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죽을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루를 보내는 일조차 내게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그럼에도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헤메는 것보다는 모르는 일을 뒤적이는 것이 나았다. 작은 가닥이라도 잡힌다면 그것을 손에 쥐고 싶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수십만 명의 마음을 저마다 짐작할 순 없다. 내가 알 수 있는건 단 하나였다. 죽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죽고 싶다는 사람도, 다가오는 그 시간 앞에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사람, 자신이 떠나도 소식조차 모를 사람, 내 죽음이 폐를 끼칠 사람,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 내 장례식에 올 사람... 인생의 마지막에 떠올리는 건 사람들이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죽음만큼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다. 시신은 수습되어야 하고, 죽은 이의 신변은 정리되어야 하며, 그 죽음은 알려지고 애도받아야 한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 있다. 사람의 몫이라는 건 노동을 의미한다. 손과 발, 눈과 입, 관절과 오장육부, 모든것을 동원해 처리하고 정리하고 기억한다. 그 노동이 집중되는 시공간은 장례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밖에서 엿보는 사람이 되기 싫다면, 길은 두가지가 아닐까, 보는 일을 멈추던가, 아니면 그 안으로 들어가던가.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죽은 사람들 대부분은 많든 적든 살면서 불행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일단 죽은 사람이 되면 숙연한 친애와 경의의 뜻이 담긴 장송의 예우를 받았다." 떠나는 자에게 예우를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서든 같다. 사람은 모두 죽으니까. 피할 수 없는 일 앞에선 겸손해 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러니 시체가 아닌, 단정하게 옷이 입혀지고 곱게 화장된 상태에서 '내가 알던 그'로 고인을 만나고 싶다. 점차 입관식만 참관하는 문화가 굳어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아침바람님의 문장 수집: "그러니 시체가 아닌, 단정하게 옷이 입혀지고 곱게 화장된 상태에서 '내가 알던 그'로 고인을 만나고 싶다. 점차 입관식만 참관하는 문화가 굳어진다."
13년전 이맘때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는 염습이 있고 입관식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저의 경우도 입관식에 만 참관했네요. 곱게 단장되고 표정도 편안한 어머님을 보니 '어머님 그 옛날 시집오실때 단장하시고 그다음이 이 세상을 떠나시는 날 이렇게 아름답게 단장 하셨네요.' 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장을 읽으면서 2년 사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신 시부모님 생각이 많이납니다.
“봉분에 잔디를 깔면 예쁘지만 오래가야 3년 가요. 그 전에 다 망가져요, 관리를 안 하면. 묘를 봉긋하게 만들면 모양이 예쁘잖아요. 그런데 흙 마르고 그러면 가운데가 다 터져나가요. 손 많이 가는 게 묘예요. 요새는 매년 벌초하러 오는 사람이 없잖아요. 가서 보면 다 터져 있어요.” 결국, 무덤을 개장해 유골을 봉안당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선 묫바람 때문이 아니라 묘지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 파묘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묘지에도 사용 기한이 있다. 2000년에 정부는 분묘의 사용 기한은 30년이며 1회 연장이 가능하다고 정했다. 사용 기한이 지난 분묘는 개장한다는 방침이다. 길어봤자 60년까지 무덤을 유지할 수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업이 만들어준 관계의 자장 속에서 그는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을 본다. 감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내 의지와 무관하게 들어와 싹둑 무언가를 잘라내듯 가져가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 한없이 존재의 작음을 느낄 수 밖에.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국내에서도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2018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병국 씨는 자신이 입원한 병원 공간을 빌려 지인들을 초대했다. 행사명은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 그의 나이 85세였다. “능동적인 장례”를 치르고 싶다던 김병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그날의 장례식을 마무리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의사는 아무나 될 수 없어서 없다지만, 죽음을 다루는 마음이라고 해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음이 있어야 장례가 있고, 마음이 있어야 장례가 치러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3, 희정 지음
염습실에서, 장례식장에서, 장지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았다. 염습실에서 장례인들은 따뜻했다가, 미적지근했다가, 애틋했다가, 무심했다. 애초에 죽음도, 그에 따른 의례도 하나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5, 희정 지음
그가 되레 내게 물었다. 내가 떠나면 우리 가족은 어쩌지? 이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와 그의 가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손이 이리저리 쓸리고 베여가며 쌓아 올린 모래성에 관해 듣는다. 하지만 죽음은 힘도 들이지 않고 가벼이 모래를 쓸어갈 것이다. 간절하게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음을 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생사의 끈을 그는 지루할 만큼 봐왔다. 붙잡고 싶다. 이뤄질 수 없는 소망임을 안다. 그러니 눈물이 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38, 희정 지음
함께 일하는 의전관리사(장례도우미)들에게도 당부한단다. 귀걸이 같은 장신구 하지 말고, 화장 진하게 하지 말고, 너무 밝게 웃지 말고, 우울하게도 있지 말고… 당부가 길어진다. 사별자의 심기를 건드는 어떤 일도 없어야 한다. 슬픔, 불안, 죄책감, 분노, 무력감, 적대심, 해방감, 안도, 외로움… 이 모든 감정이 사별자가 보일 수 있는 심리 반응이라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45, 희정 지음
그런데 그 사수에 그 제자라고, 그날 김영래는 기어코 접힌 부분을 조심스럽게 펴고 펴서 지의 접는 법을 익혔다. 김영래에게 이 일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기술'이다. 그리고 장례에서 기술은 요상하게도 마음과 이어진다. "제 손에 염을 받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많았어요. 손을 한번 잡더라도 따뜻하게 감싸고, 시신을 품에 안아서 옮기니까. 조금 더 세심하다 보면 되더라고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49, 희정 지음
대충 하지 않는 일은 염습 앞에 한 단계 더 있다. 고인이 안치실에 들어가기 전, 아직 굳지 않은 몸을 묶어 팔다리를 가지런히 펴는 일이다. 수시(收屍)라 한다. 이때 '수(거둘 수收)'는 여문 곡식을 거둬들일 때 스는 한자다. 볏짚을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듯 시신의 몸을 정돈한다. 수시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음 날 입관 때 팔이나 다리가 휘어져 있는 고인과 마주하게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0, 희정 지음
울지 않는 사별자를 괘씸하게 여기는 데는 죽음이 무서운 걸 아는 마음이 있다. 죽음은 그렇게 간단히 잊힐만한 것이 아니다. 김영래는 원래 무서운 것을 모르는 차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장례 일도 무서울 것 없이 시작했다. 이전에 했던 일에 비하면 장례 일은 담력을 필요로 하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아주 젊던 시절, 그는 물귀신에게 잡혀간 사람을 건져내는 일을 했다. 해양 구조대가 생기기 전에는 익사한 시신을 찾는 일을 마을에서 수영 좀 한다는 청년들이 맡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3, 희정 지음
아마 그가 인생의 끝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일 거다. 가족이 생기고, 동료가 생기고, 친구라 부를 이들이 생겼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4, 희정 지음
그 아들은 훌쩍 커서 부모와 같은 길을 걷겠다며 장례지도사가 됐다. 장례업이 만들어준 관계의 자장 속에서 그는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을 본다. 감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내 의지와 무관하게 들어와 싹둑 무언가를 잘라내듯 가져가는 것이 죽음이었다. 그러니 그 앞에서 한없이 존재의 작음을 느낄 수밖에.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5, 희정 지음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혼자 읽는 미식가들
그렉 이건 <잠과 영혼> 하드SF의 정수생명, 경계에 서다 - 양자생물학의 시대가 온다마음의 그림자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저 펜로즈의 양자역학적 의식 연구
since 1966년, 좋은 책을 만듭니다
[문예출판사/책 증정]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 마케터와 함께 읽기[문예세계문학선X그믐XSAM] #02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함께 읽기[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문예출판사 / 도서 증정] 뮤리얼 스파크 <운전석의 여자> 함께 읽기[문예출판사] 에리히 프롬 신간 <희망의 혁명> 함께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 그림책 좋아하세요?
벽돌책 사이, 그림책 한 칸 (부제: 내가 아는 29가지 기쁨의 이름들)[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부처님의 말씀 따라
나의 불교, 남의 불교[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당신과 함께 이 저녁, 이 밤, 이 시대
[엘리/책 증정] 장강명 극찬 "벌써 올해의 소설" <휴먼, 어디에 있나요?> 함께 읽기[엘리/책증정] 2024 젊은사자상 수상작 <해방자들> 함께 읽어요![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SF 함께 읽기] 두 번째 시간 - 숨(테드 창)
메롱이님의 나 혼자 본 외국 작품
직장상사 길들이기웨폰만달로리안 시즌3데어데블 본 어게인 시즌2 성난 사람들 시즌2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미국 문학의 고전
모비 딕모비 딕 상·하 <모비 딕> 함께 읽기 모임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우리 입말에 딱 붙는 한국 희곡 낭독해요!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하이틴에게 필요한 건 우정? 사랑?
[책증정-선착순 10명] 청선고로 모여라!『열여덟의 페이스오프』작가와 함께 읽기[청소년 문학 함께 읽기] 『스파클』, 최현진, 창비, 2025[문학세계사 독서모임] 염기원 작가와 함께 읽는 『여고생 챔프 아서왕』[북다] 《위도와 경도》 함윤이 작가와 함께하는 라이브 채팅! (4/9)[북다/라이브 채팅] 《정원에 대하여(달달북다08)》 백온유 작가와 함께하는 라이브 채팅!
위기의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 이름
[세창출판사/ 도서 증정] 편집자와 함께 읽는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문예출판사 / 인증 미션] 한나 아렌트 정치 에세이 <난간 없이 사유하기>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