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어떻게 해야 나도 후회가 없을까. 지금 호세한테 최선을 다하자. 그래야 후회가 안될 것 같다. 집에 들어가 인사하는 것부터 산책하고 놀아주는 것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같아요. 호세 덕분에 이 아이와의 시간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하루하루가 후회되지 않게 만들어야되겠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최선을 다하는 영역이 점점 확장되는 거 같아요. 588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저한테 연대는 나의 안팎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저는 혼자 오래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러다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을 찾아갔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놀라웠던 게, 번듯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나의 약한 부분을 드러냈는데도 제가 계속 수용되고 연결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가 받았던 차별이나 배제가 단지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599p.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무연고에서 퀴어, 반려인의 애도까지 함께 이야기 나눌 거리가 무척 많다는 것을 느끼는 밤입니다.
화자가 섞이는 것은 상엿소리의 특징이다. 소리꾼은 고인의 심정이 되어 가사를 읊기도 하고, 고인을 떠나보내는 상주나 사별자의 입장이 되어 노래하기도 한다. 화자가 섞이는 와중에 나의 시집살이 설움이 고인이 가는 길의 설움과 섞인다. 연도에선 상여 배가 솔섬에 닿으면 사람들이 관에 묶인 노뿌줄(연도에서는 설배 끈을 노뿌줄이라 불렀다)을 잡아당긴다. 관이 뭍으로 가야 하는 순간, 이때는 상여꾼과 문상객이 따로 없다. 모두가 줄을 잡아당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를 비롯해 생애주기에 따른 의례의 엄격한 형식과 절차가 그 시대의 통치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형식은 통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인생에 들어오는 순간, 확실한 것은 없어진다. 호흡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제까지 눈 맞추던 이가 다시는 못 볼 사람이 된다. 이유가 없다. 때론 기별도 없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세계의 불가해함에 직면한다. 이 불가해한 세계에서 내일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산 사람들은 반동을 겪듯 변하지 않는 존재를 부여잡으려 한다. 그리하여 장례는 관례와 약속, 각종 규칙으로 채워진 의례가 된다. 불가해함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절차가 엄격하고 틀은 확고하다. 모든 행위에 의미가 부여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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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장례를 비롯해 생애주기에 따른 의례의 엄격한 형식과 절차가 그 시대의 통치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형식은 통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인생에 들어오는 순간, 확실한 것은 없어진다. 호흡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제까지 눈 맞추던 이가 다시는 못 볼 사람이 된다. 이유가 없다. 때론 기별도 없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세계의 불가해함에 직면한다. 이 불가해한 세계에서 내일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산 사람들은 반동을 겪듯 변하지 않는 존재를 부여잡으려 한다. 그리하여 장례는 관례와 약속, 각종 규칙으로 채워진 의례가 된다. 불가해함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절차가 엄격하고 틀은 확고하다. 모든 행위에 의미가 부여된다."
별의별 일이 닥친다. 상여 행렬 순서 같은 것은 무의미해진다. 죄인이건 효자건, 상주가 지팡이만 짚고 있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얽히고설켜 장지에 도착한다. 확실한 것이 없는 불가해한 세상에서 죽은 자를 장례 치르려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지키려는 의례의 절차는 엄격해도, 그마저 뜻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그래도 고인은 새로운 집을 찾았고, 사람들은 땡볕에 타고 설움이 오르고 술에 익어 불콰해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죽은 자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사라진 자리는 무엇이 대신할까. 미지의 영역에 가깝던 자연 현상을 예측하고, 더 나아가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휩싸인 현대인들이 인류가 지녀온 자연을 향한 경외감을 지우고, 그 자리에 다른 존중을 채워놓지 않아 벌어지는 일을 도처에서 보고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p.165 반지하 방에 물이 들어차 세상을 떠난 가족은 그곳이 지대가 낮다는 사실을 몰라서 집으로 삼은 게 아니다. 재벌 기업이 모셔온 지관이 지정한 명당에 건물을 올려도 건설 현장 작업자는 추락한다. 건설업체가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단가를 낮추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명당이라는 것이 이러하다면, 풍수 같은 건 묻고 싶지 않았다. p. 277 나는 사별자들이 들려준 사연을 책에 담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애도가 아닌 품평을 할 거라는 우려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가난은 디테일하고 삶도 디테일하니까. 한두 시간 남짓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이 들려준 고인과의 관계, 그 안에 박힌 세밀한 경험과 감정을 내가 알 리 없었다. 악마가 디테일에 숨어 있듯, 애도도 그곳에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죽기까지 고민하지, 죽음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은 의미가 없으니, 남겨진 자들의 몫이려니 하면서요. 책 한권 읽었다고 이런 마음이 바뀔리는 없지만, 좋은 책이였습니다. 작가님이 얼마나 공들여 취재를 하고 글을 썼을지 느껴집니다. 건조한 문장이 주는 묵직함과 울림이,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놓은 그것들보다 훨씬 큽니다. 전통이란 이름의 복잡한 장례 절차는 없어져야 한다는게 평상시 생각입니다. 거기에 더해 풍수니 영혼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것들도 사라져야 겠지요. 특히나 무연고자나 성소수자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장례 절차가 복잡하지 않다면 이들도 더 편하게 세상을 떠날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조만간 떠나보내 드려야될 양가 부모님들이 책에 나온것처럼 정성을 다하는 관계자 분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작가님께, 그리고 좋은책 추천해주신 모임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사람들이 생전장례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동네잔치가 되어도 좋고, 전시를 할 수도 있고, 그냥 소박하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서 SNS에 올릴지라도. 생전장례식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누구든 그런 경험은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92, 희정 지음
생전장례식은 멈춰 세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이, 이대로 간다고? 잠시만.' 사는 대로 사는 나를 멈춰 세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생전장례식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우리는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93, 희정 지음
화자가 섞이는 것은 상엿소리의 특징이다. 소리꾼은 고인의 심정이 되어 가사를 읊기도 하고, 고인을 떠나보내는 상주나 사별자의 입장이 되어 노래하기도 한다. 화자가 섞이는 와중에 나의 시집살이 설움이 고인이 가는 길의 설움과 섞인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04, 희정 지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본인 무덤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화강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무덤은 단단한 벽과 바닥이 되어주었고, 유골함이 자리했던 광중은 아궁이 역할을 했다. 비석이 지천에 널려 있어 자재 걱정이 없었다. 다만 죄책감과 두려움이 따라올 뿐이었다. 비석의 이름을 페인트로 덧칠해 그 흔적을 지워보았지만, 그 이후 수십 년간 아미동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귀신과 도깨비불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15, 희정 지음
비유가 아니다. 2008년 삼성글로벌리서치(삼성경제연구소)는 그해 10대 히트 상품 중 8위로 '상조 서비스'를 뽑았다. 공중파와 케이블TV에 상조업체 광고가 허용된 지 4년 만이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18, 희정 지음
1990년대 서울 인구는 천만 명을 넘어서며 최고점을 찍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도시의 병원에서 죽고, 병원 지하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러한 지원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에 전국에 10개소도 되지 않던 장례식장이 1995년에는 321개소, 2000년에는 465개소, 2010년에는 815개소로 늘어났고 지금은 천여 개에 이른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19, 희정 지음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까진 아니어도 꾸준히 오랫동안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할 텐데, 장례업계 이직률은 몹시 높다. 통계가 있는 건 아니다. 통계 자체를 낼 수 없다. 입사자도 퇴사자도 없다. 상조업체에 직원으로 직접 고용되어 일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고 끊을 뿐이다. 상조업체에서 일하는 장례지도사 대부분이 특수고용직이다. 자택에서 대기하다가 순번에 따라 일이 들어오면 장례식장으로 가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불안정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25, 희정 지음
장례가 이토록 모를 것이 된 까닭에는 도시가 있었다. 모두 도시로 왔다. 도시의 병원에서 태어나 시설에서 늙다가(돌봄의 외주화) 병원에서 죽는다(임종의 의료화). 골방이나 다름없는 처치실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현대인의 죽음이다. 이후의 운명은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 맡겨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32, 희정 지음
흔히 생각하듯, 도시는 단순히 시골의 반대말이 아니다. 근대 이후 형성된 도시는 '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장소이다. 시장은 공간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는 세계의 작동 원리이고, 이곳에서는 인간마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장례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장례가 돈이 되는 사업이란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32, 희정 지음
임신부들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노인들은 요양 시설 병실에 누워 자신의 것이 아니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몸에 절망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33,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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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in님의 문장 수집: "임신부들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노인들은 요양 시설 병실에 누워 자신의 것이 아니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몸에 절망한다. "
내 것이었던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내 몸의 주체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낄 때 당혹스러움은 절망감으로 연결되는군요. 그런 순간 몸의 주인에게 말을 걸어주고 의사를 존중해주려는 배려가 그들에게 건낼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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