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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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 손은 바쁘고 지켜야 할 것은 많다. 아직 금기를 다 읊지 못했다. 수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입는 옷이기에 바늘땀을 다시 뒤로 돌려 떠서는 안 된다. 실이 짧다고 해서 다른 실을 이어 묶어 사용해서도 안 된다. 수의에는 매듭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느질이 끝나도 매듭을 짓지 않는다. "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문득 우리는 현실에서 매듭을 지으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을 맺고 마무리가 있고요. 그랬기에 오히려 다음 세상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런 매듭도 짓지 않는 것이겠지요? 하여 이 세상도 가끔 매듭을 짓지 않고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ifrain님의 문장 수집: ""수의만큼은 정갈하게 입고 싶어. 번잡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번잡스럽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원한다. 다만 존중받는. "
내내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번듯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요. 하나의 존재로 존중받고 싶었다고요.
"무탈하게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모시고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 어두울 거라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돌아가신 그 분들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내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분들의 죽음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잘 죽고 싶은, 잘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것 같아요.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지죠.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렇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 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그에게 보내는 최선의 애정이라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우리는 감정 노동자예요. 이건 우리가 감정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그 감정이 닫혀버리면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손가락 부러진건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돼요. 그런데 절대 펴지지 않는게 이 감정이야. 그러니까 언니 동생으로 다가가야 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 일은 담력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꼭 시신을 만지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음'을 깔고 하는 일이라 그런가. 담력이 필요하다. 그건 겁이 없다는 말과는 또 다르다. 세상사를 대하는 데 담담해져야 한달까. 그렇게 따지자면, 장례일이란 한껏 유약한 내가 취재하기에 거리낌 없는 분야는 아니다. 그런데도 쫒아갈 수 있던 건 이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일만 하던 분이라 헛소리를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병상에 누워서도 '찰벼를 털어. 찰벼를 털어야 해'. 농사짓는 분이니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걸 걱정하다 간 거야. 여물 솥에 넣어 소죽 만들어야 한다고. 가는 내내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돌아가셨어. 누리다가 돌아가셨으면 좋은데. 누린다는 게 뭐 별거야. 그냥 밥이라도 잘 먹고. 그런데 맨날 시래기 죽만 만들다가 돌아가셨어.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어."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2, 희정 지음
슬퍼하지 마라. 아쉬워하지 마라. 상여 속 고인에게 불러주는 노래인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말인가. 상엿소리가 슬픈 것인지 사는 일이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p.144~145, 희정 지음
한국에서 유난히 묘지가 거슬린 데는 높은 인구 밀도 외에도 토지가 개발과 증식, 투자의 공간이 된 까닭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갯벌이 메워지는 가운데, 땅은 부지런히 사고 팔렸다. 땅은 귀해졌고 사람은 태워졌다. 1994년 20퍼센트대에 머물던 전국 화장률은 2023년 90퍼센트에 달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8,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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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수의를 입지 않을 테다. 직장(直裝)을 원한다. 나무관도 쓰고 싶지 않다. 태워질 거라면 종이관이면 좋겠다. 빈소는 하루만. 빈소 제단엔 생화가 놓이지 않길 바란다(꽃을 뿌리에서 분리할 이유가 없다). 조문객에게 육식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일회용품 식기도 마찬가지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추모식은 장례를 대체하는 방식인데, 핵심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떠나보내는 사람을 기억하는 자리. 두 번째는 상실감과 슬픔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간. 지금의 장례에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울고 있을 수도 없어요. 손님들이 막 들이닥치니까. 그런데 사실 마음은 너무 힘들어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옛날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죽는 일을 객사라 불렀다. 객사한 사람은 집안의 조상(신)이 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 했다. 우리가 ‘잡귀’라 부르는 이들의 정체가 바로 집 밖에서 죽은 이들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우리는 옛날 같았으면 모두 잡귀 예약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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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님의 문장 수집: " 옛날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죽는 일을 객사라 불렀다. 객사한 사람은 집안의 조상(신)이 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 했다. 우리가 ‘잡귀’라 부르는 이들의 정체가 바로 집 밖에서 죽은 이들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우리는 옛날 같았으면 모두 잡귀 예약이다. "
우리가 병원에서 죽는 일이 당연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40년 전이다. 1980년대만 해도 병원이나 의료 기관에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사망자 대비 25퍼센트에 불과했다. 2021년 기준, 병원에서 사망하는 이의 비율은 74.4퍼센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나는 사람이 시체로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늙은 몸으로 등장한데 더 놀랐다.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벗은 몸. 나는 나이 듦도 모른 채 죽음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이다.고인의 몸에서 욕창 밴드를 떼어내며 죽는 일보다 늙는 일에 대해 먼저 배웠다.p.24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ifrain님의 문장 수집: "한국에서 유난히 묘지가 거슬린 데는 높은 인구 밀도 외에도 토지가 개발과 증식, 투자의 공간이 된 까닭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갯벌이 메워지는 가운데, 땅은 부지런히 사고 팔렸다. 땅은 귀해졌고 사람은 태워졌다. 1994년 20퍼센트대에 머물던 전국 화장률은 2023년 90퍼센트에 달했다. "
땅에 돈이 쌓여갈수록 사람에게는 설 자리도, 누울 자리도 없어집니다.
장례는 움직이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계산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그 일이 무서웠다. 판단 하나하나에 돈이 따라붙는데, 그 결과는 금전적 손해를 넘어 감정적 치달음으로 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내 돈 쓰고도 이토록 뭔지 모르겠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일을 설명하며, 다들 내게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다. 자유롭다”라고 한 것 같은데. 프리랜서 의전관리사가 생길 수 있는 까닭은, 그네들이 아침에 연락을 해도 당일 일을 나올 수 있는 ‘예비’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노동자’들은 외부 노동시장의 산업예비군이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야, 중년 여성 블루칼라 일자리에서 이 정도 돈 주는 곳이 없다. 퇴직금 없는 일용근로자 지위와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법적 권리가 지켜질 리 없는 노동의 형태는, 주어진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려진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든 여성의 노동을 값싸게 여긴다. 하지만 빈소의 하루를 눈여겨본다면 장례라는 산업이 중년 여성으로 대표되는, 돌봄 노동으로 단련된 이들의 노동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일이 아니어도 종종 취재 간 장례식장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그때마다 의전관리사가 가져온 집 반찬이 두어 개씩 꼭 올라왔다. 이날은 김장김치가 올랐다. 달걀 프라이를 해온 이도 있다. 이 또한 중년 여성이 대다수인 직장의 특징이다. 우리끼리 “사육당한다”라고 농담할 정도로 계속 챙겨 먹인다. 누룽지까지 마시고, 턱까지 음식이 차서 못 먹겠다고 손짓을 두어 번 해야 끝이 난다. 그제야 밥상에서 물러날 수 있다. 누가 이 사람들에게 ‘챙기고 먹이고 돌보는’ 일을 이토록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정해진: 그때는 저보고 왜 왔냐고 그랬어요. 너무 젊으니까. 여기가 바닥인데 뭐 벌써부터 젊은 애가 바닥으로 왔냐고. 그 말이 제일 힘들었어요. 김주원: 인생 살면서 심적으로 제일 어려운 시기에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요. 그런데 그건 그때고,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여유가 있어도 이 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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