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13년전 이맘때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는 염습이 있고 입관식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저의 경우도 입관식에 만 참관했네요. 곱게 단장되고 표정도 편안한 어머님을 보니 '어머님 그 옛날 시집오실때 단장하시고 그다음이 이 세상을 떠나시는 날 이렇게 아름답게 단장 하셨네요.' 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장을 읽으면서 2년 사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신 시부모님 생각이 많이납니다.
“봉분에 잔디를 깔면 예쁘지만 오래가야 3년 가요. 그 전에 다 망가져요, 관리를 안 하면. 묘를 봉긋하게 만들면 모양이 예쁘잖아요. 그런데 흙 마르고 그러면 가운데가 다 터져나가요. 손 많이 가는 게 묘예요. 요새는 매년 벌초하러 오는 사람이 없잖아요. 가서 보면 다 터져 있어요.” 결국, 무덤을 개장해 유골을 봉안당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선 묫바람 때문이 아니라 묘지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 파묘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묘지에도 사용 기한이 있다. 2000년에 정부는 분묘의 사용 기한은 30년이며 1회 연장이 가능하다고 정했다. 사용 기한이 지난 분묘는 개장한다는 방침이다. 길어봤자 60년까지 무덤을 유지할 수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업이 만들어준 관계의 자장 속에서 그는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을 본다. 감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내 의지와 무관하게 들어와 싹둑 무언가를 잘라내듯 가져가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 한없이 존재의 작음을 느낄 수 밖에.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국내에서도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2018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병국 씨는 자신이 입원한 병원 공간을 빌려 지인들을 초대했다. 행사명은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 그의 나이 85세였다. “능동적인 장례”를 치르고 싶다던 김병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그날의 장례식을 마무리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의사는 아무나 될 수 없어서 없다지만, 죽음을 다루는 마음이라고 해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음이 있어야 장례가 있고, 마음이 있어야 장례가 치러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3, 희정 지음
염습실에서, 장례식장에서, 장지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았다. 염습실에서 장례인들은 따뜻했다가, 미적지근했다가, 애틋했다가, 무심했다. 애초에 죽음도, 그에 따른 의례도 하나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5, 희정 지음
그가 되레 내게 물었다. 내가 떠나면 우리 가족은 어쩌지? 이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와 그의 가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손이 이리저리 쓸리고 베여가며 쌓아 올린 모래성에 관해 듣는다. 하지만 죽음은 힘도 들이지 않고 가벼이 모래를 쓸어갈 것이다. 간절하게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음을 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생사의 끈을 그는 지루할 만큼 봐왔다. 붙잡고 싶다. 이뤄질 수 없는 소망임을 안다. 그러니 눈물이 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8, 희정 지음
함께 일하는 의전관리사(장례도우미)들에게도 당부한단다. 귀걸이 같은 장신구 하지 말고, 화장 진하게 하지 말고, 너무 밝게 웃지 말고, 우울하게도 있지 말고… 당부가 길어진다. 사별자의 심기를 건드는 어떤 일도 없어야 한다. 슬픔, 불안, 죄책감, 분노, 무력감, 적대심, 해방감, 안도, 외로움… 이 모든 감정이 사별자가 보일 수 있는 심리 반응이라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45, 희정 지음
그런데 그 사수에 그 제자라고, 그날 김영래는 기어코 접힌 부분을 조심스럽게 펴고 펴서 지의 접는 법을 익혔다. 김영래에게 이 일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기술'이다. 그리고 장례에서 기술은 요상하게도 마음과 이어진다. "제 손에 염을 받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많았어요. 손을 한번 잡더라도 따뜻하게 감싸고, 시신을 품에 안아서 옮기니까. 조금 더 세심하다 보면 되더라고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49, 희정 지음
대충 하지 않는 일은 염습 앞에 한 단계 더 있다. 고인이 안치실에 들어가기 전, 아직 굳지 않은 몸을 묶어 팔다리를 가지런히 펴는 일이다. 수시(收屍)라 한다. 이때 '수(거둘 수收)'는 여문 곡식을 거둬들일 때 스는 한자다. 볏짚을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듯 시신의 몸을 정돈한다. 수시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음 날 입관 때 팔이나 다리가 휘어져 있는 고인과 마주하게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0, 희정 지음
울지 않는 사별자를 괘씸하게 여기는 데는 죽음이 무서운 걸 아는 마음이 있다. 죽음은 그렇게 간단히 잊힐만한 것이 아니다. 김영래는 원래 무서운 것을 모르는 차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장례 일도 무서울 것 없이 시작했다. 이전에 했던 일에 비하면 장례 일은 담력을 필요로 하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아주 젊던 시절, 그는 물귀신에게 잡혀간 사람을 건져내는 일을 했다. 해양 구조대가 생기기 전에는 익사한 시신을 찾는 일을 마을에서 수영 좀 한다는 청년들이 맡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3, 희정 지음
아마 그가 인생의 끝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일 거다. 가족이 생기고, 동료가 생기고, 친구라 부를 이들이 생겼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4, 희정 지음
그 아들은 훌쩍 커서 부모와 같은 길을 걷겠다며 장례지도사가 됐다. 장례업이 만들어준 관계의 자장 속에서 그는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을 본다. 감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내 의지와 무관하게 들어와 싹둑 무언가를 잘라내듯 가져가는 것이 죽음이었다. 그러니 그 앞에서 한없이 존재의 작음을 느낄 수밖에.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5, 희정 지음
떨어진 다리는 바느질로 붙이고, 사라진 다리는 골조나 대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인조 피부를 씌워 만든다.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하나하나 재료를 구하고 만들어 연습했다. 죽은 이의 피부는 더 단단해 시중에 나온 인조 피부만으로는 연습할 수 없다고 했다. 직접 제작한 가짜 피부에 수없이 의료용 바늘을 꽂았다. "그렇게 복원 작업을 한 지가 20년쯤 됐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6, 희정 지음
물속에서 시신을 건져 올려 용돈벌이를 하던 십대 소년이 수십 년이 지나 수마에 목숨을 잃은 순직 소방관의 몸을 거두어 영면하게 하는 예순의 노인이 되었다. 그 세월을 들었다. 시간이 가는 일은, 어쩐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살아 있는 일은 귀한 거라고. 어쨌건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 일어난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60, 희정 지음
'시간이 가는 일은, 어쩐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살아 있는 일은 귀한 거라고. 어쨌건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 일어난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어요.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도 다시 이어지기도 하더라고요. 풀리지 않았던 문제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모양이 보이고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해결해준다'는 그 말..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분명 있어서.. 앞으로도 기대되더라고요. 어떤 일을 더 보게 될까. 무엇이 변해가고 무엇이 기억으로 남을까. 시간의 물결이 안좋은 일들은 쓸어간다는 건 기억의 편집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수의도. 미국이든 일본이든 다 자기 양복이랑 드레스 입고 하잖아요. 수의를 팔면 30만 원, 50만 원 벌이가 있겠지만, 저는 그냥 당신이 아끼던 옷을 입혀드리고 더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하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p.64~65, 희정 지음
"나는 동물원 원숭이였어요. 그럴수록 더 신경 써서.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다. 내가 잘하면 '여자가 이 일 해도 괜찮네'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다. 지금도 이 자리는 남자들의 자리라는 인식이 팽배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여자 말고 남자(장례지도사) 보내라고. 그럼 반대로 사람들이 여자 장례지도사를 보내달라고 말하게끔 하자. 저는 역으로 운동을 하는 거죠. 고객이 원하면 결국 여자 장례지도사 자리가 마련되게 되어 있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3, 희정 지음
"세상에서 사람을 지우는 장이 아니다,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기억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저는 장례라는 의식을 프로듀싱한다고 생각해요. 장례지도사는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보조출연자이기도 한 거죠. 이 무대의 주인공은 고인이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4,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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