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

D-29
그렇지만 오비가 돌아온 나이지리아라는 나라는 영국에서 머물던 사 년 동안 그가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그림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 달랐다. 더 이상 인정하기 힘든 것들도 많았고, 또 라고스의 빈민굴과 같이 오비가 처음으로 목격하는 것들도 있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25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책에 라고스가 자주 나오는데 과거 1991년까지는 나이지리아의 수도였다고 하네요. 현재는 '아부자'가 수도로 국토 균형발전과 나이지리아 안의 다양한 부족들의 형평을 위해 옮겼다고 합니다. 1950년대의 라고스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사진은 칼라로 복원된 것 같네요.)
라고스(Lagos)는 포르투갈어로 호수를 뜻하는데,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기니 만을 접하고 있는 해안의 항구도시라서 과거부터 노예무역을 통해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이전의 수도이기도 했던 만큼 인구와 경제가 집중되어 있고 현재도 나이지리아의 최대 도시라고 하네요.
오비는 살이 썩는 냄새가 강하게 올라오는 활짝 열린 빗물 배수관 가까이에 자동차를 주차시켜 놓았다. 택시에 치인 게 분명한 개의 잔해였다. 라고스에서는 어째서 그토록 많은 개들이 자동차에 치여 죽는지 오비는 이상하게 여기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던 운전수가 일부러 개 한 마리를 치는 것이었다. 대경실색한 나머지 오비는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 물었다. “행운 때문이죠.” 운전수가 말했다. “개들 새로 산 자동차에 행운 줘요. 그렇지만 오리 달라요. 혹시 오리 치면 사고 당하거나 사람 죽여요.”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29,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오비는 라고스에서 자동차를 몰고 차를 몰고 자기 집으로 오면서 한 나라 안에 있는 두 도시의 서로 다른 모습에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 야자나무 열매 속에 얇은 벽으로 나뉘어 있는 두 개의 핵이 연상되었다. 때때로 둘 중 한 핵은 검게 윤기가 흐르며 생생했지만, 다른 하나는 생기 없이 흰색 가루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32~3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는 뇌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뇌물을 주지 않고도 곧장 꼭대기까지 올라가잖아. 그 사람들이 반드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서 그런 게 아니야. 단지 그들은 고결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심지어 그런 식의 고결함도 습관이 될 수 있단 말이야.”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3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그들은 으깬 얌과 에구시 수프를 손가락으로 먹고 있었다. 교육을 받은 제2세대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옛날처럼 으깬 얌과 카사바 가루로 만든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먹는 게 한층 더 맛있다는 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제1세대들만큼 '미개인'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더욱 당당한 이유도 있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3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전작에서도 그렇고 이번 작에서도 이보족의 식사 메뉴가 자주 나오는데요. 에구시 수프와 더불어 비터잎 수프(오페 오누브)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입니다. 비터잎 수프는 기호에 따라 생선이나 고기(주로 천엽이나 소껍질)를 넣어 끓이는데 쓴 맛이 나는 잎파리인 오누브를 넣어서 만드는데요. 쓴 맛을 제거하기 위해 충분히 오래 씻어 손질합니다. 수프를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이보족은 뿌리식물의 일종인 코코얌 또는 카사바를 야자유를 넣고 빻거나 갈아서 넣습니다.
밥이나 빵처럼 주식으로 먹는 식단으로는 푸푸, 가리가 제공된다고 해요. 첫번째 사진의 푸푸(Fufu)는 카사바를 찧어서 떡처럼 쫄깃하게 만든 반죽 형태로, 취향에 따라 다른 곡물을 갈아넣거나 바나나를 넣기도 합니다. 두번째 사진의 가리(Garri)는 푸푸와 비슷하긴 하나 카사바를 좀 더 거칠게 빻아서 말린 가루를 물과 섞어 만드는 반죽으로, 부드럽고 쫀득한 푸푸에 비하면 약간 더 거친 느낌의 식감이라고 하네요. 둘 모두 쟁반이나 접시에 담아서 제공되며 조금씩 손으로 반죽을 떼어내서 수프에 찍어먹는 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U2aa1YfKPI
푸푸는 때깔이 뽀얗고 참 예쁘게 생겼어요. (한번 만져보고 싶네요)
가능한 최상의 세상이란 말은 이제 그만하자. 여기는 과잉이고 저기는 전혀 없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4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비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주 큰 기대를 받고, 일반적인 사람은 받을 수 없는 재정적 지원을 통해 영국에서 유학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첫 시작부터 알 수 있듯 고국으로 돌아온 뒤의 그의 생활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새인데요. 지금까지의 내용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1. 6장까지의 내용에서 여러분은 오비 오콩코를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되나요? 그의 대사나 행동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2. 제5장의 트럭 운전사와의 일화에서 오비는 자신의 도덕 기준을 지킴으로 인해 오히려 운전사가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을 겪습니다. 여러분이 오비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나요? 도덕성과 타인의 피해 사이에서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것 같나요?
1) 전 오비보다는 오히려 오비 주변 인물들의 묘사가 눈에 띄었는데요. 예를 들어 37p와 65p에서 자케어스와 마크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보통 단역들은 작품 내에서 이름이 부여되기 보다는 그냥 직업이나 직책으로 대신 묘사되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런 지나가는 인물들도 어떤 비중이 있는 사람처럼 묘사가 되는데요. 자케어스는 아예 그의 속마음까지 언급이 됩니다. 이들은 그저 무시하기 쉬운 주변 인물들이고, 오비라는 주인공과 중심 사건 때문에 가려지지만 계속 우리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비의 시선을 빌려 나이지리아와 이보족을 보면 이들은 같은 동포이지만 엄연히 사회적/경제적 계급의 차이가 있으며, 오비 같은 이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죠. 왜 이들에게 작가가 비중을 조금씩 할애하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오비가 가진 사고와 시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오비는 어려서부터 촉망받는 학생이었기에 그 재능을 인정받아 위원회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갔죠. 그는 선진화 된 기술과 문화를 가진 서구 국가의 방식을 체득하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그가 고국으로 귀환해 고향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죠. 오비 본인도 어떤 의무감이나 애국심 또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귀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원회와 오비 둘의 희망사항은 서로 비슷해 보이면서도 뭔가 방향이 어긋나 있는데요. 위원회 사람들이 오비를 인재로 길러낸 이유는 전체 사회나 공동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우무오피아에 호의적이고 우호적인 영향력 있는 인물을 정계나 재계에 앉히고자 하는 의도가 나옵니다. 그들은 나이지리아나 이보족 전체의 삶의 질과 복지보다는 지역사회가 다른 마을이나 부족보다 우위에 서고, 무엇보다 본인들의 경제적 여건과 지위를 올려주기를 바랍니다. 즉 이권을 기대하고 있죠. 회원들의 돈을 십시일반 모아 투자하였고, 같은 마을 사람이니 기대가 크겠지만 그들의 소망이나 바람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영한 도시인 것처럼 묘사되는 라고스에도 빈민가가 있고,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또는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격차와 그림자가 중간중간 나옵니다. 위원회는 과연 그런 사람들까지도 고려하고 배려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위원회에 가입하고, 회비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조차 없는 계층도 과연 오비 같은 인재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자케어스나 마크처럼, 사회적 지식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그림자 노동들이 존재하고 이들도 엄연한 사회적 구성원이나 그들은 작품에서처럼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오비와 자케어스, 마크는 모두 같은 아프리카인이고 흑인이며 나이지리아 사람입니다. 오비는 800파운드의 돈으로 고급 지식과 교양을 쌓고 돌아왔지만, 같은 공간의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물을 사오는 심부름꾼이죠. 이 인물들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만든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더군요. 오비가 만일 장학금을 받을 정도의 재능까지는 없었더라면, 오비보다 더 뛰어난 인재가 있었다면, 오비가 학교에 갈 형편도 안되었더라면 그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요. 자케어스나 마크를 그저 가정부나 조리사 또는 시종이나 심부름꾼이라는 단어만 언급하고 끝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도 이름을 가진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서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있죠. 어쩌면 오비도 다른 상황에 놓였다면 그들과 같은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르겠고요. 책을 읽다 보면 오비가 개탄하거나, 또는 동경하거나, 기대하는 나이지리아와 우무오피아의 많은 요소들이 그와 비슷한 계층과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 친해지려는 여자, 대화를 나누는 계층은 그와 어느 정도 위계가 같은 인물들이 자주 나오거든요. 반면 자케어스나 마크는 오비에게도 그저 하나의 병풍이나 배경처럼 인식될 뿐입니다.
“알았습니다.”라고 오비는 말하면서 뒷주머니를 만졌다. “영수증을 써 주세요.” 소년은 영수증을 쓰는 대신 오비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에게는 특별히 2파운드로 감해 줍니다.” “어떻게요?” 오비가 물었다. “제가 알아 합니다. 그렇지만 정부 영수증 없습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5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그 사람들이 자네가 일할 직장을 아직 마련해 놓지 않았는가?” 회장이 음악 소리 너머로 오비에게 물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정부가 ‘그 사람들’이었다. 정부는 너 또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으로 아주 이질적인 기관이었고 사람들이 할 일은 말썽에 휘말리지 않고 그곳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얻어 내는 것이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54,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부드러운 불빛이 흘러나오는 커다란 전구를 둘러싸고 하루살이들이 미친 듯이 춤추고 있었다. 아마도 그놈들은 각 전구마다 언젠가 지금의 자신들처럼 신나게 춤췄던 다른 많은 사체들이 붙어 있다는 것을 모로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런 사실을 알아챘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55,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되었어요. 비극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닌데요. 우리 마을에 기독교로 개종하신 노인이 한 분 계셨는데요, 그분에게 재난이 닥치고 또 닥쳤습니다. 그분은 인생이란 영원무궁토록 한 번에 조금씩 홀짝이는 쓰디쓴 쑥국 한 사발과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이야말로 비극의 본질을 이해하신 겁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6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경찰한테 2실링 주려고 하는데 어째서 당신 그 사람 얼굴 쳐다본 거요?” 운전사가 오비에게 물었다. “경찰이 당신한테서 2실링을 받을 권리가 전혀 없잖소.” 오비가 답변했다. “그건 그 사람 마음이지. 그러니 당신같이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 난 태우고 싶지 않아.” 운전사가 툴툴거렸다. “당신 같은 사람들 너무 많이 알아서 병이야. 당신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에 뭣 때문에 참견이냐고? 그러니까 이제 경찰은 나한테 10실링 물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p.6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다>의 등장인물들 이름은 토속적인 이름이었는데(Ikemefuna, Obierika, Ezinma…) 이 책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성경 인물의 이름을 따온 점이 인상깊네요(Isaac, Mary, Hanna…). 마을 회의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얌과 칼을 가지신 분”이라고 찬양하는 장면이나, R.S.V.P.를 Rice and Stew Very Plenty 라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서구의 종교나 문화/언어를 우무오피아식으로 변용하는 모습이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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