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돌봄이 막대한 책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죽음을 통해 크게 배웠다. 그러니 돌봄을 놓지 않는, 아니 이를 시작으로 관계의 순환과 애도의 지속을 시도하려는 지안이 내게는 놀랍기만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지안이 말한 안팎이 뒤집히는 경험, 울타리 바깥 존재와의 만남. 그 시작이 울타리 안의 존재로부터 비롯될 때가 있다. 내부의 존재와 잡은 손이 어느새 울타리 밖을 향하고, 외부에 놓인 ‘필멸’이라는 공동의 운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울타리 안팎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 손을 잡으면, 우리는 죽어가는 이의 이웃이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내가 원하는 세상은, 누구든 그저 살아가는 일만으로 존중받는 곳이다. 조금 더 바란다면, 죽어서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살았던 존재라는 사실만으로 흠뻑 애도받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나는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동물은 동물답게, 인간은 인간답게’와는 다른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집어삼킨 개발과 이윤의 도시에서 고양이는 어떻게 고양이답게, 나는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길가의 고양이도, 나도 공통의 과제를 지닌 셈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국내에서 노숙자의 인구통계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가족과 일자리를 잃은 가장’으로 상징화된 노숙자에 대한 복지 정책이 주요한 통치 전략으로 들어왔을 때다. ‘비혼모’에 대한 통계 조사가 시작된 것은 2008년 이후. 한부모 지원 정책이 마련되던 시점이다. 이전까지 이들은 없는 존재였다. 있어서는 안 되기에 없었다. 존재가 드러날 때 정책이 마련되고,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숫자가 필요하다. 이때 국가 단위 조사가 실시된다. 그러니 근대 국가가 생긴 이후 사람들의 투쟁은 국가가 통계화하는 ‘숫자’에 들어가는 존재가 되기 위한 싸움이라고 할만하다. 숫자에 속하지 않으면 삶도 죽음도 보장받을 수 없다. 죽지 않기 위한 모든 싸움이 숫자와 연결되었다. 그것은 성원권 획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동시에 ‘숫자’로 머물지 않기 위한 분투가 이어졌다. 노숙인의 삶이 숫자로만 머물지 않게, 시설 장애인의 삶이 숫자로 갇히지 않게, 죽음이 ‘사망자 통계’로만 남아서는 안 되기에. 사는 건 투쟁이라더니 죽는 일도 그러했다. 죽음마저도 숫자 싸움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평생 치마를 입지 않았으며 성별화된 옷을 거부해온 이의 마지막 옷이 치마가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아 이 문장 좋네요… ㅠ
막바지 부분을 읽으며 저의 "죽은 다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가족장으로 단순하게, 활짝 웃는 영정사진으로, 제가 평소 제일 좋아했던 옷을 입고, 소반에는 제일 즐겨 찾는 쌀국수를, 배경 음악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연주가 나오는... 그런 장면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죽은 다음》 5월 4주차 ■■■■ ● 함께 읽기 기간: 5월 22일(금) ~ 5월 28일(목) ● 함께 읽기 분량: 7장 졸곡 & 나오며 한 달간 이어온 죽음 곁의 노동을 기록한 여정이 이제 마무리에 다다랐습니다. 마지막 4주차에는 7장 '졸곡'과 '나오며'를 읽으며, 슬픔을 거두고 다시 산 사람의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7장을 통해 연고 없는 외로운 죽음일지라도 “모든 봄을 기억해낼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희망 섞인 다짐에 마음을 보태봅니다. 저자는 이 모든 기록이 결국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네요. 저는 최근 영화 <잔칫날>을 보았는데, 우연히도 영화 <축제>와 영어 제목(Festival)이 같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장례가 남겨진 이들에겐 또 다른 형태의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삶의 역설을 어렴풋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장례 용어조차 낯설었던 첫날의 어색함을 기억하시나요? 이 책을 덮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사람’ 혹은 ‘문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타인의 죽음을 정성껏 수습하는 노동을 통해 우리가 배운 ‘삶의 품위’에 대해 마지막 단상들을 나누어 주세요. 29일이라는 긴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잔칫날경만은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여동생 경미와 함께 간호하며 각종 행사 일을 하는 무명 MC 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장례식장.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비용에 대한 걱정을 하며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만 생각처럼 돈이 마련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행사 일을 함께 하는 선배로부터 행사 대타 제안의 전화를 받게 되고, 돈이 필요했던 경만은 적지 않은 액수를 듣고 수락한다. 장례 둘째 날, 경미에게 금방 나갔다 오겠다며 장례식장을 맡기고 삼천포 궁지마을 삼복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팔순 잔치를 진행하던 중에 삼복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자 잔칫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할머니가 쓰러진 이유가 경만 때문이라는 마을의 실세인 청년회장과 부녀회장의 오해를 받게 되면서 잔칫집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 닥친 경만.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수 있을까...
내가 죽음에 관해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혼자 죽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러니 사람은 말기 암을 선고받고도 다음 날 출근을 하고, 메일을 열어 거래처와 일정 조율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주말에는 요양원을 찾아간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유언이라는 걸 남기고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희정작가님의 <죽은 다음> 만큼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는 죽음을 친숙하고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 책이 또 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죽음을 철학적으로 파고 들수도 있지만 내삶의 필연적 한부분으로 세심하게 설명하고 함께하는 글에 감사합니다~❤️
나이 든 몸 앞에 서는 동안 무수한 감정이 몰려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몸이 초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동요하는 이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도 두 손을 모아 쥐게 하는 종류의 것임은 분명했다. 동정이나 안쓰러움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나중에 내가 책에서 다음 구절을 읽었을 때 염습실에서 포개 쥔 나의 두 손을 떠올린 것을 보아 그건 숙연함, 그 언저리의 감정이었을 테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생전의 부와 명예보다 한걸음씩 내딛였을 그 삶에 숙연함이 늙어말라가는 몸보다 더 깊이를 더할거 같다
두 눈만 감고 있어도 ‘곱게 돌아가셨네’ 소리를 듣는 게 주검이다. 시체가 예쁘다고요? 염습실에 함께 들어가지 않았다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되물었을 말이다. 시신을 향한 애처로움이 애틋함으로 변한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곳에서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러다 두두둑 뼈가 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면 죽은 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뼈 부러질까봐 몸을 펴주질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안 부러져요. 절대로. 안 부러지게 만지면 돼요. 관절 꺾이는 곳을 살살 문질러주면서 눌러주면 펴져요. 힘준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누가 가르쳐줘서 배운 기술이 아니다. “하나하나 몸을 만지면서 알게 됐어요.” 그의 모든 기술은 독학에 가깝다. 30년 넘게 다양한 몸을 봐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런 죽음이 있다. 젊어 죽는 일. 내가 염습실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시신은 젊은 여성의 시신이다. 보는 것만으로 상처가 될 것 같다. 안치대에 올려진 젊음이 사람은 천천히 죽어간다는 믿음을 뒤흔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헐벗은 여성의 시신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숨이 붙어 있지 않을지라도 사람이니까. 벗은 몸이 훼손되거나 농락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죽은이에 대한 세심한 마음들이 고맙고 든든하다 마지막 순간 이런 분들과 함께 할수 있다면 큰복일것이다
세상에서 사람을 지우는 장이 아니다,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기억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저는 장례라는 의식을 프로듀싱한다고 생각해요. 장례지도사는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보조출연자이기도 한 거죠. 이 무대의 주인공은 고인이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기대된다
사망진단서 없이는 장례를 시작할 수 없다. 예전에는 사망의 증거로 코에 솜을 올려 숨이 멈췄음을 확인하고, 고인이 생전 입던 옷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도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운명했다고 봤지만 지금은 가당치 않다. 생과 사를 결정하는 주도권이 의료진에게 있다. 의사에게서 사망진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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