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교육원 강사들은 상조회사로 취업하기를 권했다. 상조회사에 가면 일하는 만큼 번다고 했다. ‘일한 만큼 버는 곳’이라는 건 현실에선 이런 의미다. 낮은 기본급을 건당 수수료(수당)로 메우는 곳. 장례지도사 개개인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불안정한 고용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인적 서비스’를 강조하던 광고들이 무색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고인에게 무심한 지도사가 적지 않았다. 시신 소독과 처리 과정 때문에 장례업은 보건복지부 관리 소속이라 들었는데, 과연 이걸 소독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대충 처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알코올 스프레이를 고인의 몸에 서너 차례 칙칙 뿌리고 끝이다. 고인의 몸을 닦는 솜을 적실 알코올 원액과 물의 비율까지 배운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동료까지 불러와서 안치실을 사랑방으로 만드는 장례지도사, 전날 과음하고 와서 고인의 코앞에 꺼억 트림을 해대는 장례지도사까지. 다채로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흔히 생각하듯, 도시는 단순히 시골의 반대말이 아니다. 근대 이후 형성된 도시는 ‘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장소이다. 시장은 공간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는 세계의 작동 원리이고, 이곳에서는 인간마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장례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장례가 돈이 되는 사업이란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수의를 다 입혀드리고 나서 얼굴을 (감싼 천을) 여는데, 고인이 눈물을 주룩 흘리는 거예요. 내가 눈물을 닦아드렸어요. 다 놓고 가시라고. 편히 가시라고. 그런 걸 겪으면 영을 믿게 돼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95, 희정 지음
장례가 장례 산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장례인도 서비스직 인력이 되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7, 희정 지음
오늘 일해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용직들로 구성되었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팀 작업이다. 요즘의 기업은 사람 사이를 분리하고 해체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모여 일하고 뭉쳐 일한다. 그래야 일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8, 희정 지음
상주님이 안심하면 그때부터 일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서로를 믿는 마음으로 퇴근을 하는 거죠. 상주의 마음을 읽는 거, 삼 일 동안 그게 저희 숙제에요. 너무 어려워. 정말 숙제야.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10, 희정 지음
누군가의 죽음이 정리되는 장소에서 누군가는 먹고 사는 일을 하느라 치열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인과 그 가족들을 향한 예의와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례지도사들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내가 얼굴도 모르는 이를 화로에 넣어두고 느낀 외로움은 마음이 다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상처를 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고, 죽은 사람이 흰 뼈가 되는 일은 피할 길이 없어 잔혹하다. 그 잔혹함을 줄여주는 것이 화장 기사들의 정중한 몸짓이라, 그걸 보며 위안을 받았었나 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7, 희정 지음
손은 바쁘고 지켜야 할 것은 많다. 아직 금기를 다 읊지 못했다. 수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입는 옷이기에 바늘땀을 다시 뒤로 돌려 떠서는 안 된다. 실이 짧다고 해서 다른 실을 이어 묶어 사용해서도 안 된다. 수의에는 매듭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느질이 끝나도 매듭을 짓지 않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21, 희정 지음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문득 우리는 현실에서 매듭을 지으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을 맺고 마무리가 있고요. 그랬기에 오히려 다음 세상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런 매듭도 짓지 않는 것이겠지요? 하여 이 세상도 가끔 매듭을 짓지 않고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의만큼은 정갈하게 입고 싶어. 번잡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번잡스럽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원한다. 다만 존중받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30, 희정 지음
내내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번듯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요. 하나의 존재로 존중받고 싶었다고요.
"무탈하게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모시고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 어두울 거라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돌아가신 그 분들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내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분들의 죽음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잘 죽고 싶은, 잘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것 같아요.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지죠.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렇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 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그에게 보내는 최선의 애정이라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우리는 감정 노동자예요. 이건 우리가 감정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그 감정이 닫혀버리면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손가락 부러진건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돼요. 그런데 절대 펴지지 않는게 이 감정이야. 그러니까 언니 동생으로 다가가야 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 일은 담력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꼭 시신을 만지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음'을 깔고 하는 일이라 그런가. 담력이 필요하다. 그건 겁이 없다는 말과는 또 다르다. 세상사를 대하는 데 담담해져야 한달까. 그렇게 따지자면, 장례일이란 한껏 유약한 내가 취재하기에 거리낌 없는 분야는 아니다. 그런데도 쫒아갈 수 있던 건 이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일만 하던 분이라 헛소리를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병상에 누워서도 '찰벼를 털어. 찰벼를 털어야 해'. 농사짓는 분이니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걸 걱정하다 간 거야. 여물 솥에 넣어 소죽 만들어야 한다고. 가는 내내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돌아가셨어. 누리다가 돌아가셨으면 좋은데. 누린다는 게 뭐 별거야. 그냥 밥이라도 잘 먹고. 그런데 맨날 시래기 죽만 만들다가 돌아가셨어.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어."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2, 희정 지음
슬퍼하지 마라. 아쉬워하지 마라. 상여 속 고인에게 불러주는 노래인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말인가. 상엿소리가 슬픈 것인지 사는 일이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p.144~145,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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