구부러짐도 없이 완벽한 직선으로 곧장 지평선을 향해 있었으며, 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85,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출발 시각인 한시 이십 오분을 조금 남겨농고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소년의 얼굴은, 가슴이 철렁할 만큼 놀랍게도, 한창 자라사던 청소년기 카프카의 사진 속 모습과 대단히 흡사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87-88,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하지만 모든 예술과 아름다움의 진정한 티탄은 다름아닌 우리 인민들이며, 다른 모든 것은 단지 피그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피그미라는활자에서 오랫동안 눈을 멜 수 없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118,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이번 <외국에서>는 저의 이해력 부족인지 읽고도 내용 이해가 가지 않아 제미나이에게 물어보고 검색도 해보고 그랬던 부분입니다🤣 1980년 여행vs1987년 같은 장소로의 여행이더라구요.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로나, 리바 이렇게 4개의 지역이 나오고 다시 칠 년 뒤에 같은 장소를 여행하는 게 내용인데, 큰 틀로 보니 이번에는 시간의 대조로 이야기를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을 그렇게 강조, 반복하는게 아니다보니 자칫 흐름놓치면 내용이해가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도 조각조각 단편적으로만 이해가 되지, 전체적인 풍경 묘사나 작가의 의식의 흐름은 집중도 안 되고, 잘 이해도 되지 않았어요. 다행일 건 아니지만, 이래서 전 책모임이 좋아요~ ^^
1980년 여행에서 주인공은 공포, 두려움, 현기증 상태로 여행을 하다 결국 영국으로 도피를 합니다. 87년 같은 곳을 여행을 할 때도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 칠 년 전 기억을 짜맞추려하는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갑자기 길지나가는 소년보고 카프카를 닮았다고 했다던지, 유령을 본다던지..) 후반부에는 루트비히 범죄조직의 행적을 쭉 서술하며 불안해하는데 보는 제가 더 불안해졌던.,(...) 여행 그리고 티탄(대중)-피그미(소수자)의 대조를 통해 파시즘(전체주의)의 억압, 강요, 폭력성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폭력과 억압의 기억으로 불안, 현기증을 느끼며 위태롭게 버티기만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도 덩달아 불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실, 불안 앞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기록이었기에 그렇게 강박적으로 기록을 했던건지... 제발트가 카프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단 한 번도 원형극장의 공연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대신 여기, 오페라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극장 바깥의 피아차 브라 광장에 앉아 있는 거죠. 오케스크라의 음악도, 합창대의 노래도, 가수의 목소리도 전혀 들려오지 않는 이곳에요. 그 어떤 음색도 없는 곳이죠. 나는 그렇게 일종의 무성 오페라를 감상하는 거에요.
현기증.감정들 (양장) p.128,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이 소설은 네 편의 단편소설 또는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는데, 각 부분을 별도로 이해해서는 전체적으로 윤곽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외국에서>를 읽고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를 읽고 연이어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향>을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읽어봐야 이 소설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대략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분명한 것은 <이민자들>에서도 느꼈듯이 제발트는 별 것 아닌 풍경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묘사를 하되, 거기에 감정, 의식의 흐름 등이 녹아있어서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문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떠한 의미 부여 없이 문장 자체에 빠져보는 것도 그의 소설을 즐기는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인용하는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귀향>까지 읽어보고 판단해보려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외국에서>를 읽고 뭔가 써보려했는데, 제발트에 대해 일반론적인 내용 밖에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저도 <K박사..> 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거군요. 길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다들 극찬하신 <스테이션 일레븐> 읽을 때 9/10 지점까지 읽고 "괜찮긴 한데, 이게 극찬할 정도인가"하면서 읽다가 마지막 부분 읽고, 머릿속에서 별가루들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199,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꿈속에서 문득 든 생각은, 나는 앞으로 저 산을 결코 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나의 왼편으로는, 그야말로 현기증이 일어날 만큼 까마득한 심연이 자리잡고 있었다.
현기증.감정들 (양장) p.24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현기증' 이라는 제목이 이 구절에서 나오네요. 다른 작가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제발트라서 단어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혹시 다른 페이지에서도 이 단어가 나온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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