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나는 사람이 시체로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늙은 몸으로 등장한데 더 놀랐다.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벗은 몸. 나는 나이 듦도 모른 채 죽음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이다.고인의 몸에서 욕창 밴드를 떼어내며 죽는 일보다 늙는 일에 대해 먼저 배웠다.p.24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장례는 움직이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계산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그 일이 무서웠다. 판단 하나하나에 돈이 따라붙는데, 그 결과는 금전적 손해를 넘어 감정적 치달음으로 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내 돈 쓰고도 이토록 뭔지 모르겠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일을 설명하며, 다들 내게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다. 자유롭다”라고 한 것 같은데. 프리랜서 의전관리사가 생길 수 있는 까닭은, 그네들이 아침에 연락을 해도 당일 일을 나올 수 있는 ‘예비’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노동자’들은 외부 노동시장의 산업예비군이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야, 중년 여성 블루칼라 일자리에서 이 정도 돈 주는 곳이 없다. 퇴직금 없는 일용근로자 지위와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법적 권리가 지켜질 리 없는 노동의 형태는, 주어진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려진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든 여성의 노동을 값싸게 여긴다. 하지만 빈소의 하루를 눈여겨본다면 장례라는 산업이 중년 여성으로 대표되는, 돌봄 노동으로 단련된 이들의 노동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 일이 아니어도 종종 취재 간 장례식장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그때마다 의전관리사가 가져온 집 반찬이 두어 개씩 꼭 올라왔다. 이날은 김장김치가 올랐다. 달걀 프라이를 해온 이도 있다. 이 또한 중년 여성이 대다수인 직장의 특징이다. 우리끼리 “사육당한다”라고 농담할 정도로 계속 챙겨 먹인다. 누룽지까지 마시고, 턱까지 음식이 차서 못 먹겠다고 손짓을 두어 번 해야 끝이 난다. 그제야 밥상에서 물러날 수 있다. 누가 이 사람들에게 ‘챙기고 먹이고 돌보는’ 일을 이토록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정해진: 그때는 저보고 왜 왔냐고 그랬어요. 너무 젊으니까. 여기가 바닥인데 뭐 벌써부터 젊은 애가 바닥으로 왔냐고. 그 말이 제일 힘들었어요. 김주원: 인생 살면서 심적으로 제일 어려운 시기에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요. 그런데 그건 그때고,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여유가 있어도 이 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오늘 일해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용직들로 구성되었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팀 작업이다. 요즘의 기업은 사람 사이를 분리하고 해체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모여 일하고 뭉쳐 일한다. 그래야 일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해루에게 화장장 매뉴얼에 대해 물었을 때, 사별자들을 대하는 태도나 인사법에 관해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니었다. 매뉴얼엔 화장 작업 시 공기 유입량 체크, 대차 정리, 도구 관리, 잔재 처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화장장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뒤편에서 도구와 시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같이 울어주고 손을 맞잡아주는 것반큼이나 필요한 일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5, 희정 지음
죽음이 끝이 아니고 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산 사람이 치르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을 각성하게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사람이 세상에 와서 고생하고 마지막으로 몸에 지니고 가는건, 그거 하나야. 잘 살았건 못 살았건 간에 마지막에 하나 지니고 가는 거야. 그거 하나 가져가는데, 그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어드려야 되잖아요." 그러니 만드는 사람 마음도 쉬우면 안 된다. "이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한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어." 산 사람 옷 만들 듯이. 아니 그것만으로 안 된다. 수의는 죽은 이가 입는 최고의 예복이라 했다. 임종한 이를 두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본디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중한 날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청동기 시절부터 조상들은 북두칠성에 죽은 이의 명복을 빌었다.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어서일까. 칠성신은 염원의 신으로, 평온과 장수, 무병과 태평의 기도를 들어주는 신으로 여겨진다. 기도를 들어주는 신. 죽음 앞에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고인의 몸에서 욕창 밴드를 떼어내며 죽는 일보다 늙는 일에 대해 먼저 배웠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전통은 간결해. 보통 사람들이 입던거니까. 기본에 충실한 게 전통인 거지."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그렇지만 그걸 만드는 사람도 그 사람대로의 뜻이 있어서 만든 것이고. 우리는 배운게 이거니까 이게 맞다고 하는 거지. 틀리고 맞고는 없는 거예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존중해주면 되는 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존중 받으면 되는 거예요."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이별과 애도는 타인이 이끌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내 삶이 반영되지 않는 장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메뉴얼엔 화장 작업 시 공기 유입량 체크, 대차 정리, 도구 관리, 잔재 처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화장장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뒤편에서 도구와 시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같이 울어주고 손을 맞잡아주는 것만큼이나 필요한 일이다. 장례 절차가 삐걱거릴수록 사별자들은 더 많은 눈물을 쏟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5, 희정 지음
장례지도사였던 시절 이해루는 실타래처럼 얽힌 감정으로 인해 정작 가족끼리 주고받지 못하는 위로를 대신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유족의 자리에 서자, 이별과 애도는 타인이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로 그는 한편에 비켜선 사람이 되고자 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8, 희정 지음
장례 전문가라 이야기하지만, 전문가란 다른 의미로 지식을 독점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의사 한 명 한 명의 노고와 무관하게 현대 의학은 우리가 내 몸을 이해하고 판단할 권한을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국한한다. 장례라고 다를 순 없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59, 희정 지음
어느 책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우리의 교과 과정에 빠져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운 것이 없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p.160,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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