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어떨 때는 마음을 다 했는데도 돈도 그만큼 안 되고, 고맙다는 말도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서운하지 않은 게, 그분하고 인연을 잘 맺었잖아요. 내가 그분을 위해 기도 한번 했잖아요. 그 연으로 그 영가(영혼)가 나를 도울 거 아니에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편안하거든요." 그가 의례의 형식에 치중하지 않는 건 인연을 믿기 때문이다. 공소를 세웠다는 그의 할아버지와 닮았다. 성직자 없이 신도들이 마음 모아 세운 성당. 시골의 작은 공소를 찾아가면 낮은 한옥 건축에 제단에는 십자가상만 걸려 있곤 했다. 소박하지만 사람들의 기원이 모이는 곳. 이안나가 추구하는 장례와 닮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5, 희정 지음
"무탈하게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모시고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 어두울 거라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돌아가신 그분들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내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분들의 죽음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잘 죽고 싶은, 잘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것 같아요.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지죠.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저의 행복론이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6, 희정 지음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다. 국내 모든 장례식장의 위치, 규모, 장례 물품 비용 등의 정보가 나와 있다. 정부가 장례식 비용의 합리화를 위해(소위 '바가지'를 막기 위해) 가격 표기를 법제화한 이후, 장례식장은 물론 봉안 시설도 이용 가격을 고시해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4, 희정 지음
유교가 통치 이데올로기인 사회에선 유교식 장례가 집행된다. 장례를 비롯해 생애주기에 따른 의례의 엄격한 형식과 절차가 그 시대의 통치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형식은 통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인생에 들어오는 순간, 확실한 것은 없어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호주제는 2008년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장례식장은 상주 성함을 적는 칸에 영희, 지영, 민지 같은 이름을 적길 꺼려 한다. 장례는 산 자를 위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문제는 산 자가 지닌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란스럽다. 장례는 각기 다른 자본(문화·경제·상징자본 등)을 지닌 사람들의 관계가 경합하는 장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필요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모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다. 아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싶은지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세계를 만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일본 장례식장에서 일한 경험을 글로 써낸 다스슝의 일화가 생각난다. 다스슝은 어깨 통증을 느꼈는데, 마치 무언가가 어깨에 올라탄 것 같았다. 그는 장례식장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의 상태를 본 선배들은 은밀하게 그에게 ‘효과 좋은 곳’을 알려주었다. 영험한 무속인의 연락처일 거라 생각하고 펼쳐본 쪽지에는 마사지 가게 주소가 있었다나. 근골격계는 전 세계 장례인들의 직업병인가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식장은 예식장보다 훨씬 늦게 들어온 공간이다. 1928년 《매일신보》의 <결혼공개내용>을 보면,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 ‘공회당(교회 예배당), 동아일보사 강당, 식도원(음식점)’ 등을 짚었다. 이때부터 혼인식을 집 앞마당에서 해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져갔다. 그에 비해 이로부터 30년이나 지난 1969년에야 가정의례준칙은 장례를 치르는 장소를 집과 더불어 ‘기타 편리한 장소’로 확대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저도 어릴 때 장례식을 자기 집에서 치르던 분들이 기억 납니다. 성당 지하에서 치르는 분도 있었고요. 결혼식을 집 마당에서 올리는 풍경은 낯서네요.
요즘 시골 노인들은 한동네에서 살아온 이들과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심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보지 못한다. 상여를 메고 마을로 오지 않는다. 아들딸이 사는 어느 도시에서 장례를 치렀다더라 소식만 들려온다. 아마도 그는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이 고래실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검은 양복은 1934년 의례준칙의 시행에 따라 처음으로 상복으로 지정되었다. 이때 삼일장 절차도 만들어졌다. 그렇다. 일제강점기다. (일본의 시각에서)‘조선의 근대화’라는 명복으로 장례 절차가 정비됐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8, 희정 지음
그럴 만도 한 것이, 2008년 한 해에만도 16개 상조업체가 광고법 위반, 다단계판매법 위반 등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2010년에는 보람상조, 현대종합상조 임원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상조가 미리 돈을 받는 선불식 할부 판매를 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판매한 적 없는 상품의 대가로 선불 현금을 받는다. 선불금을 유용하여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이 과정에서 사고가 난다. 상조회사의 난립으로 내부 경쟁도 극심해 부도나 파산의 위험이 뒤따랐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모바일 부고에 계좌번호가 함께 담겨 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8, 희정 지음
빈소가 작다는 건 조문객이 적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업계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장례식장의 주 수익원이 음식 장사이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9, 희정 지음
매번 뒤늦게 참여합니다. 열심히 달려볼게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90, 희정 지음
한정된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리는 없다. 그런데도 최대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남겨진 이들에게 건네는 장례지도사들이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94, 희정 지음
규칙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고객과 눈을 맞출 때는 활짝 웃어서는 안 된다. 무표정도 안 된다. 여기는 슬픈 곳이니 슬픈 표정은 더욱 안 된다. 장례식장과 서비스직 , 그 경계의 표정과 몸짓과 눈빛을 놓아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0, 희정 지음
퇴직금 없는 일용 근로자 지위와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법적 권리가 지켜질 리 없는 노동의 형태는, 주어진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려진다. 우리 사회는 나이든 여성의 노동을 값싸게 여긴다. 하지만 빈소의 하루를 눈여겨 본다면 장례라는 산업이 중년 여성으로 대표되는, 돌봄 노동으로 단련된 이들의 노동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1, 희정 지음
옛사람들은 수의를 북두칠성의 뜻을 이어받은 옷이라 여겼다. 멧베(대마 끈)로 시신을 일곱 번 묶는 등 지금까지도 북두칠성의 의미를 따른 흔적이 남아 있다. 청동기 시절부터 조상들은 북두칠성에 죽은 이의 명복을 빌었다.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어서일까. 칠성신은 염원의 신으로, 평온과 장수, 무병과 태평의 기도를 들어주는 신으로 여겨진다. 기도를 들어주는 신. 죽음 앞에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22,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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