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오늘 일해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용직들로 구성되었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팀 작업이다. 요즘의 기업은 사람 사이를 분리하고 해체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모여 일하고 뭉쳐 일한다. 그래야 일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08, 희정 지음
상주님이 안심하면 그때부터 일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서로를 믿는 마음으로 퇴근을 하는 거죠. 상주의 마음을 읽는 거, 삼 일 동안 그게 저희 숙제에요. 너무 어려워. 정말 숙제야.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10, 희정 지음
누군가의 죽음이 정리되는 장소에서 누군가는 먹고 사는 일을 하느라 치열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인과 그 가족들을 향한 예의와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례지도사들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내가 얼굴도 모르는 이를 화로에 넣어두고 느낀 외로움은 마음이 다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상처를 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고, 죽은 사람이 흰 뼈가 되는 일은 피할 길이 없어 잔혹하다. 그 잔혹함을 줄여주는 것이 화장 기사들의 정중한 몸짓이라, 그걸 보며 위안을 받았었나 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7, 희정 지음
손은 바쁘고 지켜야 할 것은 많다. 아직 금기를 다 읊지 못했다. 수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입는 옷이기에 바늘땀을 다시 뒤로 돌려 떠서는 안 된다. 실이 짧다고 해서 다른 실을 이어 묶어 사용해서도 안 된다. 수의에는 매듭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느질이 끝나도 매듭을 짓지 않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21, 희정 지음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문득 우리는 현실에서 매듭을 지으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을 맺고 마무리가 있고요. 그랬기에 오히려 다음 세상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런 매듭도 짓지 않는 것이겠지요? 하여 이 세상도 가끔 매듭을 짓지 않고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의만큼은 정갈하게 입고 싶어. 번잡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번잡스럽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원한다. 다만 존중받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30, 희정 지음
내내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번듯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요. 하나의 존재로 존중받고 싶었다고요.
"무탈하게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모시고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 어두울 거라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돌아가신 그 분들로 인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내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른 분들의 죽음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잘 죽고 싶은, 잘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것 같아요. 묵상하는 기회가 많아지죠.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렇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 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그에게 보내는 최선의 애정이라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우리는 감정 노동자예요. 이건 우리가 감정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그 감정이 닫혀버리면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손가락 부러진건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돼요. 그런데 절대 펴지지 않는게 이 감정이야. 그러니까 언니 동생으로 다가가야 해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 일은 담력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꼭 시신을 만지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음'을 깔고 하는 일이라 그런가. 담력이 필요하다. 그건 겁이 없다는 말과는 또 다르다. 세상사를 대하는 데 담담해져야 한달까. 그렇게 따지자면, 장례일이란 한껏 유약한 내가 취재하기에 거리낌 없는 분야는 아니다. 그런데도 쫒아갈 수 있던 건 이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일만 하던 분이라 헛소리를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병상에 누워서도 '찰벼를 털어. 찰벼를 털어야 해'. 농사짓는 분이니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걸 걱정하다 간 거야. 여물 솥에 넣어 소죽 만들어야 한다고. 가는 내내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돌아가셨어. 누리다가 돌아가셨으면 좋은데. 누린다는 게 뭐 별거야. 그냥 밥이라도 잘 먹고. 그런데 맨날 시래기 죽만 만들다가 돌아가셨어.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어."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2, 희정 지음
슬퍼하지 마라. 아쉬워하지 마라. 상여 속 고인에게 불러주는 노래인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말인가. 상엿소리가 슬픈 것인지 사는 일이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p.144~145, 희정 지음
한국에서 유난히 묘지가 거슬린 데는 높은 인구 밀도 외에도 토지가 개발과 증식, 투자의 공간이 된 까닭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갯벌이 메워지는 가운데, 땅은 부지런히 사고 팔렸다. 땅은 귀해졌고 사람은 태워졌다. 1994년 20퍼센트대에 머물던 전국 화장률은 2023년 90퍼센트에 달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48, 희정 지음
땅에 돈이 쌓여갈수록 사람에게는 설 자리도, 누울 자리도 없어집니다.
나는 염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수의를 입지 않을 테다. 직장(直裝)을 원한다. 나무관도 쓰고 싶지 않다. 태워질 거라면 종이관이면 좋겠다. 빈소는 하루만. 빈소 제단엔 생화가 놓이지 않길 바란다(꽃을 뿌리에서 분리할 이유가 없다). 조문객에게 육식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일회용품 식기도 마찬가지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추모식은 장례를 대체하는 방식인데, 핵심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떠나보내는 사람을 기억하는 자리. 두 번째는 상실감과 슬픔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간. 지금의 장례에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울고 있을 수도 없어요. 손님들이 막 들이닥치니까. 그런데 사실 마음은 너무 힘들어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죠.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옛날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죽는 일을 객사라 불렀다. 객사한 사람은 집안의 조상(신)이 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 했다. 우리가 ‘잡귀’라 부르는 이들의 정체가 바로 집 밖에서 죽은 이들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우리는 옛날 같았으면 모두 잡귀 예약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우리가 병원에서 죽는 일이 당연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40년 전이다. 1980년대만 해도 병원이나 의료 기관에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사망자 대비 25퍼센트에 불과했다. 2021년 기준, 병원에서 사망하는 이의 비율은 74.4퍼센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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