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용 <가난의 명세서>

D-29
내가 내 목숨에 값을 매겨본 것도 처음이었다. 존재에 값을 붙이는 것은 존엄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63, 김나연 지음
'가난의 명세서'라는 제목을 관통하는 대목이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내가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있는 힘껏 걷어찬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71, 김나연 지음
가난에 대한 관점, 그러니까 배를 주릴 정도의 절대적인 가난보다도, 빈곤한 문화를 기본으로 체득한 일을 이야기하는 방향성은 물론이고, 공부로 어느 정도 현실에서 피신했던, 그리고 계층을 올라가는 사다리로 삼았던 삶의 궤적도 꽤 통한다.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올해 26살인 저자는 2019년까지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의 가난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덜 가난해서가 아니라 가난의 양태가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철저히 일인칭으로 쓰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빈자다운 삶'이란 어떤 모습인걸까?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73, 김나연 지음
나는 미래를 담보 잡아 현재를 사는 용도로 쓴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78, 김나연 지음
결제의 대부분이 할부이다. 큰 금액도 있지만, 작은 금액도
내게는 가난의 상징인 냄새. <기생충>에서 기택의 마지막 존엄을 무너뜨린 냄새.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p.90-91, 김나연 지음
향수가 단지 사치가 아닌 이유. 반지하의, 고여서 나는 이 가난의 상징인 냄새를 지우고 가려 사회적 체면을 차리고 존엄을 방어하기 위한 물건이라서.
스스로에게 '깨끗한 사람'이고 싶었던 거다. 창작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 그 가치에 걸맞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뿐 아니라 소비력도 있는 사람.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00, 김나연 지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이로서 꿈꾸는 바이기도. 그래서 서국도에서 일부러 책을 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풍족했다면 책을 구매함으로써 좋은 출판사를, 가치 있는 저자의 행보를 실질적으로 응원했을 텐데.
언제나처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양극으로 찢어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 가족의 계층과 내가 속한 계층의 괴리가 점점 커져간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03, 김나연 지음
형편이 안 되는 것은 욕망하지 않는 편이 효율적이고 유용하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27, 김나연 지음
가난 속에 있는 한, 나는 비윤리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며, 환경 파괴를 가속화하는 소비자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31, 김나연 지음
윤리적인 지지를 개인의 소비에만 기대는 것에 대한 비판은 <야망계급론>에서도
야망계급론 - 비과시적 소비의 부상과 새로운 계급의 탄생소스타인 베블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사회적 의미를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사회비평가이자 경제학자다. 1899년 베블런이 쓴 《유한계급론》은 물질적 재화와 지위의 관계를 정확히 설명한 결정적인 텍스트로, 과시적 소비를 통해 사회적 구별짓기를 하는 유한계급을 맹렬히 비판했다.
기성복 시장에서 퇴출이란 얘기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44, 김나연 지음
평균적이지 않은 신체 사이즈는 선택의 폭을 줄이고, 높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든다. 다수가 기준이 되는 세계.
내가 일시불로 결제하는 건 대체로 하찮은 것들이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52, 김나연 지음
병이 있음을 인정받는 일 역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었다.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p.161, 김나연 지음
병명으로 진단받는 것부터 치료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비용이 드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정신과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당사자들의 수기가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질병을 제거하거나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질병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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