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떨어진 다리는 바느질로 붙이고, 사라진 다리는 골조나 대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인조 피부를 씌워 만든다.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하나하나 재료를 구하고 만들어 연습했다. 죽은 이의 피부는 더 단단해 시중에 나온 인조 피부만으로는 연습할 수 없다고 했다. 직접 제작한 가짜 피부에 수없이 의료용 바늘을 꽂았다. "그렇게 복원 작업을 한 지가 20년쯤 됐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56, 희정 지음
물속에서 시신을 건져 올려 용돈벌이를 하던 십대 소년이 수십 년이 지나 수마에 목숨을 잃은 순직 소방관의 몸을 거두어 영면하게 하는 예순의 노인이 되었다. 그 세월을 들었다. 시간이 가는 일은, 어쩐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살아 있는 일은 귀한 거라고. 어쨌건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 일어난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60,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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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도. 미국이든 일본이든 다 자기 양복이랑 드레스 입고 하잖아요. 수의를 팔면 30만 원, 50만 원 벌이가 있겠지만, 저는 그냥 당신이 아끼던 옷을 입혀드리고 더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하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p.64~65, 희정 지음
"나는 동물원 원숭이였어요. 그럴수록 더 신경 써서.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다. 내가 잘하면 '여자가 이 일 해도 괜찮네'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다. 지금도 이 자리는 남자들의 자리라는 인식이 팽배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여자 말고 남자(장례지도사) 보내라고. 그럼 반대로 사람들이 여자 장례지도사를 보내달라고 말하게끔 하자. 저는 역으로 운동을 하는 거죠. 고객이 원하면 결국 여자 장례지도사 자리가 마련되게 되어 있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3, 희정 지음
"세상에서 사람을 지우는 장이 아니다,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기억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저는 장례라는 의식을 프로듀싱한다고 생각해요. 장례지도사는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보조출연자이기도 한 거죠. 이 무대의 주인공은 고인이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4, 희정 지음
"어떨 때는 마음을 다 했는데도 돈도 그만큼 안 되고, 고맙다는 말도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서운하지 않은 게, 그분하고 인연을 잘 맺었잖아요. 내가 그분을 위해 기도 한번 했잖아요. 그 연으로 그 영가(영혼)가 나를 도울 거 아니에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편안하거든요." 그가 의례의 형식에 치중하지 않는 건 인연을 믿기 때문이다. 공소를 세웠다는 그의 할아버지와 닮았다. 성직자 없이 신도들이 마음 모아 세운 성당. 시골의 작은 공소를 찾아가면 낮은 한옥 건축에 제단에는 십자가상만 걸려 있곤 했다. 소박하지만 사람들의 기원이 모이는 곳. 이안나가 추구하는 장례와 닮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5, 희정 지음
"무탈하게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모시고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 어두울 거라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돌아가신 그분들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내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분들의 죽음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잘 죽고 싶은, 잘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것 같아요.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지죠.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저의 행복론이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76, 희정 지음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다. 국내 모든 장례식장의 위치, 규모, 장례 물품 비용 등의 정보가 나와 있다. 정부가 장례식 비용의 합리화를 위해(소위 '바가지'를 막기 위해) 가격 표기를 법제화한 이후, 장례식장은 물론 봉안 시설도 이용 가격을 고시해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4, 희정 지음
ifrain님의 문장 수집: "물속에서 시신을 건져 올려 용돈벌이를 하던 십대 소년이 수십 년이 지나 수마에 목숨을 잃은 순직 소방관의 몸을 거두어 영면하게 하는 예순의 노인이 되었다. 그 세월을 들었다. 시간이 가는 일은, 어쩐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살아 있는 일은 귀한 거라고. 어쨌건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 일어난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
'시간이 가는 일은, 어쩐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살아 있는 일은 귀한 거라고. 어쨌건 살아만 있다면, 무엇이든 일어난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어요.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도 다시 이어지기도 하더라고요. 풀리지 않았던 문제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모양이 보이고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해결해준다'는 그 말..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분명 있어서.. 앞으로도 기대되더라고요. 어떤 일을 더 보게 될까. 무엇이 변해가고 무엇이 기억으로 남을까. 시간의 물결이 안좋은 일들은 쓸어간다는 건 기억의 편집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유교가 통치 이데올로기인 사회에선 유교식 장례가 집행된다. 장례를 비롯해 생애주기에 따른 의례의 엄격한 형식과 절차가 그 시대의 통치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형식은 통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인생에 들어오는 순간, 확실한 것은 없어진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생각나라님의 문장 수집: "기술도, 심미도, 격식도 애도 뒤에 와야 한다. “수의도. 미국이든 일본이든 다 자기 양복이랑 드레스 입고 하잖아요. 수의를 팔면 30만 원, 50만 원 벌이가 있겠지만, 저는 그냥 당신이 아끼던 옷을 입혀드리고 더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하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
저도 이 문장 찜합니다. 다른 거 다 챙겨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떠난 이와 남겨진 이를 위한 애도가 먼저일텐데...
호주제는 2008년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장례식장은 상주 성함을 적는 칸에 영희, 지영, 민지 같은 이름을 적길 꺼려 한다. 장례는 산 자를 위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문제는 산 자가 지닌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란스럽다. 장례는 각기 다른 자본(문화·경제·상징자본 등)을 지닌 사람들의 관계가 경합하는 장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필요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모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다. 아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싶은지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세계를 만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일본 장례식장에서 일한 경험을 글로 써낸 다스슝의 일화가 생각난다. 다스슝은 어깨 통증을 느꼈는데, 마치 무언가가 어깨에 올라탄 것 같았다. 그는 장례식장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의 상태를 본 선배들은 은밀하게 그에게 ‘효과 좋은 곳’을 알려주었다. 영험한 무속인의 연락처일 거라 생각하고 펼쳐본 쪽지에는 마사지 가게 주소가 있었다나. 근골격계는 전 세계 장례인들의 직업병인가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식장은 예식장보다 훨씬 늦게 들어온 공간이다. 1928년 《매일신보》의 <결혼공개내용>을 보면,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 ‘공회당(교회 예배당), 동아일보사 강당, 식도원(음식점)’ 등을 짚었다. 이때부터 혼인식을 집 앞마당에서 해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져갔다. 그에 비해 이로부터 30년이나 지난 1969년에야 가정의례준칙은 장례를 치르는 장소를 집과 더불어 ‘기타 편리한 장소’로 확대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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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님의 문장 수집: " 장례식장은 예식장보다 훨씬 늦게 들어온 공간이다. 1928년 《매일신보》의 <결혼공개내용>을 보면,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 ‘공회당(교회 예배당), 동아일보사 강당, 식도원(음식점)’ 등을 짚었다. 이때부터 혼인식을 집 앞마당에서 해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져갔다. 그에 비해 이로부터 30년이나 지난 1969년에야 가정의례준칙은 장례를 치르는 장소를 집과 더불어 ‘기타 편리한 장소’로 확대했다."
저도 어릴 때 장례식을 자기 집에서 치르던 분들이 기억 납니다. 성당 지하에서 치르는 분도 있었고요. 결혼식을 집 마당에서 올리는 풍경은 낯서네요.
요즘 시골 노인들은 한동네에서 살아온 이들과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심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보지 못한다. 상여를 메고 마을로 오지 않는다. 아들딸이 사는 어느 도시에서 장례를 치렀다더라 소식만 들려온다. 아마도 그는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이 고래실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검은 양복은 1934년 의례준칙의 시행에 따라 처음으로 상복으로 지정되었다. 이때 삼일장 절차도 만들어졌다. 그렇다. 일제강점기다. (일본의 시각에서)‘조선의 근대화’라는 명복으로 장례 절차가 정비됐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8, 희정 지음
그럴 만도 한 것이, 2008년 한 해에만도 16개 상조업체가 광고법 위반, 다단계판매법 위반 등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2010년에는 보람상조, 현대종합상조 임원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상조가 미리 돈을 받는 선불식 할부 판매를 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판매한 적 없는 상품의 대가로 선불 현금을 받는다. 선불금을 유용하여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이 과정에서 사고가 난다. 상조회사의 난립으로 내부 경쟁도 극심해 부도나 파산의 위험이 뒤따랐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모바일 부고에 계좌번호가 함께 담겨 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88,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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