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장례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장례가 돈이 되는 사업이란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수의를 다 입혀드리고 나서 얼굴을 (감싼 천을) 여는데, 고인이 눈물을 주룩 흘리는 거예요. 내가 눈물을 닦아드렸어요. 다 놓고 가시라고. 편히 가시라고. 그런 걸 겪으면 영을 믿게 돼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95, 희정 지음
장례가 장례 산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장례인도 서비스직 인력이 되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7, 희정 지음
오늘 일해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용직들로 구성되었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팀 작업이다. 요즘의 기업은 사람 사이를 분리하고 해체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모여 일하고 뭉쳐 일한다. 그래야 일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8, 희정 지음
상주님이 안심하면 그때부터 일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서로를 믿는 마음으로 퇴근을 하는 거죠. 상주의 마음을 읽는 거, 삼 일 동안 그게 저희 숙제에요. 너무 어려워. 정말 숙제야.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10, 희정 지음
누군가의 죽음이 정리되는 장소에서 누군가는 먹고 사는 일을 하느라 치열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인과 그 가족들을 향한 예의와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례지도사들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내가 얼굴도 모르는 이를 화로에 넣어두고 느낀 외로움은 마음이 다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상처를 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고, 죽은 사람이 흰 뼈가 되는 일은 피할 길이 없어 잔혹하다. 그 잔혹함을 줄여주는 것이 화장 기사들의 정중한 몸짓이라, 그걸 보며 위안을 받았었나 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7, 희정 지음
손은 바쁘고 지켜야 할 것은 많다. 아직 금기를 다 읊지 못했다. 수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입는 옷이기에 바늘땀을 다시 뒤로 돌려 떠서는 안 된다. 실이 짧다고 해서 다른 실을 이어 묶어 사용해서도 안 된다. 수의에는 매듭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느질이 끝나도 매듭을 짓지 않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21, 희정 지음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문득 우리는 현실에서 매듭을 지으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을 맺고 마무리가 있고요. 그랬기에 오히려 다음 세상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런 매듭도 짓지 않는 것이겠지요? 하여 이 세상도 가끔 매듭을 짓지 않고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의만큼은 정갈하게 입고 싶어. 번잡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번잡스럽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원한다. 다만 존중받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30, 희정 지음
내내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번듯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요. 하나의 존재로 존중받고 싶었다고요.
"무탈하게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모시고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 어두울 거라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돌아가신 그 분들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내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분들의 죽음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잘 죽고 싶은, 잘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것 같아요.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지죠.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렇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 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그에게 보내는 최선의 애정이라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우리는 감정 노동자예요. 이건 우리가 감정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그 감정이 닫혀버리면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손가락 부러진건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돼요. 그런데 절대 펴지지 않는게 이 감정이야. 그러니까 언니 동생으로 다가가야 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 일은 담력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꼭 시신을 만지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음'을 깔고 하는 일이라 그런가. 담력이 필요하다. 그건 겁이 없다는 말과는 또 다르다. 세상사를 대하는 데 담담해져야 한달까. 그렇게 따지자면, 장례일이란 한껏 유약한 내가 취재하기에 거리낌 없는 분야는 아니다. 그런데도 쫒아갈 수 있던 건 이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일만 하던 분이라 헛소리를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병상에 누워서도 '찰벼를 털어. 찰벼를 털어야 해'. 농사짓는 분이니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걸 걱정하다 간 거야. 여물 솥에 넣어 소죽 만들어야 한다고. 가는 내내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돌아가셨어. 누리다가 돌아가셨으면 좋은데. 누린다는 게 뭐 별거야. 그냥 밥이라도 잘 먹고. 그런데 맨날 시래기 죽만 만들다가 돌아가셨어.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어."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2, 희정 지음
슬퍼하지 마라. 아쉬워하지 마라. 상여 속 고인에게 불러주는 노래인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말인가. 상엿소리가 슬픈 것인지 사는 일이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p.144~145, 희정 지음
한국에서 유난히 묘지가 거슬린 데는 높은 인구 밀도 외에도 토지가 개발과 증식, 투자의 공간이 된 까닭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갯벌이 메워지는 가운데, 땅은 부지런히 사고 팔렸다. 땅은 귀해졌고 사람은 태워졌다. 1994년 20퍼센트대에 머물던 전국 화장률은 2023년 90퍼센트에 달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8, 희정 지음
땅에 돈이 쌓여갈수록 사람에게는 설 자리도, 누울 자리도 없어집니다.
나는 염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수의를 입지 않을 테다. 직장(直裝)을 원한다. 나무관도 쓰고 싶지 않다. 태워질 거라면 종이관이면 좋겠다. 빈소는 하루만. 빈소 제단엔 생화가 놓이지 않길 바란다(꽃을 뿌리에서 분리할 이유가 없다). 조문객에게 육식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일회용품 식기도 마찬가지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부키출판사/도서증정이벤트]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다!《프리라이팅》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웰다잉 오디세이로 계속 이어집니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천천히 읽어요
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안 노란 책을 찾아라!
안노란 책 리뷰 <지금, 그리고 그때>안노란책 리뷰 <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안노란 책 리뷰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 앤 드 마르켄안노란 책 리뷰 <메데이아> 에우리페데스안노란 책 리뷰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하임 마이어호프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3.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
아티초크의 멋진 책!
[아티초크/책증정] 세계 여성 시인선 100『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와 함께해요.[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
‘인생 록 음악’ 추천!
[그믐밤] 49. 국제 암석의 날 기념, ‘인생 록 음악’ 추천해주세요[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
동구권 SF 함께 읽어요!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삼국지를 가슴에 품다
삼국지 전권독파 -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으로[모집] 평생의 숙제 인간관계,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답을 묻다 (w. 『최소한의 삼국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