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

D-29
그렇지만 오비가 돌아온 나이지리아라는 나라는 영국에서 머물던 사 년 동안 그가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그림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 달랐다. 더 이상 인정하기 힘든 것들도 많았고, 또 라고스의 빈민굴과 같이 오비가 처음으로 목격하는 것들도 있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25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아무래도 장학금이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냐 또는 대학 교육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는 건 순전한 위선이었다. 나이지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물론 대답은 '그렇고말고'였다. 대학 학위는 현자의 돌이었다. 대학 학위 하나가 일년에 150파운드를 받는 3급 사무원을 570파운드 연봉에 자동차를 굴리고 보잘것없는 집세를 내면서도 사치스러운 가구가 비치된 구역에서 살아가는 고급 공무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봉급이나 문화적 설비의 불균형이 단지 이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유럽인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유럽인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일반 대중의 위치에서, 칵테일파티에서 "요즘 자동차가 잘 굴러가는가?"라는 한담을 나누는 엘리트 그룹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136-137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이전에 읽었던 책 중에 <화이트칼라>라는 사회과학 책이 있는데요.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크스의 예측과 달리 화이트칼라라는 신규 중간계층이 생겼다는 점이라죠. 그리고 화이트칼라를 기존의 임금노동자와 구분 짓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교육 수준이라더군요. 단순히 제조 활동만 해도 물건을 팔 수 있었던 산업시대와 달리, 점차 늘어나는 재고를 감당할 더 많은 수요와 시장을 확보해야 함에 따라 물류/영업/마케팅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판매직이 생겨나고요. 이후 기업의 사업구조와 활동이 복잡해지면서 여기서 파생되는 자료와 수치, 문서, 조직을 관리할 관리직과 사무직이 파생됩니다. 그리고 판매직이나 사무직의 업무는 기존의 농민공이나 노동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교육 수준을 요구하였기에 자연스레 학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화이트칼라 = 교육받은 중상위 계급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런 교육에 의한 계층화는 노동자와 화이트칼라만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내에서도 위계와 소득의 계층화를 다시 세분화합니다. 수집 문장에 나온 것처럼, 결국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지만 누군가는 대학 학위가 있다는 이유로 일반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자격'이 부여되는 거죠. <더 이상 평안은 없다>가 발행된 게 1960년이고, <화이트칼라>는 1951년에 나온 미국 저서인데 40~60년대의 폭발적인 화이트칼라의 증가를 치누아 아체베는 문학으로 담아냈네요.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현대사회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계급을 분석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저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어권 사회학자로서 평생 독립적ㆍ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았다. 그의 사상은 현대 사회학과 사회운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과제를 탐구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화이트칼라 숙련의 습득에 필요한 시간과 습득 방법은 이들의 위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다. … 숙련의 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화이트칼라 숙련이 직장보다는 학교에서 습득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규모 독립 재산에서 종속적인 직업으로 전환하게 되면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데서 정규 교육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다. 신중간계급(화이트칼라)에게 교육은 사회적 위치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재산을 대신하게 되었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신중간계급의 저축과 희생이, 자녀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구중간계급의 저축과 희생을 대체한다. 직업적 야망과 그 조건인 교육의 상속이 재산의 상속을 대체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7~36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미국 젊은이들에게 주입된 고등학교 문화의 훌륭한 저장소인 화이트칼라는 평균 12.4년의 학교 교육을 마쳤으며, 자유 기업가는 8.4년, 임금노동자는 8.2년으로 나타났다. 모든 직업 수준과 비교할 때 화이트칼라 남성과 여성은 더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교육 수준을 선도하는 독립 전문직 종사자의 16.4년을 제외하면 가장 길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어떤 교육 체계에 대해 물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 체계의 관리자들은 어떤 종류의 생산물을 기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사회를 기대하고 있는가? 19세기에는 '민주공화국'의 '좋은 시민'이 그 답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전문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답이 되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96,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오늘날 대학생, 특히 명문대 학생의 목표는 대기업에서 미래지향적인 직업을 얻는 것이다. 이런 직업은 직업적 숙련뿐만 아니라 사회적 매너에 대한 교육도 포함된다. 세라 로런스 대학의 총장인 헤럴드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현재의 취업 시장에서 산업 경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졸업생은 정치나 사회 문제에는 무관심하고, 사교 클럽의 회원, 백인, 축구팀의 일원,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은 학생,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있고 캠퍼스에서 잘 알려진 사람, 사교 클럽에 많은 회원 자격을 가진 사람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9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특히 이번 작품을 읽을 때 오비 또는 작중 다른 중상위 계층의 인물들(크리스토퍼, 클라라)의 상황에 가장 잘 들어맞는 내용이 이 문장 같습니다. 화이트칼라가 대두되던 현대사회 초기에는 교육이 '선망 받는' 직업으로 향하기 위한 관문이나 문지기의 역할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은 단순히 직업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화 생활의 향유, 경제적 기반을 통한 사회적 교류, 인맥 형성의 기회 같은 다른 사회적 기반까지 보장하는 보다 폭넓은 보장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죠. 오비나 클라라, 크리스토퍼가 라고스에서 누리는 삶과 작중에서 스쳐 지나가는 다른 일반 나이지리아 인들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더욱 와 닿더군요. 아체베 작가가 말한 것처럼 대학 학위는 한 사람을 그저 평범한 사무원을 넘어, 사교자리와 파티에 갈 수 있는 '현자의 돌'이니까요.
저는 오늘부로 결말까지 완독했습니다. 결말을 읽고 다시 1장을 읽으니 1장의 내용들 중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네요.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한 구성도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시간 동안에는 재독을 하며 감상하려고 해요.
웃지 않는다면 울어야만 할 것이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나이지리아는 형성된 것 같았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144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공정하다고 하는 이보 사람들은, 심지어 작은 질병 하나도 걸리지 않은 사람이 수천 명이나 있는데 음낭에 상피병이 걸린 사람에게 천연두까지 걸리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속담을 만들어 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건 옳지 못하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난다. "세상사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그들은 말한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14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그린 씨가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건 분명하지만 단지 어떤 일부만이었다. 심부름꾼 찰스의 아프리카, 그의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의 아들이나 집사 아들의 아프리카뿐이었다. 본래 그가 이곳에 올 때에는 분명 가슴에 어떤 이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암흑의 핵심에, 기묘한 종교 의식이나 입에 담기도 무서운 관습을 수행하는 야만적인 부족민들에게 빛을 가져다주겠다는 이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아프리카는 그를 배반했다. 인간 제물로 그득한 그의 사랑하는 오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성장(盛粧)한 채 말을 탄 성(聖) 조지는 있는데, 도대체 용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1900년이었다면 아마도 그린 씨는 위대한 선교사 대열 속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1935년이었다면 학생들 앞에서 교장의 뺨을 때리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57년에는 단지 악담을 퍼부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섬광처럼 번득이는 통찰력으로 오비는 졸업하기 위해 읽었던 조셉 콘래드의 소설이 기억났다. "간단하게 의지를 행사하여 실제로 우리는 거침없이 선을 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건 소설의 등장인물인 커츠가 암흑의 심장이 그를 삼키기 전에 한 말이었다. 나중에 그는 "짐승 같은 놈들을 모두 다 없애 버려라."라고 써 놓았다. 물론 이건 아주 유사한 예는 되지 못했다. 커츠는 암흑에 굴복했지만 그린은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새벽에 스스로를 희생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시작과 끝은 상당히 유사했다. 이런 분석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흐뭇해진 오비는 '그린 씨와 같은 사람들이 이 세기에 겪고 있는 비극을 다루는 소설을 꼭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155-15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갑자기 오비는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슨 물의 낭비란 말인가. 대서양의 아주 작은 부분만 가지고도 사하라 사막은 무성한 초원으로 바뀔 것이다. 가능한 최상의 세상이란 말은 이제 그만하자. 여기는 과잉이고 저기는 전혀 없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46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그렇습니다. 진정한 비극은 결코 문제가 해결되는 법이 없지요. 영원히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지요. 전통적인 비극은 너무나 쉬워요. 영웅은 죽고 우리는 감정의 정화를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비극은 W.H. 오든의 말을 인용하면 깨끗하지 못한 모퉁이 같은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63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정말 현실세계에서 문제가 잘 해결되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학폭 직전까지 갔던 문제 때문에 아이들과 부모들이 다같이 모여서 얘기하는데....한 부모님께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 -> 가해자가 본인의 죄를 인정하고 모두에게 사과한다. 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임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피해 아이들은 부모들과 가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들/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만나서 이야기 한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졌다는 반응이었거든요... 무엇이 과연 옳은 걸까요....그것 때문에 모임을 주최한 제가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심지어 가장 피해가 컸던 학생은 가해자 학생과 다시 놀고요(그 아이의 부모님은 모릅니다. 저희 아이 제보). 그 아이 부모님 말로는 아이가 악몽에 시달리고, 가해자 아이한테 전화만 와도 큰 일 난 것처럼 전화받고 했다는데...저희 아이도 그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다시 노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합니다;;;
현실의 문제 대부분이 그렇지만 더 큰 갈등이나 재발을 막기 위해 현재의 수준에서 타협을 하고 봉합하는 것과, 끝까지 발본색원을 해서 재발을 방지한다는 것은 모두 어느 쪽이든 쉽지 않죠... 전자대로 하면 결국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갈등의 씨앗이 또 다시 터져나올 수도 있고요. 후자대로 하면 또 거기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확실하게 마무리 짓겠다는 고집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집이나 집착으로 보일 수도 있고.. 사실 학생들 또래관계만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관계성이라는 건 모순적이죠. 마치 어른들도 사회생활 때문에 어울리거나 마주하기 싫지만 결국 엮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 아이도 가해자 아이와 어울려야만 하는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완독했는데 꼭 다시 1장을 읽어 봐야겠네요. 1장이 시작이 아니고 끝이었다니!
그들이 지금 우무오피아로 와서 훌륭한 대화술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여기로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지배하에서도 여전히 삶의 즐거움이 파괴되지 않은 채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남녀노소를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더 이상 평안은 없다 77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이전에 클라라가 조셉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오비는 그녀의 강도 높은 증오심을 보고 때로는 경악했고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이제 조셉은 미꾸라지같이 잘 빠져나가서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고 남의 행운을 시샘하는 사람이었으며 심지어는 오비를 해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133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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