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용 <가난의 명세서>

D-29
최근에 '가난'이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일인칭 가난>에서 부가 아니라 가난이 더 많이 쓰여야 한다 했던 이야기와 통할 텐데요, <가난의 명세서>도 비슷한 결로 보입니다. 빈곤은 경제적인 결핍에 근거하지만, 그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여유 시간, 사람 간의 관계, 문화 향유 등에 제약을 걸게 되죠. 명세서라는 결제 내역으로 엮은 책을 따라 개인적인 가난과 사회적인 빈곤이 엮이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가난이 나를 자꾸 도둑으로 만든다. 염치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노동권도 존중하지 않으며, 환경도 개의치 않는 파렴치한으로 만든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4, 김나연 지음
어째서 가난에 더 큰 비용이 드는지 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보여주고 싶었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8, 김나연 지음
수량이 늘어갈수록 단가는 낮아지고, 지금 당장 큰돈을 쓰면 이자는 적어지는
빈자의 소비란 설레지 않는 선택의 연속이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31, 김나연 지음
소비에 설렘이 있다는 건 어쩔수없이 필요에 의한 지출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어떤 일에서나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 환경이란 것이 있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35, 김나연 지음
나의 한 명뿐이던 보호자는 다시 한 번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를 세게 끌어안고.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46, 김나연 지음
가족의 빚, 치료비
내가 내 목숨에 값을 매겨본 것도 처음이었다. 존재에 값을 붙이는 것은 존엄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63, 김나연 지음
'가난의 명세서'라는 제목을 관통하는 대목이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내가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있는 힘껏 걷어찬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71, 김나연 지음
가난에 대한 관점, 그러니까 배를 주릴 정도의 절대적인 가난보다도, 빈곤한 문화를 기본으로 체득한 일을 이야기하는 방향성은 물론이고, 공부로 어느 정도 현실에서 피신했던, 그리고 계층을 올라가는 사다리로 삼았던 삶의 궤적도 꽤 통한다.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올해 26살인 저자는 2019년까지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의 가난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덜 가난해서가 아니라 가난의 양태가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철저히 일인칭으로 쓰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빈자다운 삶'이란 어떤 모습인걸까?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73, 김나연 지음
나는 미래를 담보 잡아 현재를 사는 용도로 쓴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78, 김나연 지음
결제의 대부분이 할부이다. 큰 금액도 있지만, 작은 금액도
내게는 가난의 상징인 냄새. <기생충>에서 기택의 마지막 존엄을 무너뜨린 냄새.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p.90-91, 김나연 지음
향수가 단지 사치가 아닌 이유. 반지하의, 고여서 나는 이 가난의 상징인 냄새를 지우고 가려 사회적 체면을 차리고 존엄을 방어하기 위한 물건이라서.
스스로에게 '깨끗한 사람'이고 싶었던 거다. 창작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 그 가치에 걸맞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뿐 아니라 소비력도 있는 사람.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00, 김나연 지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이로서 꿈꾸는 바이기도. 그래서 서국도에서 일부러 책을 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풍족했다면 책을 구매함으로써 좋은 출판사를, 가치 있는 저자의 행보를 실질적으로 응원했을 텐데.
언제나처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양극으로 찢어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 가족의 계층과 내가 속한 계층의 괴리가 점점 커져간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03, 김나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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