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옛사람들은 수의를 북두칠성의 뜻을 이어받은 옷이라 여겼다. 멧베(대마 끈)로 시신을 일곱 번 묶는 등 지금까지도 북두칠성의 의미를 따른 흔적이 남아 있다. 청동기 시절부터 조상들은 북두칠성에 죽은 이의 명복을 빌었다.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어서일까. 칠성신은 염원의 신으로, 평온과 장수, 무병과 태평의 기도를 들어주는 신으로 여겨진다. 기도를 들어주는 신. 죽음 앞에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뭐가 미안하신데요?” “오래 살아서.” 우리는 그의 며느리가 반듯하게 잘라 통에 담아둔 수박을 나눠 먹던 참이었다. 먹는 사람이 없어 상한다며 다 먹고 가라는 그의 채근에 수박을 양껏 입에 넣으며 오래 살아서 미안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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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골 노인들은 한동네에서 살아온 이들과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심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면 그걸로 끝이다. 다신 보지 못한다. 상여를 메고 마을로 오지 않는다. 아들딸이 사는 어느 도시에서 장례를 치렀다더라 소식만 들려온다. 아마도 그는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이 고래실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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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장례법은 여유 있는 자들의 풍습이다. 지붕에 올라 죽은 이가 입던 옷을 휘날리며 고인을 애타게 부르는 고복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떠올리는 고복의 슬픔은 기와지붕 위에서 벌어지지만, 조선 시대 평민들은 대부분 초가 아래 몸을 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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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난히 묘지가 거슬린 데는 높은 인구 밀도 외에도 토지가 개발과 증식, 투자의 공간이 된 까닭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갯벌이 메워지는 가운데, 땅은 부지런히 사고 팔렸다. 땅은 귀해졌고 사람은 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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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사건은 상처를 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고, 죽은 사람이 흰 뼈가 되는 일은 피할 길이 없어 잔혹하다. 그 잔혹함을 줄여주는 것이 화장기사들의 정중한 몸짓이라, 그걸 보며 위안을 받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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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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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한 초록이 있는 곳에선 마음이 편하다. 양지바른 곳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그늘지고 습하고 질척이는 곳에 터를 닦는다면 인류는 생존 자체가 어려웠을 테니, 짐작건대 본능이 일깨우는 마음의 평화인지도 모른다. 다 살자고 하는 일이다.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명당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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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나는 ‘사람 잘 안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죽으려면 죽는다. 그건 의지의 문제도, 운명의 굴레도 아니다. 그런 일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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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로든 간에 사람들이 생전장례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동네잔치가 되어도 좋고, 전시를 할 수도 있고, 그냥 소박하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서 SNS에 올릴지라도. 생전장례식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누구든 그런 경험은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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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 당신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직접적이다.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고 손을 내밀고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다. 불안은 상조회사 유입의 원천이 된다. 서류에 서명한 가입자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잠시라도 든든했을 테다. 마치 생전에 수의를 만들어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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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문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이 시작된 최초의 증거로 ‘치유된 대퇴부’를 꼽는다. 다리뼈가 부러진 사람은 사냥도 이동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대퇴부가 치유되었다는 건 그가 나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돌봤다는 증거라고 했다. 공동체가 영위되는 순간을 문명이라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정한 희생을 감수하고 기꺼이 타인을 애도하는 것은,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이자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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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나와 맺어온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을 텐데. 부고가 알려지지 않으면 관계가 전환될 계기를 끊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끝나지 않는 관계와 애도의 측면에서 사후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인정받게 할 것인가. 그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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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기억함이다. 그가 살아생전 생성하고 형성해온 관계로 구성된 이 세계를 기억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 자신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산 사람들은 새로운 장례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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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공통의 운명을 가진 필멸(必滅)의 존재들이 갖는 관계 속에서 공동체는 규정되어 간다.”우리는 죽는다. 언젠가, 반드시.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그 운명을 겪는 자가 있다. “‘내’가 ‘죽어가는 타인’의 손을 붙잡고 그와 함께 이어나가는 무언(無言)의 대화”가 공동체를 규정한다고 했다. 가만 그 손을 떠올린다. 그런데 붙잡는 타인의 손에 ‘모든 죽는 존재’가 들어갈까. 저 ‘필멸의 존재’에 모든 인간이, 그리고 모든 동물이 속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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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애도는 어쩌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이야기이고, 그 사람과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이야기잖아요. 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니까.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한 이야기라면, 애도는 결코 완수가 안 될 것 같아요. 계속 가져가야 하는 문제이니까. 완전히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요. 완전히 헤어지지 못하고 형태를 바꿔서 또다시 만나고 또 관계를 맺고를 반복하겠죠. 그저 내가 살아가기 위해 너무나 거쳐야 하는 시간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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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이 말한 안팎이 뒤집히는 경험, 울타리 바깥 존재와의 만남. 그 시작이 울타리 안의 존재로부터 비롯될 때가 있다. 내부의 존재와 잡은 손이 어느새 울타리 밖을 향하고, 외부에 놓인 ‘필멸’이라는 공동의 운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울타리 안팎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 손을 잡으면, 우리는 죽어가는 이의 이웃이 된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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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의 세계가 두렵다. 그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문화학자 엄기호는 이런 말을 했다. “외면과 허무 사이의 선택을 거부하고 죽음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며, 이 선택에서 삶을 위해 투쟁하는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반드시 오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어차피 오는 죽음을 허무로 비껴가지 않고 인간은 죽음 양식을 선택해왔다. 그것이 문화가 되었다. 선택하고 투쟁하여 살아가는 존재 앞에서 ‘닮지 않음’은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한다. 삶의 위계도, 죽음의 서열도 소용없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 내가 만난 장례지도사들이 ‘고생했다’며 연신 주검을 매만지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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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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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자 기시 마시히코는 자신의 저서에 이런 말을 옮겨 담았다. “내가 죽더라도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게 제삿밥이지.”애도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는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기억이 담긴다. 꼭 고인이라는 사람을 경유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인이 살아온 시공간에서 저마다 자라고 늙어간 사람들이 모여 기억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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