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에서 선교사가 통역을 끼고 하나님-예수님과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할 때 오콩코는 그 선교사가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고 마는데, 오콩코의 첫째 아들 은워예는 매우 감동받는 장면이 나왔어요(울고있는 쌍둥이, 살해당한 이케메푸나를 떠올리며). 그런 은워예가 자라서 이름을 Isaac으로 바꾸고 25년이나 교리문답 교사로 살면서, 아버지 오콩코가 바라던 중산층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보게 되네요..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
D-29

여우는

은화
전작의오콩코가 차라리 최후를 맞이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일 그가 살아서 자기 아들 은워예가 서구인의 방식대로 사는 걸 보고나 소식을 들었다면.. 또 다른 폭풍이 몰아쳤을 것 같습니다.

향팔
“ 그들은 으깬 얌과 에구시 수프를 손가락으로 먹고 있었다. 교육을 받은 제2세대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옛날처럼 으깬 얌과 카사바 가루로 만든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먹는 게 한층 더 맛있다는 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제1세대들만큼 '미개인'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더욱 당당한 이유도 있었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3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향팔
가능한 최상의 세상이란 말은 이제 그만하자. 여기는 과잉이고 저기는 전혀 없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4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은화
책을 읽다 보면 '오수(Osu)'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찾아봤습니다. 전작에서도 잠깐 언급됐던 내용이죠.
오수는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거나 악수할 수 없으며, 말을 나눠서는 안되고, 춤을 추거나, 술을 같이 마실 수 없다고 해요. 또 자신들 이외의 계층의 이성을 좋아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수는 이동과 거주의 자유가 극히 제한적이며, 교회에서 이들이 바치는 공물이나 헌금은 일반인들의 것과 따로 구별된 장소에 놓아야 하고, 마을의 각종 직책을 달 수 없으며, 사회적 모임에서 기도를 올리거나 콜라 열매를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린치를 당해도 하소연하기 힘들며, 추방을 당하기도 하고, 오수가 아닌 사람과 결혼을 했다가는 결혼식을 망치는 난동꾼이 쳐들어 온다고도 하네요.
결혼을 할 경우 양가 부모들은 직접 상대편 집안을 방문해 신랑이나 신부측의 집안이 문제가 없는지, 즉 가족 중 오수가 있거나 선조 중에 오수를 두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칩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고 서로가 좋아하더라도 상대측에 오수의 피가 흐른다면 결혼을 허락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요.
오수는 본래 토착신을 모시고 숭배하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친 일종의 수도승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오수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또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고 해요. 오수 계층은 신전이나 제단 근천에 자신들끼리만 모여 살았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오수는 오수들끼리만 결혼하는 풍습이 자연스레 형성되었고요. 오수는 신에게 자신들의 일생을 바쳤기에, 이그보 인들은 신에게 기도를 올리거나 전투를 앞두고 공을 세우기 위해 오수에게 제물을 바치는 등 마을에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차츰 이그보인들의 사회에 서구 문물이 들어오며 현대화 되고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면서 이들의 차별성은 오히려 기이하고 배타적인 특성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오수는 자신들끼리만 모여 살고, 그로 인해 오수의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가 자연스레 오수가 되는 특성은 차츰 '열등함과 불결함'으로 개념이 변질된 겁니다.
일부 이그보인들은 오수란 스스로를 신에게 자신을 바친 존재이므로, 오수에게 낙인을 찍어 영원히 접촉해서는 안되는 불결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신을 위한 행위라고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정작 오수의 후손들은 그런 운명을 선택한 적이 없죠. 오늘날 나이지리아의 많은 지역이 공식적으로는 오수 문화와 차별을 폐지하고 부정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악습을 하루 아침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죠.
https://www.vanguardngr.com/2015/03/the-osu-caste-system-the-shame-of-a-nation/
https://www.vanguardngr.com/2010/10/osu-caste-in-igboland/

향팔
“ 진정한 비극은 결코 문제가 해결되는 법이 없지요. 영원히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지요. 전통적인 비극은 너무나 쉬워요. 영웅은 죽고 우리는 감정의 정화를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비극은 W. H. 오든의 말을 인용하면 깨끗하지 못한 모퉁이 같은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소설 『한 줌의 먼지』에서 토드 씨에게 디킨스를 읽어 주는 남자처럼 말입니다. 그에게 해방은 결코 없어요. 소설은 끝나는데 그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정의 정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63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향팔
“ '정말로 썩을 대로 썩었군!' 오비는 혼자 투덜거렸다. '어디부터 시 작해야 하나? 일반 대중들로부터? 대중을 교육시켜서?' 오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천만의 말씀이지. 수백 년은 걸릴 거야. 고위직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떨까. 아니면 비전을 가진 한 사람만 있어도 될지 몰라. 현명한 독재자라면 말이지. 요사이 사람들은 독재자라는 단어를 무서워하잖아. 하지만 어떤 민주주의가 이토록 많은 부패와 무지와 함께 공존할 수 있겠어? 어쩌면 중간 지점으로 일종의 타협의 형태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 생각이 이 지점에 도달했을 때 오비는 영국도 바로 얼마 전까지 상당히 부패한 나라였음을 상기했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69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향팔
“ 유일한 문제점은 비가 올 것 같다는 것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인해 이삭 오콩코가 분별력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비가 심하게 내리기를 조금씩은 바랐다. 이런 경사가 있는 날에는 우무오피아의 최고 기우사에게 야자 술과 수탉과 얼마간의 돈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삭만 유일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기독교도는 아니잖아." 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마시는 야자 술과 같은 거야. 어떤 사람은 그걸 마셔도 계속 총명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정신을 잃고 말잖아."
"그래 맞아, 정말로 맞는 말이고말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새로운 속담이 멍청한 사람들의 나라에 들어오면 온통 거기에 열중하게 되지."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75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향팔
“ 이보어를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라 해도 오비는 이보어를 사용했다. 런던 버스에서 이보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다른 종족 출신의 학생과 영어로 말해야만 할 때에는 오비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기 동포와 외국어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굴욕스러웠다. 특히나 그 언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인들의 면전에서 그래야만 할 때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을 언어가 없는 민족이라고 추정할 것이다. 오비는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와서 보기를 소원했다. 그들이 지금 우무오피아로 와서 훌륭한 대화술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여기로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지배하에서도 여전히 삶의 즐거움이 파괴되지 않은 채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남녀노소를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77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향팔
“ 기독교 도는 아니었지만 오독구는 기독교에 대해 한두 가지는 알고 있었다. 우무오피아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일 년에 한 차례 수확기에 예배에 참석한다. 기독교 예배에 대하여 그가 유일하게 비판하는 한 가지는 회중이 설교에 대해 대꾸할 권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오독구가 특별히 좋아하고 이해하는 것 중 하나는 찬송가에 나오는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무궁토록"이란 구절이다.
오독구는 종종 말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온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나갈 거야. 작위를 가진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사람이 올 때처럼 되돌아갈 수 있도록 작위를 나타내는 발찌를 잘라 준다네. 태초에 그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끝에도 이루어질 거라는 기독교도들의 말은 정녕 맞고말고."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80-81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향팔
“ 한창 때에 이들은 정말로 대단했지. 오늘날엔 대단하다는 의미가 바뀌었지만 말이야. 직함도 더 이상 대단한 게 아니고 곡식 창고도 아내가 여럿 있는 것도 자식이 많은 것도 더 이상 대단한 게 못 되는 세상이야. 요즘은 위대함이 백인의 물건 속에 들어 있지. 그래서 우리의 견해도 바뀌고 말았잖아. 아홉 마을을 통틀어 우리가 제일 처음으로 우리의 자손을 백인의 나라에 보냈던 거야. 아주 옛날부터 위대함은 이구에도에 속한 것이었어. 그건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야. 얌이나 옥수수는 심을 수 있지만 위대함은 심을 수 없는 것이니까. 숲의 왕자라고 할 수 있는 이로코 나무를 도대체 누가 심었단 말인가? 이 세상에 있는 이로코 종자를 모두 모아 땅을 파고 심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헛수고에 불과할 거야. 위대한 나무는 자기가 자랄 곳을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것을 발견할 뿐이지. 사람의 위대함도 이와 똑같은 이치란 말일세.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83-84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은화
백인을 내동댕이친다는 것은 마치 조상의 영혼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기는 것과 똑같았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9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은화
짧은 문장이지만 우무오피아의 가치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 수집했습니다. 전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도 나오지만 마을의 중요한 어른과 원로들이 분장했던 가면극은 매우 신성하고도 엄숙한 자리였죠. 조상의 영혼을 불러내 현세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였기에 가면은 두려움과 공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감히 누구도 가면을 쓴 이들의 앞을 가로막거나 말을 걸 생각도 못했죠.
하지만 이제는 백인이 그 경외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보인의 가치관을 바꾼 건 전쟁이나 무력이 아니라, 돈과 서구문화가 가져온 상류층의 향락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오네요.

은화
“ "제 생각에는……."
"오모 씨, 당신에게 봉급을 주는 것은 말이지 생각하라고 주는 게 아니라 지시받은 걸 하라고 주는 거요. 분명히 알아들었소? 즉시 그 서류를 나한테 보내시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99,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은화
“ "난 오수란 말이에요." 그녀는 엉엉 울었다. 침묵이 흘렀다. 클라라는 울기를 멈추더니 차분하게 오비로부터 떨어졌다. 여전히 오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혼할 수 없단 말이에요." 아주 단호하게 클라라가 말했다. 끔찍하게도 쾌활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어조였다. 단지 눈물만이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10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은화
“ "너는 공부는 좀 했는지 모르지만 이건 결코 지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자네 오수가 뭔지나 알아? 아니, 자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조셉의 그 짧은 질문은 기독교 집안의 양육과 유럽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오비가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취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이거야말로 오비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말이었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10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은화
“ "자네가 지금 하려고 하는 건 말이지 자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자네 전 가족과 다음 세대까지 관계되는 일이야. 한 손가락에 기름이 묻으면 다른 손가락도 더럽게 된단 말이지. 앞으로 우리 모두가 개화되면 누가 누구하고 결혼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겠지. 하지만 아직 그런 때가 오지 않았단 말이야.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단지 선구자에 불과하다고."
"선구자가 뭐지?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잖아. 내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이야."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11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문장모음 보기

여우는
저는 원서로 읽는 중인데, 5장에서 오콩코가 면접 후 버스를 타고 우무오피아로 가다가 버스 기사가 뇌물을 주는 장면에서 "What an Augean stable!"(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이군!)이라고 말합니다. 위에 문장모음을 참고하니 "정말로 썩을 대로 썩었군!"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궁금해서 더 찾아보니,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에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청소"가 있어요. 수천 마리 소의 분뇨가 쌓인 외양간을 강물을 돌려 하루 만에 청소해야 하는 과업인데, 오비는 오랫동안 썩은 부패 구조를 의미하는 말로 이 표현을 사용했어요.
T.S.Eliot 등 여러 영미문학 소설가/시인들을 언급하는 모습과 더불어 오비가 식민지 엘리트 교육을 받아 고전 수사학에도 익숙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 같습니다.
그에 비해 버스 기사는 too know (아는 체 하는), book people (교육받은 엘리트) 등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닌 Pidgin English(피진영어)를 쓰는 대비가 흥미롭습니다.

은화
번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서만의 표현법에서 오는 차이가 재밌네요. 말씀하신 대로 아프리카 출신임에도 오비가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식을 언급하는 것을 통해 그의 교육수준과 어느 정도 서구화된 사고관을 엿볼 수 잇는 장치기도 하고요.
이 책을 읽다 보니 몇 가지의 어떤 소재 또는 주제 의식이 반복되는 게 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언어의 사용이죠. 이보어와 영어, 피진어를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계급과 사회의식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특히 클라라와 다시 배에서 만난 후 그녀에게 멀미약?을 받아 먹을 때 클라라는 의미심장하게도 영어와 이보어를 번갈아가며 오비에게 말하죠.
이보어는 타지에서는 고국과 동포를 상징하는 그리움과 반가움의 장치이면서도 또한 우무오피아 안에서는 백인이나 외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비밀스런 암호처럼 작동합니다. 반면 영어는 오비를 비롯한 중상층 이상의 계급들이 보다 전문화 되고 공적인 대화를 해야 할 때 쓰는 경우가 많죠. 오비나 클라라가 피진어를 쓰는 걸 본 기억은 없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상류층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닌 듯 하고요.
우무오피아에 혼재된 인종과 의식구조, 계급에 주목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는 언어의 혼용을 통해 당시 여러 가치가 서로 뒤섞여 자리잡지 못한 이 보족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네요.

은화
66p에 오비가 고향으로 가고자 작은 트럭에 올라타는 대목에서 트럭의 이름이 나옵니다. '절대로 항소 못하는 하나님의 사건(God'scase No Appeal)'이라고 그림과 함께 언급되죠.
좀 특이한 이름이다 싶어 찾아봤는데 정의나 구원, 삶과 죽음에 있어 속세의 인간이 내리는 판결은 항소를 통해 뒤집힐 수도 있으나 신의 판결은 절대적이며 절대 뒤집을 수 없다는 개념이라고 하네요. 즉, 재심이나 번복의 여지가 없으며, 말 그대로 최종선고를 뜻하는 내용인데요.
성경에서는 인간 세상의 재판의 결과가 때론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하게 나온다고 하여 그것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법은 공정해 보여도 결국 인간이 만든 도구이며, 그 법 앞에서 사람은 여전히 개인적인 욕망과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자신은 억울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므로 본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세상과 법조계는 썩어 빠졌다고 불만을 가지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속세의 인간이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지금 보기에는 유리한 판결을 받아 죄를 피해가거나 처벌을 가볍게 받는 것 같고 또 누군가는 고통을 구제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최후에는 올바른 신이 내리는 판결을 절대 피해갈 수 없다는 얘기라고 해요.
트럭 안에서 오비가 뇌물 수수의 현장을 알아차리고 지켜본 해당 페이지의 일화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명칭입니다.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