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D-29
방금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이 무작위로 살해당했다. 그런 일 앞에서 산 사람이 두려워할 것은 귀신과 죽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14, 희정 지음
죽은 이의 자리에 산 사람의 자리를 만든, 불편하고도 체념적인 공존이 귀신 이야기가 되어 돌아왔다. 대를 잇는 빈곤이야말로 사건·사고를 불러오기 좋은 조건이었는데도, 어떤 집에 우환이 닥치면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가 어느 무덤 자리였는지를 떠올렸다. ...... 이후로 사고가 줄었다고 했다. 실제 줄어든 것은 마을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일 거라 짐작해본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15-216, 희정 지음
장례는 관혼상제 중 외부에서 행하는 것이 가장 늦게 허용된 의례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18, 희정 지음
우후죽순 생겨난 상조없체는 원래도 맑지 않았던 상조업 연못을 아예 진흙탕으로 만드는 미꾸라지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21, 희정 지음
관혼상례 중 가장 불확실한 것이 장례이다. 가는 데 순서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 불안은 상조회사 유입의 원천이 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24, 희정 지음
'일한 만큼 버는 곳'이라는 건 현실에선 이런 의미다. 낮은 기본급을 건당 수수료(수당)로 메우는 곳.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25, 희정 지음
장례가 이토록 모를 것이 된 까닭에는 도시가 있었다. 모두 모시로 왔다. 도시의 병원에서 태어나 시설에서 늙다가(돌봄의 외주화) 병원에서 죽는다(임종의 의료화). 골방이나 다름없는 처치실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현대인의 죽음이다. 이후의 운명은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 맡겨진다. ...... 근대 이후 형성된 도시는 '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장소이다. 시장은 공간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는 세계의 작동 원릭이고, 이곳에서는 인간마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32, 희정 지음
우리의 생애에서 외주화된 것이 어디 이사와 장례뿐일까. 현대 사회에서 생애주기의 모든 영역이 상품이 되어 집 바깥으로 이동한다. 출산, 양육, 돌봄, 부양의 모든 순간을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가족의 몫으로 돌리지만, 실제 그 모든 것이 가족 안에서만 해결된 적은 없다.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시장은 그 환상을 외주화된 노동으로 메꿔왔다. '집안의 노동자'의 돌봄 노동을 나눠 갖는 임금 노동자들을 만든 것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32-233, 희정 지음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산품(노동)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소외되고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33, 희정 지음
보편적이라 불리는 생애주기에서 어긋난 삶을 산다는 건, 끊임없이 질문받으며 산다는 말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34, 희정 지음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이라 해도 타인의 시선에 갇혀 남들과 똑같은 장례를 치러야 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46, 희정 지음
세상이 남이라고 치부하는 관계들이 모여 그를 기린다. 동창, 마을 주민, 동아리 회원... 누구라도 그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47, 희정 지음
우리가 '잡귀'라 부르는 이들의 정체가 바로 집 밖에서 죽은 이들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우리는 옛날 같았으면 모두 잡귀 예약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2, 희정 지음
애도되어야 할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나누는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곳에선 더 많은 이의 죽음이 기억된다. '잘못된 죽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8, 희정 지음
"일상 의례의 궤적에서 이탈하는" 죽음은 서둘러 잊혀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9, 희정 지음
익명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아니, 망각으로 이어지기를 요구받는다. 허나 기억하는 일이 어렵듯이 잊는 일도 쉽지 않다.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상실은 오히려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니 숨 쉬지 못한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9, 희정 지음
우리 사회가 부끄러운 일로 여겨 숨기고자 하는 죽음이 있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 홀로 맞는 죽음, 가난한 죽음.... 죽음을 숨기는 일은 사실 삶을 숨기는 것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59, 희정 지음
내게 있어 죽은 자의 존엄은 그가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정상과 비정상, 쓸모와 무용, 질서와 이탈이라는 이분법 속에 삶이 익명화되거나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자신이 설명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엄과는 무관한 일이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0, 희정 지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죽는다. 값싼 옷이 값싼 수의가 되고, 좁은 집은 좁은 목관으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세상사 순리다. 다만, 결관 끈마저 가난할 수 있다니. 부의 불평등이 너무도 구체적이라 슬플 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나. 아니, 악마도 가난의 디테일을 이길 수 없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1, 희정 지음
"그곳에선 평등하시길." 그냥 하는 소리다. 땅에서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데, 사후 세계라고 평등할 수 있을까. 기억과 애도는 살아 있는 자의 것이기에, 이곳에서는 죽음 앞에서 애도조차 평등하지 않았다.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62, 희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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