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보편적이라 불리는 생애주기에서 어긋난 삶을 산다는 건, 끊임없이 질문받으며 산다는 말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34, 희정 지음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이라 해도 타인의 시선에 갇혀 남들과 똑같은 장례를 치러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46, 희정 지음
세상이 남이라고 치부하는 관계들이 모여 그를 기린다. 동창, 마을 주민, 동아리 회원... 누구라도 그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47, 희정 지음
우리가 '잡귀'라 부르는 이들의 정체가 바로 집 밖에서 죽은 이들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우리는 옛날 같았으면 모두 잡귀 예약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2, 희정 지음
애도되어야 할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나누는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곳에선 더 많은 이의 죽음이 기억된다. '잘못된 죽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8, 희정 지음
"일상 의례의 궤적에서 이탈하는" 죽음은 서둘러 잊혀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9, 희정 지음
익명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아니, 망각으로 이어지기를 요구받는다. 허나 기억하는 일이 어렵듯이 잊는 일도 쉽지 않다.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상실은 오히려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니 숨 쉬지 못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9, 희정 지음
우리 사회가 부끄러운 일로 여겨 숨기고자 하는 죽음이 있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 홀로 맞는 죽음, 가난한 죽음.... 죽음을 숨기는 일은 사실 삶을 숨기는 것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9, 희정 지음
내게 있어 죽은 자의 존엄은 그가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정상과 비정상, 쓸모와 무용, 질서와 이탈이라는 이분법 속에 삶이 익명화되거나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자신이 설명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엄과는 무관한 일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0, 희정 지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죽는다. 값싼 옷이 값싼 수의가 되고, 좁은 집은 좁은 목관으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세상사 순리다. 다만, 결관 끈마저 가난할 수 있다니. 부의 불평등이 너무도 구체적이라 슬플 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나. 아니, 악마도 가난의 디테일을 이길 수 없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1, 희정 지음
"그곳에선 평등하시길." 그냥 하는 소리다. 땅에서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데, 사후 세계라고 평등할 수 있을까. 기억과 애도는 살아 있는 자의 것이기에, 이곳에서는 죽음 앞에서 애도조차 평등하지 않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2, 희정 지음
세상이 말하는 '답 없는 삶'들이 있다. 사회가 애도하는 데 인색한 죽음이 있다. 죽음에 값어치를 매기는 건 이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값어치를 매겨온 세상에선 죽음에도 손쉽게 값이 매겨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2, 희정 지음
'진짜로 안타까운' 죽음과 '답 없는 삶'의 결과인 죽음이 나뉜다. 후자의 죽음은 지워진다. 기억은 죽음 뒤에 당연히 다라오는 것이 아니다. 기억해줄 사람이 모여야 하고, 사람들이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한다. 사회가 시간과 비용을 내놓는 데 인색한 죽음은 쉽게 지워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3, 희정 지음
문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이 시작된 최초의 증거로 '치유된 대퇴부'를 꼽는다. 다리뼈가 부러진 사람은 사냥도 이동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대최부가 치유되었다는 건 그가 나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돌봤다는 증거라고 했다. 공동체가 영위되는 순간을 문명이라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정한 희생을 감수하고 기꺼이 타인을 애도하는 것은,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이자 동력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4, 희정 지음
사회적 관계를 묻는 물음 앞에 동성 애인은 친구가 되고, 사실혼 배우자는 이웃이 된다. 질문이 없으면 거짓 대답도 없다. 질문 없는 빈소가 묘하게 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방편으로 침묵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9, 희정 지음
단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우리는 '(혈연-법률) 가족'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가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73, 희정 지음
출산, 양육, 부양, 연명, 의료, 그리고 장례까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이 오직 (정상)가족 단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둔 사회는, 가족을 벗어나 구성원이 맺는 다양한 유대적 관계를 보려 하지 않는다. 무연고자가 증가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73-274, 희정 지음
'시신을 포기한 가족'들이 괘씸하다며 속내를 드러니는 걸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눔과나눔 활동가들은 시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위임'한 것이라며 표현을 정정한다. 포기와 위임 사이에는 장례 비용이 평균 1400만 원인 현실이 존재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74, 희정 지음
어릴 적 집을 나간 고인과는 10대 이후로 본 적이 없다는, 이제는 늙어버린 동생이 빈소를 찾은 날. 장례를 치르고 함께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의 교통카드가 연신 잔고 없음을 알려댈 때, 나는 사별자들이 들려준 사연을 책에 담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애도가 아닌 품평을 할 거라는 우려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가난은 디테일하고 삶도 디테일하니까. 한두 시간 남짓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이 들려준 고인과의 관계, 그 안에 박힌 세밀한 경험과 감정을 내가 알 리 없었다. 악마가 디테일에 숨어 있듯, 애도도 그곳에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75-276, 희정 지음
숨이 멈춘 상태에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주검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을 테니. '요람에서 영안실'까지가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79,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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