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할머니가 서클 댄스(포크 댄스의 일종) 동아리를 하셨더라고요. 동아리 회원들이 와서 나무를 빙빙 돌면서 서클 댄스를 추고. 날도 너무 좋고 아름답고. 우리가 하고 싶던 마을 장례의 모든 것을 해봤던 그런 날이었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49, 희정 지음
장례를 치를 날이 결정되면 주민들은 배 모양의 관을 만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56, 희정 지음
핼러윈의 유래는 아일랜드의 모든성인대축일이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모든성인대축일이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여기에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축제가 혼합되어 지금의 핼러윈이 되었다고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57, 희정 지음
그리고 이날, 또 하나의 존재가 세상에 나온다. 보이지 않는 자들. 죽어서도 보이지 않는 자들을 기억하는 목소리가 함께한다. 사회적으로 잊힌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려는 행동이다. 2009년 죽은 자들의 날에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생사를 달리한 5000명의 이민자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국경의 담에 5000개의 십자가를 거는 행사가 열렸다. 이들뿐 아니라 부랑자, 성소수자, 성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라 불리는 존재들의 삶이 소환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58, 희정 지음
허나 기억하는 일이 어렵듯이 잊는 일도 쉽지 않다. 《없음의 대명사》에서 오은 시인의 말처럼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상실은 오히려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니 숨 쉬지 못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59, 희정 지음
하지만 그는 통념에 맞서 딸의 장례를 치렀다. 그로써 딸이 살아온 삶 자체를 인정했다. 누구의 삶도 지울 수 없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60, 희정 지음
살아서도 잊혀지는 존재가 있고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이 세상을 떠난 자의 삶에 대한 존중이자 .. 이후에도 그를 기억하겠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렇게 보니 장례는 또 다시 만남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그 존재와 만나고 기억하겠다는 것이죠.
그리다 빈소가 아니더라도 장례식장에 들어서면 유족은 눈과 입으로 묻는다. 어떻게 오셨나요? 고인 또는 유족과 무슨 관계인가요? 사회적 관계를 묻는 물음 앞에 동성 애인은 친구가 되고, 사실혼 배우자는 이웃이 된다. 질문이 없으면 거짓 대답도 없다. 질문 없는 빈소가 묘하게 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69, 희정 지음
의료법, 토지법, 환경법, 상속법, 연명의료결정법 등의 적용도 받는다. 그리고 대개의 법률은 직계가족에 권한을 한정한다. 예컨대 의료법은 사망진단서 발급을 직계가족만 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말했지만, 사망진단서 없이 장례도 없다. 화장도 없다. 내가 아무리 장례주관자로서의 합당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첫단추조차 끼울 수 없다. 도돌이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72, 희정 지음
죽음과 장례에서도 국가가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공영장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야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애도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78, 희정 지음
‘아빠,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아.’ 우리가 살아오며 지닌 다양한 정체성이 유지되고 인정되고 지켜지는 게 존엄인 거고. 특정한 시선이나 외면으로부터 상대의 고유함을 지켜주는 과정도 존엄이라 생각해요. 그것이 사후에도 지켜져야 죽음이 존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83, 희정 지음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음과 죽은 이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에요.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죽은 후에도 관계 맺기가 계속되는 거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83, 희정 지음
지자체에 공영장례 조례를 만드는 데까지 왔지만, 장례하고 처리하면 끝인 거예요. 예방이라는 의미는 없어요. 가족중심주의를 벗어난 관계의 다른 해석을 쥐고, 사회적 고립을 막고, 복지 차원에서의 장례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285, 희정 지음
불경하게도(신이 있다면 말이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마저 정하고 싶어하는 오만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죽음은 지상에서 입은 자아(에고)의 옷을 반납하는 일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는 끝내 에고라는 옷을 벗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경솔하도록 오만한 일임을 안다. 그럼에도 준비된 죽음을 맞고 싶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59, 희정 지음
중간후반까지 읽다가 손을 놓으니 다시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첫 참여인데... 완독을 못하면 어쩌지 하던중에 "355화 암과 책의 오디세이"에서 @김새섬 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결국 어제 완독을 했어요 :-) "여러분도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한권의 책을 읽고나면 굉장히 뿌듯함이 그껴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완독을 하게 되면 내 기분이 좋다. 무언가를 얻어 가실 수 있을거예요" 저도 지금 굉장히 뿌듯합니다 ♡
살아가는 일도 외로운 일이지만 나의 안녕을 물어봐주는 사람들 덕분에 하루를 더 산다. 그렇게 40여 년을 하루에 하루를 더해 더 산 사람이 떠나고, 하루를 더 살지 못하고 떠난 이가 머물던 85호 크레인 위에서 외로운 삶을 이어가기로 선택한 이가 있었다. 이소선의 관은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뒤따랐다. 지난날, 전태일의 관을 뒤따르던 동료들이 있었던 것처럼.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뒤늦게 박재익이 김용균의 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그간 내가 김용균의 죽음을 이해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그의 죽음이 존중받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무작정 고인의 명복을 빌었던 그때와 달리, 이제 사람에게 기대어 누군가의 평온을 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변희수 하사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나는 이 말을 들려준 이를 떠올렸다. 나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준 사람. 그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변희수가 잘 있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변희수 하사의 안장식을 찾은 건, 그에게 보내는 나의 안부 인사였다. 그가 잘 있는지. 아니, 우리가 잘 있는지. 애도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라는 걸 막연히 깨닫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나의 일상과 안온이 흔들리는 일을 우리는 참사를 통해 경험한다. '나였을 수도'라는 말은 나를 둘러싼 세계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의 세계는 안전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삶의 불확실성은 '나'라는 개인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우리 공동의 운명을 드러낸다. 우리는 살아내야 하기에, 우리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타자에 의존하고 의지하며, 서로를 돌보는 길로 걸어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우리는 모두 애써 살아온 존재이기에 애도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동안, 당신과 내가 떠올리지 못한 참사와 죽음, 그리고 전쟁과 학살. 그 모든 죽음에 우리가 가닿기를, 그리하여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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